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회사들의 데이터 비즈니스
그동안 빅데이터에 대해 일종의 ‘버즈워드(Buzz Word)’가 돼 그 활용 가능성이 폄하되고 있는 게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금융위원회의 개정안 덕분에 개인 신용정보를 가진 회사가 그 정보의 비식별화 절차를 거쳐 빅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일본도 작년 8월 빅데이터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개인정보보호법을 개정했다. MS의 사티아 나델라 CEO와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 모두 데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해 “데이터는 미래의 세상을 완전히 변화시킬 것”이라 언급했던 만큼 앞으로 빅데이터를 얼마나 적절히 활용하는지가 비즈니스의 경쟁력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빅데이터란 전통적이고 구조적인 데이터 웨어하우스에 적합하지 않은 비정형적 데이터 등을 포함한 대량의 데이터를 의미한다. 과거와는 규모, 다양성,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분석에 있어서도 예전보다 더 정교한 솔루션이 필요하다. 오라클, SAP, Adobe, SAS 등 IT 솔루션 기업들은 이러한 솔루션을 확보해 빅데이터 B2B 서비스를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IBM은 빅데이터가 “고객들의 기호와 요구 사항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며, 모든 유형의 기업들이 고객과 인터랙션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복잡한 시장으로부터 인사이트를 도출해야 하는 마케터들에게 필수적이다.
①오라클, 마케팅 위한 데이터 클라우드 서비스(DaaS for Marketing) 제공
오라클이 B2B 마케터를 위해 출시한 데이터 클라우드 서비스는 마케터들이 소비자를 분석하고 타깃팅을 실시할 수 있도록 시장 소비자들을 프로파일링한 후 그 결과를 판매하는 것이다. 마케터들은 해당 데이터를 활용해 고객군을 선별, 마케팅의 ROI를 진작하거나 특정 고객을 대상으로 크로스-디바이스 마케팅을 실시하는 등 일관된 UX를 제공해 캠페인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
▲ 오라클의 Data Cloud 서비스. ⓒoracle.com(이미지를 클릭하면 해당 사이트로 이동합니다)
②SAP, 빅데이터 솔루션 서비스에 주력
SAP도 비정형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그 결과를 판매하는 빅데이터 솔루션 서비스에 점차 주력하고 있다. 제품 생산, 판매, 재고 관리를 포함해 전 단계에 걸쳐 기업들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통합적인 솔루션을 제공한다.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빅데이터 서비스를 확대해온 SAP는 2014년에는 미국의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회사 컨커테크놀로지(Concur Technologies)를 인수하고 2015년 빅데이터 비즈니스 인텔리전스 솔루션을 론칭했다. 포춘 2000대 기업 중 약 1700개 기업이 SAP 솔루션을 사용 중이다.
특히 SAP 솔루션의 흥미로운 클라이언트는 프로축구 팀들로, 2015년 SAP가 출시한 축구 빅데이터 분석 솔루션 ‘스포츠원’을 사용 중이다. 스포츠원은 SAP가 독일 국가대표 축구팀에 공급했던 ‘매치인사이트’ 솔루션을 보강한 결과물로, 체계적으로 경기 데이터를 분석해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경기력을 향상시키게 돕는다.
▲ SAP가 독일 국가대표 축구팀에게 제공한 빅데이터 솔루션. ⓒtheregister.co.uk(이미지를 클릭하면 해당 사이트로 이동합니다)
‘데이터 공급자(Data supplier)’로서 새로운 수익원 창출
위의 IT 기업들이 기존의 핵심 기술을 활용해 빅데이터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면,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던 기업들이 그 데이터의 잠재 가치를 발굴해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는 사례도 있다. 주로 금융, 통신, 유통, 의료 등 고객 정보를 풍부하게 가질 수 있는 업종의 회사들이 빅데이터를 신규 사업의 기반으로 활용 중이다. 데이터 분석업체에 자사의 데이터를 판매하고 대가를 얻거나, 아예 분석업체와 조인트 벤처를 설립하고 자체적으로 분석을 실시해 그 결과를 판매하고 있다.
