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NNER NOTE] 멸종위기 광고인 보호 프로젝트
TEXT. 넥스트캠페인4팀 (석아영 차장, 최문희 대리, 김진 대리, 최하빈 대리, 길아름 대리)
Prologue
10여 년 전에 광고회사의 신입사원이 되었다. 딱딱했다. 꿈에 그리던 광고인이 되었는데 주변의 광고인들은 모두 정장차림에 잘 웃지 않았다. 회사가 재미없었다. 그리고 1년 전에 광고회사의 팀장이 되었다. 답답했다. 꿈에 그리던 광고인이 된 주변의 동료와 후배들의 웃음이 점점 사라져갔다. 회사를 힘들어했다. 어쩌면 10년 전의 그 선배 광고인들도 우리와 같은 이유로 잘 웃지 않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가기 들었다. 왜 우리는 웃음을 잃어가는 것일까?
힘들고, 빡빡한 광고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친구들과 퇴직에 대해서 마치 어젯밤 꿈처럼 이야기를 나눌 때까 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다는 생각을 해봤는데 말이야..."로 시작되는 이 대화는 주로 "막상 이걸 그만두고 하고 싶은 게 없더라"로 맺음 된다. 그럴 때 드는 생각이 있다. 우리가 그만두고 싶은 이유는, 바로 우리가 이 일을 시작한 이유와 같지 않을까?
알랭 드 보통도 '마치 사랑의 끝은 그 시작 안에 이미 포함된 것 같다.'라고 하지 않았나. 보통의 직장인들과 달리 우리는 이 직업을 '좋아서' 선택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생계를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이 직업을 택한 사람들은 극히 소수일 거라고 생각한다. 생계를 위해서는 이 고생을 할 필요가 없다. 좋아서가 아니고서는 이 직업의 어려움을 감당할 만한 이유가 없다.
최근 광고인 혹은 광고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 인기인 페이스북의 페이지가 있다. <내가 광고회사 힘들다 그랬잖아>라는 이름의 이 페이지는 한마디로 '숱한 선배들에게 힘들단 얘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광고업에 종사하고 있는 우리'에 대한 이야기다. 밤낮없이 일하는 우리의 고단함, 그 고단함의 일상화에 대해 신랄한 풍자에 웃다 보면 가슴 한켠이 저릿해지는 것이 이 페이지의 매력이다.(도대체 이 페이지를 만든 분이 누구인지 밥이라도 한 끼 사 드리고 싶다.)
우리는 광고 일을 하는 한 행복해질 수 없는 걸까? 시쳇말로 이번 생엔 글렀으니 그냥 이렇게 페이스북이나 보며, 자조적으로 웃을 수밖에 없을까? 그게 싫다면 떠나는 수밖에 없을까? 이 칼럼은 이런 오랜 나의 궁금증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그간 행복을 찾기 위해 광고인을 포기했던 주변의 많은, 재능 있는 친구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더 이상 이렇게 광고를 좋아한 능력 있는 친구들이 사라지게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개체 수가 줄어들고 있는 광고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누군가는 움직여야 한다.
<멸종위기 광고인 보호 프로젝트> 칼럼에서는 1년간 우리 팀원들과 함께 세 번에 걸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광고인의 삶 속에서도 행복이 공존할 수 있음을 증명하려는 우리의 노력을 공유할 예정이다. 대단한 혁신을 할 수 있다거나,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단지, 오랜 시간 그래왔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광고인의 불행에 대한 넋두리가 조금을 해소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프로젝트는 대한민국 평균 이하임을 자처하는 남자들의 좌충우돌 도전기인 MBC <무한도전> 같았으면 한다. 허무하게 실패하거나, 깨알 같은 웃음과 감동이 있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그래, 이대로 멸종할 순 없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넥스트캠페인4팀
2016년, '멸종위기 광고인 보호 프로젝트'를 위해 철없고 맥없는 과잉웃음장애 아영 팀장을 중심으로 광고인 5명이 모여다. 무결점 막내 Killer 아름, 유리멘탈 Lovely 하빈, 오지라퍼 Sweet 문희, 그리고 외장하드 Genius 진.
