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질적인 것들의 조합, 낯설지만 새로워”
광고계 러브콜 쇄도, 스튜디오 것(GUT) 이현행 감독
감각적, 트렌디, 세련, 완성도, 영상미, 신선, 구도, 멋진 노래, 디테일, 강력한 비주얼의 완성... 한 광고에 쏟아진 반응이다. 2022 ‘대한민국광고대상’에서 TV영상 대상과 CRAFT 부문 대상으로 2관왕을 차지하며 주목받은 삼성전자 비스포크 오리지널 시리즈 광고가 그 주인공. 그리고 이 광고로 가장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 사람은 다름 아닌 이 유명한 광고를 만든 스튜디오 것(GUT)의 이현행 감독이다. 이 감독은 2022 ‘서울영상광고제’에서도 올해의 감독상을 받았다. 현재 광고계에서 가장 많은 러브콜을 받는 신예 이현행 감독을 어렵게 만났다.
감독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삼성전자 비스포크 오리지널 시리즈, 코오롱몰, 헤이딜러 광고의 감독이자 스튜디오 것(GUT)의 대표, 이현행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요즘 매우 바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 해외 촬영도 다녀오시고...
옛날과는 다르게 일이 많이 들어오고 있긴 해요. 일이 많은 만큼 힘들어졌는데,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주신다는 게 고마워서 기분 좋게 지내고 있습니다.
제일기획 아트 출신이라 들었습니다. 스튜디오를 직접 차리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저는 CD가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CD가 되려면 적어도 10년, 많게는 15년까지 기다려야 되잖아요. 지루하다고 표현하면 좀 그렇지만, 제가 직접 만든 걸 하루빨리 경험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러는 중에 아트 5년 차 정도 됐을 때였어요. 프로덕션 감독인 친구가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했고, 저도 계속 ‘뭔가 해보고 싶다’라는 고민을 하던 차라 그때 결심이 섰죠.
대행사를 나오고, 처음에 어떠셨어요?
불안했어요. 솔직히 대행사 아트가 나가서 감독이 되는 경우가 많지도, 쉽지도 않거든요. 길을 개척하는 기분이었어요. 후회도 됐고요. 대행사에 있을 때보다 제가 책임져야 할 무게감이 커졌다는걸 느꼈죠. 제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따라 회사의 방향이 바뀌고 결정해야 할 일도 많이 생기다 보니 거의 한 2~3년 정도는 매일 밤 가위에 눌렸던 것 같아요. 스트레스를 받아서 수면유도제를 먹어야 잠이 들 때도 있었죠. 다행히 곁에서 격려해 주는 좋은 친구 덕분에 제 스스로도 ‘잘될지 안될지 모르지만, 일단 나를 믿고 가보자, 뭔가 새로운 걸 할 수 있을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이 길을 걸어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스튜디오 이름도 용기, 배짱, 배포의 의미가 있는 ‘GUT’으로 짓게 된거죠.
감독님께서는 영상을 전공하셨나요?
어릴 때부터 매일 비디오를 빌려서 보는 걸 좋아했지만, 대학교 전공은 순수미술(Fine Art)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시각디자인을 배우면서 ‘내가 앞으로 뭐가 될까’라는 고민을 계속했던 것 같아요. 영화 쪽을 좋아하니까 ‘미술 감독은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막연히 상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영상이나 시각디자인, 순수미술의 영역이 비슷한 부분이 있는데 그건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한테 매력적인 비주얼을 어떻게 전달할까’의 맥락 안에 있다고 본 거죠. 광고는 대학생 때 시각디자인 수업을 들으면서 흥미가 생겼고, 제일기획 인턴을 하면서 광고계에 발을 들이게 됐어요.
감독하길 잘했다고 느낄 때가 있다면, 언제인가요?
대행사 아트였을땐 캠페인의 큰 맥락이나 비주얼 코드를 잡는 역할이 커서, 담고 싶은 걸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어떤 느낌이야, 정도로 추상적이란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제 역량으로 하나하나 디테일을 만들어가는 일을 하고 있어서 뭔가 제가 표현하고 싶은 걸 꽉꽉 눌러 담고 있는 느낌이라서 정말 재밌어요. 많은 사람들이 저를 인정해주고, 제 생각을 좋아해 주고, 제 결과물에 대해 칭찬해줄 때, 성취감이나 뿌듯함을 크게 느끼죠. 이럴 때 ‘감독하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촬영장에서 감독님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제가 ENFP거든요. 계획적으로 짜서 만들어 나간다기 보다 굉장히 즉흥적인 거 좋아합니다. 그래서 무계획에서 나오는 새로운 뭔가에 대해 흥미를 많이 느끼는 편이라서 촬영할 때도 개방적인 편이에요. 일단 너무 사람들을 가둬 놓으면 다른 생각으로 쉽게 갈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가둬두지 않고 열어두려고 많이 해요. 현장에서 즐겁게 “같이 뭔가 만들자” 같은 분위기죠. 그러면 출연하는 분들의 진짜 역량이 나오면서 그게 좋은 콜라보가 되는 것 같아요. 일반인 모델이 등장하는 광고의 경우, 모델들에게 억지로 뭔가 시키면 인위적으로 연기를 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너무 과하지 않게 보이려면 모델 스스로 본연의 캐릭터를 살려주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떨 때는 디렉션을 안주고 지금 상황만 설명하기도 해요. 그런 분위기로 인해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예상치 못한 좋은 영상이 나오기도 하거든요.
촬영 계획이 촘촘히 짜여 있을텐데, 그렇게 해도 되나요?
