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감정 교류
그동안 테크놀로지는 인간을 위해 힘들고 번거로운 일을 대신해 주는 역할을 맡았다. 이제는 감정 교류까지 가능해질 전망이다. 몇 년 전 토요타자동차가 개발한 로봇 ‘키로보(KIROBO)’가 대표적 사례다. 대화가 가능한 이 로봇은 우주정거장에서 장기간 체류하며 심리적 장애를 느끼는 우주인들의 정신 건강을 지키기 위해 개발됐다.
토요타자동차는 키로보를 더 작게 줄여 ‘키로보 미니’도 출시했다. 사과만 한 크기의 키로보 미니는 사람의 얼굴을 인식해 고개를 돌려가며 대화를 나누는 가정용 펫 로봇이다. 특히 키로보 미니를 카시트에 앉혀 자동차에 태우면 운전자의 감정 상태가 좋지 않을 때 운전 모드를 자동으로 전환시킬 줄도 안다. 급정지 등 주행 중 여러 상황을 인식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 사람과 감정 교류가 가능한 키로보 미니 ? toyota-europe.com
그런가 하면 기아차는 얼마 전 열린 ‘EV 트렌드 코리아 2019’에서 MIT 미디어랩 산하 ‘Affective Computing Group’과 협업으로 만든 ‘R.E.A.D. 시스템’을 선보였다. 미래 모빌리티 기술이 집약된 이 시스템은 모니터 앞에 앉으면 정면에 있는 카메라가 운전자의 감정을 분석하기 위해 촬영을 시작하며, 감정 상태를 분석한 후에는 알려주는 것뿐 아니라 기분을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한 솔루션도 제공한다. 또한 운전자의 생체 신호를 인식해 운전자의 감정과 상황에 맞게 음악, 온도, 조명, 진동, 향기 등을 실시간으로 최적화시켜 준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서비스
여성들에게 화장품 매장은 별천지다. 하지만 제품을 고를 때마다 어떤 제품이 내게 어울리는지 몰라 망설여진다. 자신이 좋아하는 색깔을 고를 순 있지만, 자신의 피부톤에 맞는 제품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소비자들을 위한 ‘큐레이션 서비스’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에뛰드하우스의 ‘컬러 팩토리’는 자신의 본래 피부색과 조화를 이루면서 얼굴을 생기 있게 보이게하는 퍼스널 컬러를 진단해 준다. 컬러 아티스트가 카메라 렌즈가 달린 측색기를 피부에 대고 퍼스널 컬러를 찾아준 후 120가지 색상 중 소비자에게 맞는 립스틱 색깔을 만들어 주는 ‘마이 퍼스널 립스틱 코스’와 파운데이션 컬러까지 제안해 주는 ‘마이 퍼스널 립&페이스 코스’ 등이 있다.
▲ 에뛰드하우스 컬러팩토리 ⓒ 에뛰드하우스
여성에게 피부의 상태를 읽어 그에 따른 최적의 컬러를 골라 주는 서비스가 있다면, 달리기를 좋아하는 남성에게도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서비스가 있다. 아디다스의 ‘런 지니(Run Genie)’는 센서가 달린 운동화를 신고 러닝머신을 달리면 발 모양, 발을 딛는 방법, 속도 등 주법을 분석해 가장 적절한 러닝화를 찾아준다. 또 아식스의 ‘풋 아이디’도 카메라와 레이저 프로젝트를 통해 발 모양을 정확히 읽어 최적화된 신발을 추천해 준다. 이들 서비스는 웨어러블 센서를 활용하기 때문에 정확도와 진단 속도가 향상되고 있다.
▲ 아디다스 런 지니 서비스
취향 저격, 얼마든지
화장품 매장만큼이나 소비자를 결정 장애에 시달리게 하는 공간이 있다. 수천, 수만 권의 도서가 진열된 서점에 들어서면, 많은 사람들의 눈빛은 흔들린다. 당최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알 수 없어서다. 모바일 도서 앱 ‘플라이북’은 자신에게 맞는 책을 추천받을 수 있고, 구매까지 가능한 애플리케이션이다. 부차적으로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기록을 남길 수도 있고, 커뮤니티를 만들어 다른 사람들과 독서에 대한 의견을 나눌 수도 있다.
특히 이 앱은 이별을 했는지, 힘든 일은 없는지, 떠나고 싶은지 등 여러 질문을 던져 사용자의 감정 상태를 체크한 뒤 도서를 추천한다. 아울러 ‘봄날에 읽기 좋은 책’, ‘책과 함께하면 좋은 영화’ 등 사용자의 감성에 접근하는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된다.
▲ 도서 앱 플라이북
내 마을을 읽어 줘
인공지능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많은 서비스들이 ‘맞춤형’을 들고 나왔다. 지금 상황에서 필요한 정보들, 원하는 기능들을 꺼내 주는 이른바 ‘마음을 읽어 주는 서비스’들이다.
정말 컴퓨터가, 인터넷이 내 마음을 귀신처럼 읽는 것일까? 그렇다고 할 수도, 또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조금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이를 판단하는 것은 받아들이는 이용자의 마음에 달려 있다. 맞춤 서비스들은 마음을 읽는 감성이 아니라 데이터를 읽는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서비스들을 대하면서 ‘감성’을 느끼는 것일까? 아마도 그 정확성 때문일 것이다. 마음에 흡족한 선택지를 쏙 내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가듯, 서비스 역시 나를 잘 이해한다는 공감대가 눈에 보이지 않는 만족도를 만들어 내기 마련이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선택해야 할 것은 더 늘어나고 있다. 원하는 것을 정확히 찾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실패나 잘못된 판단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가 올바른 선택을 대신 해 주길 바라는지 모르겠다.
블로그 검색 없이는 점심 메뉴 하나 고르기도 어려운 세상. 점차 사소한 판단들은 기계에 맡겨지고 있고, 그 결과는 점점 더 만족스러워진다. 앞으로는 중요한 업무의 판단마저 데이터와 인공지능의 힘을 빌려 판단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아마 이것이 IT 기업들이 이야기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핵심일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람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것은 감성, 그리고 공감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