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에서 혁신으로
리빙 랩 마을
“와!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어, 왜 몰랐지?”, “분위기가 너무 달라. 나도 이곳에 입주하고 싶다”, “우리도 여기서 프로그램을 공유하면 안 될까요?” 처음 온 사 람이면 거의 예외 없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곳이 은평구 불광역 사거리에 위치 한 서울혁신파크다. 조선시대에는 북쪽으로 통하는 한양의 관문이었으며 뒤 로는 웅장한 북한산을 두고 있다. 기존에 있던 질병관리본부가 오송으로 이전 하면서 비게 된 대규모 공간을 2015년 전후해서 바꾼 공간이다. 대지는 산을 포함해 3만 평. 초기에는 청년허브, 사회적 경제 지원센터가 이주했고 이어서 서울혁신센터가 입주했다. 서울혁신센터가 주로 관리하는 미래청과 상상청 건물 등에는 130개 회사(단체)가 입주해 있고 청년허브와 사회적 경제 지원 센터 등에는 120개사. 그래서 파크 내에는 250개의 크고 작은 단체가 입주 해서 사회혁신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 전국에 산재한 창조경제혁신센터나 스 타트업 지원 센터와는 달라서 이곳은 사회혁신을 미션으로 하는 기관과 그들 을 문화, 기술적으로 연결하는 단체들이 주로 입주해 있다. 이익보다는 미션 베이스 공간이다.
일단 미래청 1층에 들어서는 순간 그 다른 아우라에 놀라게 된다. 필자도 처 38 음에는 그랬다. 필자의 지인 중 하나는 자기가 미국 에어비앤비 본사에서 본 그 아우라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유롭고 직관적이며 젊고 개방적이다. 여기 서 양복 입은 사람, 1회용을 버젓이 쓰는 사람들은 비난의 눈을 피할 수 없다. 미래청, 상상청을 중심으로 청년청, 예술청이 있고 맛동, 제작동, 목공동, 비 전화공방(非電化工房- 전기를 쓰지 않는 삶을 실험하는 방), 공유동, 연결 동들이 이어져 단체나 시민들이 예약하면 이용할 수 있다. 활용 가능한 옥상 도 8개가 있다. 이곳은 요즘 도시 공유와 재생, 지속가능에 있어서 화두인 ‘리 빙 랩(Living Lab)’을 실천하기 위한 공간에 가깝다. 리빙랩은 미국 메사추세 츠 공과대학교(MIT)에서 처음으로 제시한 개념으로 ‘우리 마을 실험실’, ‘일상 생활 실험실’ 등으로 해석되며, 사용자가 직접 나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사 용자 참여형 혁신 공간’을 말한다. MIT는 2004년 특정 아파트를 대상으로 해 당 아파트 거주민 행동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플레이스 랩(PlaceLab)’이 란 최초의 리빙랩 프로젝트를 시연한 바 있고 특히 유럽, 일본 등에서 활발하 다. 리빙랩이 더 확장되면 팹시티(Fab City)가 된다. 팹시티는 자원을 먹어치 우기만 하는 소비형 도시를 지양하고 시민이 주도해 자체 생산력을 50%이상 갖춘 도시를 뜻한다.
