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윤진 / 대홍기획 CS3팀, 서울라이터즈 레터 발행인
한동안 광고 제작 브리프를 장악했던 용어 ESG 대신 요즘은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는다. 메타버스란 쉽게 말해 아바타를 통해 경험하는 또 다른 가상 세계, 사실 뭐 그렇게 새로운 개념도 아닌데 무슨 이유로 메타버스가 이렇게 핫해졌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름! 메타버스라는 이름에서 오는 임팩트 때문이 아닐까? 가상현실이란 말은 어떤가. 현실이 아닌 가짜 같은 세계, 약간 가상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무려 ‘초월’이라는 뜻의 메타와 ‘우주, 세계’라는 유니버스가 만나니 마치 내가 모르던 새로운 대우주가 활짝 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실제로 이 단어의 위력은 대단해서 어디에 갖다 붙여도 있어 보이는 효과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떡볶이 vs 메타버스 떡볶이’ 어떤가? 한 자리에서 30년을 지켜온 푸근한 이모님이 계신 동네 분식집 떡볶이에서, 토르가 망치로 마늘을 빻고 있을 듯한 시대 초월적 맛의 세계가 열릴 것 같지 않은가? 이건 어떤가. ‘메추리알 vs 메타버스 메추리알’. 작고 귀여운 내 월급 같은 메추리알에 메타버스가 붙으니 마치 미지의 생명체가 알을 깨고 나올 것만 같은 거룩한 느낌이 들지 않나. 메타버스 깻잎, 메타버스 건빵, 메타버스 미나리... 그렇다. 이 마법 같은 단어의 인기가 현재진행형인 이유는 바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이름에 있었다.
초딩이 미래를 만든다
네이버Z의 제페토와 협업하려면 무려 내년 2월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정말 그 정도라고? 오랜만에 제페토 앱을 켜본다. 몇 년 전 초딩들 사이에 대인기라기에, 내 얼굴 기반 캐릭터라는 호기심에 만들어두었던 제페토 캐릭터가 3년 전 커트머리 그대로 나를 반겼다. 한동안 무한야근으로 지쳤던 현실의 나는 당시 가상현실의 나에게 멋진 옷과 구두를 현질해줬다. 아, 그때만 해도 제페토가 전 세계 2억 명이 쓰는 거대한 유니버스가 될 줄 몰랐는데.
틱톡만 해도 그렇다. 몇 년 전 미국에서 온 친구 딸이 뮤지컬리라는 앱에 음악에 맞춰 춤추는 영상을 올리기에 “얘야 그 영상은 너만 간직해라. 너는 지금 흑역사를 생성 중이니 10년 후 봐도 창피하지 않으면 그때 전체공개를 하거라”라고 나름 따스하게 꼰대질했던 그날의 나는 뮤지컬리가 훗날 틱톡과 합병해 2020년 전 세계 앱 다운로드 1위를 차지하는 거물 앱이 될 줄 꿈에도 몰랐겠지. 그래 남편이 몇 년 전 차 안에서 “우리도 비트코인이나 살까?”라고 할 때 코웃음 쳤던 과거의 나도 오늘 이렇게 땅을 치며 후회할 날이 올지 알았겠는가. 그 이후로는 요즘 초등학생 사이에서 무엇이 인기인지 종종 확인한다. 오늘의 초딩은 내일의 중고딩, 모레의 성인이니까. 그렇다. 초딩은 가까운 미래다.
메타버스 사례모음.zip
일주일에 한 번씩 디지털 마케팅 관련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나에게 메타버스 사례는 그저 빛이다. 매주 최소 5개 이상의 이슈를 전달하고자 포멧팅을 해뒀기 때문에 한 주간 재미있는 사례가 없을 땐 국내외 마케팅 관련 사이트를 돌며 서칭 삽질을 해야 한다. 그런 삽질을 방지해주는 것이 바로 메타버스! 아직까지 이슈로 삼기에 손색없는 사례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메타버스 사례를 한번 싹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각 마케팅 사례가 시연된 날과 업종별 분류를 해보니 엔터테인먼트와 게임 업계의 메타버스 마케팅이 눈에 띄었다. 특히 SM은 메타버스 개념이 생기기도 전에 가수의 부캐를 만들고 능력과 캐릭터를 부여한 선지자가 계신 곳. 메타버스를 단순한 홍보매체뿐 아니라 아이돌 그룹의 세계관 자체로 편입시켜버린 과감함이 눈길을 끈다. 5월에 선보인 걸그룹 에스파의 세계관 정리 에피소드는 애니메이션과 가상현실이 접목된 컨텐츠로 ‘SM이 이렇게나 메타버스에 진심이었어?’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한다. 제페토 캐릭터로 아이스크림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팬사인회를 진행하며 화제가 된 블랙핑크는 최근에 모여봐요 동물의 숲에 ‘인 유어 에리어’ 꿈번지를 만들기도 했다. 제페토는 YG, SM, JYP 3사가 나란히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양의 작은 나라라는 지리적 약점을 벗어나 전 세계인들과 바로 지금, 더 가까이에서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툴로 메타버스를 잘 활용하고 있다.
