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적 아이디어의 큰 울림
최근 칸 라이언즈는 인공지능과 웨어러블, 가상현실 등 첨단 기술의 경연장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감성과 공감의 조합이라는 전제가 숨어 있다. 이처럼 글로벌 광고제는 기술적 진보 템포에 따라 주기적으로 테크놀로지에 방점이 찍혀 보인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라는 크리에이티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2017년 제일기획의 글로벌 광고제 수상작 중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동력은 기술이 아닌 생각의 크기와 힘임을 여실히 입증한 캠페인이 있다. 칸 라이언즈에서 실버를 획득한 유니클로의 <히트텍 윈도우>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유니클로와 제일기획 본사가 히트텍 브랜드 출시 10주년을 기념해 기획한 이 캠페인은 브랜드 로고를 에어캡에 인쇄해 소비자들에게 증정하고, 주요 매장 윈도우에 부착해 일종의 옥외 광고로 활용한 것이다.
여기에는 대중의 눈을 현혹시킬 첨단 기술의 현란함이란 없다. 그저 기능성 내의와 방한용품인 에어캡에서 ‘보온성’이라는 공통분모를 찾아내 중첩시킨 아이디어만 도드라진다. 아이디어의 직관적 실현은 캠페인 영상을 보는 내내 배경음악인 캐롤과 에어캡 로고의 색깔을 차츰 더 따뜻하게 느끼게 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 캠페인이 공감을 얻은 이유는 왜일까. 그것은 에어캡으로 난방비를 줄이는 보통 사람들의 알뜰한 눈높이에 시선을 맞췄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피부에 와 닿는, 일상 속에서 발굴한 아이디어가 바이럴 영상의 다양한 2차 패러디로 재생산된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소비자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담아낸 유니클로의 <히트텍 윈도우> 캠페인.
사회적 약자에 대한 위로
올해 수상작 중에는 치유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돋보이는 캠페인들도 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대규모 전쟁과 질병, 기아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통계 그래프 위의 현상일 뿐 우리의 이웃 중에는 여전히 그러한 고통에 위협받는 이들이 있다.
그런 점에서 삼성전자가 론칭피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전개한 <#BeFearless>는 특수한 환경에 놓인 소수 이웃들의 상처와 치유에 주목한다. 이 캠페인은 고소공포증과 발표 불안장애를 겪는 이들에게 VR로 반복적인 간접 경험을 제공해, 공포를 이겨 내게 한 훈련 프로그램이다. 단계별 훈련을 통해 스스로 불치병이라 여겼던 증상을 극복한 참가자들의 밝은 표정이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한다. 이 캠페인은 임상시험에서 큰 효과를 보였고, 그 결과 현재 가상현실 클리닉의 치료 프로그램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이는 캠페인 제작을 위한 고민의 결과가 의학적 결실로 연결돼 캠페인을 ‘치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사례에 속한다.
삼성전자의 <#BeFearless> 캠페인은 특수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의 상처와 치유에 주목했다.
아울러 삼성전자의 <Dytective for Samsung> 역시 같은 속성을 지닌 캠페인이다. 삼성전자 스페인법인과 제일기획 스페인법인이 함께 난독증을 판별할 수 있는 모바일 앱을 개발해 무료로 배포한 것. 난독증은 전 세계적으로 약 10%가 증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흔한 학습장애다. 하지만 제대로 검사를 받지 못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앱은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던 난독증 검사를 단 15분 만에 실시할 수 있게 했다. AI를 활용한 언어 게임 형식으로 진행되며, 정확도는 90% 이상이다. 공개 후 3개월 동안 약 6만 7,000명이 검사를 실시했으며 약 6,000명이 난독증 진단을 받았다. 현재는 스페인, 아르헨티나, 콜롬비아에서 사용 가능하며 2018년에는 전 세계에 공개될 계획이라고 한다.
난독증을 판별할 수 있는 모바일 앱을 개발해 무료 배포한 삼성전자의 <Dytective for Samsung> 캠페인.
그런가 하면 다소 성질은 다르지만 의학적 관점에서 흥미로운 캠페인이 글로벌 광고제의 수작으로 선정된 케이스도 있다. 삼성물산 캐리비안 베이의 <라이프 펌프>는 의학을 소재로 한 캠페인이란 점에서 위에 언급한 사례들과 유사성을 갖지만, 심폐소생술이라는 응급처치 행위와 물놀이 튜브 공기 주입이라는 놀이의 행위를 하나로 묶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인 캠페인이다.
응급처치 행위와 놀이를 접목시킨 삼성물산 캐리비안 베이의 <라이프 펌프> 캠페인.
그런가 하면 메디컬을 소재로 하되,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을 보인 캠페인도 있다. 홍콩의 초콜릿 브랜드 베리 초콜릿의 <Very Chocolate>은 ‘모든 상황을 위한 완벽한 치유법’이라는 콘셉트로 제품을 재포지셔닝하고, 두통약과 천연 항우울제 등 초콜릿이 주는 긍정적 효과를 약품 포장을 연상케 하는 제품 패키지 디자인에 적용해 인쇄와 옥외 광고 등에 활용함으로써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초콜릿의 긍정적 효과를 부각시켜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낸 <Very Chocolate> 캠페인.
