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범상규 건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skbeom@naver.com
취향? 핀셋으로 콕 집어내라!
요즘 소비 트렌드는 집단적 사고에 의한 ‘유행’에서 개인적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취향’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소품종-대량생산을 가능케 했던 매스 마케팅이 다품종-소량생산에 기반한 핀셋 마케팅에 자리를 물려주고 있는 것이다.
남이야 뭐라던 내 멋에 산다
요즘 동네 김밥보다 갑절은 비싼데도 불티나게 팔리는 김밥이 있는가 하면 1000원짜리 한두 장으로 한 끼가 거뜬한 ‘밥버거’도 인기다. 이 상품들은 단지 고가·저가 마케팅 차원의 틈새시장을 공략한 것이 주효했다기보다 특정 대상을 콕 집어 마케팅한 것이 성공 비결이다. 이처럼 보편화되거나 혹은 새롭게 유행하는 상품을 주로 소비하는 대다수가 아니라 개개인의 취향에 타깃을 맞춰 최적화한 전략을 ‘핀셋(Pincette) 마케팅’이라 한다.
핀셋 마케팅은 특정 대상을 콕 집을 수 있는 핀셋처럼 한 무리의 사람들 속에서 우리 제품을 사줄 고객만 콕 집어낸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마케팅 용어이며, 유명 백화점의 프라이빗 쇼핑 라운지 같은 VVIP나 MVG(Most Valuable Guest) 대상의 고객별 맞춤식 고객관계관리(CRM)에서 시작됐다.
핀셋 마케팅은 매스 마케팅과는 대척점에 있다. 과거 모두 비슷비슷한 취향을 가졌던 시절, 기업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불특정 다수인 잠재 고객들에게 매우 효과적으로 제품을 인지시킬 수 있었다. 그 시기 마케팅 활동의 핵심은 빠른 시간 내 잠재 고객 집단 속에 유행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고전적인 마케팅 수법인 STP 전략에서 ‘S(Segmentation)’로 지칭되는 ‘시장 세분화’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때의 ‘시장’은 핀셋 마케팅에서 정의하는 ‘시장’과는 사뭇 다르다. 예를 들어 20대 중후반의 직장 생활 3~4년 차 여성은 화장품을 살 때 싼 가격만을, 옷을 고를 때 1만 원짜리 SPA 브랜드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시쳇말로 가격 대비 성능을 의미하는 ‘가소성’만이 소비 준거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들은 친구와 곗돈을 부어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개인적인 기념일에는 값비싼 고급 레스토랑에서 한 끼를 해결하는 스몰 럭셔리(Small Luxury) 취향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평일 점심을 간단한 라면으로 때울지라도 말이다. 스몰 럭셔리는 평소엔 절약 또 절약하다 한번쯤은 부자처럼 럭셔리하게 소비함으로써 만족감의 균형을 유지하고자 하는 소비 패턴이다.
우리는 지금 자신만의 취향이 독특한 소비 패턴으로 나타나는 ‘취향저격’ 시대를 살고 있다. 취향 저격 시대의 소비자들은 남이야 뭐라 하던 제멋에 살아가며, 최신 유행을 무시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따라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취향 저격의 소비자들이 넘쳐나는 이유는 뭘까? 몇몇 기업처럼 소비자 취향을 의식해 다양한 제품을 앞다퉈 내놓는 데도 원인은 있다. 과거에는 한 가지 맛의 청량음료면 족했는데 이젠 포도맛, 바나나맛, 망고맛, 파인애플맛 등등 수도 없다. 쉽게 식상해지는 소비자 마음을 꽉 붙들어 매고, 한편으론 독특한 맛을 통해 새로운 유행으로 시장에서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요즘 같은 저성장 속에서는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소비 심리가 급격히 위축된다. 때문에 부득불 소비를 하게 된다면 가성비가 높은 제품을 구매하든지 아니면 대중적 유행이나 브랜드 유명세를 따르기보다 자신의 취향을 중요시할 것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대신 자기 만족감을 높이는 선택을 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 것이다.
