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다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소비자 욕구가 증대하는 환경 속에서 새로운 마케팅 기회를 발굴한 사례가 있다. 글로벌 이동통신업체 보다폰은 루마니아에서 75세 이상 노인의 대다수가 홀로 생활하고 있음을 파악했다. 특히 보다폰은 혼자 지내는 할머니들이 습관적으로 대가족 분량의 식사를 준비해 두고는 큰 주방에서 혼자 식사하는 모습에 주목했다.
이에 보다폰은 <할머니의 일요일(Sunday Grannies)>이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함께 식사할 사람이 필요한 할머니를 따뜻한 집밥을 그리워하는 학생들과 연결해 주는 것이 취지였다. 페이스북에 할머니의 메뉴를 올리면 참여를 신청한 학생들이 방문해 함께 식사를 즐기는 식이었다. 할머니가 누구와 무엇을 먹고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를 보여 주는 사진과 동영상을 게시하자 순식간에 43만 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이 얘기는 TV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전국으로 알려졌고, 이 할머니의 레시피로 만든 레몬 파이가 상품화되기도 했다.
▲ <Sunday Grannies> 캠페인
캠페인에 동참할 할머니를 추가적으로 모집하자 루마니아 전역의 할머니들이 초대를 신청했다. 할머니들은 누군가와 함께 요리하고 먹는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하고, 더불어 디지털 기기와 SNS를 다루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됐다. 9개월간 루마니아 노년층의 스마트폰 구매는 78.8% 증가했고, 페이스북 계정을 만든 노인도 20% 이상 늘었다.
보다폰은 이와 더불어 루마니아 고산 지대에서 양을 방목하는 청년에게 스마트폰을 제공한 후 자신의 일상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어 업로드하는 <Ghita, The Social Shepherd> 캠페인도 진행했다. 깊은 산 속에서 혼자 생활하는 목동의 얘기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게 됐고, 덕분에 양치기 청년은 50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지닌 유명인이 됐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이동통신의 영향력을 보여 준 보다폰은 스마트폰 보급률이 저조한 농촌 지역에서 신규 고객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고, 확고한 선두 자리를 다질 수 있었다.
▲ <Ghita, The Social Shepherd> 캠페인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다
소비자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새드버타이징(Sadvertising)’도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캐논코리아가 몇 해 전 크리스마스에 공개한 <아빠의 셀카>는 딸에게 선물받은 카메라로 여기저기 사진을 찍던 아빠를 귀찮게 여기던 가족들이 아빠가 돌아가신 후 사진들을 보며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누구나 겪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로 온라인상에서 큰 이슈가 됐다.
▲ <아빠의 셀카> 캠페인
그런가 하면 ‘2015년 최고의 슈퍼볼 광고’로 뽑힌 버드와이저의 <Lost Dog> 캠페인은 따뜻한 동화 같은 얘기로 잔잔한 여운을 줬다. 길을 잃은 강아지가 위험에 처하자 목장의 말들이 도움을 줘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게 된다는 내용이다. 스케일이 크고 화려한 광고가 주를 이루는 슈퍼볼 광고에서 이 캠페인이 최고로 손꼽힌 이유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 <Lost Dog> 캠페인
소비자의 마음을 위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그런데 저성장기가 지속되고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즐겁고 유쾌한 이야기로 소비자들을 위로하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따뜻한 공감을 바탕으로 소비자와의 관계를 끈끈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주목받고 있는 동반자 비즈니스
젊은 연령층일수록 친구나 연인을 찾기가 더 쉬울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실제로는 인적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는 젊은이들이 많다. 최근 미국의 정신건강재단(Mental Health Foundation)은 「외로운 사회(Lonely Society)」 보고서를 통해 18~34세의 젊은 층이 55세 이상 중장년층보다 심리적 고통을 훨씬 더 심각하게 겪고 있음을 밝혔다.
이처럼 전 세대에 걸쳐 인간적 교류와 소통, 사회적 연결을 원하는 니즈가 증대함에 따라 ‘동반자 산업(Companionship Industry)’도 부상하고 있다. 고객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점심을 같이 먹어 주거나 쇼핑에 동행하는 ‘친구 대여’ 서비스가 등장한 지 오래다. 사회적 관계 형성을 어려워하는 10대 자녀를 위해 부모가 신청하거나 친구가 많아 보이기 위해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는 고객도 있다. 우정을 돈으로 산다는 부정적 시선도 있지만, 고립감을 느끼는 젊은이들의 반응은 긍정적인 편이다.
대표적인 동반자 비즈니스 사례로 할리우드 배우 척 매카시가 론칭한 ‘피플 워커(People Walker)’를 들 수 있다. 피플 워커는 반려견을 산책시켜 주는 도그 워커처럼 사람을 산책시켜 주는 일을 한다. 처음에는 노인들이 주로 신청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의외로 30~40대의 신청이 많았다. 산책하는 동안 일상적이면서도 진솔한 이야기를 나눈 고객들이 자신의 경험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더 많은 사람이 서비스를 신청했다.
▲ 대표적 동반자 비즈니스의 사례인 ‘People Walker’ ? thepeoplewalker.com
뉴욕대 사회학과의 에릭 클리넨버그(Eric Klinenberg) 교수는 홀로 자유롭게 일하는 프리랜서가 많아지면서 전통적인 업무 환경과 동료 관계가 사라지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 시대에 외로움으로 인한 사회 문제가 심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서로 대화를 나누고 경험을 공유하는 대상에 대한 소비자의 니즈도 더욱 커질 것이란 의미다. 이러한 때에 기업은 소비자의 마음을 위로하고 동반자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마케팅 전략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