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게임이 우리의 일상과 분리돼 있었지만, 현재는 메타버스를 통해 일상과 연결돼 있으며, 또한 놀이적 기능을 넘어 비즈니스 영역으로 진화하고 있다. 게임이 적용된 새로운 세상, 게이미피케이션으로 만들어진 메타버스는 게이미피케이션이 주는 가치를 지속시키는 해법이 될 수 있다.
아마 이 질문에 “Yes”를 답하는 이가 매우 적을 듯하다. 제페토는 카메라 앱 스노우로 유명한 스노우(주)가 만든 콘텐츠로, 올해 3월에 네이버제트라는 기업으로 분사했다. 스노우 앱이 기본적으로 내 얼굴 사진을 토대로 눈을 키우거나 여드름을 지워 줬다면, 제페토는 내 얼굴 본판을 아예 지워 버리고 만화 캐릭터를 그리듯이 눈, 코, 입, 얼굴형을 골라서 조합한다.
‘내가 만들어 낸 내 아바타’가 제페토의 핵심이다. 이 아바타를 가지고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어서 소셜미디어처럼 공유한다. 아바타가 입는 옷, 각종 장신구를 마켓에서 구매하거나 내가 직접 만든 아이템을 마켓에서 판매한다. 그리고 아바타들이 노는 공간을 사용자가 직접 만든다. 제페토 안에 만들어 놓은 낚시터, 지하철역, 공원 등 다양한 공간에 사용자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고, 규칙에 따라 어울려 논다. 그렇게 어울리는 이들이 전 세계적으로 대략 2억 명 가까이 됐다.
▲ 제페토와 트와이스의 컬래버레이션 영상
▲ 온라인 게임 플랫폼 및 게임 제작 시스템 ‘로블록스’
ⓒ 홈페이지 화면 캡처(roblox.com)
로블록스는 이보다 더 본격적으로 사용자가 직접 게임을 만들어서 공유하는 플랫폼이다. 사용자들이 만들어 낸 수많은 게임이 공유되고, 수많은 사용자가 그런 게임을 오가면서 놀고 있다. 화면만 봐서는 1980년대에 만들어진 게임 같은 느낌이 든다. 좋게 보면 픽셀 아트이지만, 냉정히 보면 테두리가 다 깨지고 색상 조합도 엉망이다. 그런 엉성해 보이는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 1억 2천만 명 정도가 된다.
여러분이 제페토, 로블록스를 써 본 적이 없는 이유는 다음의 상황을 들어보면 이해될 것이다. 제페토는 국내에서 제작한 플랫폼이지만, 해외 사용자 비중이 90%이며, 10대 이용자 비중이 80% 정도에 달한다. 로블록스의 주된 사용자 층은 16세 미만 아이들이다. 미국에서는 청소년 중 절반 정도가 로블록스를 즐기며, 사용 시간을 비교하면 유튜브의 2.5배에 달한다.
제페토, 로블록스는 일부 사례에 불과하다. Z세대와 그 아래의 청소년들은 이미 그 윗세대와 뭔가 다른 세상, 여러 개의 세상을 오가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를 메타버스(metaverse)라고 부른다. 초월을 뜻하는 메타와 세상을 뜻하는 유니버스의 합성어이다. 메타버스는 깊게 들어가면 네 가지로 분류되는데, 핵심적 특징은 게임의 세계관·상호작용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점이다.
만약 오락실 게임이나 스타크래프트가 떠올랐다면 상당히 멀리 있다. 롤이나 오버워치를 생각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오락실 게임부터 오버워치까지를 보면, 게임과 일상생활이 완전히 분리돼 있다. 그러나 제페토, 로블록스는 게임과 일상이 연결돼 있다. 제페토는 디즈니, 나이키 등과 같은 콘텐츠 강자들과 협력하고 있다. 그들의 IP를 가지고 제페토 안에서 새로운 콘텐츠를 창조하고 유통한다. 사용자들은 자신이 직접 콘텐츠를 만들어 판매하고 수익을 얻는다. 로블록스를 즐기는 아이 중에는 자신이 만든 게임으로 연매출 10억 원을 벌어들이는 경우도 있다. 즉, 사용자에게 게임이 놀이의 대상을 넘어서 비즈니스 대상이 된 셈이다.
