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과 도전이 난무하다
가족은 더 이상 거실에 모이지 않는다. 모였다 하더라도 아버지는 TV에, 아이들은 각자의 스마트폰에 시선을 둔다. ‘거실 문화’가 ‘룸 문화’로 바뀐 지금,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동영상’을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왜 이토록 동영상에 열광하고 있는 걸까? 답은 빤하다. 직관성 때문이다. 무거운 책을 들고 활자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심지어 행간까지 읽어내야 하는 독서보다 어차피 손에 붙어있다시피 한 스마트폰으로 짧은 시간에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는 동영상이 ‘편(fun)’해서다. 그러니 2005년 4월 최초로 업로드한 19초짜리 동영상으로 첫걸음을 시작한 유튜브가 고작 11년 만에 ‘제국’을 건설한 것이 아닌가.
요즘 지구를 벌겋게 달군 폭염보다 더욱 뜨거운 시장이 ‘동영상 플랫폼’이다. 이미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유튜브가 최근 광고 없이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유튜브 레드’를 출시하고, 이 라인을 통해 독점 공개할 오리지널 콘텐츠 19편의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동영상 플랫폼의 콘텐츠 자체 제작이 신선한 시도는 아니다. 이미 넷플릭스가 <하우스 오브 카드>를, 아마존이 <트랜스페어런트> 같은 드라마로 공전의 히트를 치며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전 세계 10억 명의 이용자를 거느린 거대 플랫폼이 이토록 변신에 적극적인 이유는 뭘까?
항상 판권료를 지출해야 했던 넷플릭스나 아마존의 자체 제작은 심정적으로 이해가 가지만, 광고 기반 무료 서비스로 성장해 온 유튜브가 왜 회당 수백만 달러가 드는 자체 제작에 뛰어든 것일까? 전문가들은 유튜브 레드의 오리지널 콘텐츠 생산을 두고 “새로운 동영상 플랫폼이 속속 등장하는 상황에서 기존 크리에이터와 이용자를 지원하고 잡아두려는 방어형 전략에 가깝다”고 진단한다. 그만큼 시장이 과열되고 있다는 뜻이고, 공룡으로 성장한 유튜브가 다가올 ‘빙하기’를 우려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유튜브의 위기의식은 이미 ‘페이스북 라이브’에 모바일 분야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뼈아픈 상황 인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해서 유튜브는 타개책의 일환으로 기존 앱으로 누구나 손쉽게 모바일 라이브를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 탑재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뿐이 아니다. 아마존은 이용자가 동영상을 올리고 수익을 나누는 유튜브의 방식을 고스란히 차용한 ‘비디오 다이렉트’로 유튜브의 아성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 아마존의 동영상 플랫폼 ‘비디오 다이렉트’ ⓒvideodirect.amazon.com
동영상 소비 온도는 섭씨 37°
동영상 선호도가 높아진 이유는 달라진 ‘가족 문화’와 ‘편의성’에 ‘직관성’이 더해진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동영상은 누가 얼마나 소비하고 있는 것일까? 나스미디어와 디지에코가 발표한 <2016 NPR(Netizen Profile Research) 보고서>를 들춰 보자.
전체 응답자의 ‘동영상 이용률’은 무려 87.2%에 이른다. 예상대로 10대(89.2%)와 20대(92.8%)의 동영상 소비가 가장 활발했다. 그런데 예상을 벗어난 사실은 50대 이상의 연령대에서도 78.4%라는 높은 수치가 확인된다는 것이다. 탈텍스트 문화가 비단 젊은 층뿐 아니라 모든 연령대에 고루 번져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동영상 이용 빈도’ 항목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10명 중 6명이 주 3회 이상 동영상을 시청하는데, 10대의 40.4%는 주 7회 이상으로 가장 높은 빈도를 보여주고 있다.
가장 확실한 변화가 감지되는 항목은 ‘동영상 시청 인터넷 유형’이다. 응답자 64.3%가 모바일 인터넷 중심으로 동영상을 소비하고 있어, 주도권이 PC에서 모바일로 넘어왔음을 실감할 수 있다. 특히 10대의 경우 72.7%가 모바일로 동영상을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나 향후 흐름이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동영상 이용 경로’를 살펴보자. 동영상 전문 사이트 · 앱 → SNS → 포털 동영상 섹션 순으로 소비 채널이 형성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통계는 동영상이 가장 소구력 높은 툴로 자리 잡았고, SNS가 전문 사이트와 앱의 뒤를 바짝 뒤쫓고 있음을 증명한다.