누가 ‘외부 신호화’에 반응하는가
과거처럼 유행을 좆지 않는 잠재 고객에게 매스(Mass)가 아닌 내로우(Narrow) 마케팅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일대일 마케팅, 개인화 마케팅이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아무리 빅데이터에 기반한 개인화가 가능할지라도 마케팅 현장에선 다소 무리라는 생각에서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터>처럼 쇼핑센터에 들어선 주인공의 쇼핑 패턴을 알아내고 구매를 유도하는 메시지를 제시하기엔 아직까진 역부족이지 않는가? 주로 무의식 차원에서 쇼핑 품목이 결정되기도 하며, 의식적으로 판단할 때도 시시각각 바뀌는 쇼핑 환경의 맥락과 여기로부터 파생하는 감정·정서 변화까지 잡아내진 못할 터이니 말이다.
하지만 내로우 마케팅의 본질은 단순히 숫자로 표현되는 목표 고객의 사이즈보다는 구성원 간 이질성 여부에 있다. 서로 이질적인 단 한 명의 소비자에서부터 팬덤(마니아) 취향을 가진 한 무리까지 매우 폭넓다. 이들은 스타벅스 브랜드 로고가 찍힌 머그컵을 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만족스러워서 더 비싼 커피값을 지불할 때도 많다.
이처럼 가성비에 반하는 행위 속에는 스타벅스라는 브랜드가 ‘외부 신호화(자신의 존재감을 외부에 드러내는 현상)’에 더 유리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런 연유로 김선생표 김밥은 물론 구찌나 아르마니로 대표되는 명품 브랜드가 불티나게 팔린다. 때문에 마케터 입장에서는 자사 브랜드에 대한 외부 신호화에 기꺼이 반응하는 고객만을 핀셋으로 콕 집어내야 한다. 그러고는 “당신들이야말로 ‘급’이 다르다”는 인식을 만드는 마케팅에 집중해야 한다. 현재 가치보다 미래가치가 훨씬 더 커질 수 있어 궁극적으로 기업에겐 이득일 것이다.
의식주, 라이프스타일을 점령한 핀셋 마케팅
핀셋 마케팅의 대표적 사례들을 살펴보자. 패션 브랜드야말로 취향저격에 적합한 분야 중 하나다. 최근 국내 아웃도어 시장이 보여주듯 빠르게 성장하던 시장에서는 톱스타가 제품을 입기만 해도 불티나게 팔렸지만,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소비층을 찾아야만 성장을 이어갈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문제는 과거 비주류라고 칭하던 패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하나로 묶이면서 더 이상 비주류와 주류의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1940년대 미국의 재즈 마니아를 지칭하던 ‘힙스터(Hipster)’가 그 중심에 있다. 이들은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고 유행을 따르지 않으며, 자기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자신과 취향이 맞는 유명인의 생활을 모방한다. 여성 브랜드 ‘보브’가 해외 셀럽과의 협업을 통해 출시 10일 만에 매출 14억 원을 올릴 수 있었던 것도 취향 저격의 핀셋 마케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핀셋 마케팅은 식음료 시장에서도 빛을 발휘한다. 입는 것은 물론 먹는 것에서도 유니크함을 추구하는 젊은 소비자가 늘고 있는 점을 감안해 특정 고객의 마음을 콕 집어 이색 원료를 활용한 신제품을 출시하는 경우다. 코카콜라는 작년 초에 프리미엄 코코넛 음료인 ‘지코(ZICO) 오리지널’을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할리우드 스타들이 즐겨 찾는 99.9%의 코코넛 워터를사용했다는 점 때문에 낮은 칼로리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을 집중공략할 수 있었다.
또한 올해 초 선보인 CJ제일제당의 숙면 보조 건강식품 ‘슬리피즈’도 대표적이다. 북유럽 사람들이 백야 현상으로 인해 숙면이 어려울 때 밤에 짠 우유인 나이트 밀크를 마신다는 점에 착안한 제품이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산 고메 버터에 국내 토종벌꿀을 더하고 에스프레소 샷을 추가해 고소함과 달콤함을 동시에 주는 ‘허니버터라떼’, 안데스 고산지대에서 5000년 전부터 재배되던 슈퍼푸드인 퀴노아를 사용한 프리미엄 즉석밥까지 실로 다양하다.
