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고 합니다. 누구는 획기적인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늘 있어 왔던 우려라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합니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AI에 대한 시각. 이미 많은 이들이 검색 대신 AI에게 물어보고 있으며, 정보뿐 아니라 아이디어까지 얻습니다.
토론토 대학 심리학 교수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12가지 인생의 법칙]의 저자, 조던 피터슨은 ChatGPT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얘기했습니다. 그는 ChatGPT에게 ‘질서를 넘어서는 13번째 규칙에 대해 킹 제임스 성경과 도덕경을 결합해 에세이를 써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3초만에 4페이지에 달하는 에세이가 완성됐습니다. 문법적으로도 완벽하고 철학적이었으며, 자신이 쓴 게 아닌가 놀라울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나의 주제도 어려운데 두 개의 분야를 결합해 매우 짧은 시간에 완성도 있는 글을 써낸 겁니다. 그는 AI의 경악할 만한 능력과 놀라움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ChatGPT의 등장에 ‘구글은 끝났다’고 합니다.
변혁의 시기입니다. AI의 등장은 단순한 기술의 등장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의 등장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AI로 어떤 직업이 사라질 것인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 토론의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크리에이트브 분야에도 변화는 물론 시작됐습니다.
ChatGPT가 쓴 카피를 선보인 라이언 레이놀즈
ChatGPT Writes a Mint Mobile Ad / 출처: Ryan Reynolds 공식 유튜브
미국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는 Mint Mobile이라는 후발 무선 통신 기업의 소유주입니다. 영화 제작사이자 디지털 마케팅 대행사인 Maximum Effort의 설립자이기도 하죠. 23년 1월, 그는 새로운 광고를 선보였습니다. 그의 대행사와 만든 Mint Mobile 광고. 다만 차이가 있었습니다. 카피라이터가 ChatCPT라는 것.
라이언 레이놀즈는 ChatGPT에게 자신의 내레이션으로 카피를 써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조건을 달았죠. 조크를 사용하되 험담도 담고, 사람들이 민트의 홀리데이 프로모션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걸 알게 해 달라고. AI는 그가 내건 모든 조건을 충족시켜 카피를 썼습니다.
“민트 모바일은 쓰레기(shit)이다. 하지만 한 가지 얘기하고 싶은 건 모든 거대 통신사들이 홀리데이 프로모션을 끝냈지만, 민트 모바일은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것. 그러니 한번 써 보시길. 3개월치를 결제하면 3개월이 보너스로 제공된다. 게다가 고객센터에 전화 걸면 언제나 라이언 레이놀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농담이다. 이건 사실이 아니다.”
카피를 다 읽은 라이언 레이놀즈는 살짝 공포스럽다고 합니다. 하지만 흥미진진하다고도 하죠. ChatGPT는 라이언이 요구한 조크까지 모두 갖춘 카피를 썼고, 그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군더더기 없이 전했습니다. 게다가 이 영상을 찍는 데는 돈이 거의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영상은 스마트폰으로 찍고, 편집은 내부 대행사인 Maximum Effort가 했기에.
실제 카피라이터가 썼다면, 사실 별 거 아닌 카피일 수 있습니다. 단순한 사실 나열입니다. 다만 이걸 ChatGPT가 레이놀즈의 요구를 제대로 이해하고, 창작해낸 것이라는 데 놀라움이 있죠. 지금은 이 정도인 듯합니다. ChatGPT라는 꼬리표를 떼면, 특별할 게 없는 수준. 하지만 우리가 활용하고 동시에 경계해야 할 건, AI는 매일 매일 학습하고,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거죠.
