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를 게임이라 불러야 할까?
글 이경혁 / 게임칼럼니스트. 게임문화를 연구하고 매체로서의 게임이 인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강의와 방송으로 대중과 소통한다. 저서 <81년생 마리오> <슬기로운 미디어생활> 외.
오락실과 문방구 시대, 가정용 콘솔게임기와 PC 게임 그리고 PC방 시대를 거치며 겨우 50여 년, 한국의 디지털게임 환경은 다채로운 변화를 겪어왔다. 50대에 접어든 중장년층에게 요즘 게임은 눈으로 따라가기도 버거운 무언가지만, 그들도 한때 오락실에서 소리 지르며 각종 얍삽한 기술 전수를 논하던 시절이 있었다. 기술이 발전하며 만들어낸 게임 환경의 변화는 십 년여의 세대 차이에도 서로 다른 게임 이야기를 할 정도로 급격한 전이를 이뤘다. 하지만 지금 게임에 일어나는 변화에 비하면 과거의 변화는 눈에 차지도 않을 수준이다. 시공간의 변화를 넘어 이제 게임은 그 형식과 접근성, 장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변화하며 어디까지를 게임으로 불러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마저 불러일으킨다.
게임을 소비하는 방식의 변화
산업적 측면에서 가장 큰 변화는 게임을 소비하는 방식이다. 오락실을 즐기던 오래된 게이머에겐 동전 한 개에 한 판이라는 공식이 게임 소비의 기본이었다. 간혹 동전 한 개가 아까워 몰래 딱딱이(전기 충격으로 동전 투입구에 신호를 줘 동전이 들어간 것으로 인식시키는 가스레인지 점화기)를 튀기거나, 가짜 동전을 넣다가 오락실 주인에게 끌려 나온 경험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에게 게임은 무료가 기본이다. 어린 시절 ‘주니어 네이버’ 같은 웹사이트에서 제공되던 무료 플래시 게임이 첫 게임이라는 고백이 적지 않다. 이후에도 젊은 세대일수록 무료 플레이에서 인앱결제로 이어지는 온라인게임을 먼저 겪었다. 이들에게 동전 투입식 게임은 영화관에서 시간 때우기 용으로 처음 접한 신기한 게임기였다.
오늘날 가장 널리 이용되는 게임 결제양식은 무료 플레이 후 광고를 보거나, 인게임 아이템을 추가로 구매하는 부분 유료 결제 방식이다. 대부분의 모바일게임 결제방식이자 주요 앱스토어 매출 상위권을 이루는 게임들이 채택하는 이 방식은 막대한 수익률의 원천이면서 동시에 게임의 사행성과 과도한 결제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비판받는 대상이기도 하다. 이른바 ‘현질’이라는 용어로 비하될 정도로 게임계에서는 뜨거운 이슈다.
한편 새로운 결제 플랫폼으로 클라우드 기반의 구독형 게임서비스도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중이다. 플레이스테이션, 엑스박스 등의 콘솔게임기기들은 월정액 결제를 통해 인기 게임을 무료로 제공하고, 애플 앱스토어도 월정액 결제를 통해 다양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애플 아케이드(스마트폰 기반의 구독형 게임결제 서비스)를 서비스하고 있다.
