[Special l] 창조적 혁신 경쟁 시대의 대안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스타트업을 통해 혁신을 배운다. 스타트업의 기업가 정신과 혁신 프로세스를 습득하며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스타트업을 인수하거나 투자함으로써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기도 한다. 미디어 스타트업과 새로운 마케팅 플랫폼은 광고업계에도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심지어 눈 밝은 할리우드 스타들은 이제 부동산 대신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상황이다. 도대체 스타트업이 뭐기에! 지금 전 세계가 열광하는 스타트업을 통해 미래 성장 동력과 시장의 변화를 살펴본다.
글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 mhleesr@gmail.com
스타트업이 주목받는 원인은 무엇이며, 스타트업이 창출하는 새로운 가치는 무엇일까. 혁신 경쟁의 시대를 맞이해 미래 성장 동력으로서 스타트업이 갖는 가치를
조명하고, 스타트업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본다.
효율 경쟁에서 혁신 경쟁으로
성장과 고용이라는 창조경제 달성을 위한 사실상 유일한 대안은 스타트업이다. 미국에서는 새로운 일자리의 60%를 스타트업이 만들었다. 대기업이 성장에는 기여하지만 일자리 창출에는 기여하지 못한다는 점은 이제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이는 IT기술과 글로벌화의 영향으로 분석되고 있으나, 혁신의 가속화라는 시대적 패러다임이 일으킨 변화의 결과로 보는 게 더 본질에 가까운 해석일 것이다.
그동안 기업들은 원가 절감을 위해 치열하게 효율성 향상 경쟁을 해왔다. 생산 관리, 구매 관리, 영업 관리, 인사 관리 등 효율성 향상 기술 발달의 결과, 효율에 관한 한 기업 간 격차가 급격히 축소됐다. 즉, 반복되는 업무의 효율을 올리는 경쟁은 IT 기술의 발달에 따라 기업 간에 차별화가 사라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기업의 차별화 경쟁은 효율 경쟁을 넘어 점진적 혁신 경쟁에 돌입하게 됐다. 기업들이 생산을 아웃소싱하고 신제품 개발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기업의 가치 사슬에 있어서 연구 개발과 마케팅이 핵심으로 등장한 것을 지식 경제라고 부른다. 그러나 치열한 개발 기술 향상 경쟁의 결과 점진적 혁신의 차별성도 점차 축소되고 있다.
생산 기술과 세일즈가 반복되는 것이 효율 경쟁이었다면, 연구 개발과 마케팅은 혁신 경쟁이라고 볼 수 있다. 연구 개발과 마케팅은 관리 가능한 혁신, 즉 점진적 혁신의 영역이었다. 기업의 가치 사슬이 연구 개발과 마케팅으로 이동하면서 MOT(Management of technology)같은 각종 연구 개발 기법과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같은 마케팅 기법 등이 발달하게 됐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결과 연구 개발과 마케팅의 기업 간 차별화가 축소되고 말았다. 이제는 연구 개발과 마케팅도 아웃소싱되는 상황이다. ‘개방 혁신(Open innovation)’으로 대표되는 혁신의 트렌드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나타나게 된 것이다.
기업가 정신, 와해적 혁신의 본질
이제 기업 간 경쟁은 ‘와해적 혁신’ 능력의 경쟁으로 접어들었다.
와해적 혁신은 소위 반복되는 법칙(Routine)이 없다. 와해적 혁신은 바로 창조성의 경쟁이다. 기업의 가치 사슬은 이제 효율에서 점진적 혁신을 거쳐 창조성에 기반한 와해적 혁신으로 다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경제의 등장은 기업 경쟁의 차별화가 지식재산권과 고객플랫폼 같은 창조성의 영역으로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와해적 혁신의 근원은 바로 기업가 정신이다. 지금 전 세계 주요 대학들이 기업가 정신을 중심으로 교과 과정을 재편하고 있다.
유럽은 이미 기업가 정신 교육 의무화를 선언한 바 있다. 창조적 기업가 정신이 바로 와해적 혁신을 위한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기업가 정신이 ‘혁신의 리더십’, 나아가 ‘가치 창출과 분배의 선순환 리더십’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혁신의 본질을 이해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창조적 도전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분배해 세상과 선순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가 정신은 창업과 사내 기업가 등 다양한 형태로 발현된다.
그중에서도 스타트업이란 과정을 통해 기업가 정신이 새로운 가치를 잉태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기업가 정신의 발현일 것이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은 세상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스타트업이 가치를 만들지는 않는다. 큰 미래 가치를 창출하는 스타트업이 우리 사회에 필요할 것이다. 2014년 창조경제연구회에서 중소기업청의 벤처기업 정밀 실태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스타트업의 가치를 분석한 바 있다. 생존율과 매출 성장률, 그리고 부가가치율을 바탕으로 조사한 스타트업의 미래 가치는 벤처의 경우 170억 원으로
추산되는 반면, 자영업의 경우에는 마이너스 값으로 나타났다. 생계형 창업이 벤처 창업보다 더 빨리 망한다. 벤처기업 정밀 실태 조사에 의하면 벤처의 5년 생존율은 무려 60%가 넘는 데 반해 음식업 등 자영업은 30%가 채 안 된다. 벤처 기업 평균 매출액은 70억 원인 반면, 자영업의 평균 매출액은 1억 원 수준이다. 도전적인 벤처의 생존율이 두 배 이상 높은 동시에 성공 시 대박이 가능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치킨 집이 아니라 벤처의 스타트업인 것이다.