촬영 전에 완벽하게 준비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것들 때문에 불안해질 때가 가끔 있어요. 그런데 현장에 가면 그런 것들이 간단하게 해결될 때도 많거든요. 정해진 계획 틀에 딱 맞게 촬영에 임한다기보다 조금은 열어놓고 좋은 것들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여유를 만드는 거죠.
감독님께서 연출한 광고들을 보면 시네마틱한 비주얼이 인상적인 거 같아요. 감독님만의 제작 스타일일까요?
일단 광고라는 틀에서 벗어나려고 해요. 어떻게 하면 ‘좀 더 새로울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한 해답 중 하나가 시네마틱한 연출 방법이죠. 이런 연출이 새롭게 보일 순 있지만, 디테일을 신경 쓰지 않으면 ‘미장센’까지 얻을 순 없어서 트리트먼트 때 힘을 많이 줍니다. 톤앤매너에 맞춰 이 영상의 매력을 어떻게 극대화할지, 편집은 어떻게 진행되며, 배경음악은 무엇이 좋을지 등 신경을 많이 써요.
말씀하신 부분 중에서 트리트먼트가 정확히 무엇인가요?
말씀하신 부분 중에서 트리트먼트가 정확히 무엇인가요?
대행사에서 만든 콘티는 광고주 보고용이여서 콘티가 짧기도 하고 그냥 이미지로만 붙여놓은 것도 있어서 디테일하진 않아요. 대행사에서 콘티를 전달해주면 제 나름대로 해석하고 디벨롭하는 과정이 ‘트리트먼트’라고 합니다. 단순히 콘티를 짜는 게 아니라 컨셉에 어울리는 비주얼의 디테일을 만들고 제안하는 일이라서 그 과정이 감독의 ‘꽃’이라고 할 수 있죠. 예를 들면, 광고는 15초~30초 안에서 컨셉의 매력을 극대화해서 보여줘야 해요. 컨셉을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도구 중 하나로 ‘프레임’을 사용하는데, 프레임을 ‘컨셉을 담는 그릇’이라고 생각하면, 80년대 TV 화면비인 4:3, 핸드폰 갤럭시20의 화면비 9:20 등 콘텐츠에 맞는 컨셉을 프레임을 통해 매력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거죠. 마치 맛있는 음식이 딱 맞는 그릇에 나오면 매우 감동적인 것 처럼요. 트리트먼트 때 이런 부분들을 디테일하게 제안하는 거죠.
감독님의 제안이 잘 받아들여지는 편인가요?
싫어하시는 광고주도 많아요. 왜냐하면 돈 주고 찍었는데, (화면에) 이 비어있는 부분은 뭐냐고.(웃음) 그런데 엄청나게 많은 광고 중에 4:3 비율의 광고가 턱 하고 나오면 엄청나게 튀거든요. ‘새롭다’라는 인상을 확 줄 수 있는 거죠. 사실 새로운 것을 제안했을 때 잘 받아주는 CD나 광고주가 있어야지 새로운 광고가 세상에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새로운 시도를 위한 노력,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는 편인가요?
다양한 곳에서 얻는데, 그중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많이 얻는 편인 것 같아요. 어떤 주제를 진지하게 접근한다기보다 가볍고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서 아이디어를 확장하는 게 재미도 있고 아이데이션도 잘되는 편이에요. 드립치면서 이야기할 때 아이디어가 떠오 를 때도 많고요. 그리고 완전 다른 요소 두 가지를 섞어 보는 것을 개인적으로 재밌어하기도 하고, 거기서 사람들이 새롭다는 인상을 많이 받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참여했던 한국관광공사의 ‘필더리듬오브코리아(Feel the rhythm of Korea) 서울’편을 예로 들면, 화환을 실은 오토바이가 낙원상가를 지나가요.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한 장면이지만 외국인의 관점에서는 새롭고 신기한 모습이죠. 그런 것들 을 끄집어내기 위해 사물이든 인물이든 관점을 달리 바라보려 노력해요.
광고 음악도 예사롭지 않은 것 같아요. 어떻게 이렇게 좋은 음악들을 찾아내시는 건지...
BGM을 선정할 때 너무 정답 같지 않게 하려고 해요. 한섬닷컴의 ‘한순간을 살아도 섬세하게’편 광고를 보면 세련되고 굉장히 힙한 영상인데, 린다 스콧(Linda Scott)의 ‘Three Guesses’라는 1961년에 발매한 오래된 노래를 얹어서 독특한 무드가 완성되는 것처럼요.
BGM을 선정할 때 너무 정답 같지 않게 하려고 해요. 한섬닷컴의 ‘한순간을 살아도 섬세하게’편 광고를 보면 세련되고 굉장히 힙한 영상인데, 린다 스콧(Linda Scott)의 ‘Three Guesses’라는 1961년에 발매한 오래된 노래를 얹어서 독특한 무드가 완성되는 것처럼요.
광고 제작 시, 감독으로서 이것만큼은 꼭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컨셉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촬영하다 보면, 여러 가지 요구 사항들이 많이 오거든요. 그때 컨셉이 흔들리면 모든 게 다 흔들리는 것 같아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그 기준에 따라 구분하고, 필요하면 설득해가면서 컨셉을 지켜 내려고 해요.
앞으로 찍어보고 싶은 광고가 있다면요?
시네마틱 기법 등 기술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멋진 영상은 잘 만들어 낼 수 있는데, 스토리텔링이 들어간 긴 호흡의 영상을 찍어 본 적이 없어요. 한번 도전해 보고 싶긴 해요. 브랜드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오히려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를 맡아서 하면 더 재밌을 거 같아요. 또,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기회가 된다면 영화도 제작해 보고 싶긴 합니다.
마지막으로 올해 목표가 있다면?
지금이 가장 행복하면서 즐겁게 일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처럼 열심히 재밌게 일하고 싶은 게 작은 소망이자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