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요, 사요" "팔아요, 팔아요" 외치는 디지털 매대
글 민용준 / 칼럼니스트. <엘르> <에스콰이어> 등 여러 매거진에서 대중문화와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기사를 썼다. 방송, 강연 활동도 활발하다.
발품을 팔아 물건을 구한다는 것. 철지난 유행가 가사처럼 낡은 이야기가 됐다. 스마트폰 액정에 손끝을 몇 번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의식주 대부분이 해결된다. 명동이나 가로수길보다 목좋은 매대를 세울 수 있는 곳은 스마트폰이다. 시장분석기관 DMC미디어에서 발간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모바일 쇼핑 거래액은 24조 7천900억 원에 달한다. 작년 4분기보다 2천 800억 원 이상 늘어난 것으로 분기별 모바일 쇼핑 거래액 중 역대 최고액수다. 반대로 올해 1분기 온라인 쇼핑몰 거래액은 작년 4분기보다 줄었다. 이런 추세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 ‘2020 디지털 차트: 국내 e-커머스’ 리포트에서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완만한 하락세를 보이던 온라인 쇼핑몰 거래액을 모바일이 앞서기 시작한 것은 2016년부터다.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여신금융협회에서 취합한 개인 신용카드 승인액 집계에 따르면 지난 3월 개인카드 승인액은 2월보다 4조 원 정도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승인액은 2조 원 이상 성장했다. 스마트폰을 통한 소비 활성화의 결과다.
페이스북의 쇼핑 서비스 '페이스북 샵스'. 이용자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샵을 개설해 제품 홍보와 판매가 가능하다. / 출처 페이스북 홈페이지
온라인 쇼핑몰에서의 거래인 이커머스(e-commerce)는 스마트폰에 어울리도록 진화했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으면 그곳이 어디든 매매와 소비가 가능하다. 보이지 않는 상점이다. 전통적인 이커머스는 오프라인과 유사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온라인 쇼핑몰이라는 거점으로 소비자가 찾아갔지만 지금은 다르다. 제품과 상점이 소비자 앞으로 찾아온 지 오래다.
인스타그램 쇼핑태그 기능. 소비자가 상품 선택은 물론 주문과 결제까지 인스타그램 앱 안에서 완료할 수 있다.
현재 이커머스는 미디어 커머스로 대체중이다. 비디오 커머스 혹은 컨텐츠 커머스라고도 불린다. 우선 무대는 스마트폰 시대의 광장이라 할 수 있는 SNS 채널이다. 여기에 소비자로 하여금 제품을 인식하도록 유인(誘引)하는 컨텐츠를 게재한다. 소비자의 제품 인지가 이뤄지면 그 다음은 제품을 구매하도록 흐름을 유도한다. 일종의 유사 광고 영상을 게시해 소비자의 흥미를 자극하고 끌어당기는 미디어 커머스는 TV 등 레거시 미디어에서 서비스하는 광고 방식의 응용 버전이다. 모바일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접속자와 직접 소통하는 라이브 스트리밍 채널 서비스가 활발해지면서, 실시간으로 구매를 연결하는 홈쇼핑 방식의 라이브 커머스까지 등장했다. 광고를 통해 제품에 대한 흥미를 자극하거나 소비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광고에서 소비로 이어지는 흐름을 하나의 체계로 일원화시키며 미디어 커머스는 진화하고 있다.
쇼퍼블 콘텐츠(shop-able contents)는 이름 그대로 쇼핑할 수 있는 컨텐츠인데, 제품 소개와 구매 연결을 넘어 실질적인 소비로까지 광고 감상 단계에서 해결해준다. 포털사이트와 SNS 채널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미디어 커머스가 새롭게 뽑아 든 엑스칼리버인 셈이다.
29초 이내의 짧은 영상으로 제품을 노출하는 29TV / 클릭 시 이동
지난 1월, 온라인 편집숍 29CM는 29초 쇼퍼블 비디오 ‘29TV’를 오픈했다. 29초의 짧은 영상은 브랜드를 감각적으로 보여주며 제품에 대한 소유욕을 자극한다. 컨텐츠 제작 권한을 자사몰에 입점한 브랜드에게 개방해 컨텐츠 제작과 수급을 보다 활성화하고, 각 브랜드는 직접 팬덤을 확보하고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블랭크 코퍼레이션이 제작한 오리지널 컨텐츠 '고간지'. 고등학생 참가자들이 패션 감각으로 미션을 해결하는 유튜브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 출처 고간지 유튜브 캡처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등 라이브 스트리밍이 가능한 SNS 채널을 활용하는 브랜드도 적지 않다. 미디어 커머스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블랭크 코퍼레이션은 유명 유튜버의 라이브 방송을 통해 치즈볼과 티셔츠를 ‘완판’시키며 화제를 모았다. 블랭크 코퍼레이션은 일찍이 유튜브에서 서바이벌 예능프로그램을 제작하며 컨텐츠 형태를 앞서 실험하고 경험을 쌓아왔다. 쇼퍼블 컨텐츠의 유행과 흐름에 최적화된 사례로 볼 수 있다.
롯데백화점의 라이브 커머스 100Live. 실시간으로 제품을 구경하고 바로 구매할 수 있다. / 출처 lotteon.com 캡처
네이버의 동영상 라이브 서비스 V LIVE에서 운영하는 동영상 쇼핑 뷰스타마켓. 사용자의 동영상 컨텐츠를 네이버 메인 페이지(네이버 뷰티판)에 소개해 홍보 및 쇼핑으로 연결된다. / 출처 네이버 쇼핑윈도 공식블로그
온라인·모바일 쇼핑몰이나 스타트업 기업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오프라인 소비의 메카라 할 수 있는 백화점도 쇼퍼블 컨텐츠 전략에 적극적이다. 롯데백화점은 자사 애플리케이션 라이브 커머스를 통해 고객을 찾아간다. 고객은 백화점 매장에 가지 않고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백화점 쇼룸에 디스플레이된 제품을 눈으로 보고, 설명을 들으며, 구매를 결정할 수 있다.
즉각적인 소비가 가능할 것. 인스타그램, 유튜브, SNS 채널의 서비스 기능은 이를 목적으로 강화된다. 포털사이트의 동영상 플랫폼에서는 모바일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제품 홍보에서 구매로 바로 연결되는 버튼 기능을 제시한다. 쇼퍼블 컨텐츠를 활용하려는 브랜드와 쇼핑몰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쇼퍼블 컨텐츠는 좀 더 쉽고 빠르게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최신 기술이다. ‘제품을 판다’는 커머스의 목표를 겨냥해 ‘재미를 준다’는 컨텐츠의 기능을 강화한다. 팔기 위해서는 흥미를 자극해야 한다. 이는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 재미있는 TV 광고가 소비자를 사로잡는 것과 같다. 컨텐츠가 스마트폰을 통해 소비와 보다 긴밀하게 연결되는 것. 쇼퍼블 컨텐츠는 그런 연결성이 가속화된 시대의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