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이야기는 가상세계의 나와 현실세계 나의 대화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안녕, 나! 너는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인생을 살고 싶어?
-음, 나는 주드로를 닮은 가구 디자이너로 덴마크에서 살고 싶어. 아침엔 자전거 뒤에 아이를 태우고 출근하고, 오후엔 시나몬롤과 커피를 마시며 주말 가족여행을 계획하는 소박하고 다정한 아빠로 살아갈래.
왜?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
-10년 전쯤 덴마크에 갔다가 문화충격을 받았거든. 그때 나는 살인적인 북유럽 물가에 허덕이는 가난한 여행자였는데, 고개를 들어 바라본 코펜하겐 사람들은 다 모델 같은 거야. 실수로 명품 화보 속에 잘못 들어온 쭈구리 오징어가 된 기분이랄까? 한국에선 나도 작은 키가 아닌데, 쭉쭉 뻗은 장신에 눈 돌아가는 미남미녀들을 보고 있자니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게 미안해질 정도였거든. 나는 그냥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맞아, 우리는 태어날 때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태어난 곳, 부모님, 가족, 몸, 얼굴, 목소리도, 심지어 이름까지도! 지금과 다른 나로 살고 싶다면 다음 생을 기약하는 수밖엔 없었지. 그런데 말이야, 이제 또 다른 나로 살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열렸다는 거 알아?
-그게 뭔데
그 기회의 이름은 바로 메타버스야.
메타버스는 가상을 뜻하는 ‘메타’와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가 합쳐진 말이야. 그야말로 초월적인 세계를 말하지. 이곳에선 내가 원하는 대로 전혀 다른 내가 되어 살 수 있어. 제페토, 로블록스, 동물의 숲 같은 걸 생각하면 쉬울걸.
- 오, 생각해보니 우리는 한발 앞서 메타버스를 경험한 민족이야. 바로 국민플랫폼이었던 싸이월드! 미니미를 만들고 가상의 방을 꾸미고 파도타기를 하며 온라인 속 세상을 즐겼던 기억나지? 그러고 보면 싸이월드는 정말 앞선 SNS였어. 도토리라는 가상화폐까지 구축된 진정한 메타버스였으니까! 반가운 소식은 싸이월드가 곧 우리 곁에 돌아온다는 거야. 이번 미니미는 걸어 다니는 3D가 될 거라니 벌써 기대된다.
메타버스에서 우리는 하나의 모습으로 살지 않을 거야. 래아(Reah)나 로지(Rozy)처럼 얼굴과 몸이 모두 3D인 가상의 인물로 살 수도 있고, 하츠네 미쿠(Hatsune Miku)나 이루다처럼 애니메이션 캐릭터도 살아갈지도 몰라. 아니면 실제 얼굴 데이터를 기반으로 AI가 새롭게 만들어준 가상얼굴을 고를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
- 가상얼굴도 쇼핑하는 날이 오려나?
올 초 가수 포스트 말론의 버추얼 콘서트 봤어?
- 포켓몬 탄생 25주년을 기념하는 버추얼 콘서트 말이지? 당연히 봤지! 다채로운 게임 캐릭터들과 함께 가상의 공간을 여행하며 노래하는 포스트 말론을 보니 그곳이 또 다른 현실인 것처럼 가슴이 웅장해지더라. 이전에도 게임 속에서 콘서트를 연 사례는 있었잖아. BTS는 포트나이트에서 신곡 다이너마이트를 공개했고, 트래비스도 가상 콘서트를 열었으니까.
블랙핑크의 제페토 팬미팅에는 4천6백만 명이 다녀갔더라. 거의 우리나라 인구수만큼 참여한 거니 정말 대단해!
- 현실 속 가수가 가상의 세계로 넘어가기도 하지만 가상세계 속 캐릭터들이 현실세계에 등장하는 경우도 있어. 바로 라이엇 게임이 만든 케이팝 아이돌 ‘K/da’. 놀라운 건 K/da를 기획한 게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이라는 거야. 정말 K-pop의 인기가 대단하긴 한가 봐!
메타버스는 학교나 회사에서도 의미 있게 활용되고 있어. 가상 공간에서 졸업식과 입학식을 한다든지 버추얼 미팅을 하는 거지. 마인크래프트에 UC버클리와 똑같은 가상 대학교를 만들어 졸업식을 한 사례나 세계 최초로 가상 입학식을 한 순천향대의 사례도 흥미로웠지. 이제 곧 원격 화상회의가 아니라 가상 오피스로 출근하는 날이 올지도 몰라. 3D 홀로그램과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하는 ‘스페이셜’ 같은 플랫폼에서 같은 공간에 실제로 존재하는 듯한 환경을 구현할 수 있거든.
요즘은 패션계에서도 메타버스가 인기야. ‘모여봐요 동물의 숲’에서 마크제이콥스나 발렌티노의 신상 옷을 자유롭게 입어볼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지난달에 구찌는 가상현실 신발인 ‘구찌 버추얼 25’를 출시했다니까! 증강현실로 마음껏 신어보고 가질 수 있는 가상 명품을 판매한 거지. 최근엔 가상 의류를 거래하는 플랫폼인 Digitalax라는 곳도 생겼어. 이곳은 NFT를 기반으로 거래하는 곳이야. 아, 요즘 가장 핫한 키워드인 NFT 얘기 많이 들었지?
