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욱 대표_Innovation Design Company, LIFESQUARE, 퓨처디자이너스
넷플릭스 ‘오징어게임’이 전 세계 시청자들의 열광으로 83개국에서 1위를 차지하던 2021년 10월, 10대들의 놀이터 로블록스에는 무려 1,000여 개의 오징어게임이 오픈했다. 오징어게임을 패러디하거나 이를 주제로 한 로블록스 게임이 한 달 사이에 1,000개 넘게 개발된 것이다. 한두 개의 게임을 구현하는 것도 쉽지 않은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수의 게임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로블록스가 가진 창작자 생태계 때문이다.
메타버스 속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로블록스는 일일 접속 사용자(DAU)가 4천만 명이 넘을 정도로 큰 인기를 가진 오픈 월드 형태의 대표 메타버스 게임이다. 다양한 게임과 그들이 함께 소통하며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된다는 것이 로블록스의 인기 이유. 미국의 10대 사용자들은 평균적으로 2시간 30분 이상을 체류하며, 이는 유튜브나 틱톡 사용 시간의 두 배가 넘는다. 이것이 가능한 근본적인 이유는 로블록스에서는 단순히 게임을 하는 것을 넘어 유저가 직접 크리에이터로 아이템을 디자인하거나 게임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로블록스 스튜디오’에서 ‘루아’라는 스크립트 언어를 이용해 어렵지 않게 게임을 제작하고, 외부 3D 디자인 소프트웨어와 연동해 쉽게 모델링한 아이템들을 이용할 수 있다.
로블록스에서는 ‘로벅스(Robux)’라는 화폐가 통용된다. 유저들은 게임을 하기 위해 로벅스로 아이템을 구매해 아바타의 능력을 올리거나 외모를 꾸미며, 이때 발생한 수익은 크리에이터들에게 일부 지급된다. 게임 내에서 10만 로벅스 이상을 벌면 직접 환전 신청을 할 수 있고 현실에 있는 계좌로 350불 상당의 금액이 송금된다. 이미 백만 명 이상의 유저들이 1,000불 이상의 수익을 올렸으며 현재도 800만 명 정도의 크리에이터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그동안 만들어 낸 게임이 5,000만 개가 넘을 정도로 그 커뮤니티의 규모는 거대하다.
3억 명이 넘는 유저가 이용하는 제페토도 유사하다. 제페토 유저들은 친구를 만나 제페토 월드에서 게임을 하고 이벤트에 참가하거나 다양한 미션을 수행한다. 젬과 코인으로 아이템을 구매해 방을 꾸미고, 패션 아이템으로 아바타를 개성 있고 세련되게 만들기도 한다. 이들이 구매하는 아이템은 상당수 크리에이터가 직접 디자인한 것이며 여기서 발생하는 수익은 그들에게 지급된다.
단순한 사용자를 넘어 직접 디자인하고 창작하는 크리에이터들이 만들어 내는 가치가 확장되면서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크리에이터 이코노미(Creator Economy)’다. 이미 유튜브나 틱톡 같은 플랫폼에서는 그들의 참여와 창작이 만들어내는 가치가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으며, 로블록스나 제페토 같은 메타버스에서도 유사하게 목격되고 있다. 창작할 수 있는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의 등장, 세계 곳곳에 확산시킬 수 있는 소셜네트워크의 확장, 손쉽게 다양한 창작이 가능한 저작도구와 스마트 디바이스의 대중화가 만들어 낸 결과이자 거대한 메가트렌드다.
가상 경제 성장에 중요한 세 가지 트렌드
디지털 플랫폼에서 생산된 가치가 소비되며 축적, 순환하는 것을 디지털 경제라고 하듯 메타버스에서는 가상 경제(Virtual Economy)가 확장되며 진화하고 있다. 메타버스도 디지털 플랫폼의 속성을 가지고 있고 인터넷과 연결된 세계이기에 연결의 가치가 커질수록 그 규모도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특히 메타버스 가상 경제를 성장하게 할 중요한 3가지 트렌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대체불가 토큰이라 불리는 ‘NFT(Non-Fungible Token)’의 등장이다. NFT는 그동안 디지털이 가지지 못했던 유한성과 진위성이라는 새로운 속성을 가지게 만드는 블록체인 기술이다. 그 안에 소유권까지 포함할 수 있어 유한한 가치를 디지털이 가질 수 있는 기술적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무한히 복제하고 전송할 수 있는 디지털 파일을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으로 새롭게 규정할 수 있기에 메타버스 안에 다양한 가상 자산이 잉태되고 확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구찌가 로블록스에 200개 한정 판매했던 디지털 백은 NFT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4백만 원이 넘게 거래되었지만, 로블록스 안에서만 그 가치가 인정될 수 있는 한계가 존재한다. 하지만 NFT는 아트나 컬렉터블, 또는 디지털 아이템들이 단일 플랫폼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플랫폼과 메타버스를 넘나들며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어 그 확장성은 매우 큰 잠재 가치를 가지고 있다.
두 번째, 블록체인 기반의 사용자 동기부여 시스템이 운용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엑시인피니티나 디센트럴랜드에서 열심히 게임을 해 얻은 가치를 실제 금전적 가치로 환전할 수 있는 Play to Earn 트렌드의 진화다. 유저들이 가상 세계에 들인 노력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다양한 메타버스나 게임에 적용되면서 참여와 보상이라는 분명한 동기부여 시스템이 동작하며 가상 경제에 다양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메타 휴먼의 확장과 사회적 수용이다. 이미 버추얼 인플루언서들이 광고에 출연하고 소셜미디어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며 수익은 물론 팬덤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나아가 일상적인 임무를 수행하게 될 수많은 가상 인간들이 디스플레이로 우리와 상호작용하게 될 것이며 메타버스와 연계된 세상에서 더 많은 능력과 경제적 가치를 만드는 주체로 활동할 것이다.
메타버스 속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의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또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큰 시너지를 창출해낼 것이다. 유저들의 참여와 창작, 무한히 확장되는 메타버스의 만남이 만들어 낼 가상 경제의 가치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으며, 무엇이 더 등장하고 진화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우리 앞에 거대한 기회의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최형욱
혁신기획사 ‘라이프스퀘어’의 innovation catalyst로서 기업들의 혁신을 촉매하고, 다양한 혁신 프로젝트를 기획, 실행하고 있다. 또한 다가올 메타버스 시대를 위해 XR 플랫폼 스타트업인 ‘질리언테크놀로지‘(스텔스 모드)를 창업 준비하고 있다. 저서로 <메타버스가 만드는 가상경제 시대가 온다>, <버닝맨, 혁신을 실험하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