그러나 모든 스타트업의 도전이 항상 성공하지는 않는다. 도전이란 본원적으로 실패를 내포하고 있는 단어다. 스타트업들은 아이디어 단계에서 부딪치는 악마의 강, 사업화 단계에서 넘어야 할 죽음의 계곡, 시장 개척 단계에서 극복할 다윈의 바다 등 숱한 난관을 넘어야 한다. 만약 실패 비용이 성공의 기대값보다 크다면 청년들은 험난한 스타트업보다는 안전한 다른 길을 선택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 한국의 불편한 현실이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스타트업 생태계의
구축이 당면 과제일 것이다.
1,2. 일반인들이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수익을 공유하는 서비스퀄키. ⓒquirky.com
3. 미국 전역 10여 곳에 설치된 테크숍은 하드웨어 스타트업에 특화된 개발 지원 공간이다. ⓒtechshop.ws
스타트업 생태계의 궁극적 모습
스타트업을 가로막는 가장 큰 생태계의 문제는 신용불량의 공포다.
창업 자금 융자 시 창업자는 연대보증을 서게 되고, 그 결과 실패하면 신용불량자로 전락한다. 실리콘밸리의 성공 비밀은 실패를 경험으로 창업을 지원하는 시스템에 있다. 소위 혁신의 안전망이다. 작년부터 창조경제연구회의 주창으로 창업자 연대보증 면제 정책이 부분 도입됐으나, 아직은 시작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과감한 지원을 통해 스타트업에 도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융자가 아니라 투자로 창업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엔젤 투자와 M&A 중간회수 시장의 선순환 구조가 스타트업 생태계의 궁극적인 모습일 것이다. 국가의 경쟁력은 규모의 경제인 효율과 새로운 경쟁력을 만드는 혁신의 결합이다. 즉, 대기업의 효율과 중소 벤처의 혁신이 선순환되는 과정이 창조경제의 핵심이며 M&A를 통해 이들이 결합되는 것이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구글, GE, 페이스북 등 주요 기업들의 성장 전략은 한마디로 M&A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스타트업의 ‘창조성’을 대기업의 ‘규모의 경제’와 결합하는 국가가 많다. 그런데 M&A 시장 형성은 쉽지 않은 과제다. 모든 국가가 노력했으나, 오직 미국과 중국만이 성공하고 있다. M&A 시장을 효과적으로 형성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적합한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다양한 혁신 플랫폼 구축
자금의 선순환 생태계가 갖춰진다면 다음 과제는 쉽게 스타트업을 할 수 있는 혁신 생태계의 구축일 것이다. 스타트업은 모든 일을 잘할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창조적 아이디어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면 된다. 자신의 핵심 역량에만 집중하면 되도록 주변 역량을 스타트업 생태계가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스타트업에게 필요한 공통분모를 집약해 제공하는 각종 혁신 플랫폼들이 등장하는 이유다.
아이디어를 모으는 퀄키(Quirky), 개발을 지원하는 테크숍(Techshop), 자금 조달을 지원하는 킥스타터(Kickstarter) 등이 대표적인 혁신 플랫폼들이다. 아마존 등은 AWS(Amazon Web Service)를 통해 클라우드 서비스 등 대부분의 스타트업에 필요한 공통분모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 스타트업에 필요한 각종 멘토링과 네트워킹을 제공하는 와이 콤비네이터(Y-combinator) 같은 액셀러레이터들이 혁신 플랫폼의 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리눅스 같은 오픈 소스와 3D프린터 같은 메타 기술들이 기술 개발을 쉽게 만들어 주는 생태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혁신 플랫폼들이 등장하면서 이제 스타트업은 쉬워도 너무 쉬어지고 있다. GRP Partners의 자료를 보면 2000년부터 2011년까지 미국의 인터넷 스타트업의 평균 비용이 약 500만 달러에서 5000달러로 1/1000 규모로 감소했다. 2000년에서
2005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오픈소스의 등장이 큰 영향을 미쳤고, 이후 클라우드 서비스의 등장과 개발자들의 창업으로 혁신 생태계가 조성되며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한국통계정보시스템의 자금 규모별 신규 법인 설립 분포 데이터에 의하면 우리나라 역시 5000만 원 이하의 자본금으로 창업하는 비율이 2011년도에는 전체의 약 70%까지 증가했으며, 1억 원 이하의 규모까지 확대하면 그 비율은 전체의 약 86%에 이른다. 이제 가벼운 창업은 글로벌한 현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스타트업 생태계의 영향이다.
우리나라는 많은 지원과 많은 규제가 병존하는 구조다. 앞으로 스타트업 생태계는 지원에서 규제 축소로 전환돼야 하고, 특히 크라우드 펀딩, 주식 옵션 등 금융 규제의 개혁이 중요하다. 건전한 스타트업 생태계 육성을 위해 모든 지혜를 모으고 노력을 경주해야 할 때이다.
1. 미국의 대표적인 클라우드 펀딩 서비스 킥스타터. 개인이나 기업이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회원들이 자금을 후원한다. ⓒkickstarter.com
2. 아마존은 AWS를 통해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aws.amazon.com
3. 각종 멘토링과 네트워킹을 제공하는 와이 콤비네이터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엑셀러레이터다. ⓒycombinator.com
이민화는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이며, 기업가 정신 교육과 영재 기업인 육성에 힘쓰고 있다. 한국 벤처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메디슨을 설립했으며 금탑산업훈장, 한국경영자 대상 수상 및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 한국의 100대 기술인 등으로 선정된 바 있다. 저서로 <호모 모빌리언스>, <스마트 코리아로 가는 길 유라시안 네트워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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