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심주의적 역사 기록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 영화, ‘직지코드’의 반향이 심상치 않다.세계 최초 금속활자 탄생의 미스터리를 다룬 작품으로 ‘런던아시아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고, 지난 주 12월 23일 열린 제주영화제에서는 개막작으로 올랐다. ‘모두의 상식을 뒤집는 놀라운 비밀이 담겼다’ ‘다빈치코드 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역사는 새로 쓰여야 한다’는 호평을 얻고 있는 직지코드는 17년 만에 첫 감독 데뷔한 우광훈 감독의 작품이다. “정말 맞아요?라는 질문이 직지코드를 탄생시킨 것 같아요” 우감독은 동서양의 역사를 두루 섭렵 후, 서양인과 함께 유럽 5개국 7개 도시를 돌며 진실을 추적해 나가는 근기와 스케일을 보여줬다. 촬영 마지막 날 ‘전체 촬영분 의문의 도난 사건’ 속에서도 시선의 기록은 멈춤이 없었다. 직지코드는 그야말로 영화라는 한 길을 묵묵히 걸어온 감독의 집요한 열정과 탐험 정신이 빚어냈다. ‘쿠텐베르크 보다 200년 앞선 직지가 세계 최초’임이 아닌, 동서양의 화합을 말하는 ‘직지 정신’으로 귀결시킨 점에선 감독의 통합?유기적인 세계관을 엿본다. 영화팬들에게 지적 희열을 넘어 ‘하나됨’의 감동까지 선사해 준 직지코드 우광훈 감독을 샤우트가 탐험한다.
Q1. 직지코드, 국내외 반향이 심상치 않은데요, 17년 만의 첫 감독 데뷔작이라고요. 감독님의 지난날의 여정이 궁금해요.
한국에서 스페인어 전공 중 미국으로 건너가 영화를 공부했어요. 미국에서 영화 서클 활동을 하며 한국 영화제를 만들다 보니 영화판과 인연이 닿았죠. 2000년도에 한국으로 돌아와서부터 정지영 감독님의 조감독으로 일해 왔어요.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분이죠. 감독님으로부터 끈질긴 지구력과 진정성,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기개 같은 것을 배웠어요. 영화를 하면서도 다양한 시나리오는 물론 뮤직비디오, 광고 CF, 사진, 비디오 아트 등 작품 활동을 병행해 왔는데, 그 움직임들이 그물망처럼 엮여 직지코드를 만들어 낸 힘이 된 것 같아요. 국내는 물론 유럽에서 첫 선을 보인 영국에서 큰 관심을 보여주셔서 저도 놀랐어요. 직지코드의 가치를 알아봐 주시는 모든 분들께 고마운 마음입니다.
Q2. 최초 직지코드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요?
금속활자에 대한 관심은 늘 갖고 있었어요. 당시 집필 중이던 시나리오가 동서양의 종교에서 공통 원리를 찾으며 살아가는 두 직장인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마침 정지영 감독님으로부터 듣게 된 직지 스토리와 제 시나리오가 뭔가 절묘하게 연결된다는 느낌이 왔어요. 다큐 주인공인 데이빗이 직지에 관심을 갖고 영화사를 찾아왔다는 말도 흥미로웠고요. 서양인의 관점을 포함시켜 직지를 추적해 간다면, 민족주의 관념을 넘어 통찰적이면서도 과학적인 새로운 다큐가 나올 수 있겠다는 확신이 왔어요.
Q3. 지난 천년 간 인류를 바꾼 위대한 사건 중 1위로 기록되는 금속활자의 상식을 뒤집는 작업이셨어요. 구텐베르크의 비밀을 알게 되고,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직지를 반환하지 않으려 하는 이유등 새로운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을 목격하며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구텐베르크가 정말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가 맞아요?’라는 누구도 바보 같다고 생각할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어요. ‘구텐베르크가 세계 최초’라고 많은 이들이 의심 없이 믿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추적 결과 놀랍게도 인류를 바꾼 많은 역사적 기록들이 검증이안 되어 있더라고요. 구텐베르크의 경우 증명되지 않은 인물일 수 있다는 것은 큰 발견이었어요.