‘앎. 꿈. 함’의 혁신 메카
이제 입주단체들을 보자. 이곳에는 아주 다양한 입주단체들이 있는데 대안 에너지, 마을 공동체 운동, 빅이슈 코리아, 글로벌 워킹그룹, 팹랩 등부터 옥 상을 마당처럼 재활용하자는 열린 옥상, 도시에서 익스트림한 놀이를 추구하 는 파쿠르, 건물과 도시 공간을 재디자인하는 도심 설계, 아이들의 건강한 성 장을 추구하는 노는 엄마(보드 게임)와 착한 엄마, 마을 재생, 좋은 일을 하는 청소년 진로 탐색 허브 크리킨디, 비건 카페, 전기를 쓰지 않는 비전화 카페, 수목관리와 나무 놀이를 하는 아보리스트(Arborist. 높이 15m 이상 교목 에 올라가 병해충 관리, 위험 수목 제거, 종자 채취 등을 하는 수목관리 전문 가. 최근 산림레포츠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개발되면서 활동 범위 확대) 단체 등 일반 직장인에게는 낯선 단체들이 입주해 있다. 이들이 가깝게는 은평구와 서울시 그리고 넓게는 전국의 유관단체, 마을, 글로벌과 연계해서 활동 중이 다. 이곳은 어떻게 보면 혁신파크라기보다는 내가 그렇게 꿈꾸던 전문가 마을 이다. 상상이 현실과 만나는 수천가지 이야기가 생겨나는 마을!
필자는 센터장으로서 이 마을의 실천 철학을 ‘앎. 꿈. 함’으로 정했다. 건강 한 앎, 좀 더 좋게 살려는 꿈 그리고 그를 구체적으로 실험하고 공유 전파하 는 마을!
필자는 센터장으로서 이 마을의 실천 철학을 ‘앎. 꿈. 함’으로 정했다. 건강 한 앎, 좀 더 좋게 살려는 꿈 그리고 그를 구체적으로 실험하고 공유 전파하 는 마을!
둘, 꿈은 좋지만 네트워크와 자본이 부족한 점이다. 네트워크와 자본, 이 둘 을 가진 주체가 바로 기업인데 정작 기업들이 잘 모르고 있다. 서울혁신센터 에는 협업팀이라는 독특한 부서가 있다. 파크 내부의 협업도 지원하지만 나아가서는 서울시, 기업, 글로벌 단체 도시와 협업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꿈은 큰데 아직 갈 길이 멀다.
셋. 문화예술과의 연결이 약하다는 것이다. 예술청도 있고 입주단체 중에 는 다양한 문화를 지향하는 단체도 있지만 수도 작고 활동도 약하다. 예술 장르도 제한적이다. 그래서 혁신 파크 내부에 연극, 음악, 미술, 퍼포먼스, 비주얼, 미디어 아트 등의 예술이 잘 흐르지 않는다. 공간에 예술이 흐르 지 않으면 지난 호에서 예로 들었던 아리안 안탈 교수의 예술적 개입, 지오 바니 쉬우마 교수의 ‘예술기반 이니셔티브’가 통하지 않는다. 그러면 재미가 없고 궁극적 목표인 변형(Transformation)이 일어나지 않는다. 쉬우마 교 수가 말하는 예술이 조직에 개입할 근거가 되는 조직의 동력 요소 6E 중 감 정, 에너지, 환경, 참여 부분을 다시 상기해 보라. 문화예술이 빠지면 혁신 의 건조한 이념만이 지배하고 꿈, 감성 에너지가 흐르지 않게 된다. 앎 꿈 함 의 중간고리인 꿈은 이성보다는 피를 뜨겁게 만드는 예술기질과 실험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르네상스를 촉발하고 만든 것은 위대한 예술가들 이었다. 뉴욕, 파리 등이 쿨한 젊은이들이 몰리는 도시가 된 것도 예술의 존 재 때문이다.
이 세 가지 결핍이 아마도 서울시가 필자를 센터장으로 선택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자본이 주도하던 한국에도 라이프스타일, 기업의 질, 마을 공동체 부문에 사 회혁신의 불은 당겨졌다. 그러나 혁신, 그것이 강박관념이거나 끈끈한 구속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부와 성공에 끈끈해지면 결국 영화 <기생충> 말로처럼 되 는 것과 같다. 편하고 길고 즐겁게 가야 한다. 그래서 사회혁신은 문화 예술의 느슨한 연결이 필요하고 기업과의 느슨한 연결이 필요하다. 그것은 거꾸로 기 업의 변화에도 적용되는 주문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서울혁신파크로 의 느슨한 방문을 권한다. 꽤 새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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