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윤_뉴즈 & 메이저스네트워크 콘텐츠 총괄 CCO
‘엄마 친구 아들’. 한때 유행했던 단어다. 부모님이 자꾸만 이렇게 말한다는 뜻이다. “옆집 누구네 아들은 말도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해서 ㅇㅇ대학도 척척 붙는다는데~ 누구네 자식은 취업해서 벌써 부모님 용돈도 준다더라~” 소위 엄친아를 기준으로 비교당할 때마다 나도 비슷한 나이에 그만치 이뤘어야 했나, 그런 자괴감이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이제는 우리가 먼저 엄친아를 찾는다. 다만 부모님이 생각하는 근사함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근사함에 초점을 맞춘다. 비록 오늘 내 하루는 볼품없었을지 몰라도, 지금 내 폰 화면으로 보이는 저 사람의 일상은 부지런하니까.
보통 사람의 평범한 ‘열심’이 좋아
대학생 브이로그 에이스ACE 님의 갓생 브이로그 (출처: 에이스ACE 유튜브 채널)
‘엄친아에게 자발적으로 자극받아 다시 힘내보자’는 마음가짐, 일명 ‘갓생살기’ 열풍이다. 갓생. ‘신’을 뜻하는 영단어 God(갓)과 인생(生)을 합성한 신조어로 흔히 대단한 무언가에 ‘갓’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현상과 일맥상통한다. [갓+아이유=갓이유]가 대표적이다. 다만 갓생은 특정 유명인이 아니라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나도 따라 할 법한 보통사람의 평범한 ‘열심히’에 따라붙는 표현이다.
특히 갓생살기는 고등학생부터 2030세대 유튜브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당장 유튜브 검색창에 ‘갓생살기’를 쳐보시라. 의대생이 되고 싶은 고등학생의 갓생살기 프로젝트, 아침 6시에 일어나는 갓생살기 도전, 방학도 알차게 보내는 취준생 갓생 브이로그 등등. 정말 다양한 종류의 갓생살이를 만나볼 수 있다.
내 안의 밸런스를 찾아가는 삶, 갓생
어째서 이들은 ‘갓생살기’ 트렌드를 좇는 걸까? 대부분의 기사에서는 2030세대가 ‘코로나 세대’기 때문에 갓생살기에 매료됐다고 본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고, 쉼과 업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그 안에서 질서를 찾기 위해 스스로 ‘갓생’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갓생살기는 실제로 ‘밸런스’를 중시한다. 단순히 커리어를 위해 자기계발에 전념하는 것과 달리 계획을 세우 돼 ‘지킬 수 없음’을 인지한다. 2020년 이후로 명상이나 러닝(달리기), 루틴과 리츄얼(나만의 의식) 등 나 자신을 다스리는 라이프스타일이 대두된 것과 마찬가지로 갓생살기도 내 삶의 기준과 질서를 찾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갓생살기가 2030 세대의 일상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금 더 파고들어 고민해 보면 어떨까. 이번 기고에서는 크게 3가지 가설을 세운다. ①롤모델의 해체 ②연결, 공유, 모방 ③정체성 만들기가 어떻게 2030이 온라인 공간에서 갓생살기 트렌드를 형성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갓생 열풍 원인 1 : 롤모델의 해체
갓생 열풍 원인 1 : 롤모델의 해체
갓생살기 롤모델로 유명한 김유진 변호사 유튜브 채널(출처: 김유진 미국변호사YOOJIN 유튜브 채널)
실망의 시대다. 내가 가장 아꼈던 아이돌이 학폭 논란 때문에 결국 그룹에서 탈퇴했다. 내 학창 시절을 밝혔던 그 배우가 알고 보니 데이트 폭력 가해자였다. 신망 받던 정치인이 성폭력 가해자로 도마에 오르고, 이미지 좋은 인플루언서가 뒷광고 사과 영상을 게시했다. 내가 평소에 쓰던 플랫폼이 고발 유튜버로부터 저격을 받기도 한다.
흥미로운 설문 결과가 이런 상황을 뒷받침한다. 초등학생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스쿨잼 설문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44.6%가 롤모델이 없다고 답했다. 대학생 713명 중 절반가량이 “보고 배울 롤모델이 없다”고 말했던 알바몬 설문조사 이후 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젊은이들 절반가량은 ‘인생의 롤모델이 없다’고 토로하는 것이다.