우리는 어떤 권력이 어떤 목적으로 편집, 기록했을지 모를 역사를 사실이라고 믿고 배워 왔어요.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기정사실로 변질되어 버린 역사를요. 직접 경험해 본 적 없으면서 맹목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해 의문을 갖고, 용기 내어 질문할수 있어야 한다는 걸 온몸으로 경험했죠.
Q4. 진실을 추적해가는 제작진의 탄탄한 취재력, 동서양의 만남으로 구성된 멤버들의 집요한 열정이 서로 융화되어 빛을 발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주요 멤버들 소개와 함께 지난하고 기나긴 여정 속 어떤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해 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주연이자 공동감독 데이빗은 서양인으로서 직지에 호기심을 품은 최초의 인물이죠. 그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없었을 거예요. 데이빗을 소개해준 캐빈 장(장동찬) 프로듀서는 동서양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처럼 작용했고요. 독일 아버지와 한국 어머니를 둔 덕분에 균형적 역사관을 가질 수 있었던 사랑씨의 역할이 정말 컸죠.
모든 걸 총괄하며 길을 잡아 주신 정지영 감독님 제작자의 영화 정신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중심 잡게 했어요. 특히 영화 막바지에 촬영분을 모두 도난당했을 때, 정지영 감독님께서 담담한 태도로 유럽을 다시 한 바퀴 돌 수 있게 인내해 주셨는데, 덕분에 오랜 시간을 두고 치밀하게 촬영했던 작업을 단 며칠 만에 해낸 초인력을 발휘할 수 있었어요.
그래픽의 경우 일일이 세계 지도를 그려 움직이고, 페친이던 한 교수님 도움으로 일러스트를 받아 애니메이션 효과를 주고, 한 가지 사실의 검증을 위해 며칠씩 수 권의 책을 읽고 단서를 발견해내는 작업을 반복했어요. 다시 하라고 하면 그렇게까지는 못할지도 모르겠어요.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무료 음악을 찾던 중 운 좋게 뉴욕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시는 음악감독님을 알게 되었어요. 덕분에 동서양의 악기가 부딪히다 결국 조화를 이루는, 제가 딱 원했던 느낌의 훌륭한 음악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요. 자막 토씨 하나까지도 섬세하게 감수해 주신 정상민 대표님도 정말 큰 힘이 되었어요.
라틴어와 프랑스어 포함 약 5개 언어로 촬영된 것들을 영어로 모두 번역 후, 시나리오를 재구성하는 데만 2개월이 걸렸네요. 이후 1년 반 정도는 정지영 감독님 댁에 또아리를 틀고 밥을 해 먹어가며 편집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긴긴 시간 동안 하나 되어준 모든 분들께 고마운 마음이에요.
Q5. ‘의문의 도난 사건’으로 모든 증거가 확보된 촬영분을 몽땅 날리셨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작품을 완성해 내셨어요. 이 경험을 통해 얻은 배움이 있다면요?
깨진 차량 유리창을 보며 모두가 울며 힘들어했어요. 데이빗이 세느강에 뛰어내려 죽겠다고 했을 때 함께 죽고 싶은 심정이었죠. ‘이보다 더 힘든 일이 있을까’ ‘왜 이렇게 영화란 일은 내 인생에서 좀처럼 안 풀릴까?’ 절망적인 기분에 휩싸이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되어 있을까?’ ‘다큐는 완성되어 있을까?’ 조금씩 게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만약 해결된다면 꽤 흥미로운 다큐가 되겠다’ ‘는 생각에 그 순간조차 카메라로 담게 되더라고요. 그 당시 욕도 많이 먹었는데, 영화의 주요 장면 중 하나가 되었네요(웃음). 결국 찾지 못하고 재촬영을 해야 했지만,그 경험을 계기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전개됐을 때의 빠른 대응력을 키울 수 있었고, 웬만한 일은 힘들다고 여기지 않게 된 것 같아요. 무엇이든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담력 같은 것도 생겼네요.
