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술이 많아졌습니다. 새로운 매체도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것들이 비로소 새로워질 때는 익숙한 것들과 만날 때입니다. 유튜브라는 새로운 매체는 10대에게 오래된 노래를 선물했습니다. 현재만 향유하는 줄 알았던 동영상 사이트가, 과거의 문화와 현대의 세대들을 서로 대화하게 하는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장년층에겐 익숙하지만 그저 ‘향수’였던 오래된 노래는 새로운 노래로 부활했고요. 서로가 새로운 가치를 얻은 거죠.
모두가 서점의 위기를 논할 때 새롭게 동네서점이 부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전 그대로의 서점은 아닙니다. 책을 직접 만지고 읽어볼 수 있다는 점은 같지만, 그 이상의 경험을 제공합니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기도 하고, 구하기 힘든 책을 그 자리에서 바로 인쇄해 주기도 합니다. 서점주의 독서 요약이 제공되는 곳도 있고, 한 권씩 추천작품만 파는 곳도 있습니다. 책과의 스킨십이 있다는 건 같지만, 새로운 경험을 더해 동네서점으로서의 색다른 가치를 만들어내는 거죠. 이렇듯 오래된 것은 새로움을 더해 앞으로 나아갑니다.
어쩌면 세상 모든 것이 ‘오래된 새로움’을 품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숙명을 지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래된 것은 추억으로만 존재하지만, 오래된 새로움은 현대에서도 현재진행형이 되니까요.
■ 구글이 기록한 2019년의 영웅들
한 해가 지나면 우리에겐 추억이 남습니다. 좋은 뉴스와 감동했던 순간, 힘들었던 일들... 늘 연말이면 전통매체들이 다뤄왔던 우리의 지난 시간들. 이젠 매년 구글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선보인 ‘Year in Search.' 구글은 2019년을 ‘새로운 영웅’의 관점에서 봤습니다. 어찌 보면 매년 보는 상투적일 수도 있는 영상이지만, 언제 봐도 뭉클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Year in Search 2019 (출처: 구글 공식 유튜브 채널)
영화 속 영웅부터 누군가를 구조한 평범한 우리들 속의 영웅, 신체적 장애를 딛고 스포츠 기록을 세운 불굴의 영웅, 처음으로 블랙홀을 촬영한 팀, 테니스 경기에서 패배한 아버지를 안아주러 뛰어온 어린 아들, 좋은 기록을 세운 히어로뿐 아니라 ‘쉬어로(shero)’들, 훌륭하게 아이들을 키워내는 슈퍼맘과 슈퍼대디, 사소한 일상 속에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동료들, 그리고 부호 로버트 에프 스미스. 그는 모어하우스 대학 졸업 연설에서 그해 졸업생들의 학자금 대출을 모두 갚아주겠다고 약속해 큰 감동을 안겼습니다.모두가 똑같이 앞으로 나아갈 동등한 기회를 얻어야 하며, 경제적 상황 때문에 좌절돼서는 안 된다는 취지입니다. 혜택을 받은 졸업생들은 똑같이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게 될 거라고 연설합니다. 참석한 학생은 물론 교수진과 방문객 모두 환호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감동을 목격합니다. 구글은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으며,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니 끊임없이 찾아보자고 합니다.
어찌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영상들. 하지만 이 영상들이 감동적일 수 있는 이유는 2019년에 모두 실제로 일어난 사실들이기 때문입니다. 가상의 영웅이 아닌 우리가 일 년 동안 겪어내고 만났던 영웅들. 구글의 Year in Search는 그래서 매년 ‘일 년’을 감회 깊게 돌아보게 만듭니다.
아무리 기술이 세상의 중심에 있어도 가장 강한 건 사람의 이야기이며, 나아가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 버거킹이 스타워즈를 맞이하는 방법
12월 중순은 세계 곳곳에서 스타워즈 속편 3부작 중 최종편이 개봉되는 날입니다. 스타워즈는 많은 마니아를 거느린 대표 영화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오래된 팬이 많은 작품이죠. 그래서 다양한 브랜드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스타워즈 개봉을 기념합니다. 개중에서도 독일의 버거킹은 특별한 방법을 택했습니다.▲ Spoiler Whopper - 세이프 버전 (출처: 버거킹 독일 공식 유튜브 채널)
사실 영화를 기다리던 광팬들이 가장 싫어하는 건 스포일러입니다. 스포일러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버거킹은 오히려 이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특별한 레스토랑을 열었죠. 온통 스타워즈 스포일러로 가득한 레스토랑. 모든 메뉴는 스포일러로 구성됐습니다. 예를 들어 ‘젊은 악당은 젊은 검의 여인에게 패배한 후 점점 착해지게 되는 이야기의 와퍼’식의 메뉴입니다. 와퍼뿐 아니라 코카콜라에도 스포일러 이름이 붙어 있으며, 주문하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습니다. 프렌치프라이에도 스포일러가 적혀 있고, 빨대에도 깨알같이 적혀 있습니다. 구석구석이 스포일러의 천국입니다. 사람들은 곳곳에서 비명을 지르고 눈을 가립니다. 주문을 많이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스포일러를 접하게 됩니다.
