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형 커머스 시대의 원년
화신은 고교 동창 정원이 식당을 개업했다는 소식에 꽃배달 사이트에 들어가 큰 화환을 주문했다. ‘주말에 장모님과 저녁 식사하기로 했지.’ 장모님이 회를 좋아하는 터라 괜찮은 스시집을 검색해 예약했다. 이번에는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베스트셀러를 검색해봤다.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다고?’ 나리에게 무식하다고 여러 번 핀잔을 받은 화신은 알랭 드 보통의 신작 장편소설을 주문했다. 검색하는 데 시간이 걸려 세 가지 일을 처리하고 났더니 30분이 훌쩍 지나갔다. 만약 이런 일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면?
‘히포(Hippo)’ 앱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을 챙겨주는 서비스를 선보인다. 예컨대 기념일이나 중요한 일정을 문자메시지로 보내두면 히포 앱이 알아서 적당한 시간에 알림을 보내는 식이다. 국내에도 얼마 전 ‘문비서’가 이런 개인 비서 서비스를 론칭했다. 그런데 히포 앱과 문비서에는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비서 서비스라는 점?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의미심장한 공통점은 바로 텍스팅(Texting)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문자메시지로 서비스가 이뤄지는 ‘대화형 서비스’라는 얘기.
전 국민이 메신저를 사용하고, 소비자의 소통 방식이 달라지면서 대화형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대화형 커머스(Conversational Commerce)’가 차세대 커머스로 관심을 받고 있다. 대화형 커머스는 일시적이고 단편적인 정보 제공 차원을 벗어나 지속적 케어가 가능한 서비스로 진화하고 있다. 그런 과정을 거쳐 2016년 비로소 대화형 커머스의 원년이 도래했다. 하필 올해가 출발점이 된 이유는 챗봇(Chatbot, 채팅 로봇)을 메신저에 접목시키면서 전 세계적으로 대화형 커머스가 비즈니스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때문이다.
▲ 일정을 보내면 해당일에 알려주는 히포 앱 ©usehippo.com
▲ 개인의 다양한 업무를 대신 처리해주는 ‘문비서’ ©munbs.com
커머스 플랫폼 + 메신저 기능
대화형 커머스는 간단히 말해 소비자와 기업이 텍스팅을 기반으로 상품을 구매 및 판매하는 방식을 말한다. 가장 익숙한 의사소통 방식으로 자리잡은 메신저를 통해 소비자가 전문 쇼퍼와 채팅을 하면서 니즈를 전달하고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다.
대화형 커머스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기존의 커머스 플랫폼에 메신저 기능을 추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처음부터 아예 대화형 인터페이스로 커머스 플랫폼을 개발하는 것이다. 전자(前者), 즉 메신저 기능을 추가한 대표적 사례는 중국 최대의 온라인 쇼핑몰인 타오바오다. 타오바오는 미국의 이베이나 아마존보다 거래 규모가 훨씬 큰데, 그 일등공신이 바로 메신저 ‘아리왕왕(阿里旺旺)’이다. 아리왕왕은 물건을 살 때 일어나는 가격 흥정을 온라인에 옮겨온 서비스로, 소비자와 판매자 간 실시간 대화를 지원해 쇼핑의 편의성을 높이고 있다. 아리왕왕은 중국 직구를 이용하는 국내 소비자들에게도 필수 메신저로 인식되고 있다.
인도에서 모바일 커머스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스냅딜 또한 이 유형에 속한다. 스냅딜의 모바일 기반 오픈마켓 ‘쇼포(Shopo)’에서는 ‘챗앤바이(Chat & Buy)’ 메신저로 제품 가격 흥정은 물론 거래 방식도 결정할 수 있다.