핀셋 마케팅은 전혀 색다른 영역에서도 접목 가능하다. 국내 저가 항공사인 진에어가 선보인 ‘썸존 이벤트’는 여행을 좋아하는 미혼남녀를 타깃팅한 핀셋 마케팅 사례다. 특정 기간 내 지정된 노선의 항공권을 구매한 고객 중 신청자를 대상으로 여행 스타일이 유사한 남녀 고객을 선별해 탑승 시 좌석을 동반 배정하는 일종의 ‘소개팅’이라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경기 침체로 아파트 분양 열기가 가라앉은 건설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건설업계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핀셋 마케팅과 스킨십 마케팅을 합친 신조어인 ‘핀스킨(Pinskin)’ 마케팅이 등장했다. 과거 견본 주택 방문객의 규모에 사활을 걸다 보니 아파트를 팔면서 ‘아파트 경품’을 내거는 아이러니도 있었다. 분양 실패로 인한 추가 비용을 부담하느니 사전 마케팅에 과감하게 투자해 초기 분양률을 높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 아래 관심 고객에 대한 스킨십 강화 차원에서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다.
차별화 위한 차별화는 실패의 원인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이나 취향을 지닌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타깃 마케팅은 세분화된 소수의 시장을 만들기에 유리하다. 특히 핀셋 마케팅의 원조랄 수 있는 VVIP 마케팅은 주로 개인을 중심으로 한 반면, 핀셋 마케팅은 보다 큰 시장을 만들 수 있어 더 효과적이라는 점은 할 수 없다. 하지만 핀셋 마케팅이 무조건 성공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기업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소비자 니즈를 맞추는 것을 최우선시하는데, 이때 소비자의 시그널을 맹목적으로 따르다 보면 기업이 지향하는 방향과 상반되는 제품이 나올 수 있다.
성급한 소비자 조사만을 바탕으로 ‘차별화를 위한 차별화’ 차원의 신제품 개발은 실패로 이어지기 쉽다. 테스트 마켓에서 호평 받았던 제품이라도 실물 시장에선 금세 사라지곤 한다. 정작 소비자는 그 존재를 알아채기도 전에 사라진 제품이나 아이디어가 얼마나 많던가!
핀셋 마케팅은 실패에 따른 위험 부담이 크다. 틈새시장에 가까운 타깃에게 외면당하면 본 시장에서는 더욱 살아남기 어렵다. 핀셋 마케팅은 기본적으로 ‘모 아니면 도’라는 전제가 깔려 있고, 특화된 취향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확실한 준비가 성공을 보장한다
그렇다면 핀셋 마케팅을 성공시키기 위한 팁은 무엇인가?
우선은 독특한 취향을 가진 타깃을 선별할 수 있는가이다. 요즘은 정량조사나 직관을 통한 시장 세분화에서 벗어나 빅데이터 기반의 과학적인 방법론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또한 한 템포 앞선 취향이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제품을 만들 수 있어야 성공 가능하다. 20대 군인을 타깃으로 한 스킨푸드의 ‘수박줄무늬 위장크림’이라는 제품이 있다. 명확한 집단을 위한 핀셋 마케팅이랄 수 있는데 대부분 20대인 군인들은 오히려 일반인보다 피부에 관심이 많다는 점을 이해했기에 가능했던 제품이다. 제품 기획 단계에서 확실한 준비가 필요한 이유다.
또한 선별된 타깃 집단에 대한 원활한 소통 능력도 필수적이다. 매스미디어보다는 개별 커뮤니케이션 채널인 소셜미디어에 맞춰 ‘대중성’보다는 ‘진정성’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오프라인에서 대접받는 데 익숙한 VVIP에게 소셜미디어 같은 온라인상에서도 대접받는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을까?
결국 매스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매스 마케팅은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있어도 정작 ‘나’ 하나를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문제는 이런 ‘나’야말로 구매 가능성이 어느 누구보다 높다는 사실이다. 물론 독특한 취향을 소유한 이런 ‘나’를 핀셋으로 콕 집어낼 수 있으니 염려보다는 실행이 먼저이다. 취향 저격은 알 수만 있다면 오히려 쉽다!