(위) 닌텐도 스위치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 속 블랙핑크 섬 ‘인 유어 에리어’ / 출처 YG엔터테인먼트 (아래) 제페토 내 블랙핑크 아바타로 꾸며진 ‘아이스크림’ 뮤직비디오
메타버스의 오래된 미래, 게임
이미 게임 속에서 수많은 메타버스를 구축해온 게임계도 어떤 컨텐츠가 이 세계에서 흥할지 귀신처럼 알고 있다. 게임 속 트래비스 스캇 공연으로 대박을 친 포트나이트는 그 이후로 BTS의 뮤직비디오 공개는 물론 최근엔 아리아나 그란데와 함께 리프트 투어 콘서트를 개최한 바 있다. 포켓몬스터 역시 포스트 말론 캐릭터를 만들어 다양한 포켓몬과 함께하는 버추얼 콘서트를 열었다. 가상 콘서트 스트리밍 서비스인 웨이브에서의 존 레전드와 더 위켄드 공연이 소박한 클럽이나 화려한 뮤직비디오를 연상시키는 음악 중심 콘서트였다면 포트나이트는 사람을 흥분시킬 줄 아는 게임형 컨텐츠를 제공한다. 트래비스 스캇이 엄청나게 커져 게임 아바타와 어우러지는 장면이나, 아리아나 그란데가 혜성처럼 등장하는 스토리텔링부터가 ‘아, 여기 뭘 좀 아네. 역시 비주얼 맛집이야’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한다. 이런 웅장한 게임컨텐츠 한번 만들어보고 싶은데 왜 나는 겜알못인가, 이 나이 먹도록 게임도 안 하고 뭐 했나 문득 자괴감이 든다.
인기 게임 포트나이트에서 진행된 가수 아리아나 그란데의 메타버스 콘서트 리프트 투어 / 클릭 시 영상 재생
그래서 이 메타버스에서 언제 내려요?
손님, 메타버스는 안타깝게도(?) 영원히 종착역에 닿지 않습니다. 인생 종점에 먼저 도착하는 건 어쩌면 손님입니다. 왜냐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는 얼마 전 이런 선언을 했다. ‘페이스북은 이제 소셜미디어가 아닌 메타버스 기업입니다’ 오큘러스를 기반으로 체화된 인터넷, 정확한 표현으로는 embeded 된 인터넷을 제공하는 메타버스 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현재 페이스북 직원 6천여 명이 메타버스 분야에 투입됐다고 하니 베타버전을 출시한 메타버스 호라이즌은 곧 나날이 실감 나는 가상현실을 제공할 것이다.
또 인공지능 컴퓨팅 기업 엔비디아의 CEO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20년은 놀라웠지만, 앞으로의 20년은 SF가 될 것입니다. 메타버스 이즈 커밍’이라고. 그러니까 온라인 쇼핑이, 소셜미디어가 우리 삶 속 일상으로 스며든 것처럼 메타버스도 곧 더 메며들어 그 안의 문화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제페토를 일상처럼 즐기는 걸 넘어 그 안에서 브이로그를 찍고 드라마 같은 영상 컨텐츠를 만든다. 일개 컨텐츠 노동자인 나는 한편 또 마음이 급해진다. 이제 메타버스에서 제품 홍보로만 끝나는 건 구시대적 발상. 과연 그 안에서 어떤 컨텐츠와 이야기로 대중을 사로잡아야 할까. 하차벨 따위 없는 메타버스 안에서 오늘도 일개미는 생각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