▲ 포트나이트 챕터 2 시즌 4 트레일러 영상
한 가지 게임을 더 살펴보자. 북미를 휩쓸고 있는 배틀로얄 방식의 게임인 포트나이트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포트나이트는 기본적으로 국내에서 유행하는 게임인 배틀그라운드와 같이 여러 명이 어울려서 전쟁을 하고 최종 승자를 가리는 게임이다.
그런데 그 안에서 사용자들은 총싸움만 하는 게 아니다. 나이키나 마블 캐릭터가 담긴 콘텐츠를 구매하고, 1,230만 명이 동시에 모여서 유명 래퍼 스캇의 콘서트를 즐기며, 새로 공개된 BTS의 뮤직비디오를 함께 관람한다.
포트나이트의 제작사인 에픽게임즈의 CEO 팀 스위니는 포트나이트를 게임 이상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지금은 포트나이트가 게임이지만, 앞으로는 무엇이 될지 모르겠다고 언급했다. 현실 세계의 여러 비즈니스를 포트나이트 안으로 가져가고, 반대로 포트나이트의 IP를 현실 세계로 가지고 나와서 다른 비즈니스에 접목한다는 접근이다.
실제 이런 양방향 접근을 시도하는 기업들 중에는 패션 브랜드들도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루이비통은 롤 게임과 협력하기 시작했다. 롤에서 사용하는 게임 스킨에 루이비통 문양을 넣어서 판매하고, 롤 게임의 로고와 캐릭터를 넣은 명품을 제작해 매장에서 판매했다. 버버리도 같은 맥락의 시도를 이어오고 있다. 올해 6월에는 B서프라는 서핑 게임을 직접 제작해 공개했다. 버버리의 TB썸머 모노그램 컬렉션을 기반으로 서퍼의 의상과 보드를 게임에서 제공해, 플레이어들은 B서프를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버버리의 트랜드를 익히게 됐다.
▲ 루이비통과 롤(League of Legends)의 컬래버레이션
마케팅 에이전시인 PMX는 2025년까지 세계 명품 시장 고객의 45% 이상을 Z세대가 차지하리라 예상했다. 루이비통, 버버리는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그들에게 제품을 알리기 위해서 그들을 현실 세계로 데려오려 노력하기보다는 그들이 주로 머무는 게임 메타버스 속으로 기업들이 들어간 것이다. 여러분이 일하는 기업·조직이 게임, 디지털, IT 등과 관련이 없다 해도 게임 메타버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은 원래 게임이 아닌 것에 게임을 접목하는 방법을 뜻한다. 단순히 보면, 친구를 도와준 아이에게 칭찬 스티커를 붙여주는 단편적 활동, 지하철역 개찰구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그 앞에서 스쿼트를 30번 하면 지하철 티켓을 공짜로 주는 리워드 방식이 게이미피케이션이다.
그러나 게이미피케이션이 주는 가치를 넓고, 깊게,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에게 이런 단편적 활동과 리워드만 제공하기보다는 새로운 세상으로 그들을 이끌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게임이 적용된 새로운 세상, 게이미피케이션으로 만들어진 메타버스이다. 기업이 꿈꾸는 비전, 보유한 브랜드,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게임적 세계관, 게이미피케이션 메타버스에 어떻게 녹여 넣을지 깊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먼저 생각하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우리 브랜드와 무관해 보였던 게임 회사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브랜드의 비즈니스에 먼저 발을 들여놓을지도 모른다.
*김상균은 로보틱스, 산업공학, 인지과학 등을 공부했으며 현재 강원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이다. 학부 때 게임 개발자로 첫발을 내디딘 후 스타트업을 창업한 이력이 있다. 게이미피케이션 교수법 강연과 워크숍 활동도 하고 있으며, 저서로 『가르치지 말고 플레이하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