반면 그 어느 때보다도 롤모델이 필요한 현실이기도 하다. 2021년 문화일보 설문에 따르면 MZ 세대 응답자의 59.4%가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봤다. 예전만큼 대학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 하지만 학력이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공존하는 상황. ‘이렇게 하면 된다’던 규칙이 희미해진 자리에 최소한의 레퍼런스가 절실해진다.
갓생 열풍 원인 2 : 연결, 공유, 모방
유튜브 채널 YE:SEUL예슬님의 공부하는 갓생살기 (출처: YE:SEUL예슬)
희망의 시대다. 소셜미디어는 실망스러운 이면을 들추기도 하지만, 내 평생 만날 리 없었던 귀인을 발견하는 창구 역할도 해준다. 유튜버 ‘밀라논나’나 배우 윤여정 등 시니어부터 마이크로 인플루언서까지. 그들의 스토리와 콘텐츠로부터 삶의 실마리를 발견하는 식이다. 오죽하면 ‘팔로인’(Follow + 人)이라는 트렌드 용어가 생길 정도였다.
다만 갓생살기는 약간 다르다고 생각한다. 갓생살기에는 ‘프로젝트’라는 표현이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다. 즉, 소셜미디어를 통해 연결된 누군가의 삶을 관찰하고 ‘멋지다’는 영감을 얻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삶에서 자극을 받아 나도 그 삶을 따라해보는 ‘모방’을 추구하는 것이다. 남의 갓생살기 프로젝트를 보고 내가 움직이는 구조다.
그래서 갓생살기 트렌드에는 ‘평범함’이 눈에 띈다. 대단히 유별나거나 애초에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 아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목표치만큼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한다. 갓생을 살기 위한 내 일상을 보여주니 나와 연결된 평범한 타인이 ‘힘이 난다’고 댓글을 단다. ‘갓’생이지만 갓’생’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갓생 열풍 원인 3 : 정체성 만들기
갓생살기의 대표 루틴 미라클 모닝 요가하는 브이로거 우나님 (출처: 유뷰트 채널 우나 oona)
특히 갓생살기 콘텐츠들을 찾다 보면 특유의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걸 목격한다. 감성 브이로그 스타일로 편집된 갓생살이 유튜브에는 ‘이런 감성 너무 좋다’ ‘위로받고 간다’는 반응이 모인다. 코믹한 갓생살기 영상에는 또 다른 분위기가 조성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오늘 대충 살았지? 내일은 갓생 살자’는 특유의 시크함이 묻어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군집을 형성하는 움직임을 두고 ‘정체성을 만든다’고 표현한다. 1번에서 언급했듯이 우리가 공고하다고 생각했던 정체성이 점차 약화하는 걸 보고 들은 세대에게는 새로운 이정표가 필요하다. 그 이정표는 대개 특정 집단에 소속되면서 자연스럽게 구전받게 된다. 나 자신과 내 정체성을 고민하고 동질감을 좇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고민을 하는 2030 세대에게 갓생살기는 아노미 상태에도 중심을 찾아 갓생을 살아보려는 정체성의 징표다. 모든 2030 세대가 갓생에 신경쓰는 게 아니듯 ‘막막하지만 균형 있게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갓생살기 콘텐츠 주위에는 그런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향기에 이끌리듯 모여든다. ‘갓생’을 추구하는 커뮤니티의 등장이다.
마지막으로, 갓생살기 트렌드에서 ‘정반합’을 떠올린다. 코로나 이전에도 혼란스러웠던 세상은 코로나 이후 앞도, 끝도 보이지 않는 미로가 됐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기에, 살길이 먼 2030 세대는 본능적으로 갓생을 좇는 게 아닐까? 난세에 영웅이 탄생하는 것처럼 번잡한 내 인생에 작은 영웅이 되기 위해 ‘건강한 균형’을 모색하는 모습이다.
김지윤
YTN 모바일 PD, 아웃스탠딩 기자를 거쳐 2020년 뉴즈, 메이저스 네트워크를 공동 창업했다. 현재 Z 세대 타깃 숏폼 전문 MCN ‘메이저스 네트워크’에서 콘텐츠 및 운영 총괄을 맡아 기획, 제작, 교육, 관리와 사업 등을 수행하며, 전반적인 콘텐츠 총괄 역할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