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배가브리엘 프로 Beyond 전략팀 gabriel.bae@samsung.com
VR 어디까지 왔나
2016 VR 트렌드
VR(Virtual Reality)은 연초부터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화두였다. VR이 주목해야 할 기술로 부상한 이유는 그것이 제공하는 사용자 경험과 가치 때문이다. 다른 콘텐츠에 비해 사용자에게 보다 강도 높은 감정이입을 유발하는 VR…. SXSW 2016부터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까지 VR의 현재 트렌드를 살펴본다.
SXSW 2016의 뜨거운 감자
음악 축제에서 출발한 이래 ‘세계에서 가장 트렌디한 서비스의 집합’으로 불리게 된 SXSW(South by Southwest)가 지난 3월 20일 오스틴에서 마무리됐다. SXSW는 음악, 영화, 교육, 스포츠 등 보다 포괄적인 엔터테인먼트 및 미디어 산업을 포괄하는 행사로서 방문객이 30만 명 이상에 달한다.
올해 SXSW의 가장 큰 이슈는 VR이었다. 미국 비즈니스 매거진 <Inc>와 <포브스>를 비롯해 많은 언론에서 VR을 가장 주목할 만한 트렌드로 꼽았으며, <패스트 컴퍼니>는 “올해 2016년은 VR 소비자시대의 원년이 될 것”으로 선언했다. SXSW는 독자적인 VR 및 AR(Augmented Reality) 트랙을 최초로 마련했고, 스타트업들뿐만 아니라 삼성과 맥도날드 같은 대기업들도 적극적으로 VR 체험을 선보이며 눈길을 끌었다.
일반 소비자 시장의 급격한 성장 예상
1950년대부터 논의되기 시작했던 VR이 올해 이처럼 주목받는 이유는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VR 업체들의 ‘빅매치’가 성사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오큘러스는 리프트(Rift), 대만의 HTC는 바이브(Vive), 일본의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 VR(Playstation VR)을 출시할 예정이다. 여기에 삼성의 기어 VR과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Hololens)도 가세한다.
리서치 업체 슈퍼데이터와 마켓앤마켓은 2016년 VR 이용자가 약 1100만 명, 시장 규모는 약 6조 원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소비자와 VR 기술 사이의 문턱이 낮아진 것을 방증하듯 SXSW의 VR 세션도 예전과는 다른 기조로 진행됐다. SXSW의 IT 박람회 디렉터 휴 포레스트(Hugh Forrest)부터 VR의 활용 가능성과 실제성을 강조했다. 다른 세션에서도 VR을 단지 ‘유행’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이미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있는 ‘현실’로 인식하면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됐다.
사용자 경험과 스토리텔링, VR에 던져진 질문
“VR이 영화, 게임보다 감정을 좀 더 전달할 수 있는가(Can VR Deliver More Emotion than Movies and Games)?” 세션에서는 VR이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됐다. 유명 게임 개발자인 니콜 라자로(Nicole Lazzaro)를 비롯한 패널들은 VR이 유발하는 감정이입의 정도가 강하다는 점을 이유로 꼽았다. 실제 <마케팅 매거진>의 조사에 의하면 VR 콘텐츠에 대한 소비자의 몰입 수준은 일반 콘텐츠의 약 7.5배 이상을 기록한다. 이런 강렬한 몰입을 가능케 해 주려면 VR 콘텐츠는 새로운 스토리텔링 방식을 따라야 할 것이다. 구글의 VR 프로덕트 매니저 안드레이 도로니체프(Andrey Doronichev)는 단지 360° 촬영 기술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내러티브와 조명, 모션, 사운드 등 콘텐츠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에 대한 복합적인 고려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SXSW 2016에서는 스토리텔링에 대한 고민의 결과를 여러 형태로 만날 수 있었다. 영화, 게임, 음악, 건축뿐만 아니라 정부 및 비정부기구의 캠페인에서도 VR을 활용한 스토리텔링이 실험됐다. 3D 프린팅 기술과 VR 기술을 결합시켜 만든 스톱모션 영화 <The Land of Hope and Glory>가 상영됐으며, 한국의 일렉트로닉 뮤지션 허(HEO)의 <루나(Luna)> 뮤직비디오가 VR과 리얼리티를 융합해 만든 콘텐츠로 소개되기도 했다. 한편 U2, 카니에 웨스트, 그린데이, 코트니 러브 등의 뮤직비디오를 작업한 비디오 아티스트 크리스 밀크는 텔레비전과 VR 기술을 결합시켰다. TV 쇼 <Saturday Night Live>의 진행자 제리 사인필드를 VR 카메라로 촬영하는 동시에, 사인필드가 출연자를 지명할 때마다 마치 콘텐츠 감상자가 스튜디오 안에 직접 들어가 있는 것처럼 출연자들의 얼굴이나 그 주위 모습을 살필 수 있게끔 했다. 이처럼 사용자 경험을 이제까지와는 다른 차원으로 증폭시키기 위한 시도들이 여러 모로 진행되고 있다.
