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현금은 어디로 갔을까? ‘현금 없는 사회’의 대두
HS Ad 기사입력 2019.03.28 12:00 조회 5976
  

전 세계의 현금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 믿어지시나요? 2018년 스웨덴 전체 경제에서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 노르웨이는 전체 인구의 6%만이 일상생활에서 현금을 사용하며, 은행 대부분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니니 놀라지 마세요! 이건 세상이 ‘현금 없는 사회’로 향하는 과정에 불과하니까요.  


사회의 효율적 측면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는 사회의 정보망이 발전하고 각종 금융기관의 업무가 전산화되면서 실질적인 현금의 이동이 사라지게 된 사회를 말합니다. 현금 없는 사회에서는 모든 결제가 현금이 아닌 다른 수단으로 대체되기 때문에 지폐나 동전이 필요하지 않게 됩니다. 지난 2016년 1월 1일 한국은행이 ‘동전 없는 사회 도입에 관한 연구 강화’를 발표하면서, 한국은 현금 없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현금 없는 사회는 우리에게 어떤 장점으로 다가올까요?  


 
 
 ▲한국이 한 해 새 동전을 찍어내는 데 드는 비용은 539억. 현금 없는 사회로 거듭나면 이러한 비용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지폐 환수율(기간 중 중앙은행에 돌아온 화폐량/중앙은행이 시중에 공급한 화폐량)은 평균 60%, 동전은 10% 내외입니다. 2017년에 없어진 동전 약 6억 개를 새로 제작하는 데 539억 원을 썼다고 하는데요. 현금 없는 사회에서는 지폐와 동전을 새로 제작하는 비용을 상당히 아낄 수 있습니다. 동전을 사용하면서 겪던 불편함이 사라진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또한, 현금 없는 사회는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합니다. 모든 금융거래가 전산화된 상황에서 현금이 사라진다면, 자금이 오가는 모든 과정이 투명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로 인해 주로 현금으로 움직이던 지하경제가 축소되고, 체납자나 조세 회피자에게 세금을 걷기에도 유리해집니다  
  

'현금 없는 사회'를 앞둔 한국 경제  

한국은행은 편의점과 협약을 맺어 거스름돈을 포인트 등으로 넣어주는 등 ‘동전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그 효과는 아직 미미합니다. 한편, 민간 측면에서도 현금 없는 사회를 향한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2016년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국내 현금 사용률은 이미 50.6%인 신용카드의 절반인 26%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 23% 남짓한 부분도 체크카드와 선불카드, 계좌이체 등으로 현금과는 거리가 멀었죠. 2018년에는 현금이 가장 많이 유통되는 소매점인 편의점에서조차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결제 비중이 55%를 넘기며 점점 현금 사용량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카카오페이를 위시한 간편결제 역시 영역을 계속 넓혀가고 있습니다 (출처: 카카오페이 공식 홈페이지) 
  
‘카카오페이’로 대표되는 간편결제 역시 서서히 자리 잡는 추세입니다. 지갑 대신 스마트폰 QR코드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간편결제 서비스는 빠르게 성장하면서 2016년 11조 7810억 원이던 거래액이 1년 만에 3배 이상 커진 39조 9900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이 정도의 속도라면 다른 나라는 ‘현금 없는 사회’에 얼마나 다가갔을까요? 
  

QR코드로 만들어가는 중국의 無錢生活(No Money Life)  
 
가장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이는 나라는 중국입니다. 중국에서는 한 달간 한 번도 현금을 쓰지 않고 위챗 페이(중국의 대표 간편결제 플랫폼)로만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 간편결제가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중국 거지는 동냥도 QR코드로 한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지요. 중국은 보급률이 낮은 데다 결제 인프라를 새로 구축해야 하는 신용카드를 아예 건너뛰고, 이미 보편화된 스마트폰과 QR코드를 활용한 모바일 간편결제에 ‘올인’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식당이나 상점은 물론, 간이 매점 등 어디서나 QR코드만 스캔해 손쉽게 결제할 수 있습니다 
 
간편한 사용 방식과 위조지폐에 대한 불안감이 만나 간편결제는 손쉽게 중국 사람들의 생활에 스며들었습니다. 2014년 고작 4%에 지나지 않던 중국의 모바일 간편결제 비율은 극적으로 늘어 2018년 기준 63%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중국 건물에 입주한 상점이나 식당뿐만 아니라 길거리 노점, 심지어 자판기에도 모두 QR코드가 탑재되어 스마트폰 앱 스캔으로 손쉽게 결제를 마칠 수 있습니다. 낮에는 일반 편의점이지만 밤엔 QR코드를 인증해 입장한 후 계산까지 마칠 수 있는 무인 편의점도 지난 2월 문을 열었다고 하네요.  
  

