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손기은 / 먹고 마시는 매일의 일상을 문화로 여기며 글과 이미지를 기고하는 프리랜스 에디터. <힘들 때 먹는 자가 일류>라는 에세이를 출간했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하며 ‘멋’이 충만한 칵테일로 통용되는 마티니는 딱 두 가지 술로 만든다. 알코올 도수 40도 이상의 진, 향료나 약초로 향미를 낸 15도 내외의 베르무트. 두 가지 술의 비율에 따라 마티니의 이름이 달라졌고, 윈스턴 처칠은 오로지 진만 넣고 베르무트의 원산지인 프랑스를 향해 인사하는 것으로 갈음했다고 알려져 있다. 한마디로 독한 마티니를 즐겼다는 뜻이다. 우스운 상상이지만 윈스턴 처칠이 MZ세대로 태어났다면 반대의 마티니를 마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독한 술은 그저 쳐다만 보고, 약한 술을 즐기는.
MZ세대는 이제 취하기 위해 알코올을 즐기지 않는다. 시장의 두드러진 변화는 5~6년 전부터 시작됐고, 통계에 반영되기 시작한 건 3~4년 전부터다. 2017년 영국 정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MZ세대의 20.4%가 아예 술을 마시지 않는다 답했고, 2005년에 비해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답변한 비율은 16~44세에서 높게 나타났다. 2018년 닐슨이 발표한 통계에서도 알코올 산업은 성장이 거의 멈추었고, 미국 미식 잡지 <Bon Appetit>는 저알코올, 무알코올 시장의 성장률을 32%로 예측했다. 3배에 가까운 성장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MZ세대의 이와 같은 변화를 ‘웰니스(Wellness)’의 대두와 연관 짓는다. 건강을 생각하는 웰빙(Wellbeing)을 넘어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일컫는 웰니스는 MZ세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요소 중 하나다. 요가, 명상, 슈퍼푸드, 지속가능한 음식과 패션소비 등을 가치 있게 여기며 자기관리(Self-care)를 중요시하는 이들에게 숙취, 흥청망청, 건강 훼손, 인간관계 불안정 등은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다. 마약이나 담배는 물론이고 알코올도 더 이상 쿨한 것이 아닌 셈이다.
영국 브랜드 시드립(Seedlip). 칵테일 베이스 제품을 활용해 알코올이 들어가지 않은 칵테일인 모크테일(Mocktail)을 즐길 수 있다. / 출처 시드립 인스타그램 @seedlipdrinks
이런 변화를 일찌감치 읽은 무알코올 제품이 2015년에 처음 나왔다. 무알코올 맥주 몇 가지에 만족해야 했던 시장은 무알코올 증류주 ‘시드립(Seedlip)’의 등장으로 프로페셔널하게 시장의 변화를 이끌었다. 주류회사들이 대체재가 아닌 진화된 형태의 술로 무알코올을 인식하고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는 뜻이다. 시드립은 허브와 보태니컬이 들어간 백색 증류주인 진의 무알코올 버전이다. 향은 그대로 살리고 알코올은 뺀 이 술 덕에 주스 맛으로 가득했던 무알코올 칵테일이 아닌 어른의 맛이 나는 칵테일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이 브랜드의 성장을 본 주류 대기업 디아지오는 작년 8월 이 기업의 대주주가 됐다. 스미노프, 기네스는 물론 조니워커와 스코틀랜드 증류소를 다수 소유한 주류전문 회사가 무알코올 증류주에 뛰어든다는 신호탄이다. 이후 아페리티프(식전주) 전용 무알코올 와인 ‘애이콘(Aecorn)’, 무알코올 증류주 브랜드 ‘세더(Ceder)’ 등이 뒤를 이었다.
프리미엄 칵테일을 판매하는 바(Bar)도 변화를 받아들이고 저알코올, 무알코올 칵테일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너무 달지 않고, 독하지 않고, 시원하고 상쾌한 칵테일이 압도적으로 사랑받으면서 ‘저도주 칵테일 운동(Low-ABV Cocktail Movement)’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맥주 시장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세계 최대 맥주회사 에이비인베브(AB-Inbev)는 2025년까지 자사의 맥주 중 20%가량을 무알코올 맥주로 채우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버드와이저, 벡스, 칼스버그, 하이네켄의 무알코올 맥주 판매량은 갈수록 늘고, 클라우드 클리어제로, 카스 0.0 등의 국산 맥주도 판매량이 빠르게 치솟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집에서 간단히 즐길 수 있는 음료가 각광받고, 여기에 건강을 생각하는 소비가 더해져 무알코올 맥주 판매가 특히 더 활성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무알코올 시장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MZ세대의 또 다른 특징은 ‘일관적이지 않다’는 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무알코올 시장을 흔드는 힘이 어디로 옮겨갈지, 그 동력의 또 다른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헤아려보는 것도 시장의 흐름 파악에 도움이 된다. 그중 하나로, 알코올이 없는 술뿐만 아니라 색다른 대체 드링크류가 더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콤부차, 버섯 우린 엘릭서(Elixir), 선인장 물, 그리고 국내에는 불법이지만 미국과 홍콩 등지에서 건강재료로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CBD(칸나비디올)를 활용한 음료 등이 있다.
또 알코올을 즐기는 환경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도 살펴볼 만하다. 파인다이닝보다는 캐주얼 다이닝에서, 클럽보다는 집에서 술을 즐기고 의외로 양조장에 직접 가서 마시거나, 한낮의 카페에서 술을 자주 즐긴다는 점도 흥미로운 변화다. 알코올이 주는 고유한 즐거움을 대체할 다른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는 또 무엇이 대두될지, 알코올 없는 세상의 변화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