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과 사교의 요람, 살롱
CHEIL WORLDWIDE 기사입력 2019.10.08 12:00 조회 5039
취미와 취향을 공통분모로 하는 ‘소셜 살롱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각종 커뮤니티가 조직되고, 출판사의 북클럽이나 독립서점을 거점으로 하는 살롱도 인기다. 살롱 문화는 언제 어떻게 생성됐으며, 어떤 변천 과정을 거쳐온 것일까? 
 
지적인 사교 모임 

‘응접실’이란 뜻의 프랑스어 ‘살롱(Salon)’은 17~19세기 프랑스 상류층에서 유행했던 사교 모임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이 단어가 다른 의미로 사용됐다. 상류층 저택의 화려한 응접실은 음침한 지하의 룸살롱으로, 모임의 주최자였던 마담(Madame)은 유흥업소 여주인을 지칭하는 말로 변질됐다. 

원래 살롱 문화는 상류층 귀족 부인들이 문인, 예술가 등 문화계 인사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면서 작품 낭독과 자유 토론을 일삼았던 지적 탐닉과 예술 향유의 문화였다. 한마디로 세련된 취미에 우아한 말씨 등 지성과 재치를 두루 갖춘 지성인들의 장이었다. 그래서 신분이나 출신 계층을 크게 따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살롱 문화는 여성을 주축으로 신분보다 재능과 자유를 추구한 정신이 만들어낸 문화였다. 테오필 고티에나 알프레드 드 뮈세 같은 시인들, 그리고 스탕달이나 발자크 같은 소설가들도 귀부인들의 살롱에 드나들었다. 

그렇게 뿌리내린 살롱을 중심으로 한 사교 문화는 19세기에 접어들어 아카데미와 극장, 갤러리, 백화점 등으로 공간이 확장된다. 다양한 공간으로 소셜 살롱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최근 우리의 추세와 비슷한 경향이 그 당시에 먼저 이뤄졌던 셈이다. 

문화 공간이었던 다방  

살롱이란 물리적 공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이후였다.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거리의 카페가 등장하면서 굳이 귀족이나 부잣집의 응접실에 모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당시 파리의 레 듀 마고(Les Deux Magots) 같은 카페엔 생텍쥐페리, 헤밍웨이, 사르트르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작가, 화가 등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대거 모여들었다. 1880년 무렵 파리에만 약 4만 5,000개의 카페가 있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카페 하면 프랑스를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유럽 최초의 카페는 1652년 런던에 문을 연 ‘파스카 로제(Pasqua Rosée)’로 알려져 있다. 홍차가 득세하기 전인 18세기 전까지 영국식 카페, 즉 ‘커피 하우스’는 대영제국을 지배했었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음주를 즐겼던 영국인들이 술 대신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덕분에 카페가 선술집의 수를 능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카페가 신문과 책을 읽고 정치 토론도 벌이던 담론의 공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카페 문화는 우리의 초기 다방에서도 발견된다. 시인 이상(李箱)이 종로 1가에 차린 ‘제비’나 극작가 유치진이 소공동에 문을 연 ‘프라타나’ 등은 예술가와 지성인들이 교류했던 장소였다는 점에서 파리나 런던의 풍경과 흡사다. 화가 이순석이 1931년 소공동 조선호텔 부근에 개업한 ‘낙랑파라’ 역시 당시 경성의 모던 보이들이 자주 찾던 아지트였다. 이런 다방들은 단지 사교 장소였던 것뿐 아니라 재즈를 들을 수 있는 음악 감상실 역할도 했으며 때로는 미술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취향 중심의 커뮤니티 문화  

최근 오프라인에서 취미와 취향을 중심으로 모이는 커뮤니티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17~19세기 유럽에서 유행했던 살롱 문화의 부활로 평가된다. 뜻이 맞는 귀족과 예술가와 지성인들이 함께 어울려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눴던 살롱 문화가 취향 공유와 지적 사교를 위한 커뮤니티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즌제 멤버십 형태로 운영되는 소셜살롱 문토는 음악, 글쓰기, 요리?미식 등 주제를 발제한 리더를 중심으로 모임을 갖는데, 멤버들은 서로의 이름에 ‘님’을 붙여 호칭한다. 신분과 지위에 관계 없이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관계를 맺었던 살롱 문화와 오버랩되는 대목이다. 
 
그런가 하면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취향관은 아예 2층 양옥집을 개조해 클래식한 복고풍 분위기로 살롱(응접실) 분위기를 연출했다. 또한 과거 살롱의 주최자가 ‘마담’이었던 것처럼 이곳에선 모임을 이끌어가는 사람을 ‘호스트’라고 부른다. 
 
이처럼 최근 살롱 문화를 적극적으로 표방하는 플랫폼들이 늘고 많은 사람이 여기에 동참하는 것은 그 옛날 유럽의 살롱 문화가 지녔던 독특한 매력이 시대를 건너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일 것이다.

10월호 ·  매거진 ·  사교 ·  살롱문화 ·  소셜살롱문화 ·  제일기획 ·  커뮤니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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