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사람들이 이모지를 즐겨 쓰게 되면서 사람들의 생각과 바람이 이모지에도 반영되고 있다. 2019년 말, 유니코드협회가 발표한 새로운 이모지에는 ‘여성 농부’나 ‘동성 커플’처럼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 다양한 가치를 수용하는 것들이 포함돼 있다. 이모지의 진화가 시사하고 있는 점에 대해 살펴본다.
우리는 같은 언어로 소통하고 있다. 하지만 한 발짝 들어가서 살펴보면 입과 손으로 표현하는 방법, 다시 말해 입을 통한 ‘말’과 손을 통한 ‘글’은 그 쓰임이 같지 않다. 어법이 다르다고 표현하면 맞을까? 이처럼 우리는 이미 ‘구어체’, ‘문어체’라는 용어로 말하는 방법을 고민해 왔다.
컴퓨터 기술의 발전은 이 말과 글이 만나는 공간을 새로 만들어 냈다. 이전까지 글은 대체로 정제된 결과물이 전달되는 형태로 쓰였고, 실시간성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가장 빨리 전달되는 글의 형식이 전보(電報)였던 게 그리 오래전의 일도 아니다. 하지만 1990년대 PC통신이라는 온라인 공간이 열리면서 글자들이 한 줄씩 실시간으로 전화선을 타고 전달되는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시작됐다. 바로 채팅이다.
키보드는 필기구를 사용해 손으로 쓰는 글씨보다 빠르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담아내기에 말의 속도를 따를 수는 없었다. 언어는 살아 있는 존재인지라 사람들의 필요는 그 형태를 바꾸기 시작했다. 글자를 줄이고 초성으로 표기하는 이른바 ‘인터넷 신조어’와 글자에 담기지 않는 미묘한 감정을 특수문자로 표현하는 ‘이모티콘(emoticon)’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모티콘의 시초는 미국 카네기멜론 대학교의 스코트 펠만(Scott Elliott Fahlman) 교수가 이메일에 ‘:-)’를 붙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이 이모티콘은 애초 문화와 감정을 반영하는 표기법이기 때문에 언어와 환경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성장해 왔다.
우리나라는 ‘^^’를 비롯해 ‘-_-’, ‘ㅠ_ㅠ’ 처럼 눈을 중심으로 하는 기호 중심의 이모티콘이 자리를 잡았고, 미국을 비롯한 라틴어 계열 언어를 쓰는 국가들은 ‘:-)’ ‘:p’처럼 기호를 옆으로 눕혀 입 모양을 강조했다. 일본은 ‘(??????)?’처럼 특수문자로 동작을 담아내는 이모티콘이 카오모지(顔文字)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일본에서는 휴대전화를 통한 메일이 빠르게 자리를 잡았고, 키보드가 불편한 휴대전화의 특성상 이모티콘으로 의미를 함축해 전달하는 문화가 정착했다. 일본의 이동통신사들은 이를 반영해 특정 이모티콘을 코드로 만들고, 해당 코드가 메시지로 들어오면 그림 형태의 이모티콘을 표시할 수 있도록 표준화했으며, 이를 ‘이모지(emoji)’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섞어서 쓰고 있지만 사실 ‘이모지’와 ‘이모티콘’은 구분해서 쓰는 것이 맞다.
▲ 캠브리지사전에 올라와 있는 이모티콘과 이모지에 대한 설명.
▲ Windows 10의 이모지 입력 모드
이모지는 스마트폰과 함께 성장해 하나의 온라인 문화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표정과 분위기를 담아내고, 대화의 어색함을 풀어주기도 한다. 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큼직한 이미지와 움직임을 함께 담은 ‘스티커’까지 등장하면서 채팅은 기술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모지의 문화적 성장은 사회적으로 고민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애초 이모지는 기본적인 표정만을 담고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 PC 등 기기를 만드는 개별 기업들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세부적인 그림의 형태가 서로 달랐다. 하지만 iOS와 안드로이드가 모바일 컴퓨팅,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이 되면서 운영체제에 포함된 서양, 특히 미국 문화를 반영한 이모지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미적인 요소뿐 아니라 남성과 여성, 그리고 인종 등의 차별에 반대하는 문화적 다양성이 요구되면서 기업들도 이를 반영하기 시작했다. 컴퓨터의 언어 입출력 표준을 정하는 유니코드협회도 이 다양성을 받아들여 유니코드 표준에 매년 새로운 이모지를 추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노인과 장애인, 그리고 다른 인종 간 커플 이모지가 유니코드에 포함되기도 했다.
또한 완전한 표준은 아니지만 구글과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은 운영체제 업데이트와 함께 성소수자, 좀비 등 갖가지 이모지를 운영체제에 넣으면서 다양성을 표현하려 노력 중이다. 채팅을 포함한 대화는 결국 문화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 성역할 및 인종에 대한 다양성이 반영된 새로운 이모지들. ⓒ유니코드협회 홈페이지
이모지의 개인화도 흥미로운 주제다. 애플은 2018년 이용자가 직접 캐릭터를 만들고 전면 카메라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표정을 읽고 이모지로 그대로 표현해 주는 미모지(한국 서비스명 ‘미모티콘’)을 공개했다. 이용자가 스스로 이모지의 플레이어가 되는 것이 바로 미모지의 역할이었다. 미모지는 ‘나’를 캐릭터로 만들어 온라인에서 스스로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했다. 삼성전자도 갤럭시 S9과 함께 AR 이모지를 내놓으면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이모지는 스마트폰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됐다.
이런 이모지들은 더 많은 표정을 담아낼 수 있게 진화하고 있으며, 단순한 채팅을 넘어 영상 통화에서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이모지가 소통뿐 아니라 나를 표현하는 역할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 사용자의 개성을 반영하는 삼성전자의 AR 이모지. ⓒ삼성전자 뉴스룸
컴퓨터를 넘어 스마트폰이 대화의 중요한 도구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서비스들이 O2O(Offline to Online)라는 이름으로 원격 커뮤니케이션 문화를 만들어 냈고, 최근 코로나19 감염증의 확산으로 이 ‘비대면’이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글자로 소통하는 채팅, 메시지는 온라인과 비대면의 출발점이자 역사다. 우리가 글을 쓰는 것은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고, 그 생각은 단순히 문장뿐 아니라 감정까지 반영해야 비로소 온전해진다. 글로 표현하기 미묘한 감정은 이모티콘부터 이모지, 스티커 등 더 효과적인 전달 방법을 찾아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기술과 문화를 반영하면서 언어를 넘어 전 세계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세계 공통어로 자리를 다져가고 있다.
한편으로 스마트폰 속에서 이뤄지는 채팅, 영상 회의, 그리고 각종 주문과 예약, 배달 등으로 연결되는 비대면 서비스들을 ‘인간성의 상실’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그래서 비대면 기술의 지향점들은 대체로 ‘메시지의 전달’이 아니라 ‘감정의 전달’에 집중되고 있다. 이모지는 사람들이 서로 대면하지 않고도 더 깊이 교감할 수 있도록, 감정을 더욱 세심히 전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또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갈망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성을 반영하는 기술’이 이모지를 통해 완성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호섭은 IT칼럼니스트로 <미디어잇>, <블로터앤미디어> 등에서 IT 전문기자로 일했다.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우리의 미래를 바꿀 기술과 산업의 트랜드를 여러 매체에 소개하고 있다. 저서로 『화웨이』, 『샤오미』, 『손에 잡히는 4차 산업혁명』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