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헌(안나푸르나 프로덕션 기획실장)
대한민국 남자라면 어떤 이유에서건 트라우마가 있게 마련인 군대. 그런데 그 군대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한 편이 아주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했지 말입니다. 여자보다 예쁜 꽃미남인데 람보 뺨치게 싸움까지 잘하는 파병 군인과 양귀비 뺨치는 미모에 실력과 인도주의적 심성까지 겸비한 봉사단 여의사의 매우 매우 밀리터리하면서도 아주아주 스펙터클한 사랑… 이름하여 ‘태양의 후예’답게 수많은 이들, 그중에서도 특히 수많은 여심들을 한동안 뜨겁게 달구어 놓았더랬지 말입니다. 그런데 그 드라마에 보내는 수많은 남성들의 반응이 좀 삐딱했지 말입니다. 세상에 저런 군인이 어디 있으며 군대에서 저런 상황이 말이 되느냐… 일개 대위를 데리러 헬리콥터가 뜨고 병장이든 졸병이든 배에는 모조리 ‘王자’가 새겨져 있고 어려운 작전 수행 중에도 모두들 칼같이 잘 다려진 핏이 살아있는 군복을 입고 있는 상황들. 드라마가 공감의 장르라면 절대 공감할 수 없는 상황들. 하지만 대한민국 남성들의 공감 여부와는 상관없이 이 드라마는 제대로 떴지 말입니다. 아마도 드라마의 성공 이면에는 지금도 이 지구 어딘가에는 전쟁과 내전, 그리고 테러로 고통 받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누군가는 그 참혹한 고통으로부터 그들을 구해내는 영웅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인류 보편애적인 사람들의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이번 호에서는 ‘전쟁과 군인’에 관련된 글로벌 캠페인 몇 가지를 ‘태양의 후예’ 심쿵 명대사 몇 가지와 함께 엮어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안 되는데, 그 어려운 걸 자꾸 해냅니다. 내가
전장에서 적군을 무장해제시키는 것만큼 어려운 게 또 있을까요? 그런데 여기 그 어려운 걸 자꾸 해내는 캠페인 사례가 있습니다. 콜롬비아의 반군조직인 콜롬비아혁명군(Las FARC)은 60년 동안 게릴라전을 펼쳐왔고 현재 콜롬비아 정글 지역에는 6천 명의 게릴라들이 남아 있답니다. 그래서 콜롬비아 국방부는 남아 있는 반군세력들을 해제하기 위해 정글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이들에게 해제를 요구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정글 속 게릴라들의 전략적 루트에 나흘간 25미터짜리 대형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했습니다. 반군들은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고 있기 때문에 감상적이 될 수 있는 타이밍인 크리스마스를 이용하여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 즈음에 반군들이 접근하면 센서가 작동하여 트리의 불들이 켜지고 “If Christmas can come to the jungle, you can come home. Demobilize. Everything is possible at Christmas(정글에 크리스마스가 오면, 집으로 돌아오세요. 무장해제하세요. 크리스마스에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라는 메시지가 적힌 배너를 볼 수 있게 함으로써 실제로 무려 331명의 반군들을 무장해제시키는 놀라운 성과를 만든 캠페인입니다.
▲ 콜롬비아 국방부(Ministerio De Defensa Nacional) / ‘Operation Christmas’ 아웃도어 캠페인
그대로 서 있어. 난 평생 경례 안 받을 거니까
손등도 손바닥도 보이지 않게 충성~! 요즘 드라마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을 보면 남자나 여자나 경례도 참 잘합니다. 그 쉬운 걸 예나 지금이나 왜 신병들은 하나같이 쉽게 해내지 못할까요? 정답은 바로 군대기 때문. 일본 해상자위대는 해상자위대원을 희망하는 젊은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신병모집 아이디어로 젊은 층의 기호에 맞게 모바일 트레이닝 애플리케이션이자 내면의 절제력을 상징하는 경례법을 배울 수 있는 앱인 Salute Trainer를 개발하였습니다. 또, 전국의 군대에서 경례하기 행사를 열어, 참가자들이 신병 모집자들의 평가를 받을 수 있게 했고 결과가 좋은 참가자에게는 신병 모집에 관한 이메일과 별도의 상을 주었습니다. 그 결과 10만 명이 행사에 참가했고 해상자위대 지원자 수가 전년 대비 113% 증가하는 결과를 만들었으며, Salute Trainer는 iTunes Apps Store에서 1위를 차지하는 영예를 가졌습니다.
