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달리는 것보다 멈춰야 할 때 잘 멈추는 것이 어렵고, 꽉꽉 채우기보다 헐렁하게 비우기가 어렵습니다. 앞으로 나서서 무엇을 하기보다 뒤에서 지켜보며 기다리는 것이 어렵고, 유창하게 말하기보다 귀기울여 듣기가 어렵습니다. HS애드 조성은 CD는 이 어려운 일들을 매일 합니다. 가끔은 쉽지 않지만, 끊임없이 스스로를 일깨우며 나아갑니다. CD열전 열한 번째 주인공 조성은 CD의 이야기를 통해 좋은 광고를 찾는 광고인의 치열한 모험에 함께 나서 봅니다.
‘11’을 좋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HS애드 조성은 CD는 자신이 열한 번째 CD열전의 주인공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쑥스럽지만 한편 기분이 좋았다고 전합니다.
“막상 인터뷰를 한다고 하니 제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 드릴 수 있을까 쑥스럽기도 하고 말씀 드릴만한 특별한 이야기가 없어서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11’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는 까닭에 열한 번째 인터뷰 대상자가 됐다는 사실이 기분 좋게 느껴졌어요. 저는 11을 보면 ‘한번 더’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더라고요. 새로운 시작인 것 같고, 10대에서는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좋고요. 1은 외로워 보이는데 1이 두 개면 덜 외로워 보이는 것 같아서 좋기도 합니다.”
숫자 11이 주는 새로운 시작의 설렘처럼, 조성은 CD 역시 마음 속에서 느껴지는 새로운 시작의 열망에 따라 광고인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10대 시절에는 미술을 전공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미술이 아니라 다른 것을 공부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대학에 진학해서는 사학을 전공했습니다. 평범한 인문학도였던 저는 대학교 3학년 방학 때 광고회사에서 인턴십을 하면서 광고라는 업에 눈뜨게 되었어요. 새롭고 놀랍고 즐거웠습니다. 광고는 저에게 ‘10’ 너머에도 새로운 시작과 더 많은 숫자들이 있다고 알려 주는 ‘11’ 같은 존재로 다가왔습니다.”
조성은 CD는 대학원을 졸업한 후 카피라이터가 되었습니다. 광고를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매혹과 즐거움이 일이 되자 다이나믹한 일상이 펼쳐졌습니다.
“카피라이터 4년차쯤 되었을 때입니다. 겉으로는 ‘잘 한다’ 칭찬을 듣고 있었지만 제 안에선 갈등과 방황이 많았지요. 그 당시 저의 사수께서 저에게 조언을 해 주셨어요. ‘카피라이터는 쓰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야.’ 혼자 생각하고 혼자 써내려 가느라 답답함을 많이 느낄 때였는데, 그 말씀이 아주 큰 울림으로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쓰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라… 타인의 생각들을 듣고, 또 듣고, 이해하고, 소화해서 빚어내는 한 줄의 카피, 그게 바로 통찰력이고, 필력이 되겠구나 라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는 조성은 CD.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생각을 들으면서 제 그릇이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많은 광고인들이 뭔가에 막혔을 때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많이 합니다. 저의 초심은 이것입니다. ‘혼자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더 들어보자! 그래야 자신 안에 더 많은 것을 담아낼 수 있다!’”
마음이 맞닿는 자리, 서로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광고
조성은 CD는 그 동안 만들어 온 다수의 광고 중 LG유플러스 IoT 캠페인을 가장 애착이 가는 프로젝트로 뽑았습니다.
“사실, 모든 프로젝트가 다 소중하고 잊을 수 없지요. 우여곡절 없는 프로젝트란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LG유플러스 IoT 캠페인은 광고주와 소비자의 반응도 좋았고 여러 광고제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되며 ‘그랜드 슬램’ 기록을 세우기도 한 까닭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입니다.”
▲조성은 CD팀이 제작한 LG유플러스 IoT 캠페인 비하인드 스토리 (바로가기)
2017년 진행된 LG유플러스 IoT 캠페인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며 유튜브 댓글이 이어지고 페이스북 등 SNS에서 입소문을 타고 널리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나이든 부모님이 걱정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 고민해 본 상황을 IoT의 유용성과 결합해 자연스러운 공감을 이끌어 냈습니다.