다만, 스포일러에 노출되면 공짜 와퍼를 누리는 혜택을 얻게 되죠. 경고가 씌어있는 문 앞에서 욕을 하며 돌아서는 사람도 있고, 당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스포일러로 얻는 공짜 와퍼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앱을 다운받아 스포일러를 크게 읽으면 공짜 와퍼 쿠폰을 얻게 되죠. 음성으로 활성화되는 쿠폰이라 읽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스타워즈라는 이름은 없다고 합니다. 결정적인 건 이 스포일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점이죠.
▲Spoiler Whopper - 스포일러 버전 (출처: 버거킹 독일 공식 유튜브 채널)
스포일러를 밟고 공짜 와퍼를 먹느냐, 공짜 와퍼를 포기하고 스포일러를 피하느냐, 고객의 몫입니다. 이렇게 버거킹은 영리하게 스타워즈를 활용합니다. 정통 명화를 만나는 신선한 방법입니다.
■ 고장 난 장난감을 구하는 방법
왜 고장 난 장난감을 구해야 할까요? 누가 고장 난 장난감을 구할 수 있을까요? 매년 쓰레기 매립지에 버려지는 장난감은 엄청나다고 합니다. 프랑스에서만 한해 4천만 개의 장난감이 버려지죠. 플라스틱이 바다를 오염시키는 것처럼 육지도 장난감 쓰레기가 매립지를 가득 채워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장난감이 버려지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다리가 빠지거나, 귀 한 짝이 없어지거나, 팔이 없어져도 어디에서도 고칠 수 없다는 것. 고장 난 순간 단순한 쓰레기가 돼 버립니다. 그래서 3D 프린팅 업체인 다고마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장난감 구조 작업.’ 그들은 40년간 가장 많이 팔린 장난감 중, 가장 많이 망가진 부품을 분석했습니다. 그렇게 얻어진 수백 개의 부품은 3D 프린터로 프린트할 수 있도록 Toy-Rescue.com에 디지털 파일로 올렸습니다. 누구나 이 사이트에 오면 무료로 필요한 파일을 다운받아 3D 프린터로 부속을 얻어 낼 수 있는 거죠.
오래된 장난감과 더 오래 할 수 있도록, 더 이상 장난감들이 쓰레기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의미 있는 작업입니다. 3D 프린터가 없을 경우, 미리 만들어진 부품을 무료로 받을 수도 있으며 사이트에 없는 부품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요구해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합니다.
장난감은 아이에게 이야기이고 추억입니다. 오래될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품게 되죠. 두고두고 기억될 어린 시절의 추억을 새로운 매개체인 3D프린터가 살려내고 있습니다. 지구 환경을 보호한다는 더 큰 명제도 안고 말이죠. 이렇게 오래된 것은 새것의 힘을 빌려 새로운 힘을 얻고, 새것은 오래된 것을 만나 더 큰 가치를 품습니다.
장난감을 구하는 일, 생각보다 더 가치 있는 일입니다.
■ 오래된 것을 새롭게, 새로운 것을 가치 있게
크리스마스는 우리에게 오래된 이야기이며, 반가운 날입니다. 캐럴을 듣는 것만으로도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취하게 합니다.▲Introducing Seventh Generation Climate Carols (출처: 세븐스 제너레이션 공식 유튜브 채널)
미국의 친환경 가정용품 및 케어 브랜드인 세븐스 제너레이션은 캐럴을 개사해 ‘기후 캐럴’을 만들었습니다. 기후 온난화에 따른 환경오염을 환기하고자 새로운 캐럴을 만든 거죠. 노래는 스포티파이나 애플 뮤직에서 스트리밍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제작된 곡 또한 한두 곡이 아니기에 다양하게 즐기면서 기후 변화를 환기할 수 있습니다. 익숙한 캐럴이 새로운 메시지를 만난 거죠.
이렇듯 사람들에게 새로우려면 익숙한 것을 새로운 곳으로 잘 이동시켜야 합니다. 서울대 푸드 비즈니스랩은 ‘2020 푸드 트렌드 전망 발표회’에서 2020년 주목해야 할 트렌드로 ‘뉴밀리어’를 선정했다고 합니다. New와 Familiar를 더해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익숙한 새로움’을 뜻하죠. 몇십 년 전 포장을 달고 출시된 라면이 불티나게 팔리고, 껍질과 빨간 과육을 뒤바꿔 출시한 수박바가 인기를 얻습니다. 모두가 익숙한 것들의 새로운 등장입니다.
오래된 것은 지루함을 품고, 새로운 것은 낯섦을 품습니다. 그래서 양쪽이 만나면 낯섦은 익숙함이 되고, 지루함은 새로운 것이 됩니다.
세상은 결국 익숙했다고 새로웠다가 다시 익숙해지고 새로워지는 반복의 과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