①호주국립은행은 데이터 분석업체 콴티움(Quantium)과 합자회사를 설립, 고객들의 전자거래 내역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외부 기업에 판매하는 사업을 전개 중이다.
②스페인 BBVA도 마드리드시 정부와 협업을 통해 매장별 POS 정보를 수집, 분석함으로써 마드리드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언제, 어디서, 얼마나 지출하는지 소비 정보를 패턴화하고 있다.
③일본의 대표적 통신사 NTT는 통신기기 사용 인구를 거주지역별?시간별?연령별?성별 등으로 분석해 위치기반 마케팅 업체, 재난방지 시스템업체 등 해당 분석 결과가 필요한 사업체들에 판매 중이다.
④일본의 통신사 KDDI는 더 이상 모바일 기기를 새롭게 유통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 기존의 데이터베이스를 자산화하는 방법을 택했다.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을 구축하고 머신러닝을 활용해 과거의 고객 데이터를 학습한 후 신규 서비스에 얼마나 많은 고객이 가입할 것인지, 언제쯤 이탈할 것인지 등을 예측하는 솔루션을 만들어 타 통신사에 판매하고 있다.
⑤미국의 통신사 버라이존(Verizone)은 시장 분석업체 프레시전 마켓 인사이트(Precision Market Insights)와 손잡고, 이용자의 위치 정보 또는 콘텐츠 선호도 등 관련 정보를 수집한 후 스포츠 구단, 쇼핑몰 등 타깃 오디언스에 대한 인사이트가 필요한 사업자에게 제공한다.
⑥유통업체 테스코는 마케팅사 던험비(Dunnhumby)와의 합자사업을 통해 고객 쇼핑 행태에 관한 인사이트를 도출, 유니레버?네슬레?하인즈 등 대형 제조업체들에 판매 중이다.
⑦의료업체 클리브랜드 클리닉은 빅데이터 분석회사 ‘익스플로리스’를 별도로 설립해 1500만 명에 달하는 환자들의 의료 데이터를 수집?분석?관리?검색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해 메디스타헬스, 가톨릭헬스파트너스, 메트로헬스 등 미국 내 주요 150개 병원, 보험사 등에 분석 결과를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고객 데이터를 갖고 있던 기업들은 솔루션을 내재화하거나 파트너십을 체결해 빅데이터를 수익화할 수 있다. 많은 기업이 심도 있는 고객 데이터를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갖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고, 점점 모바일 디바이스가 파편화되고 일관된 사용자 경험의 설계가 중요해지면서 타깃 고객에 대한 정보력이 중요해지기 때문에 데이터 서플라이어에 대한 수요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빅데이터 생태계의 주요 플레이어, 데이터 브로커(Data Broker)
데이터 브로커란 데이터 분석 결과를 필요로 하는 기업, 정부기관 등에 아예 그를 판매하는 B2B 사업을 진행하는 기업을 뜻한다. 미국 시장에서는 데이터 브로커가 수십 억 달러 규모의 정보를 거래 중이며, 국내 공공기관이나 시장조사기관도 유사한 데이터 유통 서비스를 전개 중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데이터 브로커 회사는 거의 신용평가사 또는 마케팅사로, 기존에 축적해왔던 자사의 데이터를 활용해 데이터 판매 사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회사들이다. 액시엄(Axiom)은 전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 브로커로 꼽히며, 버락 오바마 캠프가 대선에서 액시엄의 정보를 활용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도 미국 연방정부를 비롯해 다양한 정부기관과 기업들을 클라이언트로 보유하고 있으며, 온라인 및 오프라인에 걸쳐 소비자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한편 엡실론은 미국 시장에서만 약 13억 가구 이상의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회사이며, 부동산 데이터 전문 유통사인 코아로직은 약 8억 건의 부동산 거래 정보 및 1억 건의 담보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머클은 사내에만 약 150명 이상의 통계학?데이터 분석 전문가들을 고용하고 있는 회사로 유명하다. 이외에도 에퀴팩스, 엑스페리안, 피코 같은 신용평가회사가 대표적인 데이터 브로커로 꼽힌다.
