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리테일 트렌드 전망
재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 2020년은 전 세계인에게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한 해였다. 코로나 19로 인해 일상의 크고 작은 부분이 1년여 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모습으로 바뀌었고, 자연스레 우리 삶의 큰 부분인 소비 생활도 급격히 변화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며 OTT 서비스 이용과 홈웨어 매출이 늘었고, 배달 음식 시장 또한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이러한 변화로 매장 기반의 오프라인 리테일러들은 위기를 맞았지만, 이커머스 브랜드들에는 이 언택트(Untact) 생활 양식이 곧 급성장의 기회가 됐다. 그러나 전통적인 오프라인 기업들이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오히려 자신의 당위성을 재정립해 나가며 재빠르게 쇄신을 꾀하고 있다.
사실 2020년의 이 같은 변화는 코로나 19가 밟은 액셀러레이터로 가속화된 것일 뿐 이미 예견된 방향이다. 단기적인 현상이 아닌, ‘포스트(Post) 코로나’ 시대에도 일부 유효할 전망이라는 얘기다. 2021년에도 비대면에 적응하는 리테일 시장의 움직임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바, 올 한 해의 리테일 트렌드는 무엇이 있을지 살펴보자.
오프라인 매장의 혁신
눈에 보이는 실물을 갖추고 있다는 뜻에서 소위 ‘Brick-and-mortar’라고 불리는 오프라인 매장들은, 매장의 기능과 소비자 체험을 다각화해가며 고객들의 발걸음을 되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들의 노력은 크게 두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Buy online pick up in store, 좌: Nordstrom / 우: Walmart)
첫 번째는 온라인에서 주문하고 가까운 매장에서 받는 BOPIS(Buy Online Pick-up In Store) 서비스 확대와 딜리버리(Delivery) 기능을 강화하는 시도이다. 자동차 온라인 구매의 포문을 연 테슬라처럼, 기존에 온라인 거래나 배송과는 거리가 멀었던 제품군의 브랜드들이 이 같은 시도를 하게 되었다는 점이 특히 흥미롭다. 삼성전자의 GDC 센터도 각국의 삼성 체험 스토어(Samsung Experience Store)에 갤럭시 제품의 BOPIS나 Ship-from-Store(스토어 배송)를 접목하는 등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 확산을 준비 중이다. 국내에서는 B마트나 요마트에 이어 기존 편의점 업계들도 도심형 물류창고에서 상품을 30분 이내 배달하는 퀵커머스(Quick Commerce)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비대면 주문시스템을 강화한 던킨과 드라이브 스루 서비스 도입한 CU, 출처: SPC 매거진 / BGF리테일)
두 번째는 진화된 테크놀로지를 접목해 위생과 비접촉(Contactless)에 대한 니즈를 해소하는 다양한 서비스 제공으로 매장 방문 경험을 제고하는 것이다. AR?VR 및 QR 등을 내재한 키오스크나 벤딩 머신으로 매장 내에서도 얼마든지 비대면 구매가 가능해졌고, 앱으로 예약하고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로 제품을 받아 가는 커브사이드 픽업(Curbside pick-up) 서비스도 활성화될 전망이다. 스타트업인 ‘브이터치’는 비접촉?원거리 터치 제어가 가능한 가상 터치패널을 개발해 2021년 CES 혁신상을 받기도 했다. 무인(無人) 트렌드에 맞춰, 그동안 매장 뒤편에서 재고 관리만 하던 AI가 이제는 챗봇이나 버추얼 어시스턴트 같은 역할을 하며 고객을 응대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더욱 진화된 이커머스 트렌드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이커머스들의 성장 가도에는 무엇이 주요한 트렌드일까? 소셜커머스와 라이브커머스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예정이다. 최근 인스타그램 UI 개편의 가장 큰 변화는 바로 Shop 버튼(쇼핑 기능)이 전면으로 나온 것이며, 중국의 경우는 왕홍을 통한 타오바오 라이브의 구매 전환율이 여전히 40%를 웃돈다고 한다. 올해는 우리나라에서도 라이브커머스가 보편화할 전망이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자체 플랫폼의 강점을 활용하여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으로 입지를 다지며 새로운 수익원 창출을 노리고 있다.