▲LG유플러스 '자장가의 비밀' 편 (출처: LG유플러스 공식 유튜브 채널)
“LG유플러스 IoT 캠페인을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이렇게 좋습니다, 이런 장점이 있으니 사용해 보십시오’라고 제품의 입장에서 말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실제 사용자들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광고를 만들면서 ‘소비자들이 닥친 상황에서 IoT가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은 수없이 많지만, 이번 캠페인에서 선택한 방법은 그것을 써 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감과 니즈,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것이라는 판단이 적중한 듯싶습니다.”
▲LG유플러스 ‘우리집IoT’ 2편 ‘아빠 방귀’ 편 (출처: LG유플러스 공식 유튜브 채널)
“저는 디테일을 굉장히 중요하게 봅니다. 대사의 토씨 하나, 인물의 표정 하나, 사운드 하나, 촬영 배경과 장소도 어떤 느낌의 어떤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것까지 정확히 챙기는 편이에요. 작은 포인트들을 놓치면 큰 그림이 망쳐집니다. 디테일을 꼼꼼히 챙길수록 큰 그림의 완성도는 더 높아집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작은 곳에서부터 비롯되니까요.”
▲LG유플러스 ‘우리집IoT’ 3편 ‘밖에 비와’ 편 (출처: LG유플러스 공식 유튜브 채널)
‘사실’의 완고함에 갇히지 말고 ‘해석’의 다름을 받아들이기
조성은 CD의 목에는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문장 ‘사실은 없고 해석만 있다 (There are no facts, but interpretations)’를 새긴 목걸이가 걸려 있습니다. 조 CD는 자신의 인생을 관통하는 화두로 니체의 이 말을 꼽았습니다.
“결국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도 누군가의 ‘해석’을 받아들인 게 아닐까요? 똑 같은 상황을 놓고도 각자의 입장에 따라 해석은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내가 좋은 광고를 만들고 있나’, ‘내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옳은 것인가’ 고민하고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없고 해석만 있다’는 니체의 말을 통해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광고인이 광고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의 ‘해석’일 뿐,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중을 만나 그들의 ‘해석’을 거쳤을 때 메시지는 비로소 폭발력을 갖는 것입니다.”
“‘팩트’라는 이름을 가진 절대적 메시지에 집착하지 않으니 보다 유연한 사고를 하게 됩니다. 상대방이 비판적 의견을 내놓아도 상처받거나 위축되지 않아요. 나를 비난하려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해석’이 그러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습니다. 더 많은 ‘해석’을 접할수록 나 자신의 ‘해석’에 갇히지 않고 생각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죠. 광고는 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유연성이 무엇보다 필요한 작업입니다.”
광고인에게 있어 가장 스트레스가 되는 순간 중 하나는 설득하기 어려운 클라이언트를 만났을 때입니다. 조성은 CD 역시 그런 경우 어려움을 겪곤 합니다.
“설득도 안 되고 타협도 어려울 때 벽을 마주한 것 같은 막막함도 느낍니다. 그렇지만 문제를 스트레스로 받아들이지 말고 상대방의 해석을 받아들이려 노력하면 또 다른 길이 보이더군요. 내가 준비한 해석만이 정답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상대방의 해석에 귀 기울여 보면 ‘어, 그것도 괜찮겠는데’라는 수긍의 지점이 생깁니다. 또한 이 과정을 통해 우리가 준비했던 디테일과 해석이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해석 속에 녹아 들게 됩니다. 그냥 버려지는 헛고생은 없는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면, 약간 방향을 틀어서라도 결국 다 쓰일 곳이 있는 거죠.”
사람, 사랑, 사색… 내가 광고를 하는 이유
“제가 광고 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짜’가 세 개이기 때문입니다.”
조성은 CD는 ‘사짜가 세 개’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하면서 빙그레 웃음지었습니다.