데이터 분석, 의사 결정과 미래 예측의 기준
지금 이 순간에도 생성되는 빅데이터는 시장의 실제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데 가치가 있다. 비록 비정형화된 형태이고 양이 방대해 별도의 가공?분석 작업을 요구하나, 의사결정자가 독단적으로 계획을 수립해 결정을 내리는 것보다 훨씬 더 합리적이고 위험성 낮은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도움을 준다. 다양한 빅데이터 기업들이 데이터 기반의 예측모델(Predictive Model)을 구축하는 것도 의사결정의 위험성과 미래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①일본 후지쯔사(社)가 2012년부터 공급 중인 농업 클라우드 서비스는 과거 농산물 작황, 날씨 등을 분석해 올해와 내년, 더 먼 미래의 농작물 수확량과 질을 제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기후, 토양 환경 등의 데이터를 센서로 수집하고, 가장 적절한 파종 시기나 수확 시기가 언제인지 도출해낸다. 이는 농업 종사자들이 단지 직감과 경험에 의존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보다 합리적으로 작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
▲ 후지쯔의 농업 클라우드 서비스. ⓒfujitsu.com
②스웨덴의 로얄기술대학도 도로를 운행 중인 자동차들의 GPS, 속도, 교통사고 데이터 등 대용량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그 결과를 제공 중이다.
③한국의 SK텔레콤은 기존 T-Map 교통정보 서비스에 건설사의 PM시스템을 연계한 B2B 수익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레미콘 차량 등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차량에게 배차 현황을 비롯한 정보를 통합적으로 제공, 건설업체가 차량 회전율을 극대화할 수 있게 하고 있다.
④음원 유통업체 멜론은 이용자 2400만 명의 소비 음원 내역 및 이용 행태를 분석한 데이터를 기획사, 아티스트 등에 제공할 계획이다. 이는 미국의 콘텐츠 플랫폼 넷플릭스가 취한 전략과 유사하다. 넷플릭스는 사용자들의 동영상 재생 기록, 평가, 검색 정보, 시청 행태 등을 통합적으로 분석하고 그를 반영해 콘텐츠를 제작했고, <하우스 오브 카드> 같은 자체 제작 콘텐츠의 실패 위험성을 효과적으로 낮출 수 있었다.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Next Big Market’의 예고
이처럼 B2B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사례 이외에도 자사가 보유한 데이터를 활용해 자사 서비스의 수준을 진작하는 사례도 많다. 영국의 AVIVA는 운행기록 장치로 수집한 운전 행태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고 다발 지역 운행 빈도가 적은 운전자에게는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등 맞춤형 보험 솔루션을 개발해 제공 중이다.
▲ 빅데이터를 활용한 AVIVA 솔루션. ⓒbrightcove.com
위의 사례들을 살펴보았을 때 ‘데이터의 자산화’, ‘21세기의 원유’, ’Next Big Market’, ‘제4의 경영자원’ 등의 별명을 얻은 빅데이터의 활용 가능성은 확실히 높아 보인다. 기업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시장의 특정 변동성에 대응할 수 있으며 고개에게 최적의 상품 또는 서비스를 적시에 적정가로 제공할 수 있다. 즉 시장의 실제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데이터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잘 활용하는지의 여부가 기업의 경쟁력을 결정할 수 있다.
비식별 정보의 활용을 허용하고 있는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한국의 빅데이터 산업에 의미 있는 영향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통합된 정보(Integrated Information)’는 빅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한 핵심 절차이므로, 서로 다른 회사 및 업종 간에 비식별 정보가 공유됨으로써 데이터의 활용도가 더 올라갈 수 있다. 예컨대 카드사나 보험사는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맞춤형 상품을 개발할 뿐만 아니라 해당 정보를 활용한 B2B 비즈니스를 새롭게 전개할 수도 있다. 물론 아직 개인정보 유출이나 사생활 침해 가능성 등과 같은 논란이 완전히 해결된 상태가 아니므로, 해당 이슈에 대해 어떤 대비가 이루어질지도 지켜볼 만하다. 무엇보다 빅데이터가 새로운 사업을 창출할 수 있는 기반으로 재조명받고 있는 만큼, 고객 데이터를 보유한 기업들이 그를 어떻게 수익화하고 있는지, 마케팅 에이전시로서 빅데이터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