데이터 마케팅의 부상에 발맞춘, 이커머스 브랜드의 유료 멤버십이나 개인화된 고객 데이터 활용도 주목해볼 만하다. 소비자 행동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쇼핑 경험을 제공하고, 멤버십을 통해 개인화된 제품 추천이나 콘텐츠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트렌드다. 최근 아마존이 SK텔레콤의 11번가에 3천억 원을 투자하며 국내 간접 진출을 알린 것도 그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마존 프라임이나 지마켓 스마일클럽처럼 콘텐츠를 결합한 유료 멤버십을 11번가 플랫폼에서도 기대해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쿠팡도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쿠팡플레이’를 선보이며 이커머스 시장에서의 입지에 쐐기를 박았다.
거스를 수 없는 옴니채널의 급류
격변의 리테일 시장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구분은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온?오프라인에 존재하는 다양한 소비자 접점을 통합하여 일관적이고 원활한(Seamless) 고객 맞춤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옴니채널(Omni Channel)’ 마케팅이 대세가 된 것이다. 오프라인 브랜드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물론, 온?오프라인을 모두 가진 기업들도 두 부문을 합병하는 추세다. 리테일 시장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따로 분리하지 않고 리테일 전체의 점유율을 따지게 됐다. 국내에서는 최근 GS 홈쇼핑과 GS 리테일이 흡수?합병을 결정했다. 단기적으로는 코로나 국면 속 전체 실적이 보전되는 효과를 노린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GS리테일이 보유한 전국 단위 점포망 및 물류 인프라와 GS홈쇼핑의 배송 역량을 합쳐 옴니채널 생태계에 대응하려는 방향이다.
(상품 보관부터 고객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아마존 풀필먼트, 출처: Amazon)
온라인 쇼핑이 커지고 오프라인 공실률이 높아지면서, 기존 매장과 사업 모델을 비대면?온라인 중심으로 바꾼 것을 뜻하는 ‘다크 스토어’와 풀필먼트(Fulfillment: 상품 보관, 주문, 배송을 일괄처리하는 물류 대행) 시장도 커가는 모양새다.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국내 대형마트 업계에서도 아마존의 FBA(Fulfillment by Amazon)처럼 매장을 풀필먼트 센터로 전환하면서, 다크 스토어가 ‘매출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최근 네이버와 CJ대한통운의 협업도 이와 궤를 같이하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오프라인 셀러들의 오픈마켓인 네이버쇼핑은, 품질 관리 및 물류 배송 부문을 개선하기 위해 CJ대한통운뿐 아니라 풀필먼트 스타트업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블로그에서 시작해 1조 원이 된 DTC 브랜드 글로시에 뷰티 브랜드, 출처: 구글)
미국의 화장품 브랜드 글로시에, 매트리스 브랜드 캐스퍼 등 중간 유통망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직접 상품을 판매하는 DTC(Direct to Consumer) 브랜드 시장도 재편이 예상된다. 처음부터 DTC 판매로 출발한 스타트업들은 주로 자체 플랫폼이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상품 프로모션을 진행해왔는데, 코로나 이전부터 점차 결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대형 유통망들이 기본적으로 보장하는 세일즈를 포기한 채 단일 채널만 고집해온 태생적 한계에 더해, 인플루언서 마케팅 의존도의 리스크로 인해 경영 위기를 맞은 곳들도 많다.
반면 안정적인 판매망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대형 리테일러들과의 파트너십을 구축하거나, 지역 브랜드 커뮤니티 조성에 힘쓰는 등 더 강력한 생존 전략으로 회생에 성공한 기업들도 있다. 한편 나이키처럼 소위 ‘옴니채널 잘하는’ 브랜드는 DTC 선언 이후 계속해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DTC 시장의 재개편 및 지속 성장도 손꼽히는 2021년 옴니채널 키워드 중 하나다.
이렇게 2021년 리테일 시장의 트렌드를 오프라인 매장의 관점에서, 이커머스 시장의 차원에서, 그리고 다양한 옴니채널 전망으로 함께 살펴보았다. 이 외에도, 팬데믹 및 기후변화로 인해 윤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제품과 브랜드를 구매하는 ‘가치 소비’의 증가 등 리테일 주체로서 주목해볼 만한 다른 흐름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기술과 데이터가 불러올 이 리테일 대격변의 시대에, 옴니채널만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것이다. 인류가 코로나 이전의 세상을 완전히 되찾지는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 각계의 전문가들에게서 나오듯, 리테일 세상도 옴니채널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올 한해 우리도 돌이킬 수 없는 시류에 기꺼이 몸을 맡긴 채, 2022년 펼쳐질 또 다른 옴니채널 파노라마를 흥미롭게 기대하며 준비 태세를 갖춰보는 건 어떨까?
제일기획 권채원 프로(옴니채널전략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