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사람들의 반응이라는 게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과연 크게 논란이 있을까 싶었던 것들이 최근 광고 불매나 심지어 방송 폐지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갑작스러운 이슈도 그렇지만 그 이상의 여론이라는 영향력을 다시 한번 느낀다. 그러면서 어떤 콘텐츠인지를 떠나서 노출만 잘 나오면 미디어의 기본적인 목적은 달성하는 것이라는 ‘노출량 게임’에 대한 반성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물론 온라인에 널리 퍼져 있는 지금의 논란에 참여하는 의미로 이 글을 시작하는 건 아니다. 다만 논란이라고 하는, 그 속에 존재하는 팩트를 해석하는 방식에 있어서 뭔가 자꾸만 놓치게 되는 “의외로 중요한 것”에 대해 얘기해 보고 싶다.
▲리처드 탈러의 『행동경제학』 (출처: 교보문고 홈페이지)
관련하여 생각나는 책이 하나 있다. 광고와는 동떨어진 듯하지만 맞닿는 점이 많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보게 됐던 책, 바로 『행동경제학』이다. 제목부터 따분하다고 느끼겠지만 실제로는 어떤 경제 관련 책보다 현실적인 질문들을 내세워 쉽게 읽히는 내용이다. 물론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분야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백 퍼센트 이해하고 봤던 건 아니지만 요는 일반적으로 합리적, 이성적 변수만 놓고 본다면 이렇게 판단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인간이 생각보다 심리적인 요인을 통해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게 된다는 점. 그리고 이를 통해 나타난 행동 양상을 가지고 좁게는 경제학, 넓게는 세상을 다시 이해하는 책이라고 보면 된다.
이 행동경제학은 여러 방면으로 특히 광고에도 재미있게 적용해 볼 수 있는데, 가장 먼저 콘텐츠 흥행 여부에 대한 예측이 대표적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미디어 일을 하며 느끼는 많은 것 중 하나가 콘텐츠의 흥행 여부를 예측하는 일이 ‘필요’하면서도 역설적으로 ‘불필요’하다는 점이다. 물론 판단할 줄 아는 좋은 눈이 없어 그럴 수도 있겠으나, 기존의 성공 공식을 기반으로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한 콘텐츠가 자꾸만 흥행에 미끄러지고 반면에 소수의 매니아들에게만 적합하다고 느꼈던 장르의 콘텐츠는 생각보다 대중적으로 성공하면서 예측에 대한 한두 번의 실망과 함께 이제는 포기하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콘텐츠에 대한 흥행 예측은 아마도 자산 투자의 개념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자산 투자의 대상은 그간의 누적된 변수들이 기존에 존재했던 대상을 결정하기 때문에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반면, 콘텐츠의 변수들은 누적 개념이라기 보다 매번 새로운 대상을 만나는 것에 가깝다. 때문에 많은 광고주들이 새롭게 나오는 특정 콘텐츠에 대한 흥행 판단을 요청하는 경우, 그 콘텐츠의 주요 변수만을 나열할 수 있을 뿐, 확신에 찬 판단은 섞지 않는 게 이제는 하나의 불문율과 같은 것이 되었다. 여기서 필요한 개념이 행동경제학에 나오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요인(Supposedly Irrelevant Factor, SIF)”일 것이다.
특히 최근 논란이 있는 콘텐츠들이 대체로 그렇지만 논란거리 자체는 콘텐츠의 핵심 변수가 아닌 경우가 많다. 보통 콘텐츠 하면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장르, 연출, 출연자, 작가 등의 변수는 이미 흥행의 성공 코드를 적용한 게 대부분이며, 이 흥행코드는 아마도 수치화된 하나의 콘텐츠 기획 모델로서 많은 의사결정의 산을 넘어 우리에게까지 도달한 것이리라. 그러나 예상치 못한 극의 상황 설정, 미술, 참여한 PPL 광고주 등에서 촉발된 논란들을 보고 있자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요인”이 실제로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는 예를 들자면 우리가 휴가지에서 맛보는 맥주에 비유해볼 수 있다. 맥주의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맥주에 들어간 재료와 관리, 유통 정도겠지만, 휴가지에서 만나는 맥주는 리조트에서 파는 맥주냐, 매점에서 파는 맥주냐에 따라서도 가격이 다른 경우가 있다. 이는 리조트에선 어느 정도 소비를 기꺼이 용인하겠다고 마음먹은 후 소비를 하기 때문에 약간의 비용을 더 감수해서라도 충분히 비용을 지불할 용이가 있지만, 매점에서 리조트와 같이 똑같은 맥주를 같은 가격으로 부른다면 우리는 이것을 아마도 ‘바가지’로 인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본질적인 변수는 분명히 동일하지만 파는 위치에 따라 비용 효용이 달라지는 것, 그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요인”의 역설적 중요성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사례가 아닐까?
이를 토대로 앞서 콘텐츠의 논란으로 돌아가 보면, 콘텐츠의 흥행 변수 중 드러나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생각하는 것이 우선시된 사회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국가 간의 왕래가 끊기고 떨어진 자국민의 자부심을 고취시킬 필요가 있는 코로나 이후의 지금, 외국의 자본과 외국의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의심받는 콘텐츠 사례들의 성급한 등장은 시청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콘텐츠의 방향성과는 달라, 분명 좋은 인식으로 와닿긴 어려울 것이다. 굳이 억지로 국뽕을 표방한 콘텐츠도 물론 눈살을 찌푸려지게 만들지만, 눈치 없고 성급하게 글로벌화된 콘텐츠의 표방도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지 않을까 예상한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요인”은 단순히 콘텐츠에서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광고 업계가 만드는 다양한 메시지에도 또 미디어 선택에도 이런 영향은 분명 존재한다. 특히 미디어의 경우 미디어의 효과를 증명하기 위한 영향력 조사의 방식을 보면 대부분은 다이렉트한 효과에만 매몰되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큰 변수를 염두에 둔 직접적인 효과성을 밝히는 것도 하나의 측정 모델로서 중요하겠으나, 기존까지는 별로 중요하게 인식하지 않던, 예를 들어 고가의 제품을 설득하는데 필요한 특정 미디어에서의 인식 효과 변화 등도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침대와 같은 고가 제품에 대해서 TV 광고를 한 제품과 그렇지 않은 제품을 비교, 얼마의 예산까지 감수하겠다는 것, 마치 앞서 휴가지에서 사게 되는 맥주처럼 어느 미디어를 통해 제품을 봤느냐에 따라 가격 효용에 대한 인식도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답이 항상 거창한 모델을 통해서만 찾아지는 건 아니니 말이다.
자료 출처: 행동경제학, 리처드탈러, 웅진지식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