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웅 오리콤 브랜드전략연구소 소장
주변 섬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남이섬, 사람들은 왜 그곳에 가고 싶어하는가? 화폐적 통용가치가 낮은 2달러, 사람들은 왜 그것을 간직하고 싶어하는가? 남이섬에는 <겨울연가>의 애틋한 러브스토리가 숨쉬고 있고, 2달러에는 모나코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의 행운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스토리가 있는 것에 가치를 느끼고 갈망한다. 성경이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된 건 일방적 주장이 아닌 이야기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래서 좋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브랜드들은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오랫동안 사랑받기 마련이다. 샤넬 No.5의 마릴린 먼로 이야기, 버버리의 카사브랑카 이야기가 이들을 향수와 트렌치 코트의 대명사로 만들었고 지금까지 남다른 고객 사랑을 받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이처럼 유형적 스펙을 넘어 고객과 브랜드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스토리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스토리에는 특별한 아우라를 갖게 하는 힘이 있다. 맥아더 장군이 일본군 항복 공식문서에 서명한 펜이라면, 푸치니가 라보엠을 작곡한 펜이라면, 코난 도일경이 셜록 홈스를 집필한 펜이라면, 이보다 더 특별한 펜이 있겠는가? 바로, 파커 펜의 이야기이다. 파커에 얽힌 위대한 스토리들은 경쟁 브랜드들과는 사뭇 다른 차원의 가치를 느끼게 해준다.
스토리에는 기억과 전파의 힘이 있다. 영화 ‘7년 만의 외출’에서 메릴린 먼로가 지하철 환풍기에서 치마를 부여잡는 장면은 누구나 기억하는 유명한 장면이다. 바로 이 장면을 촬영할 때 메릴린 먼로가 자신의 아름다운 각선미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직접 이태리에서 구두를 공수해온 이야기나, 한때 발레를 해서 투박한 발 모양을 가진 오드리 햅번에게 어울리는 플렛슈즈를 만들어 햅번 스타일을 완성한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페라가모를 기억하고 회자하게 하는 모티브가 되고 있다.
스토리는 감성적 교감의 힘이 있다. 베트남 전쟁에서 총알을 막아주었던 안드레즈 중사의 지포 라이터, 샌프란시스코 해상 비행기 추락사고에서 조종사의 구조신호로 사용된 지포 라이터. 꺼지지 않는 불꽃의 상징인 지포 라이터의 이런 극적인 이야기들은 브랜드를 마음으로 느끼고 다가서게 하는 이유로 충분하다.
이렇듯 스토리가 주는 매력은 크다. 이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브랜드에 의미 있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스토리텔링 마케팅에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간혹 이런 스토리를 담아내기 위해 플롯, 등장인물, 갈등구조 등 인위적인 스토리 구조를 생각하려는 경우가 있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것은 영화나 게임 등에 활용될 법한 스토리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들 가슴에 와 닿고 소비자들이 서로 간단히 전달할 수 있을만한 에피소드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찾아낸 에피소드를 진정성 있게 브랜드에 담아내면 그것이 좋은 스토리텔링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에피소드들은 어디서 발견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브랜드 자체의 히스토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스토리를 보자. 18세기 알프스의 작은 마을에서 흘러나오는 지하수가 몸에 좋다는 소문을 듣고 신장염을 앓고 있던 프랑스의 한 후작이 이 마을에 요양을 오게 되었고, 이곳에서 나오는 지하수를 꾸준히 마신 후 병을 고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이 물을 연구하기 시작한 후작은 내린 눈과 비가 알프스 산맥을 오랜 기간 걸쳐 내려오면서 정화되었다는 사실과 풍부한 미네랄 성분까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약수가 흘러나오는 알프스 작은 마을의 이름이 바로 생수의 대명사 에비앙이다. 에비앙의 브랜드 히스토리는 소비자들에게 최고의 프리미엄 생수로 인정받고 사랑받는 이유가 되고 있다.
