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윤진 / 대홍기획 CS3팀, 서울라이터즈 레터 발행인
* 이상한 시대에 떨어진 어느 카피라이터의 기록
바야흐로 관종의 시대. 이상하고 괴상해야 선택받는 세상이다. 밋밋하고 심심한 것, 개성 없고 따분한 것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는다. 웃기거나 울리거나, 좋아요와 공유하기 버튼을 누를 가치가 없는 컨텐츠는 이제 본인의 일기장에나 적어야 하는 시대다. 나는 지금 전쟁터 한가운데 있다. 이상한 컨텐츠들의 전쟁. 맛집들이 인스타그래머블한 인증샷용 플레이팅에 집중하듯 스크롤을 내리다 손가락을 멈추게 하는 비주얼, 3초가 지나도 스킵버튼을 찾지 않게 하는 마라맛 컨텐츠의 전쟁 속에 나는 서 있다.
2021년 6월 1일
이상함을 넘어 요상한 패션으로 군무를 추던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어느새 월클의 반열에 올랐다. 세계적인 뮤지션 콜드플레이의 러브콜로 신곡 ‘하이어 파워(Higher Power)’ 뮤직비디오에 등장했고, 구찌가옥 오픈 영상에서는 구찌가 이탈리아 명품이 아닌 한국 전통 브랜드였나 싶게 찰떡 소화해냈다. 조선의 멋이 이토록 세계를 흔들고 있다니 가슴이 웅장해지며 국뽕이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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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재활용해 발명품을 만드는 컨셉의 유튜버 '발명! 쓰레기걸' / 클릭 시 영상 재생
2021년 6월 4일
‘발명! 쓰레기걸’ 영상을 봤다. 진지하게 이 일을 접어야 하나 생각 중이다. 미용실 마네킹 두상으로 도시락을 싸서 피크닉을 가거나, 친구의 뇌를 통속에 넣어보고, 감자튀김 광고를 위해 감튀교를 만들거나, 노래 홍보차 나온 가수의 얼굴도 안 보여준 채 쓰레기 보이라는 별칭을 붙여준다. 뭐 이렇게 은은한 광기를 가진 천재들이 다 있는 거지? 내가 생존하려면 유튜브를 폭파해야 한다.
2021년 6월 11일
이름부터 병맛인 돌고래유괴단은 초창기부터 팬이었다. 광고를 즐기는 컨텐츠로 격상시킨 주역이며 고급진 병맛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아이디어는 영화를 기반으로 나올 때가 많은데, 그도 그럴 것이 영화를 만들던 사람들이다. 단편영화에서 훈련된 스토리텔링을 보여주는 그들의 서사는 일반적인 광고를 벗어나 돌고래유괴단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최근 제작한 이말년, 주호민 주연의 Y드립 시네마에서는 신세계를 패러디한 ‘침세계’, 영화 백두산을 패러디한 ‘민둥산’을 선보였다. 마지막 대사에서 아이디어가 고갈됐다며 보는 이들의 재치 있는 드립을 공유해달라는 멘트를 남겼는데, 영상마다 1,100여 개 넘는 재미있는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에게 이야깃거리를 제공하고 놀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전략. 절대 날로 먹으려는 게 아니라는 말이 이해가 간다. 날로 먹는 게 아니라 날 새도록 전략적으로 제작한 영상인 것이다.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의 광고 Don't Aviation and Mint/ 클릭시 영상 재생
2021년 6월 16일
해외에서도 자꾸 이상한 것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제일 이상한 사람은 라이언 레이놀즈다. 왜 잘나가는 할리우드 배우가 광고회사를 차리고 난리? 연기도 잘하는데 외모도 출중한데 성격도 호감인데 같이 사는 사람이 블레이크 라이블리인데, 애비에이션 아메리칸 진이라는 주류회사와 통신회사 민트모바일도 운영하면서 맥시멈 에포트라는 광고회사까지 만들 건 또 무언가. 심지어 잘 만들기까지 하니 세상은 불공평하다. 본인이 사장이라고 두 회사가 콜라보레이션 한 광고까지 만든다. 애비에이션 진을 마시고 민트모바일로 문자를 보내면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예산절감형 융합광고인데, 반응이 좋다. 제거 대상이 하나 더 생겼다.
온라인동영상플랫폼(OTT) 디즈니플러스에서 로키 시리즈 방영을 기념해 만든 시리얼/ 클릭 시 영상 재생
2021년 6월 21일
OTT 전쟁이 뜨겁다.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아마존 프라임, HBO max, Hulu… 디즈니플러스에서 새로 선보이는 마블 스튜디오의 로키 시리즈가 약을 빨았다. 럭키 참스라는 시리얼과 함께 8달러짜리 로키 시리얼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럭키 참스의 유명한 슬로건인 ‘magically delicious!(마법처럼 맛있어)’를 ‘mischieviously delicious!(장난스럽게 맛있어)’로 바꾸는 센스… 하… 나는 파맛첵스와 함께 아이디어를 구상해볼까?
2021년 6월 22일
미친 듯이 마케팅을 잘하던 오레오가 드디어 미쳤다. 지구 종말을 대비해 노르웨이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에서 영감을 얻은 국제 오래오 저장고를 만들더니, 이제 외계인에게 선물할 외계인용 오레오까지 만들었단다. 거대한 미스터리 서클과 함께 외계어가 써진 오레오 패키지. 대체 어디까지 갈 작정인가. 오레오!
이탈리아 예술가 살바토레 가라우가 만든 무형 조각상 'Io Sono'('I am'의 이탈리아어) / 클릭 시 영상 재생
2021년 6월 25일
이탈리아의 한 미술작가가 눈에 보이지 않는 조각상을 한화 2,000만 원에 팔았다. 공기와 영혼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이 조각상은 부다상으로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 작품을 구매한 사람에게는 작가의 인증서가 전달됐다. 어린 시절 읽었던 벌거벗은 임금님은 시대를 앞서간 현대미술 퍼포먼스였던 것인가.
원래도 광고일이라는 게 살짝 미쳐야 정상 취급을 받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전방위적으로 이상한 것들이 쏟아지는 시대의 한가운데에서 어디로 배의 앞머리를 향할까 두리번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자극을 더해 눈에 띄게 나아갈 것인가, 정체성을 지키며 브랜드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구축할 것인가. 두 가지를 충족시키는 이상한 반전은 무엇일까. 고민하는 지금도 이상한 것들은 몰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