프로젝트 NO.0
'닷스퀘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프리퀄 격인 '닷스퀘어(Dot Square)'를 잠깐 소개하겠다. 과학공식 같은 이름이지만 한마디로 '땡땡이'다. '땡'은 dot, '땡'이 둘이니까 dot의 제곱인 스퀘어 그래서 '닷스퀘어'. 이것은 '뱅뱅사거리에 머무르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세상과 단절된 것 같다'는 고민에서 시작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세상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는 광고인이 세상과 단절된 상황이라면 그가 내는 아이디어는 탁상공론일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Input이 많아야 Out이 많다'는 것은 창의적 발상의 기본조건 아닌가. 기본 조건을 지킬 수가 없으니 이대로는 광고인이 별종하거나, 아이디어가 멸종해서 광고인이 멸종하거나 둘 중 하나다. 그래서 회식을 '닷스퀘어'로 바꿨다. 진짜 땡땡이는 하지 못하더라도 정시퇴근으로라도 땡땡이의 기분을 느껴보자는 것이었다. 규칙은 첫째,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지 말기. 책상에 머무르는 시간이 좋은 아이디어의 가능성에 비례하지 않으니 바빠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가기. (하지만, 바쁜 업무 때문에 결국엔 3회밖에 진행하지 못했다.) 둘째, 호스트 마음대로 하기. 담당 호스트에게 전권을 주고, 어떤 것을 하더라도 군말 없이 따르기로 했다. (호스트는 캠페인 플래닝 실습, 게스트는 타인의 취향을 경험하는 기회가 된다.) 지금에야 말이지만, '닷스퀘어'의 호스트가 아름이었을 때 내 반응은 "세상에! 누가 그런 걸 하나 했는데 그게 나야?"였다. 아마도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을 듯하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닷스퀘어 01
골목상권탐험
(2015년 6월/ 호스트-석아영)
점점 확장하고 있는 경리단 골목문화의 주인공들을 만나 골목상권과 문화에 대해 알아보았다. 경리단길의 유일한 갤러리 '드로잉블라인드' 박재영 대표의 가이드로 경리단길의 구역별 특징과 변화를 보고, 그 당시 인스타그램 핫플레이스였단 'AHOY'의 사장님과도 초코피자를 먹으면서 창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후 아이템을 '꼬치'로 바꾸고 대박 사장님이 되었다는 후문.)
닷스퀘어 02
가을서촌산책
(2015년 10월/ 호스트-최문희)
가을 하면 산책. 모두 이날의 드레스코드인 '가을'에 맞춰 입고 경복궁을 산책한 후, 대림미술관의 '헨릭 빕스코브' 전시 관람과 'Good Night'에 참여했다. 그 후, 서촌에서 간단한 저녁을 먹으면서 각자 베스트드레서로 뽑혀야 하는 이유를 프레젠테이션했다.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BGM 'Mr. Chu'와 함께 자신을 어필했던 하빈이 호스트의 마음을 사로잡아 승자가 되었다.
닷스퀘어 03
당신을 '뱅' 게임에 초대합니다
(2016년 2월/ 호스트-길아름)
이날은 아름의 대리 승진 축하 파티이자, 닷스퀘어 세 번째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 난 아마 다신 가지 않을 그곳은 '방탈출게임'이었다. 이 얼마나 잉여스럽고, 덕후 같은 콘텐츠인가? 인비테이션 발송으로 우리를 이 게임에 초대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방탈출에 실패했다. 방이 좁고, 사람이 많았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방탈출게임에 적합한 뇌를 보유하지 않았던 것 같다. 비싼 돈을 주고 패배감을 맛보니 다음 경쟁 Pitch는 꼭 이기고 싶은 승부욕에 발동이 걸리는 효과는 있었다.
닷스퀘어
Review
[김진 대리]
언젠가부터 나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머리카락 한 움큼과 바꾼 소중한 월급은 검증되지 않은 경험에 투자하는 것보다 이미 알고 있는 허세플레이스에서 나를 위로하는 데 쓰는 것이 가치 있다고 생각되기 시작했고, 지하철 계단도 등산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몸은, 요새 핫하다는 시끌벅적한 공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져서 잡지의 화려한 소개글과 친구들의 영웅담으로 만족하기 시작했다.
이런 작은 변화 뒤에 가려진 진짜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렌드를 알아야 한다는 광고쟁이로서의 강박이 나를 키보드로 세상을 경험하는 '호모 키보드쿠스'로 만들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조용히 부정적 신인류로 진화하고 있던 내게 '닷스퀘어'는 매트릭스의 빨간약이었다. 이 세상이 사막이 되어버린 게 아니라, 내가 사막 속에서 안주하는 법을 찾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짧지만 임팩트 있는 하루의 경험(그리고 우리는 삭막한 사막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슬픈 현실과 마주보기). 그날만큼은 우리 팀 모두가 온갖 핑계로 멀리하던 진짜 세상을 만났다.