남이야 뭐라던 내 멋에 산다
요즘 동네 김밥보다 갑절은 비싼데도 불티나게 팔리는 김밥이 있는가 하면 1000원짜리 한두 장으로 한 끼가 거뜬한 ‘밥버거’도 인기다. 이 상품들은 단지 고가·저가 마케팅 차원의 틈새시장을 공략한 것이 주효했다기보다 특정 대상을 콕 집어 마케팅한 것이 성공 비결이다. 이처럼 보편화되거나 혹은 새롭게 유행하는 상품을 주로 소비하는 대다수가 아니라 개개인의 취향에 타깃을 맞춰 최적화한 전략을 ‘핀셋(Pincette) 마케팅’이라 한다.
핀셋 마케팅은 특정 대상을 콕 집을 수 있는 핀셋처럼 한 무리의 사람들 속에서 우리 제품을 사줄 고객만 콕 집어낸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마케팅 용어이며, 유명 백화점의 프라이빗 쇼핑 라운지 같은 VVIP나 MVG(Most Valuable Guest) 대상의 고객별 맞춤식 고객관계관리(CRM)에서 시작됐다.
핀셋 마케팅은 매스 마케팅과는 대척점에 있다. 과거 모두 비슷비슷한 취향을 가졌던 시절, 기업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불특정 다수인 잠재 고객들에게 매우 효과적으로 제품을 인지시킬 수 있었다. 그 시기 마케팅 활동의 핵심은 빠른 시간 내 잠재 고객 집단 속에 유행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고전적인 마케팅 수법인 STP 전략에서 ‘S(Segmentation)’로 지칭되는 ‘시장 세분화’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때의 ‘시장’은 핀셋 마케팅에서 정의하는 ‘시장’과는 사뭇 다르다. 예를 들어 20대 중후반의 직장 생활 3~4년 차 여성은 화장품을 살 때 싼 가격만을, 옷을 고를 때 1만 원짜리 SPA 브랜드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시쳇말로 가격 대비 성능을 의미하는 ‘가소성’만이 소비 준거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들은 친구와 곗돈을 부어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개인적인 기념일에는 값비싼 고급 레스토랑에서 한 끼를 해결하는 스몰 럭셔리(Small Luxury) 취향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평일 점심을 간단한 라면으로 때울지라도 말이다. 스몰 럭셔리는 평소엔 절약 또 절약하다 한번쯤은 부자처럼 럭셔리하게 소비함으로써 만족감의 균형을 유지하고자 하는 소비 패턴이다.
우리는 지금 자신만의 취향이 독특한 소비 패턴으로 나타나는 ‘취향저격’ 시대를 살고 있다. 취향 저격 시대의 소비자들은 남이야 뭐라 하던 제멋에 살아가며, 최신 유행을 무시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따라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취향 저격의 소비자들이 넘쳐나는 이유는 뭘까? 몇몇 기업처럼 소비자 취향을 의식해 다양한 제품을 앞다퉈 내놓는 데도 원인은 있다. 과거에는 한 가지 맛의 청량음료면 족했는데 이젠 포도맛, 바나나맛, 망고맛, 파인애플맛 등등 수도 없다. 쉽게 식상해지는 소비자 마음을 꽉 붙들어 매고, 한편으론 독특한 맛을 통해 새로운 유행으로 시장에서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요즘 같은 저성장 속에서는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소비 심리가 급격히 위축된다. 때문에 부득불 소비를 하게 된다면 가성비가 높은 제품을 구매하든지 아니면 대중적 유행이나 브랜드 유명세를 따르기보다 자신의 취향을 중요시할 것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대신 자기 만족감을 높이는 선택을 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 것이다.
