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아정_브랜드 기획자
명품도 아닌데 백화점으로 오픈런을 하게 한 소주 브랜드가 있다. 우리가 아는 그 소주를 14,900원에 파는 곳도 없어서 구하지 못할 정도. 바로 뮤지션이 박재범이 만든 ‘원소주’다. 패션 사업도 아닌 주류 사업, 그것도 위스키나 테킬라도 아닌 소주 사업이라니. 많은 이들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박재범과 소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에는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는 취미 삼아 소주를 만든 것은 아니었다. 오랜 준비 끝에 직접 사업을 진두지휘하며 진짜 주류 비즈니스에 뛰어든 것이다.
셀럽이 주류 브랜드를 론칭하는 것은 사실 낯선 일은 아니다. 2020년 전 세계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번 스포츠 선수 1위는 격투기 선수 ‘코너 맥그리거’다. “호날두도 메시도 아니고 맥그리거라니? 그게 누군데?” 어떤 이들은 이름도 처음 듣는 이 선수가 수익 1위를 차지한 것은 스포츠가 아닌 자신이 직접 론칭한 위스키 브랜드 ‘프로퍼 트웰브’ 덕이다. 미국 셀럽계의 셀럽(?) 켄달 제너는 테킬라 브랜드 ‘Drink 818’를 4여 년 동안 준비하여 출시했고, 미국 힙합 가수 트래비스 스콧 역시 맥주 브랜드 ‘캑타이(CACTI)’를 선보였다.
셀럽과 파티, 술은 어찌 보면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다양한 주류를 맛보며 독보적인 취향을 갖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본인의 입맛과 취향에 맞는 술을 만들고, 또 팔 수 있다면 좋은 사업이 될 수 있다. 이를 증명하듯 그들이 만든 술 역시 주류계의 셀럽이 된다. 하지만 이런 인기가 비단 ‘셀럽이 만든’의 수사에만 있을까?
유행이 취향이 되면, 비즈니스는 성장한다
유행이 취향이 되면, 비즈니스는 성장한다
하나의 카테고리가 인기를 끌며 대중화를 이루면, 해당 카테고리는 가지를 뻗기 시작한다. 다방과 믹스커피로 대중화를 이룬 커피 시장에서 사람들의 입맛이 고도화되며 소비자들은 ‘진짜’ 커피 맛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국내에는 아메리카노와 라떼라는 신문화를 거쳐 이제는 원두를 골라 먹는 성숙기 시장이 되었다. 그만큼 사람들은 커피에 대한 이해도도, 취향도 고도화되었다.
술 역시 마찬가지다. 싼값에, 빠르게 취할 수 있다는 이유로 ‘서민의 술’로 자리 잡았던 소주 대신 젊음의 상징으로 맥주를 택했다. 맥주에도 취향이 생기면서 에일, 라거, 흑맥주 등 발효 과정에 따라 맥주를 골라 마신다. 붉은색, 하얀색으로 구분하던 와인은 이제 내추럴 와인이란 장르도 즐긴다. ‘고급술’로만 여기던 위스키는 ‘싱글몰트’라는 이름으로 가격을 넘어 ‘취향’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시대가 되었다. 단순히 맥주, 양주, 와인으로 구분하던 주류 시장이 다양한 취향으로 갈리게 되면서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다. 바로 ‘소주’다.
‘서민 대표’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소주는 가격 민감도가 굉장히 높다. 100원만 올라가도 뉴스거리가 되는 품목이다. 그러니 14,900원이라는 원소주의 가격에 놀랄 수밖에. 일반 소주의 약 10배나 되는 가격에는 박재범이란 네임 밸류에만 있지는 않다. 그는 이미 누구나 다 아는 유명인이다. 대충해서는 손해가 훨씬 클 것이다. 이름값을 올리고 싶은 것이었다면 소주 말고도 선택지가 많다. 그런데도 박재범은 소주를 택했다.
원료부터 디자인까지, 취향을 담아내다
원소주는 기존 초록병의 소주와 재료부터 다르다. 바로 쌀과 물로만 만든다는 점이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소주에는 쌀과 물 이외에도 부재료를 사용한다. 단맛을 내기 위한 스테비아 등이 있다. 소주가 달게 느껴지는 것이 괜히 기분 탓만은 아닌 것이다. 박재범은 보드카처럼 최대한 깔끔한 맛을 구현해 내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재료 없이 오로지 쌀과 물로만 증류하는 소주를 만들었다. 여기에 옹기 숙성 과정을 거친다. 전통 방식을 차용한 점은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한국’을 내세우기 위한 포인트가 된다.
여기에 동양적이면서도 ‘힙(hip)’한 심볼은 우리나라 옛 동전의 모양과 건곤감리를 모티프로 삼았다. 우리나라 전통 문양을 모티브로 하되, 세련된 감성까지 담았다. 한국과 미국을 모두 경험한 박재범의 독특한 문화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전통의 가치를 담아내면서도 서양의 테킬라나 보드카와 함께 놓아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디자인이다.
그렇다면 원소주의 맛은 어떠할까? 호불호가 갈리는 맛이라고 한다. 이 점이 오히려 사람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한다. 취향이라는 게 호불호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불호라는 것은 반대로 누군가에게는 극호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마니아를 형성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제조, 디자인, 맛까지 원소주는 하나의 브랜드로서 철학도 있고 진정성도 갖추었다. 여기에 힙한 취향까지 담아내었으니, 사람들의 오픈런과 완판은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이다.
취향의 근본은 브랜드의 정체성
원소주는 ‘박재범’이란 이름으로 대중을 유도했다. 하지만 사업의 지속성을 결정짓는 것은 브랜드의 정체성이다. 어떤 소주보다도 원소주는 전통 방식으로 만들며 한국적이다. 여기에 만든 사람의 확고한 취향과 철학이 더해 브랜드를 완성했다. 흔히들 취향은 한때의 유행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취향은 그랬다. 남이 사면 따라 사는 ‘유행의 대중화’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요즘의 취향에는 개인과 브랜드의 합이 중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브랜드를 선택한다.
현재 온라인 주문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원소주. 곧 편의점에서 판매될 예정이니 그 인기가 쭉 이어질지는 그때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원소주가 브랜드로서 정체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박재범이 아닌, ‘소주 브랜드’로서의 정체성 말이다. ‘소주=초록색’이란 고정된 이미지를 깨고, 소주는 한국의 전통술이라는 가치를 가졌다. ‘소주=서민의 삶’이라는 일상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고, ‘파티’와 ‘취향’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한 브랜드가 취향으로 선택받기 위해서는 ‘브랜드 력’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보이는 이미지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의 선택이 옳았음을, 나의 취향을 보여줄 수 있는 팩트, 바로 브랜드의 단단한 정체성이 곧 이 시대에 선택받는 취향이 된다.
구아정
브랜드 컨셉 플래너, 콘텐츠 기획자를 거쳐 현재는 프리랜서 브랜드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브랜딩’을 쉽게 생각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브랜드에 관한 글도 쓰고 있다. 커뮤니티 ‘스여일삶’에서는 에디터 팀장이자 (자칭) 워킹맘 대표로 스타트업을 창업하거나 일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