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크리에이티비티가 새로운 경험 선사해
2022 칸 라이언즈 주목해야 할 그랑프리 수상작들
글 유희래
칸 라이언즈가 코로나 엔데믹의 기대감을 안은 채, 2년간의 공백 끝에 지난 6월 20일부터 24일까지 프랑스 칸에서 열려 달라진 크리에이티비티 산업의 변화를 담아냈다. WPP나 옴니콤 등 기존 전통적인 글로벌 광고 미디어 그룹들이 아닌 아마존, 메타, 넷플릭스, 구글, 틱톡, 스냅챗 등 IT나 애드테크 기업들이 주도했고, 현장은 새로운 기술을 크리에이티브 산업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와 인사이트를 공유하면서 전 세계 참관객들의 비즈니스 네트워킹의 장으로 더욱 뜨거웠다.
올해 수상작들도 기술력이 접목되어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작품들이 주를 이루면서 크리에이티비티의 트렌드를 알 수 있었다. 특히, 한국은 서비스플랜 독일 뮌헨이 대행하고 국내 광고회사인 파울러스가 프로덕션을 담당한 국내 스타트업 닷(DOT)의 ‘닷패드(DOT PAD)’ 캠페인이 그랑프리에 해당하는 ‘티타늄 라이언즈’를 수상하면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닷패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 세계 최초의 점자 스마트 패드다. 또, 국내 광고회사 이노레드와 파울러스가 함께 출품한 매일유업의 ‘우유안부(Greeting Milk)’ 캠페인도 브랜드 익스피리언스&액티베이션 부문에서 실버 라이언, PR·컬쳐럴 인사이트 부문에서 브론즈 라이언을 수상하며 한국 크리에이티비티의 저력을 보였다.
칸 라이언즈는 전 세계 87개 국가에서 2만 5,000여 개 작품이 출품했으며, 29개 부문에서 경쟁을 펼쳤다. 그 중 눈에 띄는 그랑프리 수상작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백업 우크라이나, 3D 영상 기술로 문화유산 지켜내
먼저 올해 초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나지 않고 있다. 칸 라이언즈 역시 우크라이나 지지 선언을 하며 러시아 참관단·출품작을 받지 않았고 글로벌 브랜드들도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동참해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칸 라이언즈에서는 우크라이나 관련 글로벌 크리에이티비티들을 볼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크리에이티비티는 Digital Craft 부문에 그랑프리를 수상한 ‘백업 우크라이나(BackUP UKRAINE)’이다.
우크라이나는 끝없는 전쟁 속에 인명 피해는 물론이고, 수많은 건축물과 문화유산이 파괴됐다. 한 국가의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것이 국가 정체성을 지우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보호 하려고 노력해도 직접적인 폭격 앞에서는 이를 지키기는 쉽지 않다.
백업 우크라이나는 블루 쉴드와 유네스코가 함께한 캠페인으로 건축물, 문화유산 등 지키고 싶은 모든 것들을 3D 형태로 클라우드에 저장해 국가의 문화유산을 디지털화하여 영구히 보존함으로써 국가의 정체성을 존속시키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보관할 수 있는 방법과 준비물도 간단하다. 핸드폰이나 태블릿에 Poly Cam 어플을 다운받고 녹화 버튼을 누른 후 다양한 각도에서 캡처만 해주면 3D 영상이 완성돼 클라우드로 전송된다. 전쟁 중 문화유산을 지키기에 이보다 간단하고 좋은 방법이 있을까? 이 기발한 기술력 덕분에 우크라이나 국가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을 거 같다.
나이키, 여성 생리주기 고려한 최초 스포츠 브랜드 프로그램 선보여
두 번째는 칸 라이언즈에서 빠질 수 없는 브랜드 바로 나이키이다. 여성의 생리 주기에 맞는 교육과 운동을 제공하는 ‘NikeSync’가 Entertainment For Sport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나이키가 생리학 전문가와 공동으로 제작한 여성을 위한 트레이닝 프로그램 ‘NikeSync’는 남성과 여성의 다른 생리학적 특성을 고려해 여성의 신체를 이해하고, 주기에 맞게 훈련을 조정하는 등 여성들에게 더 극대화된 효과를 얻을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어플은 수많은 스포츠 트레이닝 플랫폼이 있음에도, 남성과 여성의 생리학에서 뚜렷한 차이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을 바탕으로 기획했다.
‘NikeSync’에서는 생리의 주기를 4단계로 나눴다. 생리의 시작과 끝나는 시기를 1단계로 두고, 그 이후부터 1주씩 2~4단계로 나뉜다. 단계에 따라 호르몬 분비 정도를 분석하고, 적합한 운동 및 식단을 제안한다. 여러 플랫폼이 있어도 최적화된 트레이닝 방법을 찾지 못한 여성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든 나이키. 이러한 섬세한 배려심이 나이키가 많은 사람에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롱 라이브 더 프린스, 딥페이크+VR 기술의 공익적 쓰임
세 번째는 Titanium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한 ‘Long Live The Prince’이다. 이 작품이 눈에 들어왔던 이유는 딥페이크 기술 때문이다. 딥페이크에 대해 부작용이 많다는 점에서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이 기술은 너무 신세계였다. 딥페이크의 음성 복원 기술을 접목해 그리웠던 가수들의 음성으로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이나 세상을 일찍 떠난 딸을 딥페이크와 VR 기술을 결합해 만날 수 있게 한 것들을 보면서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Long Live The Prince’ 캠페인 역시 딥페이크 기술을 잘 활용한 크리에이티비티의 탄생으로 볼 수 있다. 이 캠페인의 주인공 Kiyan Prince는 유망한 축구선수였다. 그러나 15년 전 불의의 사고로 15살의 나이에 칼에 찔려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Kiyan Prince 재단은 그의 사망 15주년을 맞아 그를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한 게임 캐릭터를 통해 칼로 인한 범죄에 대한 예방과 경각심을 상기시키고자 FIFA 21 게임의 제작사 EA Sports와 함께 특별한 추모 캠페인을 진행했다.
더 언필터드 히스토리 투어, 소셜 AR 필터 활용해 강력한 크리에이티비티 선보여
마지막으로 Brand Experience & Activation, Social & Influencer, Radio & Audio 총 세 개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The Unfiltered History Tour’이다. 영국의 대영 박물관(British Museum)은 런던에 위치한 여행 필수 코스로 꼽히는 곳이다. 세계에서 컬렉션 규모가 가장 큰 박물관으로 유명하고, 실제 800만 점 이상의 유물과 민속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유물 중에는 과거 약탈당한 문화재들이 본래의 국가로 반환되지 않고 전시된 작품들이 있다.
‘The Unfiltered History Tour’는 사실 그대로 작품의 유래와 기원을 설명하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캠페인이다. 이 캠페인은 인스타그램의 AR필터와 오디오 기능을 활용했다. Benin Bronzes 필터를 사용한 뒤 유물 쪽으로 카메라를 비추면 비디오가 AR로 재생된다. 이는 대영 박물관에 전시 중인 유물 중 “문화재 약탈/반환”이라는 이슈로 가장 논란이 된 10개의 유물에 대해, 작품 소유권이 있는 원래 국가의 전문가가 유물을 약탈해온 과정과 역사에 대해 설명한다. 이 캠페인은 더 많은 사람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리기 위해 박물관을 방문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캠페인 사이트를 통해 비공식 투어의 영상과 비디오를 확인할 수 있게 했다. ‘The Unfiltered History Tour’는 올해 칸 라이언즈에서 최다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호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