▲ 일본 해상자위대(JMSDF) / ‘Salute Trainer’ 프로모션 캠페인
다치지 마십시오. 명령입니다. 목숨 걸고 지키십시오.
전쟁이 없어져야 할 이유는 결국 수많은 생명의 죽음 때문입니다. 지구와도 바꿀 수 없는 하나뿐인 목숨을 앗아가고, 그래서 그 어떤 변명으로도 합리화할 수 없는 전쟁… 유엔이 전쟁은 끝났지만 여전히 고통받는 그루지아 민간인들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그루지아 민간인 돕기 기금을 마련하고 동시에 반전 메시지를 전달하는 다음과 같은 캠페인을 진행하였습니다.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확인해보기 위해 폭격으로 폐허가 된 그루지아의 여러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발견한 잔해 가운데 민간인 소지품들을 수거해 왔고, 현장에서 발견한 물품들, 그리고 그 물품에 얽힌 사연들을 모아 옥외광고판에 전시해 ‘전쟁은 끝났지만 고통은 이제 시작’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그 결과 캠페인 첫날부터 수천 건의 SMS 기부(각 5유로)가 있었으며 주요 언론에 캠페인이 소개되면서 예상보다 훨씬 큰 성과를 얻었습니다.
▲ United Nations / ‘True Evidence Of War’ 아웃도어 캠페인
생명은 존엄하고 그 이상을 넘어선 가치나 이념은 없다고 생각해요.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사랑의 불꽃은 튀고 그 사랑의 결과로 아기들도 태어납니다. 여기 그 아기들의 소중한 생명을 메시지로 한 캠페인이 있습니다.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 소속 게릴라 출신의 여성들을 콜롬비아 사회로 재편입하기 위해, 콜롬비아 군대(Military Forces of Colombia)가 TV, 라디오도 없이 숨어 지내는 FARC 반군을 대상으로 항복하고 문명사회로 돌아오라는 회유 메시지를 전달하며 아기들이 사용하는 공갈젖꼭지를 캠페인의 아이디어로 활용했습니다. 게릴라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에 비행기와 헬리콥터를 이용하여 7백만 개의 공갈젖꼭지를 낙하시켰으며 공갈젖꼭지마다 “당신이 FARC 반군이라면, 곧 태어날 아기에게 공갈젖꼭지 같은 아주 간단한 것도 해줄 수 없다”라는 모성애를 강하게 자극하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그 결과 62명의 FARC 반군 소속 여성 게릴라들이 자유를 되찾았으며 그 가운데 여덟 명이 무사히 아기를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 콜롬비아 군대(Military Forces Of Colombia) / ‘Baby Pacifiers(젖꼭지)’ 프로모션 캠페인
미인과 노인과 아이는 보호해야 한다는 게 내 원칙입니다.
한국 전쟁에서 큰 활약을 한 학도병들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포화 속으로’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중고등학생의 나이에 책이 아니라 총을 들고 학생이 아니라 군인이 되어야 했던, 그리고 아까운 그 생명을 내던져야 했던 이야기들이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2016년의 오늘날에도 아프리카에서 중동에서 어린이가 군인이 되어야 하는 나라들의 아픈 현실이 엄연히 존재합니다. 유니세프가 전 세계적으로 강제 또는 자발적으로 징집되는 어린이 병사 문제에 대하여 부모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유니세프 웹사이트의 “Coalition to stop the use of child soldiers(어린이병사 징집 반대를 위한 연합)”에 가입을 유도하고자 다음과 같은 프로모션 캠페인을 진행하였습니다. 놀이공원에 가면 부모가 자녀를 놀이기구에 태우기 전에 안전을 위해 반드시 확인하는 신장제한 표지판이 있습니다. 유니세프는 어린이 병사가 서 있는 실물 크기의 판을 신장제한 표지판처럼 놀이기구 앞에 설치하고 ‘Children only have to be this tall(이 정도만 커도 징집대상이 된다)’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메시지를 적어놓아 부모들과 어린이들의 관심을 이끌어냈으며 그 결과 유니세프 웹사이트 히트 수가 캠페인 기간 동안 증가하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 UNICEF / ‘Children Only Have To Be This Tall’ 프로모션 캠페인
[Global Creative] 제대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군대 가는 꿈을 꾸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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