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유현재 /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로 활약했으며 현재 광고와 마케팅, 헬스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 소비자 행동에 관해 생각하고 연구한다. 저서 <코로나 ing> <멀티플 팬데믹> 외 다수.
“광고랑 헬스컴이랑 무슨 상관이지?” 십몇 년 전, 미국에서 지도교수로부터 헬스커뮤니케이션(Health Communication)을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혼자 내뱉은 말이다. 유학 직전까지 카피라이터만 하다가 온 걸 아는 분이 무슨 저런 말을 하나 싶어 화도 났다. 안되는 영어로 어떻게든 불만의 뉘앙스를 전하기 위해 “난 한국에서 카피라이터였고, 헬스컴은 뭔지 잘 모르지만 사실 건강도 별로 좋지 않고...” 주저리주저리 했더니 이내 쎈 반응이 돌아왔다. “야, 나도 FCB 시카고 출신이야(인마). 요즘엔 무조건 헬스컴 없인 광고든 PR이든 안돼. 앞으론 더 그럴 거야. (그러니까 잔말 말고) 하라면 해!” 그리고 함께 작성한 논문이 <비만 유행의 시대, 패스트푸드 브랜드의 광고전략>이다. 그땐 헬스와 광고를 묶는 게 세상 의미 없어 보였지만, 최근 코로나 위기가 본격화되며 그 교수님의 예상을 뛰어넘는 상황이 현실화되고 있다.
헬스커뮤니케이션은 ‘건강증진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일체의 커뮤니케이션을 다루는 분야’쯤으로 정의할 수 있다. 협의로 예를 들자면, 금연을 유도하는 공익광고나 코로나19 시기 개인방역을 위한 정부의 메시지 기획 등일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확장해 적용하면 ‘그 어떤 광고주든 간에’ 건강과 관련된 사안을 효과적으로 엮어 진행하는 소통활동을 아우르는 개념일 수 있다. 건강 관련 제품이나 브랜드는 물론이고 언뜻 건강과 상관없어 보이는 아이템에도 소비자를 설득하기 위해 충분히 활용 가능한 컨셉이라는 뜻이다.
출처 서울특별시 홈페이지
광고+헬스커뮤니케이션의 조합은 기본적으로 소비자의 수용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백세시대’ 등 화두가 되며 ‘웬만한’ 소비자의 관심엔 건강이 이미 상당한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건강 이슈에 특히 가까운 제품의 경우(예: 롯데GRS, 쿠쿠전자, 뮬라웨어, 롯데주류, 세라젬, 롯데제과 등) 헬스커뮤니케이션의 원칙이나 전략의 효용성은 더욱 높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약간 멀어 보이는 제품도(예: 롯데렌탈, 금호타이어, 롯데컬처웍스, 네이버, 롯데하이마트, 롯데백화점 등) 브레인스토밍에 따라 활용의 여지가 충분히 느껴진다.
출처 매일유업 앱솔루트 인스타그램, 삼성전자 뉴스룸
예전 사례를 살펴보며 활용방식도 깨달을 수 있다. 음이온이 나오는 가습기에 소음과 부유물질을 없앤 청소기, 찌꺼기가 사라진 식기세척기 등 ‘원래부터 있던’ 제품을 묶어 ‘건강 시리즈’ 혹은 ‘베이비 헬스’ 라인으로 레이블링했다. 한 정수기 회사는 특정 지역 청소년의 건강을 챙기겠다며 정수기를 무료로 후원, 미래 소비자를 겨냥한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 캠페인을 펼친 경우도 있다. 자사의 고추장을 구입하면 수익의 일부를 청소년 폭력 예방, 즉 안전한 학교 만들기에 기부하겠다는 전략을 펼치기도 했다. 소비자들 아기의 똥을 분석해서 그들의 건강을 챙겨준 분유 브랜드도 있었다. 방식은 달라도 모두 ‘건강’을 마케팅에 기막히게 연결한 헬스커뮤니케이션 사례였다.
뉴질랜드의 유제품 브랜드 Anchor. 병원과 협업해 부상당한 아이들에게 우유를 무료로 증정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결국 사회 구성원 모두 언제나 일정 수준의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건강’을 ‘어떻게든’ 제품과 브랜드에 엮어 어필하는 전략은 향후에도 계속 히트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포스트 코로나가 아니라 ‘위드 코로나’가 예상될 정도로 불안정한 환경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러한 예측은 과거 상당수 기업의 돌파구로 회자되던 개념인 ‘공익연계 마케팅’ 즉 CRM(Cause-Related Marketing)을 떠올리게 한다. CSR, CSV(Creating Shared Value, 사회적 가치 창출)와 더불어 상당히 유행했고, 최근 한창인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의 시조 격인 패러다임이다. 약간의 변형이지만 CRM 대신 HRM(Health-Related Marketing) 그러니까 ‘건강연계 마케팅’은 어떨까 싶다. 사실 HRM의 유행은 이미 조짐도 충분하다. 칸느와 클리오를 포함한 유수의 페스티벌에는 헬스커뮤니케이션+광고의 조합이 부문에 상관없이 다수 관찰되기 때문이다. 필립 코틀러는 “이제 사랑받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고 했다. 사랑받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현시점에서는 소비자의 건강이 열쇠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