팀원이 동공 풀린 눈으로 어딘가의 전시 후기나 '#힐링'이 붙은 누군가의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보며 기계처럼 손가락을 올리고 있다면 위험징후다. 컴퓨터를 뺏고 선글라스를 씌워 밖으로 보내야 한다. 만약 본인이고 도와줄 사람이 없다면, 우리 팀에 메일을 보내라. "다음 달 닷스퀘어 참가 신청합니다."
[최문희 대리]
'닷스퀘어'의 가장 큰 장점은 호스트의 취향에 따라 개인적으로는 하지 않을 것까지 즐기게 된다는 점이다. 인사이트를 찾는다면서 사무실에만 있는 나의 모습, 바빠질수록 개인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좋아하는 것들만 찾는 모습에서 모순을 느껴왔다. 생활의 틀이 좁아짐에 따라, 생각의 틀 또한 자연스럽게 좁아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닷스퀘어'를 통해 나의 좁은 틀에서 벗어난 다른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고, 같은 경험에도 다른 각자의 의견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것을 느끼게 된 것 같다. 막상 '닷스퀘어'를 할 때 현업에 대한 걱정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다. 스관처럼 '클라이언트가 급하게 뭘 요청하면 어떻게 하지?' 혹은 '그날 갑자기 야근할 일이 생기면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 등등. 사실 이런 걱정은 매번 하게 되는 것 같지만, 팀 전체가 업무에 맞춰 일정을 조율하고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오히려 부담이 적은 것 같다.
[최하빈 대리]
"요즘 애들은 뭐 하고 노니?"
"요즘 애들은 뭐 좋아하니?"
광고대행사 막내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열에 아홉은 들어봤을 말들.
대리 2년 차인 나도 더 이상 '요즘' 애들도 아니거니와, 학창시절에도 하지 않았던 학교-집, 학교-집 생활을 뱅사-집, 뱅사-집이 되어 지내다 보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
"저도 몰라요."
"놀 시간이 없어요."
어느새 "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아이디어 만들어주세요"라는 클라이언트의 말에 덜컥 겁부터 나는 우리들.
회의실에서 아이디어 보약 짓듯 짜내기보다는, 요즘 애들인 양 직접 놀아보고 경험해보는 것이 조금은 예행연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휴학생인 척 평일 갤러리를 관람하고, 20대의 데이트인 척 떠오르는 맛집을 가고, 음악덕후인 척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에서 써보지도 않은 LP로 음악을 듣는 것.
"별거 아니네."
싶다면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팀에서도 해봤으면 하는 마음.
별거 아닌 것이 별일 없는 우리의 바쁜 삶을 조금은 말랑말랑하게 할 테니까.
[길아름 대리]
정말 진부한 걸 알지만 이 말밖에 없다.
"우리 팀 '닷스퀘어'는 정말 재미있다." 그냥 히뜩하고, 트렌디한 곳을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호스트가 그날의 테마에 따라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때문에 테마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닷스퀘어'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그날의 경험에 대해서 팀 사람들과 이런저런 수다를 떨 때이다. 팀장님과 팀원 모두 독특한 생각의 색깔을 가진 편이어서 같은 경험으로 서로 다른 의견이 나올 때 즐겁다. 예를 들어 '골목상권탐험' 때, 'AHOY'의 사장님과 운영과 수익창출의 어려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후에 나름 우리끼리 부넉을 했었다.
1차원적으로 '이건 예쁘다 또는 재미있다'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문제가 있었고,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등 대화의 주제가 깊이 있게 이어지는 편이어서 아직 낮은 연차의 나에게는 선배들의 다양한 인사이트를 들을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되어 항상 기다려지는 편이다.
Epilogue
최근 TED의 강연으로 이슈가 된 작가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가 "문화가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이 문화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 프로젝트가 광고인들이 행복해지는 데 작은 도움이 되어 멸종위기에 있는 광고인을 보호하려는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을지는 나중에 생각해보기로 하고, 우선 다음 달부터 시작이다.
닷스퀘어 ·
땡땡이 ·
광고쟁이 ·
트렌드 ·
광고인 ·
멸종위기 ·
경리단길 ·
골목문화 ·
서초느 방탈출카페 ·
행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