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Creative] 행동하는 코즈
진짜여야 한다. 코즈 마케팅을 하려면 진짜, 제대로 해야 한다.
좋은 생각 하나, 거룩한 명분 하나만으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어젠다를 세팅하는데 그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브랜드가 동시대에 던질 수 있는 유의미한 생각이 유의미한 행동으로 발현될 때,
하여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 때, 비로소 코즈 마케팅의 가치는 빛난다.
스타벅스의 ‘Race Together(모든 인종이 다 함께)’ 캠페인이 주는 교훈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2015년, 스타벅스는 바리스타가 직접 손님에게 건네줄 커피컵에 캐치프레이즈를 적고, 인종 차별에 대한 대화를 이끌도록 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스타벅스와 인종 차별이라는 화두 간의 연계성도 없을뿐더러 실제로 스타벅스에서 인종 화합을 위해 제대로 된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 마치 브랜드 호감도 상승을 목적으로 정치적으로 이용한 마케팅은 아닌지 의심을 낳아 결국 소비자들의 분노를 산 것이다. 당시 스타박스 이사회조차도 뭔가 하긴 해야 하는데, 이게 맞는지는 확신이 없었던 캠페인이었다고 한다.
그보다 훨씬 전 썬칩이 만든 친환경 포장재는 어떤가. 자연 분해되는 친환경 소재의 포장재는 그 취지는 좋았으나 너무 시끄럽게 바스락거리는 바람에 비난과 조롱만 당하고, 제품을 회수하는 것은 물론 이전의 포장재로 되돌아간 해프닝으로 마감하게 되었다.
실제 포장재 소음은 뉴욕 지하철 데시벨보다 커서 아이들을 무섭게 할 수준이라는 이야기가 돌았고 ‘Sorry, But I can’t hear you over this Sun Chips bag(미안한데, 썬칩 봉지 때문에 안 들려)’라는 페이스북 페이지까지 만들어졌다.‘친환경’이라는 대의만 좇다가 실제로 아이디어가 어떻게 구현이 되는지, 사용 상 문제는 없는지 등 면밀한 검증을 간과한 대가였다.
발레는 고전적 예술. 나와는 거리가 먼. 조금은 지루하고, 조금은 고루한 예술. 그 발레가 대중에게 다가가는 Joburg Ballet단의 화법은 신선한 충격이다. 동시대의 가장 뜨거운 화두를 발레의 언어로 조망하여 사람들이 가장 즐겨보는 짧은 동영상의 형태로 빚어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무대인 유튜브에 공개한 것이다. 주제는 대략 이러하다. 케이프타운의 물 부족 뉴스가 나온 다음 날에 물 부족의 심각성을 담은 발레 영상을 보여주었고, 미투 캠페인이 연이어 보도될 때 이를 주제로 한 발레 영상을 공개했다. 영화 <블랙팬서>의 개봉 시점에는 ‘와칸다여, 영원하라’는 주제를 담은 발레 영상을 게시하는가 하면, 총기 규제와 동성애와 같은 이슈를 다루기도 했다. 8편의 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되고, 결과는 놀라웠다. 발레에 대한 고정 관념을 깬 것은 물론 청중의 폭을 넓혔고 실질적인 공연 매진으로도 이어졌다.
가장 기본적인 의사소통조차 불편한 환자들이 있다. 눈동자의 움직임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하는 고가의 첨단 장비들이 있긴 하지만 모두가 쓸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보다 경제적이고 보편적인 소통 방법은 없는 걸까? 눈을 감거나, 깜빡이거나, 윙크를 하거나, 위나 아래, 좌우로 눈동자를 움직이는 조합을 통해 메시지를 구성해본다면? 그렇게 최초의 눈 언어 가이드북 <Blink to Speak>가 만들어졌다. 대단한 기술도, 엄청난 비용도 들지 않는 지극히 간단한 이 시도가 최초라는 것이 놀랍다. 가이드북은 무료로 배포되고 교육되어 순식간에 세상에 퍼졌다. 그 결과, 루게릭병이나 뉴런 장애와 같은 중증 질병을 가진 환자들도 ‘그렇다’, ‘아니다’와 같은 기본적 표현부터 ‘상태가 좋지 않다’, ‘의사를 불러달라’ 등 절대적으로 중요한 의사 표현을 제때 할 수 있게 되었다. 환자는 물론 가족과 의사들에게도 하나의 희망이 된 것이다.
양성평등이라는 주제가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시대이지만 이상한 편견의 사각지대가 있다. 여성의 생리혈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그것이다. 숨겨야 하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겨진 생리혈. 하여 생리대 광고에서조차 생리혈은 푸른 잉크로 대체되어 표현되어 왔다. 생리라는 건 건강한 여성이 겪는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인데, 그렇다면 생리혈 또한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게 아닌가? 이 당연한 물음에서 시작한 캠페인이 바로 <Blood normal>이다. 붉은 생리혈이 광고에 등장하는 것은 물론 생리혈이 아름다운 자수로 표현된 속옷부터 생리대 모양의 에어 매트까지 세상에 당당히 등장하게 된 것이다. 흡수성이 어떠하다, 착용감이 어떠하다는 제품 속성이 아니라 생리혈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라는 담론을 다룬 결과,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 및 선호도는 물론 실질적인 매출 또한 증가했다.
2017년, 동성 결혼에 대한 찬반 투표를 앞둔 호주. 경기장 안이든 밖이든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신념을 펼쳐온 나이키는 다시 한번 행동에 나설 것을 결심한다. 브랜드의 상징인 로고를 동성 결혼에 찬성하는 투표의 심벌로 활용하여 누구나 평등하다는 믿음에 동의하는 사람들에게 투할 것을 독려한 것이다. 캠페인은 유명 셀럽을 통한 발언은 물론 대형 매장의 간판부터 신발과 같은 제품과 쇼핑백, 심지어 작은 영수증에 이르기까지 대대적으로 펼쳐졌다. 동성 결혼에 대한 투표는 과반수가 넘는 찬성으로 이어졌고, 법안은 통과되었다.
또 하나의 법안 개정 사례가 있다. 놀랍게도, 유럽인들은 97%의 시리얼, 과일, 채소의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유기농으로 재배되고 맛도 영양도 우수한 농작물인데도 법적으로 상당수가 승인되지 않은 작물이기 때문이다. 까르푸의 <Black Supermarket> 캠페인은 공인된 품종만 재배되는 환경, 더 정확히 말해 정치적 로비에 의해 통과된 품종만 유통되는 환경에 반기를 든 용감한 캠페인이다.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나아가 법안 개정을 위해 공공연히 블랙마켓을 열기로 했다. 승인되지 않은, 말하자면 불법 작물을 매장 내에서 판매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고 소셜 미디어는 물론 언론 또한 앞다투어 보도했으며 법안 개정을 촉구하는 서명이 모여 결국 법안 개정까지 해냈다.
만약 좋은 생각이 하나의 씨앗이라면, 성공한 캠페인은 그 씨앗 하나 움켜쥔 것에 머물지 않고
부지런히 가꾸고 키워 열매를 맺은 결과물일지도 모르겠다.
그 열매를 맺기까지 꽃길만 있었겠는가. 수많은 반대와 위험은 디폴트였을 터.
어떻게 이런 걸 만들어냈지 궁금해하는 것에도 이력이 났다.
노트북 파일 속에 잠자고 있는 괜찮은 생각들을 깨워, 농부가 그러하듯 부지런히 몸으로 굴려볼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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