▲ 타오바오의 메신저 서비스 ‘아리왕왕’ ©HK Taobao
▲ 스냅딜 쇼포의 챗앤바이 메신저 © Shopo
국내에서는 인터파크가 올해 기존 ‘집사 서비스’에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한 쇼핑 챗봇 서비스 ‘톡(Talk) 집사’를 도입했다. 기존에는 전문 쇼핑 컨설턴트가 고객 문의에 응대했다면, 새로운 서비스는 고객 문의를 빅데이터화해 설정 매뉴얼에 따라 챗봇이 자동 응답하는 방식이다. 그런가 하면 네이버는 모바일 쇼핑몰에 메신저 기능을 더한 ‘샵윈도’를 운영 중이다. 샵윈도는 모바일 O2O 쇼핑 서비스로, 전국 각지에 있는 다양한 오프라인 상점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구매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소비자가 판매자와 1:1로 대화할 수 있다.
원하는 게 바로 이거죠?
애초부터 대화형 인터페이스로 커머스를 구현하고 있는 대표적인 메시징 앱으로 ‘오퍼레이터’를 꼽을 수 있다. 우버의 공동 창업자 개릿 캠프(Garrett Camp)가 개발한 오퍼레이터 앱은 물건 구매뿐 아니라 콘서트 티켓을 구매하거나 호텔 예약도 할 수도 있으며, 인테리어 디자인도 추천받을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오퍼레이터 앱이 구입하려는 상품에 대한 정보나 배송 등 단순한 상담을 넘어 소비자가 원하는 가장 적합한 상품을 찾아 제안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여자 친구의 생일 선물로 뭐가 좋겠냐고 물어보면 질문과 대답을 반복하며 가장 적합한 상품을 제안해 구매를 유도한다. 한마디로 소비자의 쇼핑을 적극적으로 돕는 메시징 앱이라 할 수 있다. 소비자들은 이런 서비스를 통해 ‘검색’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과거에는 자신이 원하는 제품을 찾고 구매하기 위해 귀찮은 웹서핑을 해야 했지만, 이제는 메신저를 통해 질문하고 요청하면 내가 원하는 제품을 손쉽게 손에 쥘 수 있게 됐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원하는 상품을 간편히 구매할 수 있고, 기업 입장에서는 소비자의 니즈를 빅데이터로 축적할 수 있으니 윈윈이 아닐 수 없다.
▲ 대화를 통해 소비자에게 맞춤형 상품을 추천해주는 오퍼레이터 ⓒoperator.com
감성적 교류가 성패의 열쇠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왜 대화형 커머스를 선호하는 것일까? 영화 <Her>는 인간과 기계가 단순한 의사소통을 넘어 감정적 교류까지 한다는 실현가능한 미래를 그리고 있다. 대화형 커머스의 특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확인된다. 메시지를 주고받는다는 얘기는 인터랙션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쇼핑몰에서 소비자들은 ‘클릭’을 통해 상품을 구매한다. 아무리 상품 정보가 체계적으로 구성돼있다고 해도 클릭은 일방향일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대화형 커머스는 쌍방향 소통을 통해 구매에 대한 신뢰감과 안정감을 높여준다. 즉, 정서적 측면이 강화되는 것이다.
또한 메신저를 통해 구체적이고 직관적인 의사 전달이 이뤄져 빠른 시간에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대화형 커머스의 이러한 두 가지 속성에 미래형 커머스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내재해있다. 대화형 커머스에서는 쇼핑을 위해 수많은 앱을 설치할 필요도 없고, 구매 과정이 쉽고 간편하며, 궁극적으로 나만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가 이뤄진다.
굳이 먼 미래를 상상할 필요는 없다. 대화형 커머스의 가능성은 이미 검증됐다는 것이 시장의 분석이다. 캐나다의 텔레커뮤니케이션 기업인 로저스 커뮤니케이션은 페이스북의 ‘비즈니스 온 메신저’를 사용한 후 자사의 고객 만족도가 65% 상승했고, 고객 불만은 65% 줄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만큼 강력한 파급력이 확인된 것이다.
개인과 개인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었던 메신저는 이제 기업과 개인의 거리를 좁히는 오작교가 되고 있다. 대화형 커머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 개별적이고 맞춤화된 새로운 채널을 통해 소비자와 얼마나 감성적으로 교류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그것이 ‘과언’이 아닌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