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편집실
로봇 은행원, 금융 상품을 팔다
아직 “난 기계도, 인간도 아니야. 그 이상이지”를 외치는 터미네이터가 등장한 건 아니지만, 로봇의 진화는 상당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그런 진화가 피부에 와 닿지 않았던 건, 대부분의 로봇이 공장 안에서 칩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공장 ‘탈출’을 감행하기 시작한 로봇들이 가정을 비롯한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올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비즈니스적 측면에서 소셜 로봇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소셜 로봇의 등장
BI 인텔리전스의 보고서에 의하면, 소비자 및 오피스용 로봇 시장이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연평균 17%씩 성장, 2019년에는 15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이는 그동안 로봇 시장을 선도해 온 산업용 로봇에 비해서 상당히 가파른 성장세로, “2016년에 소비자 및 오피스용 로봇 시장에 혁신적 로봇들이 대거 등장함에 따라 대중적 관심 증가와 실질적 시장 규모의 확대를 이끌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 등장했거나 곧 출시 예정인 소비자용 로봇의 공통점이 ‘소셜 로봇(Social Robot)’이라는 것이다. 소셜 로봇이란 사람 또는 다른 대상과 커뮤니케이션하며, 자율적으로 동작하는 로봇을 뜻한다. 그렇다면 소셜 로봇은 어떤 특성을 가질까? 일단 소셜 로봇은 ‘대화’가 가능하다. 단지 사람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교감한 뒤 정서적 상호작용에 따라 작동한다는 얘기다. 물론 로봇의 감정은 소프트웨어의 알고리즘에 의해 생성되겠지만 말이다.
소셜 로봇의 두 번째 특징은 ‘자율성’에 있다. 사람의 명령만으로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규칙에 따라 주변 환경 변화를 인식하고 자율적 행동을 수행하며, 각종 사물(IoT)과 통신함으로써 임무 수행에 도움을 얻는다. 마지막으로 소셜 로봇은 ‘학습’한다는 특성을 갖는다. 사람과 상호작용하고 자율적으로 행동하면서 얻은 데이터를 축적해 사용자에게 최적화된 수행 능력을 키워간다. 다시 말해 아이들처럼 ‘성장한다’는 얘기인데, 무척 놀라운 일이다.
이런 특성을 지닌 소셜 로봇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2013 부산국제광고제의 수상작 중 하나인 ‘Marionettebot’을 보자.
마리오네트(Marionette)와 로봇(Robot)의 합성어인 마리오네트봇은 간단히 말해, 진열장 밖 소비자의 동작을 따라하게 만든 쇼윈도 마네킹이다. 마리오네트봇은 동작 인식 센서가 탑재된 키넥트 기술을 적용한 다소 초보적 로봇에 불과하다. 하지만 소비자의 참여를 유도한 인터랙티브 프로모션으로, 전통적이고 진부한 아이템인 마네킹에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사람과 소통하는 이런 소셜 로봇이 등장하기 이전인, 지난 2010년 일본 도쿄의 한 놀이공원에서는 7개의 축을 가진 양팔로봇 야스카와군(MOTOMAN-SDA10)이 등장해, 시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세계 최초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었던 이 로봇은 제조용 로봇이 서비스 로봇 분야에 진출한 사례에 속한다.
1. 쇼윈도의 마네킹에 로봇 개념을 적용한 마리오네트봇. ⓒfacebook.com/hakuhodocheil
2. 일본 야스카와전기가 시범적으로 선보인 야스카와군.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판매하면서 큰 인기를 모았다. ⓒtwitter.com/yaskawakun
3. 프랑스 알데바란 로보틱스는 노인들의 집안일을 돕고 친구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로봇 ‘로미오’를 개발했다. ⓒprojetromeo.com
고령화 시대와 소셜 로봇 비즈니스
소셜 로봇의 본격적 진화 방향은 사회 구조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고령화란 키워드를 로봇과 연결지어 보자.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 많은 국가가 고령화 사회로 진입해 있고,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로 고민이 깊다. 이에 따른 노동력 상실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로봇이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돌볼 수 있는 소셜 로봇의 등장은 불가피해 보인다.
인간의 웰빙을 위한 휴머노이드 ‘Romeo’를 생산한 알데바란 로보틱스(Aldebaran Robotics) 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개념을 고령화가 극심한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고안한 바 있다. 이를 두고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Le Figaro)>는 “Romeo가 미래에 고령 인구의 ‘진정한 친구’로 인식될 것이며, 일상생활의 동반자가 될 것”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실제로 Romeo는 걷기는 물론이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3D로 사물을 보며, 문을 열고 테이블 위에 물건을 놓고, 짧은 대화와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등의 기능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정도의 미션을 수행하면서 짜증도 내지 않는다면 이만한 ‘동거인’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소셜 로봇은 노령층을 케어하는 실버산업이나 아이들의 학습을 지원하는 교육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핀란드는 오울루대학(University of Oulu)을 중심으로 기계시각(Machine Vision)과 같은 분야의 최신 기술을 적용해, 희로애락 같은 인간의 기본적 감정을 인식하고, 그에 따라 반응하며 인간의 표정과 몸짓, 말투 등을 해석할 수 있는 로봇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물론 소셜 로봇 개발에는 많은 난제가 있지만, 핀란드는 선진적 기술을 앞세워 이 분야를 선도해나가고 있다.
