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은 책 읽는 즐거움을 팔고, 가전매장은 키덜트의 놀이터가 된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책을 파는 곳이라기보단 독서하는 즐거움과 경험을 파는 곳이다. 도심 빌딩숲 속의 거대한 도서관 같기도 한데, 백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대형 원목 테이블이 대표적이다. 최근 들어 동네 책방이 부활하고 있는데, 이 또한 엄밀히 말하면 책만 파는 영세 서점이 아니라 책을 매개로 한 경험 공간이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놀이터가 되는 게 오프라인 서점의 방향이다.
일렉트로마트는 이마트표 가전매장이다. 기존의 가전과 IT 완구를 결합한 형태인데, 키덜트족 2030 남자들의 놀이터에 가깝다. 2015년 6월 첫 등장한 이래 2016년 말까지 1년 반 만에 10개 매장으로 확장됐다. 일렉트로마트가 기존 가전매장과 다른 가장 큰 차별성은 오프라인의 강화, 제품에 대한 체험과 경험치를 높여주는 것이다. 기존 가전매장이 온라인 쇼핑몰을 강화하는 것과 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일렉트로마트의 성장에 따라 타사 가전매장도 체험의 비중을 높여가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그런가 하면 한남동에 만든 주류 전문 매장 와인앤모어는 일렉트로마트의 술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한남동은 20여 개의 클래식바, 칵테일 바가 밀집해 있어 트렌드에 민감한 애주가들의 핫플레이스이기도 한데, 이곳에 애주가를 위한 놀이터의 개념으로 주류 전문 매장을 만든 것이다. 샴페인, 스파클링와인은 250가지 이상으로 국내 와인 매장 중 최다 구색을 갖췄고,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혼술족을 겨냥한 제품 라인업도 강화됐다. 홈칵테일 용품과 와인잔 등 각종 글래스웨어와 국내외 주류 관련 서적도 판다. 다양한 수입 맥주도 갖췄다. 이쯤 되면 와인과 맥주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재미있는 놀이터가 아닐 수 없다.
소비자의 놀이터가 되면, 거기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에 따라 소비도 이어진다. 서점이 책만 팔지 않고, 주류 매장이 술만 팔지 않는 시대다. 매력적인 경험을 파는 브랜드 공간에선 무엇이든 더 확장시켜서 팔 수도 있다. 편집 매장의 전방위적 확산이 되기도 한다. 바야흐로 특정 물건이 아니라 경험과 취향을 파는 시대다.
명품 패션 브랜드들은 왜 카페를 만들었을까?
에르메스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는데, 뉴욕과 서울 청담동에 있다. 청담동에는 에르메스뿐 아니라 디올의 카페도 있다. 모두 명품 브랜드 플래그십 스토어 안에 카페가 있는데, 비싼 명품 패션에 비해 만 원대로도 즐길 먹거리를 판다. 구찌가 상하이에 레스토랑을 열고, 버버리는 런던에 카페를 열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도 밀라노나 칸 등에 레스토랑과 카페를 열었다. 샤넬과 불가리, 던힐도 마찬가지다.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돈을 벌겠다는 게 아니다. 이들 브랜드는 물건을 사러 매장에 가는 게 아니라 경험과 체험을 사러 가도록 만든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오픈 초기 TV 광고를 대대적으로 했는데, 주로 강조한 것들은 먹는 것이었다. 700여 개 글로벌 브랜드가 입점한 백화점임을 자랑하면서 뉴욕의 이탈리안 식료품점인 Eataly, 코펜하겐의 쥬스가게 Joe & The Juice, 고급 마카롱인 Pierre Herme를 얘기했다. 그밖에도 전 세계 핫플레이스의 각종 먹거리들을 가져왔다. 그 결과 순식간에 판교 인근의 핫플레이스가 됐다.
온라인 쇼핑이 확대되고, 해외 직구도 급증하는 시대에 오프라인 백화점의 무기는 즐거운 체험의 놀이터이자 데이트코스, 약속 장소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최대 규모의 식품관과 다양한 디저트, 유명 먹거리를 잔뜩 포진시킨 이유다. 일상의 작은 사치가 되는 디저트와 먹거리들을 통해 매일, 혹은 자주 백화점에 들르게 한다. 온라인으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게 바로 이런 현실에서의 먹는 즐거움이다. 백화점마다 고급식품관을 꾸미고, 유명 카페나 레스토랑을 푸드코트에 유치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스포츠 브랜드는 마라톤대회를 열고, 카페는 연구소를 차린다?
