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지가 낯설다면 당신은 스마트폰 사용자가 아니거나 비주얼 문자 사용을 거부하고 있는 문자 세대가 아닐까 싶다. '이모지'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0년대 후반이지만 최근 그 사용지 급증하고 보편화되면서 옥스퍼드 사전은 2015년 '올해의 단어'로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이모지)를 선정했다. 이쯤 되면 텍스트 중간중간 등장하던 이모지가 아직은 낯선 문자 세대라 할지라도 지금부터는 공부를 권장한다.
TEXT. 김유승 (미국 드폴대학 광고홍보학 조교수)
이마케터(eMarketer) 조사에 의하면 전 세계에 약 20억 명의 스마트폰 사용자가 있으며, 이들이 메시징 앱을 통해 주고받은 대화 속에는 매일 약 60억 건 이상의 이모지 및 스티커가 전송되고 있다. 이모지 센티멘트 조사업체인 이모기(Emogi)가 2015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인터넷 사용자의 90% 이상이 이모지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모든 연령대에서 60% 이상이 이모지를 빈번하게 사용(즉, 1주일에 여러 차례 전송)한다고 응답한 것으로 보아 이모지 사용은 단지 밀레니얼 세대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도 없게 됐다.
같은 해 피알위크(PR Week)에서 발표한 수치도 이와 유사하다. 18세에서 65세의 80%가 이모지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미국의 18세에서 25세들의 경우 72%는 문자보다는 이모지를 사용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더 편하다고 응답했다. 이뿐만 아니다. 인스타그램, 트위터, 문자메시지 등 스마트폰 속에서만 볼 수 있었던 이모지가 이제는 TV 광고에도 종종 등장하고, 디지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캠페인에서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를 보면 이모지는 더 이상 소셜미디어 캠페인에만 국한된 디지털 마케팅 기법이 아니라 전 세계인이 소통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는 글로벌 마케팅 트렌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모지가 뭐길래, 어떤 점이 좋길래?
이모지의 가장 큰 장점은 풍부한 감정 표현이 가능하고 전달이 쉽다는 것이다. 면대면 대화 시 언어 이외에도 표정이나 목소리, 그리고 보디랭귀지를 통해 감정의 강도나 뉘앙스를 전달할 수 있는 반면, 문자로 소통하는 경우 넌버벌(non-verbal) 커뮤니케이션의 부재가 정확한 의사소통의 큰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이의 보완책이 바로 이모지. 이모지 덕분에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전화 통화를 하는 것이 되레 낯설고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로 대화하는 것이 더 편해진 요즘 세대의 삶을 유지하면서 한층 깊이 있는 소통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모지 사용은 송신자와 문자를 받는 수신자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감정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은 송신자에게 유용한 도구이면서 동시에 수신자의 입장에서는 송신자의 메시지와 의도를 빠르게 판단할 수 있게 해주는 휴리스틱(heuristic) 역할을 한다. 특히 풍자와 같은 복합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경우 문자만 사용할 때보다는 이모티콘을 사용할 때 수신자가 그 뉘앙스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실제로 2015년 미국 인터넷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이모지를 사용하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본인의 생각을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로는 '다른 사람들이 본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이유로는 '타인과 더 친근한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 결국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을 이모지로 채워 넣어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그로 인해 감정적인 유대감 형성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모지를 사용할 경우 기쁨이나 슬픔을 표현할 때에도 다양한 표정으로 미묘한 차이를 둘 수 있고(어쩌면 실제로 표정을 짓는 것보다 더 미묘한 차이를 두면서), 서너 개 이상의 이모지를 동시에 사용하면 더 다양한 뉘앙스를 담아내거나 구구절절 설명 없이도 감정의 기복을 이모지 몇 개로 간단하게 표현할 수도 있다.
이처럼 내 감정을 상대방에게 명확하게 전달하고 상대방이 내 감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있다면 마케터들이 이 새로운 언어를 구사해 소비자와 소통하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펩시콜라의 #SayItWithPepsi 캠페인
2016년 이모지를 마케팅에 꾸준히 활용하고 있는 기업 중의 하나는 '펩시로 말해요(Say It With Pepsi)' 글로벌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펩시콜라. #SayItWithPepsi는 2011년 호주에서 시작한 코카콜라의 '코카콜라를 나눠요(Share a Coke)'를 연상케 하는 패키징 마케팅으로 시작했다. 코카콜라가 콜라병과 캔에 250여 개의 이름을 새겼던 반면, 펩시는 자체 제작한 다양한 이모지를 펩시콜라병과 캔에 새겼다. 코카콜라가 개인 맞춤화 전략으로 성공했다면 펩시콜라는 이모지를 이용해 좀 더 대중적인 어필을 하고 있다. 수십 가지의 이모지 중 현재 내 감정을 대변하는 이모지를 찾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닐 터. 펩시모지(#PepsiMoji) 패키지 마케팅을 선두로 패션 디자이너 제러미 스콧과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펩시모지를 모티프로 한 선글라스를 제작하기도 했고, 이모지를 테마로 한 100여 개의 5초짜리 TV 광고와 디지털 비디오를 선보였다. 최근에는 처음으로 트위터 스티커를 활용하는 등 다양한 채널을 이용해 공격적인 이모지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전화도 문자도 필요 없다 : 이모지로 주문하는 도미노 피자
피자를 판매하는 이커머스 기업이라고 불릴 만큼 미국 도미노 피자는 이제 식품업계의 디지털 마케팅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온라인 주문 시장을 장악함과 동시에 모바일 주문 시장을 확장하는 데에도 많은 공을 들여 혁신적인 기업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새로운 디지털 마케팅 기법을 계속해서 도입해온 도미노 피자 역시 이모지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고객이 문자로 (피자 이모지)를 보내거나 혹은 #Easyorder를 트윗하면 사전에 소비자의 '피자 프로파일'에 '이지 오더(easy order)'로 저장해둔 피자를 바로 주문할 수 있다. 이 아이디어는 2015년 칸 국제광고제에서 '올해의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티타늄 그랑프리를 수상한 바 있다.