Q6. 잃어버린 촬영분을 찾기 위해 목숨까지 걸고 움직이셨던 웃픈 비하인드스토리가 있다고요.
하드 드라이브라도 찾으려고 6개 정도의 난민 군락-소위 집시 캠프라고 불리는 곳을 돌아다녔죠.경찰들은 총을 쏠 거라며 같이 가 주지 않았어요. 맨 처음 갔던 집시 캠프에서 집시퀸을 만났던 생각을 하면, 아직도 묘한 전율이… 그 후 재촬영 준비를 하는 동안, 피디님이 유서까지 써 놓고 나머지 7개 군락을 찾아 돌아다니고, 새벽마다 장물 시장엘 나갔죠. 파리 재촬영을 와서 한 거리 화가와 얘기를 나누다가, 자신도 집에 불이 나 10년간 그린 그림 200여 점을 모두 잃어버렸다며 서로 위로해 주던 기억도 납니다. 모두가 동서양 교류의 현장들이었죠(웃음 ㅋㅋㅋㅋ).
Q7. 거절과 외압, 절망 속에서도 끝까지 추적해 나가셨어요. ‘지금보다 더 힘든 일은 안 생기나’ 바란 적도 있다고 하셨는데, 감독님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요?
영화 작업은 삶을 통째로 변화시킬 만큼 굉장한 흡입력을 갖게 해요. 서해 대교 꼭대기에서 바라본 풍경을 꼭 찍고 싶었던 적이 있어요.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망설였는데, 막상 카메라를 드니 겁 없이 올라가고 있는 저 자신을 보며 생각했죠. ‘아, 이런 게 바로 꽂힌다는 거구나’ 작업이 난항을 거듭할 때마다 이상하게 성장의 희열을 동시에 느꼈어요. 삶의 진실을 찾기 위해 끝까지 파고드는 성향이 어떤 상황에서도 저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는 힘 같아요.
Q8. 통념적 역사관을 뒤집을 만한 스케일 있는 스토리를 단순 유쾌하게 풀어내신 게 신선했어요.
알고 보면 누구나 유쾌함을 추구한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진지한 교수나 성직자들도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재미있고 유쾌한 것을 찾고 있지 않을까요? 그 균형의 코드를 맞춰주는 게 제 영화가 할 일인 것 같아요. 도무지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끼리 상호 교감하게 하려면 모서리를 녹일 따뜻함과 재미가 필요해요. 그래서 만나는 학자들마다 춤추자고 제안했고, 스님께 농담도 건네고 그랬어요. 학문적 냉철함을 유지하면서도, 가볍고 경쾌한 표현의 톤 앤 매너를 유지하고자 했어요. 누구보다 속이 깊지만 쾌활함으로 빛나는 그런 사람들처럼 말이죠.
Q9.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관람객들 반응이 궁금해요. 이 영화를 꼭 봤으면 하는 분들이 있나요?
반응은 다양했지만 대체적으로 좋은 편이었어요. 독특한 만듦새에 대한 호평도 많았어요. 좀 빠르고 산만하다는 분들도 더러 있었죠. 그건 모순을 동시에 품고 있는 제 성향인지라 어쩔 수 없었어요 (웃음). 공관 기관 분들은 우려하시더라고요. 한국과 프랑스의 수교가 130주년인데, 외국에서 몰래카메라를 찍은 부분에 대해 국제 관계에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하고요. 영화에서 꼭 필요한 부분인지라 많은 다툼과 저항의 시기를 보낼 수 밖에 없었어요. 마침 정권이 바뀔 때 즈음이라 자연스럽게 풀렸죠. 런던 이스트아시아 필름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후엔 좀 더 자신감이 생겼어요.