사회적 약자가 꼭 사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Fragile Friends>는 세계야생동물보호기금(IFAW)이 중국 종합 매체 아이펑, 제일기획 중국법인과 손잡고 그림책을 활용해 어린이들에게 동물들이 보호의 대상이라는 인식을 심어 준 캠페인이다. 깨지기 쉬우니 취급에 주의하라는 표시(Fragile Logo)를 활용해 두크마른 원숭이, 아틀라스 곰 등 7종의 멸종 위기 동물을 소개하는 특별한 그림책을 만들어 어린이들에게 동물 보호에 대한 중요성을 전달했다. 이 역시 첨단 기술보다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에 감성을 추가한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Fragile Friends>는 동물들이 보호의 대상이라는 인식을 심어 준 캠페인이다.
로컬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
치료와 마찬가지로 치유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홍콩법인이 선보인 두 개의 캠페인은 사회적 약자 혹은 사회안전망의 허점을 보완하려는 공익적 차원의 치유 의지로 읽힌다. 우선 삼성전자와 홍콩 시각장애인연맹이 공동으로 20만 명의 시각장애인들에게 세계적 명소인 홍콩의 스카이라인을 경험할 수 있게 한 CSR 캠페인을 보자. 삼성전자의 캠페인 <#BeTheirEyes>는 홍콩의 명소 사진과 관련 설명을 해시태그로 달아 SNS에 공유하면, 이를 점자 스티커로 제작해 사진 촬영 장소에 부착함으로써 시각장애인들이 해당 명소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는 SNS 등 캠페인 참여 결과에 따라 시각장애인 수술 기금을 기부하는 등 시각장애인 이슈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기여했다.
삼성전자의 <#BeTheirEyes>는 시각장애인 이슈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기여했다.
아울러 홍콩법인은 비영리단체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 모바일 앱을 활용해 실종 어린이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캠페인도 선보였다. 어린이 실종 시 주변에 해당 앱을 설치한 스마트폰 잠금화면에 어린이 사진과 신상을 전송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중국에서 매년 20만 명의 어린이들이 실종되고 있으나, 법적으로 24시간이 지나야만 실종 신고가 된다는 데 대한 문제의식에서 기획된 캠페인이다.
모바일 앱을 활용해 실종 어린이를 찾을 수 있도록 도운 <‘Missing Child’ Lock Screens>.
이런 사례들은 ‘치유’라는 공통의 키워드로 묶을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로컬의 특수성’이란 키워드도 숨어 있다. 예를 들어 음향기기 브랜드 JBL의 <Block Out the Chaos> 캠페인은 우는 아기와 말다툼 등 소음이 발생하는 다양한 상황을 설정하고 캐릭터 사이에 헤드폰 모양의 여백을 배치했다. 제품의 소음 제거 기능을 떠올리기 쉽게 표현한 크리에이티브는 호평을 받았다.
여기까지만 보면 단지 시각적 아이디어의 힘만이 작용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직관적 표현 방식만이 아니다. 홍콩 미술 시장이 폭발적으로 팽창하고 있음을 고려, 인기 작가들의 화풍을 연상시키는 그림체를 썼다는 점은 이 캠페인이 로컬 현상과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음을 증명한다.
홍콩 미술 시장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된 JBL의 <Block Out the Chaos> 캠페인.
중국법인이 진행한 캠페인에도 역시 로컬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깔려 있다. Friends of Nature의 <Rebirth after Reading>은 중국에서 인쇄된 종이의 60%가 한 번 읽고 버려진다는 점에 착안해 72시간이 지나면 인쇄된 글자가 사라지는 특수 잉크를 개발, 이면지를 새 종이처럼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친환경 프로젝트다. 이는 지구의 자원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중국 대륙의 특수성을 십분 고려한 캠페인인 셈이다.
<Rebirth after Reading>은 인쇄된 종이의 60%가 한 번 읽고 버려진다는 점에 착안했다.
소통과 경험의 가치를 높이다
자회사 아이리스가 선보인 아디다스의 <Glitch>는 내피와 외피를 별도로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는 혁신적인 축구화 ‘글리치’를 출시하며 진행한 마케팅 캠페인이다. 이들은 오프라인 매장, 빅 모델, 광고, 언론 홍보 등은 전혀 활용하지 않고 인플루언서들과의 협업, SNS를 통한 입소문만을 활용해 제품을 홍보했다. 제품 판매는 온라인을 통해 초대 코드를 받아야만 가능하며, 새로 출시될 디자인은 온라인 투표를 통해 결정되는 파격을 선보였다. 이밖에도 아디다스의 끈 없는 축구화 신제품 론칭에 맞춰 ‘누가 진정한 보스인지’를 보여 준다는 콘셉트로 진행한 소셜 캠페인 <Boss Everyone> 등의 캠페인은 유럽 대륙에서 축구가 얼마나 큰 이슈인가를 짐작케 한다.