더 '나다운' 이모지에 대한 갈망 : 올웨이즈(Always) #LikeAGril
마케팅 및 광고 활동을 통해 다양성을 존중하고 편견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다면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금발의 키 크고 날씬한 획일적인 美의 틀에서 탈피하고자 마텔은 올해 다양한 체형의 바비 인형을 출시했고, 레고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 캐릭터를 선보였다. 성 고정관념을 깨는 데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P&G 올웨이즈(Always)사의 '라이크 어 걸(Like a Girl)' 캠페인도 최근 광고에 이모지를 등장시켰다. 사회적인 고정관념으로 가득한 여성 이모지에서 인사이트를 찾아 광고에 반영한 것으로 '여자아이 같다'라는 성차별적인 시선을 꾸준히 꼬집어온 기존 광고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다양한 브랜드 이모지 키보드들
디지데이(DigiDay)에 의하면 지난 한 해만 해도 버거킹(Burger King), 도브(Dove), 로레알(L'Oreal), 홀리데이인(Holiday Inn Express), 이케아(IKEA) 등 250여 개의 브랜드가 이모지를 브랜드화한 키보드를 선보였다. 이모지 키보드 중 그나마 미국에서 관심을 받은 건 민주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을 캐릭터화한 힐모지(Hillmoji). 안타까운 것은 딱히 성공했다 할 만한 브랜디드 이모지 키보드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모지 키보드를 소개하는 건 이미 메시징 앱 사용량이 SNS를 앞지르면서 앞으로도 브랜드들이 이모지 키보드를 계속해서 선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메시징 앱을 이용해 수많은 대화를 나눌 때 그 대화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방법은 사용자가 이용할 키보드에 적절한 브랜디드 이모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브랜드들이 효과적으로 이모지 키보드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는 비트모지(Bitmoji)를 활용하는 것이다. 비트모지는 개인화된 이모지를 만들 수 있는 앱으로 자신의 모습과 유사한 캐릭터를 만들면 다양한 상황에 맞는 이모지들이 자동으로 생성된다. 사실 비트모지는 2014년부터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앱이었지만 올해 3월 스냅챗이 개발사 비트스트립스(Bitstrips)를 약 1억 달러(1,200억 원)에 인수하면서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이 비트모지 내에서도 브랜딩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최근 스냅챗에서 비트모지를 스티커 형식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더 많은 브랜드가 이를 활용할 것으로 본다.
이모지, 일시적인 유행일까
아마도 현재 마케터 입장에서 가장 궁금한 부분 중의 하나는 '이모지가 그저 일시적인 유행(Fad)인가'일 것이다. 문자보다 이모지가 감정을 더 손쉽고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라는 시각에서 보면 분명 새로운 소통 문화를 만들고 있는 지속적인 사회 현상으로 봐야 한다. 또한, 점점 짧아지고 있는 인간의 주의지속시간(Attention Span) 때문에라도 이모지를 이용해 신속하게 감정을 전달하던 습관을 문자 중심의 대화로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단, 이모지와 같은 사회적인 트렌드를 마케팅에 활용할 때 꼭 유의해야 할 점은, 단순히 이모지를 남발하는 것이 아닌 그 언어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유저들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들이 사용하는 방식에 맞춰 언어를 구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령, 브랜디드 키보드의 경우, 최근 몇 년간 회자되고 있는 두 가지 트렌드―이모지와 메시징 앱―를 겨냥한 좋은 시도로 예는 무수히 많지만 아직까지 눈에 띄는 성공 사례가 없다. 그 이유는 소비자가 그 키보드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페이스북 대신 스냅챗에 열광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귀찮아하는 '어른 세대'가 페이스북을 점령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모지 역시 페이스북 세대가 아닌 스냅챗 세대가 사용하기 시작한 언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그에 맞는 활용법을 모색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