해외에선 의외로 좋은 반응이었어요. 유럽을 공격하는 걸로 오인될 수 있는 내용이 있어 싫어할 줄 알았는데, 의식이 굉장히 열려 있더라고요. 프랑스가 다른 나라로부터 가져온 문화재를 지나치게 보호하는 부분에 대해 반감도 좀 있었나 보더라고요. 오랜 세월 동안 누구나 한번쯤 질문하고 싶었던 부분을 우리가 터트려 주었다는 느낌을 받았죠. 일례로 해외 시사 때 한 이태리 분이 루브르에서 모나리자를 찾아와야 한다고 외치니 모두가 기립박수를 쳐 주시기도 하셨어요. 무엇보다 프랑스 도서관이나 문화재 관련 종사자들의 반응이 가장 궁금해요.
국내에선 원하는 만큼의 극장 수와 관객 수 달성이 안 된 것이 아쉽지만, 상식적으로 알고 있던 역사들을 아무 의문 없이 그대로 믿는 모든 분들이 꼭 만났으면 좋겠어요. 직지에 관한 이슈는 매년 있을 테니 꾸준히 많은 사람들을 깨우는 스테디한 셀러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Q10.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은 직지임을 밝혀내는 것이 아닌, 인류의 큰 방향인 ‘동서양의 화합’ ‘직지의 정신’으로 귀결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요, 감독님에게 직지코드는 어떤 의미인가요?
언젠가 국경이 사라지고, 세계 인류로서의 의식으로 확장될 거라는 느낌적 느낌을 가져왔어요. 직지코드는 제 삶의 큰 전환기를 맞게 한 거대한 사건과도 같아요. 50킬로가 넘는 바티칸 비밀 문서고 책장에서 역사적으로 귀중한 증거였던 ‘교황이 고려왕에게 쓴 편지’를 찾았을 땐 저도 함께 흥분되면서 섬광 같은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었죠. 불교와 기독교 힌두교 등 모든 종교가 갖고 있는 공통 코드를 연구하고 정리해 왔는데요, 빙산의 일각 예로, 성경 시편 90과 백운화상의 임종계송에서 언급하는 인간의 나이와 죽음의 의미 등이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제가 어렴풋이 가슴으로 확신해 왔던 것들의 포문을 열어준 고마운 프로젝트입니다.
Q11. 유쾌한 춤으로 마무리하신 이유가 있나요? 두 대립 사이의 균형을 중시하는 노자의 혜안을 엿봤습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춤은 순간순간 자연스럽게 일어났어요.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에요. 노자 사상에 보면 경계는 인간이 만든 관념일 분 실제로는 허상이라고 하죠. 그런 경계가 허물어진 상태가 바로 깨달음의 순간이자 균형의 상태가 아닐까 해요. 성경 또한 경계가 너무 명확한 십계명은 인간이 지킬 수 없기에 예수님이 와서 경계를 허물어 주었다고 생각하고요. 비슷한 의미로, 우리 영화에서의 춤은 그 자체로서 관념의 경계, 동서양의 경계를 한 순간 사라지게 하는 하나의 상징이라 할 수 있어요.
Q12. 감독님의 삶의 철학과 꿈에 대하여
삶의 철학은 유쾌함, 평등, 균형입니다. 제가 추구하는 영화의 최종 방향성은 대체로 일관적인데요, 대립되어 보이는 것들이 만나 갈등과 상호 교류를 거쳐 결국 풍요한 삶으로 완성된다는 스토리의 것들이에요. 꿈이라면 크던 작던 어떤 형태로든 겉멋 들지 않고, 삶의 균형에 관한 영화를 계속 만들어 나가는 필름메이커가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샤우트 독자들에게 전하고픈 한 마디
“정말 맞아요?”라는 바보 같은 질문이 오늘의 직지코드를 만든 것 같아요. 세상을 향해 그렇게 끊임없이 ‘Shout!’하는 용기를 가지셨으면 합니다. 관심 가져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