유럽인들의 축구 사랑에 기반해 제작된 아디다스의 <Glitch> 캠페인과 <Boss Everyone> 캠페인.
그런가 하면 삼성전자의 <DISCOVR ThE WORLD>는 삼성 기어 VR과 향기 발생기, 강풍기, 물 분사기, 에어컨, 히터 등이 설치된 부스를 제작해 서울 광장시장(냄새), 인도 카슈미르 고산지대(강풍), 인도 라자스탄 축제(3D 사운드), 나미비아 나미브 사막(열기), 카메룬 정글(습기, 물), 아이슬란드 요쿨살론(냉기) 등 세계 6개 지역을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을 통해 VR로 경험할 수 있게 한 체험 캠페인이다.
이 이벤트에는 6일 동안 65만 명이 방문했으며, 온라인 VR 플랫폼 방문객이 450% 증가하는 등 VR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성과를 거뒀다. 이 캠페인의 경우 첨단 기술 활용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방식을 취하고 있으나, 인간의 오감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인문학적 접근이자 동시에 크리에이티브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음을 새삼 확인시켜 준다.
<DISCOVR ThE WORLD>는 오감을 자극하는 VR 체험 캠페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감성을 자극하는 또 하나의 캠페인이 있다. 독일법인이 3M의 ‘엑스트라 히비 듀티 덕트’ 테이프의 뛰어난 접착력을 보여 주기 위해 진행한 이색 옥외 광고 캠페인 <Forever Sticking Billboards>가 그것이다. 눈으로 가사만 읽어도 머릿속에 금세 멜로디가 떠오르는 히트곡, 예컨대 <바비 걸>이나 < 마카레나> 같은 노래의 가사를 3M 테이프를 활용해 버스 쉘터 등 다양한 옥외 광고판에 부착했다. 이를 통해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는 노래들처럼 3M 테이프의 접착력이 강력하다는 인식을 소비자들에게 심어 줬다. 이 역시 기본에서 크리에이티브의 원천을 찾은 케이스에 속한다.
영원한 테마, 인류의 보편적 감성
인류의 보편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감동적 캠페인들도 여전히 글로벌 광고제에서 인정받고 있다. 삼성전자의 <Samsung Service Van>은 삼성전자가 인도 전역을 누비는 535대의 이동식 서비스 밴의 ‘찾아가는 서비스’를 알리기 위해 제작한 캠페인 영상. 오지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간 서비스센터 직원이 맹아원 아이들의 감동적인 사연을 알게 된다는 스토리를 담은 이 영상은 유튜브 공개 약 53일 만에 조회 수 1억 건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감동 스토리가 마치 한 편의 웰메이드 다큐멘터리처럼 전달된 것이다.
뭉클한 감동을 주는 스토리로 조회 수 1억 건을 돌파한 <Samsung Service Van> 캠페인.
역시 인도법인이 선보인 삼성전자의 <Spread the Joy>는 삼성전자가 인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유기견 입양센터와 함께 유기견 입양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실제 입양을 돕기 위해 진행한 프로젝트다.
삼성전자는 인도 지역 브랜드숍에 비치된 조이 플러스(Joy Plus) TV에 유기견들의 영상을 라이브로 보여 준다. 매장 방문객이 TV의 스크린 캡처 기능을 이용해 입양을 희망하는 유기견의 영상을 캡처하면, 인쇄된 유기견의 이미지와 함께 입양센터 연락처가 제공되고 입양을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
<Spread the Joy>는 유기견의 입양을 돕기 위해 진행한 프로젝트다.
이러한 휴먼 스토리는 러시아법인이 제작한 <Over the horizon>에서도 발견된다. 시력이 2%만 남은 러시아 시각장애 여행가 알렉산더 주라블레브(Alexander Juravlev)가 영하 30℃의 혹한을 뚫고 150km를 이동하며 우랄산맥 남부 지역의 풍경을 갤럭시 S7 엣지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과정을 담아 냈다. 시각장애를 극복하는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준다.
시각장애를 극복하는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준 <Over the horizon> 캠페인.
경험의 가치와 상상력에 테크놀로지의 옷을 입혀라
베스트셀러의 목록은 해마다 달라진다. 하지만 대중의 폭넓은 선택을 받은 베스트셀러에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이처럼 제일기획의 2017년 글로벌 광고제 수상작들을 리뷰하면 역시 교집합이 형성된다. 그것은 테크놀로지의 옷을 입은 경험의 가치와 상상력이 공감을 얻게 되면, 인류의 보편적 감성을 자극한다는 점이다. 제일기획이 지향하는 글로벌 마케팅 솔루션 컴퍼니의 미래 역시 이 지점에서 출발할 것이다.
2018년에도 변치 않는 크리에이티브의 본질에 충실한 제일기획의 다양한 캠페인이 더 많이, 한층 더 성숙한 모습으로 글로벌 광고제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그 결과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