증가하는 동영상 수요와 폭발하는 영향력으로 SNS의 동영상 플랫폼은 일명 ‘like(좋아요) 이코노미’란 용어까지 등장시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동영상 플랫폼 시장이 뜨거울 수밖에 없다. 소위 ‘FANG(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이 대세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며, 그들만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일례로 ‘140자’ 트위터가 ‘140초’ 트위터로 변신 중인 것만 봐도 이들 메이저들의 발 빠른 움직임이 감지된다. 동영상이 대세 콘텐츠가 되면서 변화한 이용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트위터는 최근 ‘6초 영상’으로 각광 받고 있는 동영상 플랫폼 ‘바인(Vine)’의 시간 제한을 확대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동영상 기반의 ‘기업 미디어’ 확산
사활을 건 동영상 플랫폼 시장의 치열한 다툼은 비단 빅리그만의 일은 아니다.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포털 사이트들의 경쟁은 물론이거니와 자체 메신저나 앱을 통해서 콘텐츠 영향력을 확대시키려는 시도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다음카카오는 지난해부터 카카오 TV를 서비스 중인데, 카카오 TV는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누는 도중 상대방과 함께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런가 하면 네이버는 인기 한류 스타들이 직접 방송을 진행하는 ‘V’ 앱을 론칭해 글로벌 시장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V 앱은 개인적인 소통부터 대규모 공연까지 포괄하는 동영상 플랫폼으로 지난해 론칭 당시만 하더라도 큰 관심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스타와 팬들의 실시간 소통 창구로 각광받고 있다.
▲ 다음카카오가 서비스하는 ‘카카오 TV’ ⓒtv.kakao.com
▲ 네이버의 동영상 플랫폼 ‘V’ 앱 ⓒvlive.tv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것은 동영상과는 무관하다고 여겨졌던 전통 미디어 기업들의 가세다. 두산매거진, 서울문화사, 더북 컴퍼니 등 전통 미디어 기업인 잡지사들이 브랜디드 콘텐츠 시장에 뛰어들면서 자연스럽게 동영상 콘텐츠도 제작하게 됐다. 신문사 논설위원이 ‘페이스북 라이브’를 진행하는 것은 ‘흔한 일’이 됐고, 신문사가 동영상 뉴스를 제작하는 게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아닌 세상이 됐다. 뿐만이 아니다. 스낵 콘텐츠에 대한 니즈가 높아지면서 이를 아예 전면에 내세운 콘텐츠 사업자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72초 TV’는 브랜드명에서 느껴지듯 1~3분 내외의 짧은 영상 포맷을 고수한다.
그런가 하면 국내 기업들 역시 동영상 기반의 ‘기업 미디어’에 주목하고 있다. 우선 삼성그룹은 젊은 층과의 소통 활성화를 위해 동영상 플랫폼 강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공식 블로그와 페이스북, 유튜브 등 각 계열사가 여러 채널에서 선보인 영상 콘텐츠를 한 곳에 모으고, 추천 태그 등을 활용해 관련 영상을 함께 노출하는 ‘삼성캐스트’를 선보였다. 연애, 취업 등 젊은 층이 관심 있어 할 만한 다양한 추천 태그를 제시하고, 뉴스와 드라마, 예능, 다큐, 교양 등의 카테고리로 분류해 마치 작은 방송국을 연상시킨다.
이전에도 삼성그룹은 5~10분 분량의 ‘웹드라마’, ‘줌인삼성’, ‘150초 플레이’ 등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통해 젊은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지난해 10월 공개한 웹 드라마 <도전에 반하다>는 국내 웹드라마 사상 최단 기간인 17일 만에 누적 조회 수 2000만 뷰를 돌파했고, 스낵컬처 영상 ‘150초 플레이’ 시리즈의 경우 유튜브에서 2015년 상반기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캠페인 영상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 삼성그룹의 동영상 허브 채널 삼성캐스트 ⓒsamsung.co.kr/samsungcast
플랫폼의 특징이 성공 여부 좌우
동영상 플랫폼 시장은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에 진입해 있다. 그 누구도 아직 패권을 잡지 못했다는 얘기다. 다만 확실한 건 플랫폼 자체가 콘텐츠 이상의 가치를 지닌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시장에서 선점이 가능할까?
콘텐츠 마케팅에 있어서 동영상은 이제 옵션이 아니라 필수 요소이자 새로운 기회임이 틀림없다. 그러니 매혹적인 투자 대상인 것은 맞다. 문제는 애플처럼 소극적이고 폐쇄적인 플랫폼 전략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점이다. 큰 그림으로 보면, 결국 플랫폼을 운영하고 작동시키는 방법론이 ‘얼마나 열려 있느냐’가 관건이다. 물론 공개형이 폐쇄형보다 비교 우위에 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플랫폼의 특징이 콘텐츠의 질을 결정하고 성공을 가른다는 점만은 명확하다.
엄마가 사준 동화책 대신 유모차에 누워 휴대폰 속 동영상으로 세상을 만나고 배우는 아이들. 취미란에 ‘독서’ 대신 ‘동영상 시청’이라고 쓰게 될 그들의 시선을 묶어 둘 ‘길’은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