마라톤 대회를 열고 있는 스포츠 브랜드는 나이키, 아디다스, 뉴발란스, 아식스, 데상트, 푸마 등 수십곳이다. 전문적인 마라토너들을 위한 대회가 아니라 일반인을 위한 축제 같은 행사다. 2030들이 주로 참가하고, 6 대 4 정도로 여성 참가자가 더 많기도 하다. 유명 마라톤 대회는 참가 신청 시작과 동시에 바로 마감될 정도로 인기다.
연예인들도 참가하고, 마라톤 대회가 끝나면 인기 가수의 미니 콘서트나 일렉트로닉 댄스 파티를 열기도 한다. 참가비는 대개 3~8만 원 정도지만, 수만 명씩 참여해도 적자다. 마라톤 대회당 줄잡아 20~20억 원 정도 비용이 들어간다고 한다. 그럼에도 대회를 개최하는 이유는 운동하는 즐거움과 체험을 파는 것이 중요해서다. 트레이닝복 패션쇼를 방불케 할 정도로 참가자들은 멋진 트레이닝복을 입고 멋진 운동화를 신고 온다. 마라톤의 목적이 기록도 아니고 승부도 아니다. 그냥 신나게 즐길 뿐이다. 자신이 체험한 매력적 스포츠의 경험이 곧 그 스포츠 브랜드에 대한 기억이 되고, 그것이 충성 고객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 <Nike Women Victory Tour 2016> 영상. 나이키는 해마다 여성 하프마라톤 대회를 열고 있다.
국내에서도 오는 5월에 대회가 열린다 ?NikeWomen
이디아 커피랩, 루소랩 등 커피전문점이 LAB을 각기 만들었다. 카페가 무슨 연구소일까 싶겠지만, 체험 기반의 고급 매장이다. 고가의 전문 장비들을 매장에 비치해 두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다양한 전문가들을 배치해 고객과 소통한다. 이제 커피전문점이란 업의 핵심도 커피라는 상품을 파는 것에서 체험과 문화의 공간을 통해 프리미엄 있는 스페셜한 커피 공간으로 가고 있다.
신세계는 왜 테마파크 및 야구장과 경쟁하는가?
“유통업체의 경쟁 상대는 에버랜드 같은 테마파크 또는 야구장이다.” 이 말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한 말이다. 더 이상 유통업은 쇼핑만을 얘기하지 않는다. 신세계가 스타필드 하남과 이마트타운 등 복합쇼핑몰에 집중한 것도, 이마트는 라이프쉐어(Lifeshare) 기업이라며 경쟁사와의 마켓쉐어(Market Share) 경쟁보다는 소비자가 가진 라이프 스타일을 더 많이 해석해서 소비자의 일상을 더 많이 점유하려고 하는 것도 정용진 부회장의 말과 일맥상통하는 방향이다.
▲ 신세계그룹의 신개념 쇼핑테마파크 스타필드 하남 ?신세계그룹
도심에 백화점이나 쇼핑몰 지을 공간은 더 이상 없다. 결국 외곽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야 사업 확장을 할 수 있는데, 과거처럼 쇼핑만 하는 공간으로는 외곽까지 사람들을 끌어낼 수 없다. 결국 쇼핑과 레저, 일상의 모든 소비와 라이프 스타일의 욕구들이 총집합된 복합쇼핑몰이 승부수가 될 수밖에 없다. 스타필드 하남은 규모로 보나 그 속에 들어가 있는 다양한 경험의 콘텐츠로 보나 브랜닉 마케팅을 가장 잘 담아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스타필드 하남은 한마디로 재미있는 쇼핑 테마파크다. 특히 어른들을 위한 거대 놀이터다. 한동안 타임쉐어(Time Share)도 주창되며 소비자의 24시간을 어떻게 점유할 것인가를 노렸지만, 결국은 소비자의 일상 동선과 라이프 스타일을 어떻게 점유하고 활용할 것인가라는 라이프쉐어가 핵심이 됐다. 결국 소비자의 욕망, 그들이 누리고자 하는 체험이자 경험을 얼마나 많이 채워주느냐가 승부가 될 수밖에 없다. 브랜닉 마케팅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김용섭은 트렌드 인사이트와 비즈니스 크리에이티비티를 연구하는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이다. 저서로 『라이프트렌드 2017 : 적당한 불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