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은 힘이 있습니다. 정통이라는 말에는 ‘오랜 시간 쌓아온 익숙함’의 의미도 있기에 새로움보다는 진정성 있는 깊이가 더 돋보입니다. 반면 트렌드는 ‘지금’ 가장 새롭습니다. 가장 큰 효과를 내고, 가장 큰 관심을 받죠. 다만 오래가긴 힘듭니다. 트렌드는 시간이 지나면 트렌드라는 힘을 잃으니까요.
2023년 2월, ‘세계에서 가장 비싼 광고’를 송출하는 NFL이 시작됐습니다. 경기 내내 마케터들과 크리에이터들은 좋은 광고와 나쁜 광고 순위 매기기에 바빴죠. 결과는 정통과 트렌드의 대결이었고, 정통은 높은 선호도를 얻었고 동시에 트렌디함은 큰 효과를 얻은 광고판이었습니다.
정통의 힘을 보여준 감동
비싼 만큼 첨단 기법과 유명 셀럽, 제작비가 투여되는 NFL 광고. 하지만 올해는 정통의 방법으로 감동을 만든 두 광고가 많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흔하게 등장하는 유명인 대신 반려견이 주인공입니다.
“Forever": The Farmer’s Dog Super Bowl Commercial (Extended Cut) / 출처: The Farmer's Dog
올해 슈퍼볼에 처음 광고를 내보내는 사료 브랜드, “The Farmer's dog." 이 기업은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는 강아지 래브라도, 베어의 시간을 담았습니다. 어릴 때 집에 오게 된 베어. 그는 소녀가 학생이 되고, 청소년기를 지나,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나고, 돌아와서 결혼해 아기를 낳을 때까지 긴 시간을 함께합니다. 건강했던 어린 강아지에서 노견이 된 베어는 소녀와 소녀가 낳은 아기와 함께 침대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죠. 엄마가 된 소녀는 노견을 위해 노래를 불러줍니다. 베어의 머릿속에 그간 함께했던 행복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죠.
이 광고는 반려견을 키우는 반려인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었습니다. USA Today를 비롯해 각종 랭킹에서 상위권을 차지했죠. 반려인들의 가장 큰 슬픔은, 사람과 강아지의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겁니다. 아무리 건강하게 잘 케어해도 결국 강아지는 먼저 떠나고, 누구나 떠난 자리를 견뎌야 하죠.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이기에 긴 시간을 함께하고 노견으로 누워 있는 반려견을 보면, 위기와 절정이 없는 스토리여도 진한 감동을 느끼게 되죠. 브랜드는 ‘함께하는 것보다 소중한 건 없다’고 말합니다.
Saving Sawyer | Amazon's Big Game Ad / 출처: amazon 공식 유튜브
두 번째는 아마존입니다. 팬데믹으로 인한 락다운으로 강아지는 오히려 즐겁습니다. 어떤 방을 가도 사람이 있고, 음식도 더 많이 얻어먹고,, 만져주는 이도 많고, 하루 종일 외로울 틈이 없죠.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어느새 락다운이 끝나고, 가족들은 아침마다 각자의 목적지로 외출합니다. 다시 강아지는 홀로 외로이 집을 지키죠. 같은 외로움이 반복되자, 강아지는 집안의 모든 것을 물어뜯기 시작합니다. 의자도 물어뜯고 옷도 물어뜯고 리모컨에 그림까지. 지친 가족은 모두 모여 아마존에서 반려견용 케널을 구입합니다. 말썽 부리는 강아지를 가두기 위한 목적으로 보이죠. 강아지는 근심 어린 눈으로 가족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케널이 도착한 날, 뜻밖의 선물을 마주하게 되죠. 그 안에서 또 다른 강아지가 한 마리 나온 겁니다. 가족들은 외로운 베어를 위해 강아지를 한 마리 더 입양한 거죠. 그 강아지는 아마존에서 구입한 케널에 담겨 집으로 오게 된 거고요. 엔데믹 시대, 반려인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두 번째 이야기. 이 광고도 셀럽 한 명 나오지 않는 콘텐츠지만 스토리텔링의 힘으로 많은 선호를 얻었습니다.
언제나 스토리가 주는 감동은 강합니다. 정통의 방법은 그 정통을 제대로 구현했을 때, 박수를 받습니다.
이번 슈퍼볼은 ‘셀럽보다 강아지’였습니다.
가장 큰 효과를 낸 광고 아닌 광고
2023 슈퍼볼에서 광고 효과 1위를 차지한 건 광고가 아니었습니다. 세계 11억 명이 시청하는 슈퍼볼 하프 타임 쇼. 리한나는 임신 사실을 알리며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녀는 강렬한 레드 컬러의 점프 슈트를 입고 등장했죠. 값비싼 다이아몬드 브로치에 명품 스니커즈도 잊지 않았습니다. 리한나는 공연 도중, 패딩 스카프와 패딩 코트, 글러브를 착용하며 12분간 많은 명품을 등장시켰습니다. 하지만 어떤 명품도 리한나의 짧은 순간을 이기진 못했습니다.
