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여행 캠페인
글 CS8팀 박수진 CⓔM
<3년 전 오늘 게시한 게시물을 확인해보세요> 인스타그램에 뜬 반가운 알림에 못내 씁쓸하다. 최근 몇 년 동안 이맘때면 늘 유럽으로 휴가를 갔다. 봄에 휴가를 다 써버리기엔 연말까지 버틸 재간이 없었고, 여름엔 왠지 북적거리는 휴가철이라 피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겨울까지 휴가를 미룰 수는 없으니 선택한 계절이 늘 가을이었다. 파리에서는 트렌치코트를 입고, 피렌체 노상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또 어느 해엔 스위스의 단풍나무 아래에서 마터호른의 만년설을 바라봤다. 그 반가운 기록들이 어정쩡한 알림이 되어 올해는 어디로 떠날 거냐고 날 채근해오고 있었다.
<여행이 우리를 떠났다> 근래 본 광고 카피 중에 유달리 오래 곱씹은 문장이다. 여행은 정말 우리를 떠나버린 걸까. 언제쯤 돌아오나 목이 빠져라 기다려야 하는 걸까. 여행이 불가능한 역사에서도 떠남에 대한 욕구는 늘 도처에 있었고 보란 듯이 그 여정에 성공한 이들이 있다. 알렉산더 대왕은 전쟁 중에도 주변국을 탐사하는 낭만을 잃지 않았고, 조지오웰은 투병 중에도 빚을 내 모로코로 여행을 떠났다. 대항해 시대의 해적은 어떤가. 거친 파도에 굴하지 않는 그들에게 역마살은 다른 형태의 축복이었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행복’하는 게 여행의 또 다른 정의라지만 낯선 땅을 밟는 즐거움을 이미 맛본 이들은 그런 언어유희에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그들이 택한 방법은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든 훌쩍 떠나보는 거다. 오늘 준비한 이야기가 그렇다. 여행에 목마른 당신을 달뜨게 해줄 신개념 여행안내서. 짧은 여정을 시작해보자.
Vimeo : Window swap
세계 각국의 창문뷰가 랜덤으로 보여지는 Window swap / 클릭 시 이동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에어비앤비 카피가 캠페인으로 태어나면 이런 모양새가 아닐까. 하늘길은 막혔지만 랜선만 타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세상. 에어비앤비의 철학과 어딘가 닮아있는 캠페인 하나를 소개한다. 글로벌 영상 사이트 비메오는 창이라는 매개체를 활용해 집콕 시대의 신개념 여행을 완성했다. 인터넷 창을 열면 세계 각국의 창문 영상이 랜덤으로 오픈된다. 내 삶이 배어있는 우리 집 창 풍경이 누군가에게는 설레는 여행 한 조각이 되어주는 감동. 연결의 미학이 무엇인지 직접 확인하고 싶다면 지금 창을 열어보길 권한다.
T’way Air : To. 손님 여러분께
기장의 목소리로 응원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티웨이 항공 / 클릭 시 이동
언젠가 일본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난기류를 만난 적이 있다. 기내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됐고, 사람들의 낯빛엔 두려움이 가득했다. 무사히 착륙을 마치고 땅이 선사하는 안도감에 감사하던 순간, 승객들을 살피는 승무원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의 나는 누구에게 감사해야 했던 걸까.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계지만, 국내외 항공사들은 수많은 난기류를 극복해온 노하우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티웨이 항공은 기내방송을 하는 기장의 목소리를 통해 응원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 정도의 흔들림은 늘 겪어왔던 일인 듯 담담한 목소리로. 기내에서 만날 순 없겠지만 고객을 향한 커뮤니케이션의 끈을 놓지 않는 항공업계. 조만간 그들이 더 높이 날 수 있기를 함께 응원한다.
小杉湯 : #オンライン?湯
구글맵을 켜고 아픈 다리를 두들겨가며 관광지를 방문하는 여행만 있는 건 아니다. 발품이 필요 없는 여행의 즐거움은 따로 있다. 온천여행을 해본 적이 있다면 그 유유자적함이 주는 묘한 매력을 잊지 못할 터. 코로나 시대를 맞아 전혀 다른 형태의 온천여행을 완성한 캠페인을 소개한다. 도쿄 코스기유 목욕탕의 #온라인목욕탕 영상이다. 약 한 시간 동안 욕조에 물이 흐르는 모습만 계속되는 이 영상은 트위터에 업로드 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온라인목욕탕 해시태그를 통해 일본 곳곳의 수십 개 온천이 캠페인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는 한 해, 온천여행이 그리워진다면 트위터에서 #オンライン?湯를 검색해보자. 고즈넉한 온천의 풍경과 청아한 물소리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National Geographic : 360 video
집콕을 하면서 생긴 의외의 취미가 디스커버리 채널이나 EBS의 다큐멘터리 감상이다. 요즘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는 관찰 동물로 위장한 로봇이 잠복해서 촬영하고, 비버가 힘들게 지은 집에는 조그만 설치류가 얹혀산다는 사실을 배우며 물끄러미 자연을 경외하다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아주 사소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현실의 걱정에 무감각해지는 경험 또한 다른 형태의 여행일 테니까. 드넓은 자연을 실감 나게 누릴 수 있는 컨텐츠를 소개한다. 바로 National Geographic의 360 비디오 시리즈다. VR기기 없이도 스마트폰을 통해 야생의 생생함을 360도로 관람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첨단 자연이다. 이번 주말엔 집콕 대신 저 푸른 초원 위(실은 이불 속이나 거실의 안락한 소파에 해당하는)에서 아기 사자와 마음껏 뛰어놀아보는 건 어떨까.
하지 않는 것과 못하는 것의 차이를 올 한해 절실히 배운다. 모이지 않는 것과 모이지 못하는 것, 코인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지 않는 것과 고작 4분짜리 노래 한 곡도 부르지 못하는 현실의 차이는 어마어마했고, 때론 그 앞에서 절망 비슷한 무기력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무력함을 이길 수 있는 무기는 분명 더 노력함에 있다.
최근 한국관광공사가 퓨전국악밴드 이날치,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와 콜라보한 <Feel the rhythm of Korea> 캠페인이 화제다. 유튜브에서 2천 5백만 뷰 이상을 기록하며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공헌하고 있다. 코로나 쇼크로 한국을 찾는 외국 관광객 수가 전년 대비 약 75% 감소했지만, 온라인을 통해 이들은 한국의 멋과 풍류를 즐기는 여행을 하고 있는 셈.
이쯤이면 방구석이면 뭐 어떤가 싶다. 오늘은 유튜브 알고리즘을 돛대 삼아 전 세계를 정처 없이 유랑해보시길. 그 여행엔 지루한 비행시간도 번거로운 입국심사도 없다.
참고 자료: 2020 출입국관광통계, 관광지식정보시스템(www.tour.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