누가 ‘외부 신호화’에 반응하는가
과거처럼 유행을 좆지 않는 잠재 고객에게 매스(Mass)가 아닌 내로우(Narrow) 마케팅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일대일 마케팅, 개인화 마케팅이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아무리 빅데이터에 기반한 개인화가 가능할지라도 마케팅 현장에선 다소 무리라는 생각에서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터>처럼 쇼핑센터에 들어선 주인공의 쇼핑 패턴을 알아내고 구매를 유도하는 메시지를 제시하기엔 아직까진 역부족이지 않는가? 주로 무의식 차원에서 쇼핑 품목이 결정되기도 하며, 의식적으로 판단할 때도 시시각각 바뀌는 쇼핑 환경의 맥락과 여기로부터 파생하는 감정·정서 변화까지 잡아내진 못할 터이니 말이다.
하지만 내로우 마케팅의 본질은 단순히 숫자로 표현되는 목표 고객의 사이즈보다는 구성원 간 이질성 여부에 있다. 서로 이질적인 단 한 명의 소비자에서부터 팬덤(마니아) 취향을 가진 한 무리까지 매우 폭넓다. 이들은 스타벅스 브랜드 로고가 찍힌 머그컵을 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만족스러워서 더 비싼 커피값을 지불할 때도 많다.
이처럼 가성비에 반하는 행위 속에는 스타벅스라는 브랜드가 ‘외부 신호화(자신의 존재감을 외부에 드러내는 현상)’에 더 유리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런 연유로 김선생표 김밥은 물론 구찌나 아르마니로 대표되는 명품 브랜드가 불티나게 팔린다. 때문에 마케터 입장에서는 자사 브랜드에 대한 외부 신호화에 기꺼이 반응하는 고객만을 핀셋으로 콕 집어내야 한다. 그러고는 “당신들이야말로 ‘급’이 다르다”는 인식을 만드는 마케팅에 집중해야 한다. 현재 가치보다 미래가치가 훨씬 더 커질 수 있어 궁극적으로 기업에겐 이득일 것이다.
의식주, 라이프스타일을 점령한 핀셋 마케팅
핀셋 마케팅의 대표적 사례들을 살펴보자. 패션 브랜드야말로 취향저격에 적합한 분야 중 하나다. 최근 국내 아웃도어 시장이 보여주듯 빠르게 성장하던 시장에서는 톱스타가 제품을 입기만 해도 불티나게 팔렸지만,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소비층을 찾아야만 성장을 이어갈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문제는 과거 비주류라고 칭하던 패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하나로 묶이면서 더 이상 비주류와 주류의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1940년대 미국의 재즈 마니아를 지칭하던 ‘힙스터(Hipster)’가 그 중심에 있다. 이들은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고 유행을 따르지 않으며, 자기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자신과 취향이 맞는 유명인의 생활을 모방한다. 여성 브랜드 ‘보브’가 해외 셀럽과의 협업을 통해 출시 10일 만에 매출 14억 원을 올릴 수 있었던 것도 취향 저격의 핀셋 마케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핀셋 마케팅은 식음료 시장에서도 빛을 발휘한다. 입는 것은 물론 먹는 것에서도 유니크함을 추구하는 젊은 소비자가 늘고 있는 점을 감안해 특정 고객의 마음을 콕 집어 이색 원료를 활용한 신제품을 출시하는 경우다. 코카콜라는 작년 초에 프리미엄 코코넛 음료인 ‘지코(ZICO) 오리지널’을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할리우드 스타들이 즐겨 찾는 99.9%의 코코넛 워터를사용했다는 점 때문에 낮은 칼로리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을 집중공략할 수 있었다.
또한 올해 초 선보인 CJ제일제당의 숙면 보조 건강식품 ‘슬리피즈’도 대표적이다. 북유럽 사람들이 백야 현상으로 인해 숙면이 어려울 때 밤에 짠 우유인 나이트 밀크를 마신다는 점에 착안한 제품이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산 고메 버터에 국내 토종벌꿀을 더하고 에스프레소 샷을 추가해 고소함과 달콤함을 동시에 주는 ‘허니버터라떼’, 안데스 고산지대에서 5000년 전부터 재배되던 슈퍼푸드인 퀴노아를 사용한 프리미엄 즉석밥까지 실로 다양하다.
