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인스타그램 어플을 잠깐 삭제했었다. 시시각각 내 상태를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전시하고, 행복한 장면만 편집해서 마치 나의 정체성인 것처럼 연기하는 게 오히려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탈퇴까지는 아니어도 조금 쉬어야겠다고 느껴져 내린 결정이었다.
사실 소셜미디어는 브랜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고객과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수단으로써 브랜드에게 소셜미디어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수많은 브랜드가 소셜미디어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진행하는 지금, 별안간 나처럼 ‘탈퇴’를 선언한 브랜드가 있다.
LUSH, 소셜미디어로부터 RUSH 하다
지난해 11월, 글로벌 브랜드 러쉬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스냅챗, 왓츠앱과 틱톡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소셜미디어의 진화로 사람들이 어떤 포스팅을 볼지 컨트롤하고, 알고리즘을 통해 무엇을 보도록 결정하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또 소셜미디어의 역기능인 디지털 폭력, 외모 지상주의, 불안과 우울 같은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해짐에도 불구하고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러쉬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1천만 명이 넘었다. 이러한 사랑을 받기까지 마케팅팀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러쉬의 태도는 단호했다.
사실 러쉬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이해하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결정이 크게 놀랍지 않을 것이다. 동물실험을 하지 않을 것, 직원들의 다양성을 존중할 것 등 러쉬의 행보를 보면 이런 결정은 꽤 자연스럽다. 때문에 소셜미디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중단이라는 결단은 아이러니하게도 더 큰 바이럴을 불러왔다. NO 동물실험, NO 플라스틱, NO 소셜미디어까지. 비로소 러쉬는 ‘하지 않는’ 브랜드로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에 성공하게 됐다.
어느 날 럭셔리가 사라졌다
럭셔리 브랜드 역시 소셜미디어를 통해 보다 다양한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 럭셔리 브랜드 두 곳에서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발렌시아가에서 인스타그램 사진을 전부 내린 한편 보테가 베네타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까지 모든 SNS 계정을 전부 삭제했다.
이들은 럭셔리 브랜드 특유의 올드한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SNS를 활용했지만, 글로벌 인플루언서 등을 통해 더 자주 노출됐고 그만큼 희소성도 줄어들었다. 그야말로 ‘럭셔리’가 사라진 것. 이에 많은 관계자들은 떨어진 브랜드 가치의 회복을 위해 SNS에서 멀어졌다고 해석하고 있다.
대신 보테가 베네타는 매장, 옥외광고, 이메일이라는 보다 전통적인 수단을 이용해 소비자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고자 한다. 또한 <Issued by Bottega>라는 디지털 매거진을 발행해 SNS로 쉽게 소비되던 브랜드의 정체성을 이미지에 담아 보다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빠르고 쉽게 소비되는 SNS로부터 사라짐으로써 비로소 두 브랜드는 사라졌던 ‘럭셔리’를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