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미래, 미래의 과거
누구나 이따금 이런 질문을 받거나 아니면 자문해 볼 때가 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언제로 가고 싶은가?”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순간…. 어떤 사람은 과오를 저질렀던 순간을 끄집어낼 테고, 또 어떤 사람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릴 것이다.
현실에서는 과거로 돌아가는 게 불가능하지만, 영화에서는 가능하다. 아니, 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틈만 나면 과거와 현재, 심지어 미래까지 뻔질나게 드나든다. 이런 타임 슬립(Time Slip) 영화를 가만히 보면 대개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영화 <백 투 더 퓨처>처럼 현재의 위험이나 미래의 재앙을 막기 위해 과거로 가기. 드라마 <시그널> 역시 현재를 바꾸기 위해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자 한다. 이런 부류에는 과거가 현재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두 번째 부류는 과거를 통해 현재의 의미 되새기기.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과거로 거슬러간 주인공은 그곳에서 자신이 평소 무지막지하게 동경하던 예술가들과 만나 행복한 한때를 보낸다. <어바웃 타임>은 어떤가. 아버지가 임종이 가까워지자 주인공은 과거를 바꾸는 대신 아버지와 지냈던 행복한 순간을 가슴에 품고 현재로 돌아온다. 이 부류의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현재를 의미 있게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현재에서 과거로 돌아가기,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오기, 현재에서 미래로 들어가기, 미래에서 현재로 돌아오기. 뭐가 제일 좋을까?
이 풍족한 세상을 사는 법
과학 기술이 엄청나게 발달해 시간을 조정하는 게 가능해진다면, 그래서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면 우리는 과연 현재를 바꿀 수 있을까? 혹시 ‘인생 총량의 법칙’처럼 이런저런 변수가 생겨 결국 현재라는 결과값은 동일해지는 게 아닐까. 실현 가능한 ‘정답’은 현재에 충실한 것인지도 모른다. 에이미 아담스 주연의 영화 <컨택트>는 미래에 자신의 딸이 병에 걸려 일찍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래를 바꾸지 않고 현재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지금의 40대 이상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담보하는 삶을 살아 왔다. 특히 40~50대는 부모 세대를 ‘봉양’하고, 자식 세대에게 ‘봉사’하느라 숨 돌릴 틈이 없다. 반면에 20~30대는 불투명한 미래보다 현재의 삶을 더 중시한다. 돈이 생기면 그때 그때 다 써버리는 딸에게 엄마는 혀를 차며 걱정하지만, 나무랄 것도 없다. 누가 옳다고 할 수도 없다. 엄마 세대야 간식으로 누룽지만 먹어도 흡족했지만, 딸 세대는 ‘노는 물’이 다르고 ‘사는 물’이 다르다. 이 시대가 제공하는 콘텐츠가 너무 많다.
‘이 풍진 세상’ 대신 ‘이 풍족한 세상’을 만난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어쨌든 현재에 충실하기. 허리띠를 졸라매든 유희를 즐기든 그저 현재에 감사할 수밖에…. 영어 단어 ‘Present’가 ‘현재’라는 뜻과 ‘선물’이라는 뜻이 동시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현재를 생략하고 미래로 갈 수는 없다. 현재는 시간의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