- 요즘 NFT 때문에 난리더라! 얼마 전엔 직접 살지도 못하는 가상의 집이 5억6천만 원에 팔렸다며? 그 집도 가상자산 NFT였어! NFT라고 해서 처음엔 북미자유무역협정 같은 건가 했거든.
NFT는 Non-fungible token의 약자로 ‘대체 불가능한 토큰’이라는 의미래. Jpg, gif, pdf, mp4 같은 디지털 컨텐츠에 고유의 인식값(일종의 인증서)을 부여하는 거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복제가 금지되고 거래내역이 저장돼. 가상화폐의 경우 실제 화폐처럼 토큰값이 변하지 않지만, NFT는 고유한 토큰값을 갖기 때문에 자산마다 다른 값을 가질 수 있어.
- 오, 어쩌면 이 글도 NFT가 될 수 있겠네?
맞아, 네가 엄청나게 유명해진다면 가능하겠지! NFT가 이슈가 된 건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의 작품인 ‘The First 5,000 Days’가 7백85억 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에 경매됐기 때문이야. 이 작품은 작가가 13년간 매일 기록한 5천 장의 사진을 하나로 모은 거야. 비플은 이 jpg 하나로 세계에서 3번째로 비싼 작품을 판매한 작가가 됐어. NFT의 인기가 워낙 뜨겁다 보니 한 블록체인 기업은 뉴욕 갤러리에서 뱅크시의 작품 ‘Morons(멍청이)’를 산 후에 온라인 생중계로 이 작품을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대. 실물 작품이 사라져야 디지털화된 NFT 작품의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이라나.
-그런데 NFT는 예술가와 돈 많은 부자들 얘기 아냐?
똑똑한 마케터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지! NFT는 발 빠르게 마케팅의 세계로 뛰어들었어. 타코벨은 5명의 작가와 협업해 타코를 주제로 한 NFT 작품을 만들었고 라리블이란 NFT 거래 플랫폼에 올렸어. 개당 0.001이더리움(약 2천 원)이었던 이 작품들은 최고 0.4이더리움(약 79만 원)을 기록했다고 해. 수익금은 전부 타코벨 재단에 기부되어 청소년 교육에 쓰인다고 하니 마케팅 잘한 듯. 피자헛도 픽셀로 만든 피자를 NFT로 만들어서 라리블에 올렸어. 이름하여 대체 불가능한 피자(Non figible pizza)! 프링글스도 새로운 가상의 맛, 크립토 크리스프 맛 감자칩을 NFT로 판매하겠다고 나섰는데, 이 MP4 작품은 50개 한정 수량으로 0.0013이더리움(약 2달러)으로 출발해 1.1이더리움(2,243달러, 한화 약 250만 원)까지 치솟았다고!
- 우와! 나도 NFT로 올릴 거 뭐 없나?
갑자기 옛날 얘기 좀 하자면, 나 사실 인터넷 카페라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말 그대로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카페였는데, 지금 PC방 같은 곳이라고 보면 돼. 거기에 컴퓨터 게임을 즐기러 오는 학생들도 많았지만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찾아와서 이메일도 쓰고 여러 가지 정보를 검색하는 사랑방 같은 곳이었어.
- 와, 조상님!
(못 들은 척) 아직도 기억나는 게 그때가 크리스마스 즈음이었거든. 한 외국 언니가 나를 불러서 뭔가를 보여주는데, 컴퓨터 안에서 크리스마스 카드가 움직이는 거야. 파란 화면 속에 하얀 픽셀로 산타클로스와 루돌프가 달리고 있더라고. 그땐 정말 감동받았거든. 한메일도 없고 핫메일만 있던 때라 처음으로 모르는 영어 찾아가며 이메일이란 걸 만들었던 기억도 있어.
- 맞아. 인터넷이 처음 나왔을 때 세상이 이렇게 달라지리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지. 월드와이드웹(WWW)을 처음 만든 팀 버너스리 경도 아직 65세밖에 안 됐다고! 이렇게 단기간에 인류는 엄청난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해가고 있는 거지. 5G와 블록체인 기술이 결합하면 앞으로 어떤 세상이 다가올지 그 무한한 가능성을 나 같은 범인은 상상할 수도 없어.
단 하나 확실한 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는 거지!
- 언젠가 인류는 원시의 삶으로 돌아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오직 놀이와 생존을 위해 살았던 그때로 말이야. 눈을 뜨면 가만히 침대에 누워 학교도 회사도 문화생활도 모든 시간을 가상의 세계에서 보내는 그런 삶. 그렇다면 끔찍하게 지루할 수도, 놀랄 만큼 재미있을 수도 있겠다!
부디 미래는 잿빛 디스토피아가 아닌 장밋빛이길!
- 메타버스에선 누구나 평등하게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