공연 도중, 그녀는 댄서가 건네준 컴팩트로 거울을 보며 메이크업을 점검했죠. 그 장면이 그대로 전 세계로 송출됐고, 사람들은 그 브랜드를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화장품은 리한나가 소유한 Fenty beauty라는 브랜드입니다. 그리고 댄서들은 란제리 브랜드 Savage X Fenty를 입었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소셜 미디어엔 Fenty에 대한 언급량이 급증했습니다. 소셜 미디어 매니지먼트 업체인 Sprout Social이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가장 많이 언급된 광고인 Tubi의 5,546회 언급을 훌쩍 넘어선, 16,432회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관련 콘텐츠를 클릭하고 웹페이지에 방문하는 소비자 참여율은 180,708회로 Tubi의 21,094회보다 월등했습니다. 리한나는 이 퍼포먼스로 엄청난 광고 효과를 낳았고, 많은 돈을 지불하고 송출하는 광고들보다 높은 효과를 거뒀습니다.
광고 아닌 광고로 많은 관심을 불러 모으고, 영향력을 과시한 하프타임쇼. 리한나는 그 어떤 마케터와 크리에이터보다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준 겁니다.
사람들을 당황하게 한 효과
리한나만큼은 아니지만 소비자를 당황하게 하면서 관심을 끌어올린 브랜드가 있습니다. Fox가 소유한 스트리밍 서비스 브랜드인 Tubi. 그들은 많은 시청자들이 TV 리모컨을 찾게 했죠.
Tubi Interface Interruption | Super Bowl / 출처: Tubi 유튜브
TV엔 슈퍼볼 중계가 한창입니다. 캐스터와 해설자가 등장해 이야기를 이어가죠. 근데 갑자기 TV 화면이 저절로 움직입니다. 누군가 리모컨을 움직이고 작동하듯, 화면이 넘어가죠. TV에 나타난 커서가 Tubi를 클릭하니 영화 스트리밍 화면으로 넘어갑니다. 커서는 계속 움직여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를 클릭합니다. 순간 Tubi의 로고로 이어지죠. 이 영상은 Fox 채널에서 진짜 방송인 척 만든, 가짜 중계방송이었습니다.. 캐스터와 해설자도 실제, Fox채널 중계방송에 등장하는 이들입니다. 사람들은 셀럽들이 나오는 광고를 보다 ‘우리 집 TV가 고장이 났나’ 당황하면서, Tubi에 대한 인상을 갖게 됐습니다. 동시에 그때의 반응을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기 시작했죠. 누가 리모컨을 만졌냐며 소파에서 소리친 사람, 리모컨을 깔고 앉을 줄 알았다는 사람... 재미있어하는 시청자들의 반응으로 소셜 미디어에 수없이 언급되며, 여느 광고 못지않은 효과를 낳았습니다.
정통의 힘, 트렌드의 맛
Why not an EV? | GM x Netflix / 출처: General Motors 공식 유튜브
2022년 슈퍼볼 광고는 가상화폐가 많은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사람들은 가상화폐를 뜻하는 용어를 활용,‘크립토 볼’이라는 별칭으로 부를 정도였죠. 하지만 일 년 새, 가상화폐의 부침으로 그들은 슈퍼볼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정통 클라이언트인 자동차, 음료, 주류 등이 자리를 차지했고요. 하지만 크리에이터의 아이디어는 여전히 위트 있고 기발했습니다. 비록 리한나의 퍼포먼스보다 좋은 효과를 내지 못했을지라도 General Motors는 Neflix 콘텐츠를 활용 “이 장면에 왜 전기차를 쓰지 않는지” 따졌습니다. 유명 배우인 윌 페럴은 브리저튼에도 등장하고 오징어 게임에도 등장합니다. 납치되는 장면에선 왜 전기차로 납치하지 않는지 따지고, 좀비에겐 왜 EV를 타고 떼 지어 다니지 않는지 따집니다. General motors가 전기차를 늘려가는 만큼 Netflix도 그들의 콘텐츠에 더 많은 전기 자동차를 등장시켜야 한다는 거죠.
Dunkin' 'Drive-Thru' Starring Ben / 출처: Dunkin' 유튜브
벤 애플랙은 던킨 도너츠 드라이브 쓰루 매장에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매사추세츠에서 자란 그는 그 지역에서 시작한 던킨의 모델이 되어 직접 영상을 감독하고 출연까지 하며, 리얼한 연기를 선보였죠. 그의 아내인 제니퍼 로페즈를 카메오로 등장시키는 재미도 잊지 않았습니다.
트렌드는 계속 변합니다. AI가 33초 만에 몇 페이지에 달하는 수준급 에세이를 보여주는 충격적인 시대. 사람들은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새로운 종’의 등장이라고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내년엔 AI가 낸 아이디어가 NFL 광고에 등장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올해는 광고 아닌 것과 정통 광고의 길을 간 콘텐츠가 다른 듯 같게, 높은 광고 효과를 거뒀습니다.
정통의 힘과 트렌드의 맛을 모두 보여준 2023년 슈퍼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