1. 3D 프린팅 기술과 VR 기술을 결합해 만든 스톱모션 영화 <The land of hope and Glory>. ⓒSXSW
2. 일렉트로닉 뮤지션 허(Heo)의 뮤직 비디오 <루나(Luna)>. VR과 리얼리티를 융합해 만든 콘텐츠다. ⓒSXSW
1. 비디오 아티스트 크리스 밀크의 SNL 촬영 현장. ⓒSXSW
2. SXSW의 인텔 VR 존. ⓒ허정우(비욘드 사업1팀)
VR의 적용 범위, 기업 마케팅에서 화성 탐험까지
미국의 비영리단체 AMA(American Marketing Association)가 마케팅에 영향을 미칠 5대 트렌드 중 하나로 VR을 꼽은 만큼, 여러 대기업이 VR을 접목한 프로모션을 선보이고 있었다. 삼성전자 C-Lab이 선보인 VR 헤드셋 ‘엔트림 4D’는 단지 헤드셋만으로 전정기관을 자극해, 4D 영화를 보는 것처럼 몸이 흔들리고 움직이는 감각을 느낄 수 있게끔 만들어진 기기다. IBM도 ‘VR Cycling Zone’을 마련해 재미있는 경험을 제공했다. 그냥 보기에는 자전거를 몇 대 죽 늘어 세워놓은 것뿐이지만, 사용자는 오프로드, 도시, 선수용 중 하나의 모드를 생각하고 실제로 오르막 또는 내리막을 달리는 경험을 누릴 수 있다.
마케팅뿐만 아니라 헬스케어, 교육 등 VR이 적용될 수 있는 범위는 기하급수적으로 넓어지고 있다. 예컨대 스탠포드대학교의 풋볼 코치가 설립한 스트라이버 랩스(Strivr Labs)는 스포츠 VR 콘텐츠 회사로, 연습 경기를 3D 카메라로 촬영해 다시 그 경기를 뛰며 훈련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선보였다. 영국의 VR 솔루션 업체 플렉스테크는 오큘러스 리프트를 활용, 원격 진료 및 치료 서비스를 제공 중이며, NASA는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3D 시뮬레이션으로 화성 표면을 재구성하는 가상 화성 탐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 스타트업들의 VR 생태계 구축
국내 스타트업들도 다양한 분야에서 VR을 접목한 솔루션을 만들어내며, 한국의 VR 생태계를 구축 중이다. 현재 VR 기술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으며, 특히 영화계는 특수 효과를 만들어내던 제작 환경을 이미 갖추고 있다 보니 VR의 활용도 빠르게 이뤄지는 추세다. 2007년 설립된 MACRO Graph는 <명량>, <연평해전>을 비롯해 약 200개의 영화, 애니메이션, CF의 3D 그래픽 작업을 맡아 온 회사인데, VR 기술을 콘텐츠에 본격적으로 적용하고자 이를 전담하는 부서인 MGVR을 론칭했다.
만약 관객이 영화 <히말라야>의 황정민, 정우와 같이 빙벽을 오르는 체험을 할 수 있다면? 이처럼 원작을 기본으로 삼고, 360° 스토리보드를 다시 만든다. 여기에 맞춰 촬영, 편집, 마지막 렌더링까지 거친다. 즉, MGVR은 오리지널 콘텐츠를 빌려오되 그 캐릭터 및 스토리와 관객의 인터랙션이 가능하도록 VR 기술로 콘텐츠를 재가공해 제공한다.