스마트폰 기반의 구독형 게임결제 서비스 ‘애플 아케이드’. 넷플릭스 이후의 구독형 서비스 열풍이 게임 업계에도 불고 있다. / 출처 애플 앱스토어 게임 캡처
게임 외연의 확장, ‘보는 게임’의 시대
게임 플랫폼에서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보는 게임’의 등장이다. ‘보는 게임’은 크게 e스포츠와 스트리밍으로 나눠볼 수 있으며, 게임플레이와 결제 등 게이밍 문화 전반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며 게임컨텐츠 시장의 외연을 넓혀가는 중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붐을 일으켜 온 e스포츠는 이제 소규모 게임 대회를 넘어 마치 월드컵 혹은 올림픽과 같은 국제 규모의 스포츠 행사로 자리 잡았다. 미국에서 개발된 온라인 대전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챔피언십 결승전의 분당 평균 시청자 수는 2,180만 명으로 2020 FIFA 월드컵의 최대 분당 시청률 경기였던 스페인 vs 독일 준결승전 분당 시청자 수 35만 명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2019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챔피언십 결승전은 역대 최대 분당 시청률을 기록하며 오늘날 디지털컨텐츠에서 e스포츠가 갖는 의미를 부각시켰다. / 출처 리그오브레전드 한국 공식 홈페이지 / 클릭 시 영상 재생
e스포츠는 단지 방송 컨텐츠에만 머무르지 않고, 일반 스포츠처럼 ‘직관’의 묘미도 제공한다. 삼성동 메가웹 스테이션처럼 다소 간소한 무대에서 치러지던 e스포츠 경기는 점차 전용 경기장에서 편안한 경기와 관전이 가능한 형태로 변모했다. 게임방송사 OGN의 ‘서울 OGN e스타디움’, 라이엇게임즈가 직접 운영하는 ‘LoL Park’ 등이 대표적이다.
SBS 아프리카TV(SBS와 아프리카TV가 합작한 게임 전용 방송사)가 설립한 ‘HOT6 아프리카 콜로세움’도 2020년 3월 개관하며 e스포츠 경기장 경쟁에 가세했다. 핫식스의 e스포츠 스폰싱은 2012년 <스타크래프트 2> 리그 후원부터 시작해 <리그 오브 레전드>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등 여러 e스포츠 리그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아 e스포츠 팬들에게는 꽤나 친근한 스폰서 기업으로 인식되어 온 바 있다. 롯데월드 지하 1층에 500석 규모로 세팅된 ‘콜로세움’은 <배틀그라운드> <스타크래프트> <오버워치> 등 여러 리그를 유치해 내며 코로나19 여파에도 불구하고 e스포츠 경기장의 중심축으로 기능하고 있다.
‘HOT6 아프리카 콜로세움’ 전경. 롯데월드 내에 개설된 e스포츠 전용 아레나로 500석 규모의 관중 수용능력을 바탕으로 e스포츠의 새로운 심장으로 자리하고 있다.
‘보는 게임’의 또 다른 축은 트위치와 유튜브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개인 스트리밍이다. e스포츠가 프로 선수들의 슈퍼 플레이가 맞부딪히는 공간이라면, 개인 스트리밍은 마치 1인 토크쇼처럼 스트리머의 입담과 흥겨운 플레이가 중심에 자리한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벌어지는 어처구니없는 폭소의 순간들을 다루는 위트 넘치는 개인방송부터 특정 게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플레이하는 ‘플레이 스루(play through)’까지, 개인 스트리밍은 게임이라는 컨텐츠를 토대로 2차 창작을 통해 시청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초창기 오락실에서 동네 고수의 플레이를 구경하던 구경꾼들이 누렸던 재미를 인터넷 기술과 결합해 온라인에서의 ‘게임 구경’을 하나의 컨텐츠로 격상시킨 셈이다.
월평균 5억 명 이상이 즐기는 게임 전문 인터넷방송 플랫폼 트위치. 2014년 아마존이 약 1조 원에 인수해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 출처 twitch.tv 캡처
타 매체와 달리 디지털 게임은 매체의 본연인 즐기는 방식 자체가 시대와 기술에 따라 달라지며 형식을 특징짓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오락실의 동전 한 개, 스마트폰 게임 한 판 뒤의 광고 클릭, e스포츠 결승전 전광판에 비치는 메인스폰서의 로고, 게임 스트리머의 플레이에 환호하며 클릭하는 도네이션 버튼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게 펼쳐지는 게임 플랫폼의 변화는 무엇이 게임인가에 대한 대답을 어렵게 만든다.
미래의 게임이 어떤 모습일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다만 한 가지, 게임과 컨텐츠는 당분간 쉽게 꺾이지 않을 성장세를 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어쩌면 디지털컨텐츠 시대에 가장 앞서가는 매체로서 게임이 갖는 위치는 비단 게임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이 매체의 성장과 변화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