나이키의 창립자 빌 바우먼은 주방에서 아내가 와플 굽는 것을 바라보다가, 와플 제조기에 액체 고무를 부어 튼튼하면서도 가볍고 유연한 와플 무늬 밑창의 조깅화를 탄생시켰다. 이 나이키의 조깅화 개발 히스토리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나이키의 혁신 정신을 기억하게 하고 브랜드를 회자시키는 좋은 에피소드가 되고 있다. 국내에서 이러한 브랜드 히스토리를 활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브랜드는 바로 활명수다. 활명수는 궁중선전관 민병호 선생이 1897년 개발한 대한민국 최초의 양약으로 급체, 토사곽란 등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많았던 시절에 활명수(活命水)라는 이름의 뜻 그대로 ‘생명을 살리는 물’로 불리며 만병통치약으로 널리 알려졌다. 116년 된 소화제, 임금님이 먹던 소화제, 독립운동 자금을 대던 소화제 등 활명수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히스토리가 활명수를 국민소화제로 인식하고 장수브랜드로 자리 잡게 하고 있다. 이처럼 제품 탄생의 비화, 창업자, 역사, 브랜드 네임의 의미 등의 브랜드 히스토리는 좋은 에피소드의 보고다.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소비자의 다양한 브랜드 경험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락포트가 편안한 구두의 대명사로 알려진 계기는 1,000명의 소비자들에게 락포트의 구두를 1년간 신어 보게 하고, 사용 경험담을 사진과 함께 보내는 이벤트였다. 가장 인상 깊은 경험담으로 뽑힌 에피소드는 실제로 락포트 구두를 신고 마라톤을 완주한 사연이었다. 락포트는 이 사연을 바탕으로 실제로 락포트를 신은 마라토너를 뉴욕 마라톤에 참가시키고 광고로도 제작하는 등 소비자 경험담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가장 편안한 구두로 인식되고 이런 인식을 소비자들 입에서 입으로 확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브랜드 경험담이 있다. 전 국민이 알고 있는 빼빼로 데이, 그 시작은 부산의 한 여중생이 숫자 1이 네 번 겹치는 11월 11일에 친구에게 우정의 마음을 전하면서 ‘날씬하게 예뻐지자’ 라는 의미로 빼빼로를 교환한 소비자 경험담이었다. 수많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던 삼성생명의 ‘아버지의 도시락’ 영상 또한 ‘가족희망스토리’ 공모전의 실제 고객 경험담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며 늘 새벽에 귀가하면서도 아픈 아내의 몫을 대신해 두 아들의 도시락을 매일 준비하던 아버지. 돌아가시면서까지 두 아들을 위해 보험 증서를 남긴, 아버지의 큰 사랑을 일깨워 주는 감동적인 실화다. 이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고, 자연스럽게 삼성생명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갖게 했다. 이처럼 소비자의 브랜드 경험담은 브랜드에 대한 신뢰성을 높여준다. 또한, 경험담은 주변 사람들에게 입소문 형태로 점점 발전되며 말하는 이의 개인적인 체험이나 기억의 한 조각과 만나 손쉽게 또 다른 이야기로 변형 되어 새로운 스토리로 확대 재생산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에피소드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특별한 에피소드가 없다면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산타클로스는 왜 붉은색 옷을 입을까? 코카콜라의 로고가 붉은색이기 때문이다. 겨울철 콜라 판매의 부진을 만회하고자 프로모션 아이디어로 개발된 것이 지금 산타클로스의 모습이다.
때로는 프로모션 아이디어가 좋은 에피소드를 개발할 수 있다. 2004년 2월, 40년간 남자친구였던 켄과 헤어지고 호주태생인 블레인을 새 남자친구로 맞이한 바비. 바비 인형은 바비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라이프 스토리를 끊임없이 만들어 가고 있고, 이렇게 이어진 스토리 덕분에 바비는 엄마가 가지고 놀던 인형에서 아이들도 갖고 싶어 하는 인형이 되었다. 이처럼 기본 스토리를 만들어 이야기를 파생시키는 방식도 좋은 에피소드 개발 방법이다.
또 루머라도 긍정적인 루머라면 좋은 에피소드로 활용될 수 있다. 말보로 담배의 이름은 사랑했던 연인을 잊지 못한 한 남자가 자신이 만든 필터 담배 이름에 ‘남자는 흘러간 로맨스 때문에 항상 사랑을 기억한다(Man Always Remember Love Because Of Romantic Over)’는 의미를 담고자 단어들의 첫 글자를 따서 말보로(Marlboro)로 지은 데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는 루머지만 말보로를 알리는 좋은 에피소드로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마땅한 에피소드를 찾을 수 없다면 프로모션 아이디어, 이야기 파생, 루머 등을 통해 특별한 에피소드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먹을 것이 별거 아니어도 멋진 소문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더구나 서비스, 제품 품질이 좋다면 스토리는 금상첨화가 된다. 단언컨대 이야기하라! 소비자는 응답할 것이다.
[Consumer Insight] 스펙을 넘어 스토리로 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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