 
 
▲중국 주차장은 별도의 정산소 없이 QR코드 스캔만으로 요금이 자동 결제됩니다 
 
주차 요금 역시 정산기나 별도의 인력 없이 벽에 붙어있는 QR 코드로 결제가 가능합니다. 공유 자전거를 대여하거나 택시,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모바일에 익숙하지 않은 장노년층이나, 외진 지역에서는 아직 현금 결제 비율이 높은데요. 중국의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가 매년 국영방송 CCTV와 제휴해 6억 위안(약 1017억 원)에 달하는 중국의 세뱃돈 ‘홍바오’를 시청자에게 나눠주는 이벤트를 벌이는 등 간편결제 서비스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현금 없는 중국’의 현실화도 머지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털어가는 현금조차 사라진 스웨덴  

 
 
 ▲은행조차 보유 현금이 없는 스웨덴에서 은행강도는 사라져가는 직업입니다 
 
2013년 4월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의 한 은행에서는 강도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코미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생겼습니다. 이유는 바로 은행에 현금이 없었기 때문인데요. 17세기 유럽에서 처음 지폐를 발행했던 국가 스웨덴은 이제 전체 결제에서 현금 비중이 1%에 불과해 거의 완벽한 현금 없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스웨덴 역시 중국처럼 지갑 없는 생활이 가능합니다. 이미 2007년부터 스톡홀름에서는 버스와 지하철 요금을 현금으로 지불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대다수 노점상과 상점은 지불 수단을 카드로 한정했으며, 고객이 현금을 내밀어도 거절할 수 있는 권리가 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교회 등 종교단체 역시 카드 결제 등으로 헌금을 받고 있어요. 스웨덴의 많은 상점은 아예 '현금 없는 가게(Kontantfri butik)’라고 써놓은 안내문을 붙이고 있습니다. 2012년 출시된 모바일 송금 서비스 ‘스위시’는 이러한 상황을 가속화했습니다.
  

 
  ▲스웨덴 은행의 송금 플랫폼 '스위시' 홍보 영상 (출처: 'getswish' 공식 유튜브 채널)    
  
스웨덴 민간 은행들이 공동으로 개발한 스위시는 휴대전화 번호와 은행 ID만 있으면 수수료 없이 돈을 주고받을 수 있는 통합 송금 서비스입니다. 스위시는 출시 후 몇 년 만에 사용률이 급격히 늘어 2018년에는 1개월 동안 스위시를 이용한 적이 있다는 응답이 62%를 넘어섰고, 스웨덴의 현금 결제 비율도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이제 스웨덴 은행은 한 달 결제 금액을 제한한 어린이 대상 직불카드 등의 사용도 권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스웨덴 정부는 2030년이면 아무도 스웨덴에서 현금을 쓰지 않게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전자화페 사용을 적극 권장하는 나라들 

 
  ▲은행 시스템이 발달하지 않은 케냐에서는 휴대폰 기반의 전자화폐 시스템 '음-페사'로 현금 없는 사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출처: Rosenfeld Media @Creative Commons by 2.0) 
 
현재 가장 완벽에 가까운 현금 없는 사회는 의외로 아프리카의 케냐입니다. 애초에 금융 시스템이 낙후되어 대도시 말고는 은행 자체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인 케냐는 전 국민의 90%가 이용하는 휴대전화를 활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경우입니다. 이미 케냐의 휴대폰 기반 전자화폐 시스템 '음-페사(M-Pesa)’는 성인의 79% 이상이 사용하고 있으며 거래액은 GDP의 50%가 넘는다고 합니다.  

1980년대 말, 버블경제 붕괴로 ‘빚’에 대한 사회적 공포가 생긴 일본은 QR코드는커녕 신용카드 결제율도 낮은 편입니다. 작년에도 일본의 현금 결제율은 80%를 넘겼다고 하는데요. 일본 정부는 2020 도쿄 올림픽에 대비해 ‘현금 없는 사회’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신용카드 수수료를 내리고 카드 단말기를 보급하는 동시에 간편결제 페이백 등을 통해 2025년까지 무현금 결제 비율을 4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공표하기도 했죠. 
 

현금이 사라진 사회의 그림자  

전 세계가 현금 없는 사회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은행 계좌나 신용카드 등을 개설할 수 없는 사람은 애초에 현금 없는 사회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모바일 간편결제는 IT 기기에 익숙지 않은 중장년층이나 노년층에게 아예 접근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현금 없는 사회에 네트워크 장애가 생긴다면, 세상은 순간적인 ‘석기시대’가 됩니다 
 
우리는 지난해 KT 아현지사 화재로 통신이 마비되면서 카드 결제 등이 모두 먹통이 된 상황을 지켜봤습니다. 이처럼 재난이나 비상상황으로 인한 통신 장애가 생길 경우 현금 없는 사회는 ‘석기시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현금 없는 사회’ 역시 다양한 상황에 대한 준비와 발전을 지속해 나가는 과정으로 보입니다.   

‘월급은 통장을 스쳐 가는 사이버머니’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하던 것이 어느덧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노란 월급봉투 대신 은행 계좌로 월급을 받게 되면서부터 이미 ‘현금 없는 사회’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흐름 속에서 더욱 효율적이고 안전한 금융이 자리잡을 수 있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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