2015년 설립된 리얼리티 리플렉션은 3D 스캐너 모델링 기술을 바탕으로 ‘현실을 가상화하는 프로덕션 시스템’을 제공한다. 서비스의 핵심은 자신, 가족, 친구를 비롯해 실제로 살아있는 누군가를 가상 공간에 옮겨놓는 것이다. 마치 스티븐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톰 크루즈가 죽은 부인과 가상 영상을 통해 대화했던 것처럼, 리얼리티 리플렉션의 기술을 활용하면 눈앞에 실제의 시공간을 되살릴 수 있다. 현재 리얼리티 리플렉션은 ‘브로캐스트(VRocast)’, 즉 가족이나 친구를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후 VR 콘텐츠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판매 중이다.
페이스북이 오큘러스를 매입한 후 주목받고 있는 소셜 VR 부문에서도 2015년 설립된 바이너리VR이 솔루션을 개발 중이다. 현실과 유사한 VR 세계를 만든 후 그 속에서 VR 페르소나에 사용자를 대입하고자, 사용자의 얼굴 표정을 매 순간마다 트래킹해 VR 캐릭터가 그 표정을 실시간으로 재현할 수 있도록 한다. 과거 루카스필름에서 일하며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배우의 얼굴 표정을 입히는 기술을 개발했던 유지훈 대표가 유사한 맥락에서 이와 같은 SNS 솔루션을 고안한 것으로, 오큘러스 토이박스나 알트스페이스VR과 같은 소셜 SNS의 캐릭터는 사용자의 표정을 구현하지 못하지만, 바이너리VR의 경우 카메라가 안구 및 코와 입 주변 근육의 움직임을 수치화하면서 캐릭터에 감정을 부여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갖고 있다.
이외에도 VR 콘텐츠 전용 플랫폼 ‘자몽’, 모바일 디바이스를 활용해 3D 공간 솔루션을 개발하는 ‘아키드로우’ 등 한국의 VR 스타트업들은 제작부터 배포까지 비교적 다양한 부문의 플레이어로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VR이 전달하는 가치
한편 VR 기술에 있어 그 보편화 가능성을 반문하며, 특히 VR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메모리와 소프트웨어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크다. 독립적인 시장을 이루는 데 실패한 3D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역시 몰입도 높은 콘텐츠가 필요한데, 인간의 시선이 미칠 수 있는 모든 지점에서 촬영한 360° 영상을 어느 수준으로 구현 가능할지가 의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1950년대 센서로마에서부터 지금의 기어 VR에 이르기까지 기술이 발달하며 여러 문제가 해결됐듯이, VR에 대한 수요가 있다면 기술적 문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해결될 것으로 기대해 볼 수 있다. 결국 VR이 주목해야 할 기술로 부상한 이유는 그것이 제공하는 사용자 경험과 가치 때문일 것이다. 사용자들이 VR을 통해 더 다채롭고 몰입도 높은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된 만큼 영화, 게임, 공연, 교육, 헬스케어 등 일상에서 VR을 적용하려는 시도도 공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VR은 사용자의 주변 환경을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바꾸며, 예전과는 다른 강도의 인게이지먼트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에 ‘완벽한 감정 이입 기계(Perfect Empathy Machine)’라는 별명을 얻었다. MSL 그룹의 부사장 제프 멜튼(Jeff Melton)이 한 말처럼 ‘시공간을 초월하고, 사람들을 다른 세계로 데려다 줄 수 있는’ 힘을 가진 VR로 인해 사용자들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콘텐츠와 소통하게 될 것이다. 이 감정 이입 기계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매력적인 사용자 경험을 선사할지 흥미롭게 지켜볼 만하다.
3. SXSW의 삼성 기어 VR을 활용한 롤러코스터 체험. ⓒflickr.com
4. MGVR의 360° 스토리보드. ⓒD.Party
5. 리얼리티 리플렉션의 360° 촬영 현장. ⓒrealityreflect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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