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의 CEO인 사티아 나델라는 코로나로 인해 “2년치 디지털 전환이 단 두 달 만에 일어났다”라고 말했는데, 최근 몇 달간 직접 라이브커머스 현장에 있었던 나는 2년치에 해당하는 변화가 단 며칠 만에 일어나는 신비한 경험을 했다. 그 틈바구니에서 그래도 종합광고대행사에선 처음으로 ‘해봤다’는 한 사람으로서, 나는 두려움 반 두근거림 반으로 감히 라이브커머스와 광고 회사의 미래를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이곳에선 모두가 비기너다
국내 라이브커머스 시장의 규모는 2020년 기준 4,000억 원대, 2023년에는 10조 원대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홈쇼핑을 단지 모바일과 라이브로 옮겨 놓았을 뿐인 것 같은데, 이렇게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도 둘째도 답은 코로나다. 장기화되는 코로나로 장보기조차 스마트폰으로 하는 언택트 경제가 급부상했고, 손님 얼굴을 직접 대면하기 힘든 이 시국에 뭐라도 해보겠다는 심정으로 대형 유통 업체부터 완도의 전복 파는 어민들까지 모두 뛰어들어 판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립(Grip), 보고(VOGO) 같은 라이브커머스 전문 플랫폼부터 쓱라이브, 100라이브, 티몬, 쿠팡라이브 같은 유통 플랫폼, 네이버와 카카오, 틱톡, 배달의 민족, 심지어 MBC 같은 방송사까지, 이제는 안 뛰어든 곳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지경이다. 아직 절대 강자는 없는 초기 시장이기 때문에 이곳에선 모두가 비기너(Begginer)일 뿐, 빅 위너(Big winner)가 될 기회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쇼핑이란 콘텐츠
세상에 쇼핑만큼 재밌고 흥분되는 행위가 또 있을까? 거기에 라이브만이 줄 수 있는 생동감과 묘한 진정성, 무엇보다 SNS처럼 소통하는 즐거움이 더해지면서 라이브커머스는 커머스를 넘어 점점 하나의 콘텐츠처럼 인식되고 있다. 마치 유튜브를 보듯 라이브커머스를 보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헤라 블랙쿠션 라이브커머스 ‘론칭 프레젠테이션 쇼’
그러다 보니 셀럽, 유명 연예인이 등장하거나 마치 방송 프로그램처럼 기획된 ‘예능형 라이브커머스’가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제일기획이 진행한 헤라 블랙쿠션 라이브커머스도 ‘론칭 프레젠테이션 쇼’ 라는 컨셉으로 유명 뷰티 인플루언서들이 제품의 특장점을 경쟁PT 하면서 판매 대결을 벌이는 것으로 기획되었다. 결과도 성공적이었다. 신선하고 고급스럽다, 라이브커머스도 이렇게 할 수 있구나, 라는 반응과 함께 26만 명이 시청했다.
이게 딱 3주 전 일이다. 그런데 이제는 예능형 라이브커머스가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다양하고 참신한 기획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가수 이진혁은 컴백 쇼케이스를 아예 네이버 쇼핑 라이브에서 진행해 팬들과 직접 소통도 하고 앨범도 품절시켰다. 북토크에 커머스를 입힌 ‘책방 라이브’도 인기다. 동네 책방에 작가나 가수, 출판사 대표 등이 등장해 책도 소개하고 팬들과 댓글로 대화를 나눈다.
프로축구 울산현대가 진행한 라이브커머스 (출처: 울산현대)
프로축구 울산현대는 K리그 구단 최초로 라이브커머스를 진행했고, 채널A의 ‘무작정 커머스’, MBC의 ‘폐업요정’은 방송채널을 아예 라이브커머스 플랫폼으로 만들어 버렸다. 처음 라이브커머스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광고만 하던 우리가 할 수 있을까’ 다들 걱정이 많았는데 그건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불안함이 일뿐이었다. 제품을 콘텐츠로 바꾸는 일을 광고 회사만큼 잘 할 수 있는 곳은 없기 때문이다.
전지적 마케팅 시점으로 라이브커머스를 본다면
그럼 마케팅 관점에서 라이브커머스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첫째, TV보다 정확한 타깃팅이 가능하다. TV가 매스를 대상으로 대량으로 뿌려진다면, 라이브커머스는 해당 제품군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미디어이기 때문에 정확한 타깃에게 정확한 메시지가 도달될 확률이 높다. 둘째, 퍼포먼스 마케팅의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다. 일단 제작비가 30초 필름 한편 만드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데 구매전환율은 상대적으로 높다. 라이브커머스를 본다는 것은 물건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는 것이 전제인 데다, 그 자리에서 바로 매출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세 번째, 팬덤 마케팅을 하기에 적합한 툴이다. 댓글 다는 손님들의 아이디만 20분 넘게 불러주는 옷 가게 사장님이 있다. 어떤 사장님은 텀블러를 팔면서 고양이에 관한 질문도 받는다. 그렇다고 그들이 웃고 떠들기만 하고 물건을 못 파느냐? 아니다. 손님으로 들어왔던 사람들이 셀러와의 소통을 통해 팬이 되고, 이번엔 안 사도 다음에 또 들어와 ‘웃고 떠들면서’ 물건을 사 간다. 라이브커머스를 통해 고객이 충성고객으로 바뀌는 것이다.
헤라 블랙쿠션 라이브커머스 ‘론칭 프레젠테이션 쇼’ 촬영 현장
제일기획이 진행했던 헤라 블랙쿠션 ‘론칭 프레젠테이션 쇼’를 예로 한번 들어보자. 라이브를 진행했던 네이버 쇼핑 라이브의 주요 고객층이 헤라 블랙쿠션 타깃과 일치했고 26만명이 라이브를 시청했다. 정확한 타깃 26만 명에게 정확한 메시지가 한 시간 동안 전달된 것이다. 또한, TVC 필름 한편 제작비와는 비교할 수 없는 비용으로 방송을 진행해 35분 만에 완판, 1억 3천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방송 시간 동안 직접 소통을 경험했던 팬들은 두 번째 블랙쿠션 라이브커머스 매출에도 영향을 미쳤다. 딱 한 시간 동안,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남는 장사를 한 것이다.
마케팅을 넘어 비즈니스가 될 수 있을까?
지난 몇 달간 라이브커머스를 경험한 결과 확실히 광고 회사는 이 분야에서 유리하다. 플래너와 카피라이터들은 어떤 말로 물건을 팔아야 재미를 볼지 그 어떤 예능 작가보다 잘 알고 있었고, 아트 디렉터들은 무대를 어떻게 구성해야 차별화될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다만, 장기적인 비즈니스가 되려면 고민해야 할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 저비용, 고효율 시대에 광고 회사의 인건비와 퀄리티는 회당 손익만 따진다면 한도를 초과하기 쉽다. 애초에 라이브커머스 조건에 맞춰 박리다매하는 건 광고 회사로서도 광고주로서도 수익이 크지 않을 수 있다.
때문에 단기적인 매출, 성과보다 장기적으로 고객과 소통하며 충성고객을 탄탄하게 구축하는 브랜딩의 툴로서 라이브커머스를 바라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미 한 대형 브랜드는 아예 커머스를 배제한 예능형 라이브커머스를 고민하고 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싶겠지만 ‘사람들의 눈이 모이는 곳에 돈도 모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움직임이 얼마나 영리한 선택인지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