소셜 로봇의 핵심은 사람과 교감하는 능력
소셜 로봇을 소개하면서 빼놓아서는 안 되는 로봇이 있다. 바로 페퍼(Pepper)다. 이미 상용화돼, 높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현실적인 로봇’이기 때문이다. 소프트뱅크가 2012년 프랑스의 로봇 전문기업 알데바란 로보틱스를 1억 달러에 인수한 후 출시한 대표적 소셜 로봇이 바로 페퍼다. 페퍼는 2014년 처음 공개된 후, 2015년 6월부터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본격적 시판에 들어갔는데, 초기 출하량 1000대가 발매 개시 1분 만에 매진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소프트뱅크는 올해 1월에 열렸던 사업 설명회에서 ‘스마트 로봇 원년’을 선포한 바 있다. 실제로 이미 페퍼는 일본 500여 개 기업에 투입돼 활용되고 있으며 미즈호 은행, 아오모리 은행 등 전국 37개 은행에서도 도입 중이다. 또한 닛산 자동차 판매점 100여 곳에서도 페퍼를 도입해 소비자 응대에 활용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소프트뱅크는 최근 인공지능 대화형 로봇인 페퍼를 활용한 무인 휴대폰 매장을 선보였다. 비록 한시적 운영이었지만 향후 이를 확대해 2000개의 소프트뱅크 휴대전화 매장에 접객 로봇을 투입할 예정이다. 접객 로봇은 고객 안내, 상담, 개통까지 모든 과정에서 소비자를 돕게 된다.
그런가 하면 MIT 미디어랩 출신의 로봇공학자이자 소셜 로봇의 선구자로 불리는 신시아 브리질 박사의 가정용 로봇 지보(Jibo)가 곧 출시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소셜 로봇의 특성을 전면에 내세운 지보는 메시지 전달, 사진 촬영, 리마인딩, 이야기 구연 등 모두 6가지의 기능을 갖춘 로봇으로, 업계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소셜 로봇이다. 유튜브에 공개된 소개 영상이 폭발적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브리질 박사는 “지보의 핵심 능력은 사람과 교감하는 능력”이라고 밝힌 바 있다.
페퍼, 지보와 함께 3대 소셜 로봇으로 불리는 것이 바로 버디(Buddy)다. 버디는 프랑스 로봇 스타트업 블루 프로그 로보틱스(Blue Frog Robotics)가 만든 소셜 로봇으로 개인 비서 역할과 집 안 감시, 레시피 등의 정보 제공, 아이들의 놀이 상대, 영상통화 등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으며, 별도 판매하는 로봇팔을 장착하면 프로젝터 기능을 추가로 사용할 수 있다.
여기에 일본 NTT사의 커뮤니케이션 로봇 소타(Sota)나 로보혼 등이 소셜 로봇의 현재와 미래의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제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소타는 사람의 대화 상대가 돼주며, 마치 반려동물이나 동반자의 느낌을 갖도록 만들어진 로봇이다. 로보혼은 등에 2인치 터치스크린이 달려 있고, 얼굴에 장착된 프로젝터를 통해 사진과 지도, 동영상 등을 보여주며, 사람의 얼굴과 음성을 인식해 주인을 알아보고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1. 지하철역, 가전매장, 은행, 커피 체인점 등 다양한 장소에서 소비자 응대에 활용되고 있는 로봇 페퍼. ⓒsoftbank.jp
2. 미국 MIT가 개발한 가정용 로봇 지보. ⓒjibo.com
빠르게 진전되는 소셜 로봇의 상용화
소셜 로봇의 상용화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건 단순히 ‘움직이는 로봇’에서 사람과 교감하며 ‘대화하는 로봇’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은 단순히 인간과 똑같은 동작을 하는 로봇보다는 대화하고 스스로 생각하며 교류할 수 있는 로봇을 원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사실은 사람들이 상대하고 싶어 하는 소셜 로봇의 크기가 성인보다는 오히려 어린이 정도의 아담한 크기를 더 선호한다는 점이다. 대화가 가능한 소셜 로봇을 필요로 하는 장소는 병원이나 간호 시설 혹은 기차역이나 공항, 공공기관 등 다수의 사람들이 정보와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확장되면서 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보인다.
사람과 사람 간 대화에도 질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인간과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로봇을 스마트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인공지능이 필수적이다. 로봇 페퍼가 스스로 생각해 인간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것도 빅데이터에 기반한 인공지능 기술 덕분인데, 인간의 감정 생성 메커니즘을 기초로 해 만든 ‘감정 생성 엔진’은 상황에 따라 감정을 변화시켜 그에 맞는 대화를 선별하게 한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인간의 질문에 응답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먼저 말을 건넨다는 데 있다.
밤잠을 설치고 있을 때 거실에 있던 로봇이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느냐”며 말을 걸어온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소셜 로봇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언을 수정해야 하는 계기가 될지 모르겠다. 더 이상 인간만이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셜 로봇은 산업용 로봇에 비해 아직까지 시장 규모는 작지만, 인공지능과 결합하면서 매우 빠른 성장이 예상된다. 이제 로봇 직원이 가져다준 커피를 마시고, 로봇 공인중개사에게 집을 사고, 로봇 은행원에게 금융 상품을 물어보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Big Step] 로봇 은행원, 금융 상품을 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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