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계에는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 중 대형 통신 광고주 프레젠테이션에서 여러 개의 귤을 한꺼번에 던진 용감한 선배에 관한 이야기는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는 에피소드다. 던진 것이 귤이 아니라 골프공이었다느니 광고주 임원의 머리에 맞았다느니 하는 일부 과장과 와전까지 생긴 것을 보면 말이다. 요즘으로 치면 바이럴 요소를 두루 겸비한 성공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보세요. 여러 개의 메시지를 던지면 소비자는 결국 하나도 제대로 받지 못할 겁니다. 단일 메시지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정숙한 회의실을 순식간에 우당탕탕 아수라장으로 만든 후 던진 그의 한마디가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의 뇌리에 착 붙는 스티커 메시지가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말이 많은 사람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진다. 많은 말을 듣긴 했는데 어떤 이야기였는지 기억은 하나도 안 나고 들은 이야기를 처리하느라 엄청난 에너지를 쏟은 뇌만 피로해진다. 요즘 나는 심리학에서도 가장 핫하다는 ‘인지심리학’에 꽂혀 있다. 뇌의 정보처리 과정 쉽게 말하면 생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원리를 연구하는 학문인데, 결론부터 말하면 인간의 뇌는 생각보다 게으르다. 이를 아주대 김경일 교수는 ‘인간은 인지적 구두쇠’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인지심리학자들에 따르면 뇌는 원래 생각하기를 귀찮아한다. 단순하게 일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에너지를 아끼는 쪽으로 움직인다. 자차로 출퇴근하다 보면 마치 자율주행차를 탄 것처럼 어느새 도착했다고 생각하는 날이 있는데, 한번 루틴이 생기면 뇌는 이 일들을 거의 무의식적으로 처리한다고 한다. 선택지가 많으면 결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단일 메뉴로 승부하던 식당이 메뉴를 늘리면 오히려 장사가 더 안되는 것도 생각하기 싫어 보다 더 경로를 단순화하려는 우리의 뇌 때문인 것이 재미있다.
머리는 버리고 꼬리는 끊어버린다는 뜻인 사자성어인 '거두절미(去頭截尾)'는 한마디로 요점만 남기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없애 버린다는 뜻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할 정도로 거두절미 핵심만 남기지 않으면 타깃 컨슈머에 대한 메시지 도달률은 순식간에 떨어지고 광고 효율은 나빠진다.
광고의 힘은 바로 이 핵심 메시지인 ‘Concept’에서 나온다. 올바른 외래어 표기로는 '콘셉트'가 맞지만 광고 현장에서는 보통 '컨셉'이라고 부르는데 ‘what to say’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단일 메시지의 중요함도 중요함이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이 더 큰 고민이다. 매일 눈 뜨면 밥 먹듯이 그 고민을 한다. ‘핵심만 직관적으로 전달’하면 될 일인데 그게 세상 제일 어렵다.
지금은 흔히들 쓰고 있는 '직관적(直觀的, intuitional)'이라는 형용사는 CEO였던 스티브잡스가 애플에서 출시한 신제품을 설명할 때 즐겨 쓰던 워딩이었다. 제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 혹여 3살짜리 어린아이일지라도 몇 번 만져보면 바로 원리를 이해하고 터득해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쉽고 편리한 기능이어야 한다는 애플의 철학과 애플만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담은 핵심 메시지인 것이다.
경우에 따라 빅모델 전략은 매우 효율적인 마케팅 툴이 된다는 걸 부인하긴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 역시 한 사람 한 사람 잘 관리된 하나의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3초 안에 결정이 난다는 첫인상의 법칙처럼 직관성이 주는 강렬한 임팩트는 첫눈에 인지도는 물론 호감도까지 끌어올린다.
모든 마케팅과 브랜딩은 ‘존재의 이유’를 밝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맞는 말이다. 게다가 후발주자일 때 그 브랜드가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더 강력하고 더 명확해져야 한다. 선택지가 넘쳐나는 페이(간편지급결제)시장에 오프라인, 온라인, 포인트리, 상품권, QR, 해외 결제는 물론 송금, 멤버십적립, 소비관리까지 모두 가능한 KB Pay는 궁극적으로 카드를 중심으로 은행, 보험, 증권 등 전체 계열사의 디지털 결제를 연동시키겠다는 포부를 가진 금융업계 최초 오픈형 통합금융플랫폼이다. 때문에 역대 KB국민카드 모델과 오픈형 페이의 의지치를 함의한 모델들까지 소환하고 비틀즈의 ‘Come Together’를 삽입해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자 했다.
KB Pay의 역대급 캠페인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근소한 물리적 차이를 주된 심리적 차이로 확대하라’는 마케팅 법칙이 떠오른다. 대부분의 마케팅은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름 18cm 소비자의 뇌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나의 장점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고객의 마음을 얻고 이들이 구전을 확대하여 브랜드의 근소한 물리적 차이를 주된 심리적 차이점으로 확대시키는 것. 그리하여 후발주자로서 브랜드를 정인지시키고, 필요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그 브랜드를 떠올리게 하는 것. 생각해보면, 소비자의 머릿속에 ‘저장’되는 일은 실로 어렵고 또 위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김미경 오리콤 IMC Creative 2HQ 제작본부장]
▶ 광고 참조
- KB PAY 30초 https://youtu.be/X5ZJUe1aU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