핀셋 마케팅은 전혀 색다른 영역에서도 접목 가능하다. 국내 저가 항공사인 진에어가 선보인 ‘썸존 이벤트’는 여행을 좋아하는 미혼남녀를 타깃팅한 핀셋 마케팅 사례다. 특정 기간 내 지정된 노선의 항공권을 구매한 고객 중 신청자를 대상으로 여행 스타일이 유사한 남녀 고객을 선별해 탑승 시 좌석을 동반 배정하는 일종의 ‘소개팅’이라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경기 침체로 아파트 분양 열기가 가라앉은 건설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건설업계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핀셋 마케팅과 스킨십 마케팅을 합친 신조어인 ‘핀스킨(Pinskin)’ 마케팅이 등장했다. 과거 견본 주택 방문객의 규모에 사활을 걸다 보니 아파트를 팔면서 ‘아파트 경품’을 내거는 아이러니도 있었다. 분양 실패로 인한 추가 비용을 부담하느니 사전 마케팅에 과감하게 투자해 초기 분양률을 높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 아래 관심 고객에 대한 스킨십 강화 차원에서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다.
차별화 위한 차별화는 실패의 원인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이나 취향을 지닌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타깃 마케팅은 세분화된 소수의 시장을 만들기에 유리하다. 특히 핀셋 마케팅의 원조랄 수 있는 VVIP 마케팅은 주로 개인을 중심으로 한 반면, 핀셋 마케팅은 보다 큰 시장을 만들 수 있어 더 효과적이라는 점은 할 수 없다. 하지만 핀셋 마케팅이 무조건 성공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기업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소비자 니즈를 맞추는 것을 최우선시하는데, 이때 소비자의 시그널을 맹목적으로 따르다 보면 기업이 지향하는 방향과 상반되는 제품이 나올 수 있다.
성급한 소비자 조사만을 바탕으로 ‘차별화를 위한 차별화’ 차원의 신제품 개발은 실패로 이어지기 쉽다. 테스트 마켓에서 호평 받았던 제품이라도 실물 시장에선 금세 사라지곤 한다. 정작 소비자는 그 존재를 알아채기도 전에 사라진 제품이나 아이디어가 얼마나 많던가!
핀셋 마케팅은 실패에 따른 위험 부담이 크다. 틈새시장에 가까운 타깃에게 외면당하면 본 시장에서는 더욱 살아남기 어렵다. 핀셋 마케팅은 기본적으로 ‘모 아니면 도’라는 전제가 깔려 있고, 특화된 취향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확실한 준비가 성공을 보장한다
그렇다면 핀셋 마케팅을 성공시키기 위한 팁은 무엇인가?
우선은 독특한 취향을 가진 타깃을 선별할 수 있는가이다. 요즘은 정량조사나 직관을 통한 시장 세분화에서 벗어나 빅데이터 기반의 과학적인 방법론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또한 한 템포 앞선 취향이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제품을 만들 수 있어야 성공 가능하다. 20대 군인을 타깃으로 한 스킨푸드의 ‘수박줄무늬 위장크림’이라는 제품이 있다. 명확한 집단을 위한 핀셋 마케팅이랄 수 있는데 대부분 20대인 군인들은 오히려 일반인보다 피부에 관심이 많다는 점을 이해했기에 가능했던 제품이다. 제품 기획 단계에서 확실한 준비가 필요한 이유다.
또한 선별된 타깃 집단에 대한 원활한 소통 능력도 필수적이다. 매스미디어보다는 개별 커뮤니케이션 채널인 소셜미디어에 맞춰 ‘대중성’보다는 ‘진정성’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오프라인에서 대접받는 데 익숙한 VVIP에게 소셜미디어 같은 온라인상에서도 대접받는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을까?
결국 매스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매스 마케팅은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있어도 정작 ‘나’ 하나를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문제는 이런 ‘나’야말로 구매 가능성이 어느 누구보다 높다는 사실이다. 물론 독특한 취향을 소유한 이런 ‘나’를 핀셋으로 콕 집어낼 수 있으니 염려보다는 실행이 먼저이다. 취향 저격은 알 수만 있다면 오히려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