“첫 번째는 ‘사람’이 있어서입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 클라이언트, 저희들의 광고를 보고 저희 제품(브랜드)를 사용할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만나 사람을 향하는 일이 바로 광고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사랑’이 있어서지요. 저희가 광고를 만드는 제품, 혹은 브랜드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광고를 계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세 번째로 ‘사색’을 계속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광고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사색을 해야 합니다. 가끔은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이보다 더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사색을 거듭해요. 사색하는 것이 제 일이라서 참 좋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생각’을 팔 수 있는 몇 안되는 직업 중 하나가 광고인 아닐까 싶습니다. 그 일이 제 일이어서 행복하고요.”
조성은 CD가 언제나 고민하는 과제, 좋은 광고를 만드는 일. 조 CD는 요즘의 ‘숙제’를 털어 놓습니다.
“비단 요즘뿐 아니라 광고 일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항상 고민하는 숙제는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입니다. 요즘은 ‘어떻게 이야기하지 말 것인가’가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의 방법이 되기도 하지만요. 우리는 수많은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 ‘홍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뭘 해야겠다’ 보다는 ‘뭘 하지 말아야겠다’를 더 많이 고민해야 하는 세상이에요.”
조성은 CD가 고민하는 ‘어떻게’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명확함입니다.
“‘아’라고 말하면 ‘아’라고 들리는 광고가 좋은 광고라고 생각해요. ‘아’라고 말했는데 ‘어’라고 들리면 그건 잘못된 광고 아닐까요. 지나침으로 인해 ‘하우 투 세이(how to say)’가 ‘왓 투 세이(what to say)’를 가려 버려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클라이언트부터 후반 스태프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광고를 만드는 모든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 숙지하고 점검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토리텔러가 아니라 스토리 리스너가 되기를
조성은 CD는 후배 광고인들에게 몇 가지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광고인은 스토리텔러가 되기 전에 스토리 리스너(storylistener)가 되야 합니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에요. 수많은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 나만의 ‘해석’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은 통찰력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좋은 광고를 만들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한 상황을 ‘단절’시켜 보는 것은 생각을 확장하고 객관화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어떤 상황을 쪼개고 쪼개고 또 쪼개 보세요. 생각을 뚝뚝 끊어 보기도 하고 전혀 다른 방향에서도 바라보세요. 일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지 말고 계속해서 잘라내며 각각의 상황에 집중해 보면 전혀 다른 관점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자꾸만 맴도는 생각 속 아이디어가 고갈되었다고 느낄 때, 상황을 뚝 잘라 맥락의 바깥으로 내 던지는 것만으로도 아이디어가 리프레쉬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조성은 CD가 처음 광고계에 입문한 때로부터 약 18년이 지났습니다. 그 시간 동안 좋은 광고를 찾는 조 CD의 모험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카피라이터로 시작해 카피 리스너(listener)가 되고, 조금 더 성장해서 주니어 CD가 되면서는 카피라이팅 뿐 아니라 컨셉트 전체를 아우르는 컨셉트 라이터가 되었습니다. 그 과정 동안 조 CD의 힘이 되어 준 것은 ‘사짜 삼총사’, 그리고 함께 성장해 온 좋은 동료들이었습니다.
“CD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아니라 ‘크레이지 디시젼(crazy decision)’의 약자 아닐까요? 매일 상상치도 못했던 문제가 터지고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해 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해요. ‘미쳤다…’ 혼잣말을 할 때도 있죠. 미친 결정을 계속해서 하고, 그 일을 현실로 이루어 내고 마는 것. 그런 게 광고죠. 우리 회사에는 이런 미친 결단을 용기 있게 내릴 수 있고, 책임지고 이를 현실로 이루어 내는 헌신적인 13명의 CD와 그 팀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 회사를 빛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 자신이 그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이 참 자랑스럽습니다.”
조성은 CD가 계속 해 온 좋은 광고를 찾는 모험엔 정답도 없고 지도도 없습니다. 선의와 사랑을 갖고, 함께하는 사람들과 연대하여, 사색과 모색을 통해, 미친 결정을 과감히 내리면서 전진하는 것. 그것만이 퀘스트를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좋은 광고를 찾는 조 CD의 모험이 끝나지 않고 계속되기를 바라는 것은 조성은 CD나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라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