AI의 부족함에 초첨을 맞춘 Hardees 버거
Hardee's(하디스) - #UnAimaginable(AI는 만들 수 없는 햄버거) / 출처: AD:chive 유튜브
AI는 아직 시작 단계입니다. 아직 모든 걸 완벽하게 수행해 내는 건 아닙니다. 중동의 하디스 버거는 오히려 여기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먼저, Open AI의 그림 생성 기반인 DALL-E에게 그림을 그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대표 버거인 ‘슈퍼 스타’를. 하지만 DALL-E가 보여준 건 기괴하고 이상한 버거들뿐이었죠. 먹음직스러운 버거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번엔 더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특별하게 토스트된 하디스 참깨 번 위에 그릴로 구워진 100% 쇠고기 패티 두장, 두 장의 아메리칸 치즈가 녹아내리고 있고, 스페셜 소스와 마요네즈, 딜 피클즈, 신선한 토마토, 양파와 아삭한 양배추가 있는 슈퍼스타 버거를 그려주세요’
하지만 DALL-E는 이번에도 먹지 못할 버거만 잔뜩 그려냈죠. 슈퍼스타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별을 촘촘히 달고 있거나, 못 먹을 듯한 보라색 패티가 있거나, 먹음직스러운 번이 아닌 플라스틱 재질로 보이는 번으로 만들어진 버거이거나... 총 10,000번에 거친 시도 끝에, 아직 AI는 슈퍼 스타 버거를 맛있게 그려내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슈퍼 스타 버거는 오직 하디스 매장에서만 만날 수 있으니 매장에서 맛보라는 권유로 끝냅니다. AI가 그린 그림들에는 #UnAimaginable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공개했고요. AI는 상상할 수 없는 버거라는 뜻. 재미있는 시도입니다.
소비자에게 역할을 돌린 코카콜라
Coca-Cola® | Create Real Magic / 출처: Coca-Cola 유튜브
21년부터 ‘Real Magic' 캠페인을 이어오고 있는 코카콜라. 그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AI를 활용해, 진짜 'Real Magic'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CreateRealMagic.com이라는 플랫폼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AI를 써서 예술혼을 발휘할 기회를 주는 거죠. 다만 코카콜라의 아이콘들을 활용해야 합니다. 유선형의 코카콜라 병, 로고, 산타 클로스, 북극 곰 같은 요소들. 이 캠페인은 ChatGPT와 DALL-E를 만든 OpenAI, 컨설턴트 기업인 Bain, 인플루언서 아티스트, 그리고 코카콜라의 프로그래매틱 광고 대행사인 OpenX와의 협업으로 진행됐습니다.
콘테스는 3월 31일까지 17개 국가에서 진행됐으며, 선정된 작품은 뉴욕 타임스 스퀘어와 런던의 피카딜리 서커스의 빌보드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또한 30명의 크리에이터들을 선정해, RealMagic Creative Academy에 참여할 기회를 주며, 아틀란타에 있는 코카콜라 본사에서 3일간의 워크샵을 진행합니다.
우리나라는 이벤트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사이트에 들어가도 작품을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는 국가에서는 CreateRealMagic.com에 들어가서 이메일 주소와 우편 번호만 넣으면 창작을 펼칠 수 있죠. 그림뿐 아니라 그림에 들어갈 문구까지 요구대로 창작해 주는AI와의 협업. 코카콜라는 팬들에게 ‘그들이 한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방법’의 경험을 만들었습니다.
Alexa, I See Coke / 출처: VMLY&R COMMERCE 유튜브
사우디아라비아의 코카콜라는 아마존의 인공지능 플랫폼 알렉사와 협업했습니다. 영화나 TV쇼를 보다 코카콜라를 발견하면, ‘알렉사, I see coke.’라고만 하면 됩니다. 그럼 알렉사는 어디서 발견했냐고 묻죠. 소비자의 대답에 따라 알렉사는 재치 있는 답과 함께 할인 쿠폰을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홈얼론’에서 봤다고 하면, ‘부모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콜라가 친구가 되어줄 거예요’라고 대답하고, ‘죠스’에서 봤다고 하면, ‘수영은 건너 뛰고 차가운 콜라를 즐기는 게 낫겠어요’라고 조언합니다. 코카콜라 인스타그램엔 어떤 작품에서 콜라를 발견할 수 있는지 힌트를 포스팅했고요. 가장 오래 된 ‘킹콩’부터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인 ‘기묘한 이야기’까지 다양합니다.
콘텐츠에서 우연히 콜라를 발견하는 평범함을 즐거움으로 바꾼 코카콜라. 소비자들과의 친밀감을 돈독히 만들고 있습니다. 보이스 AI 사용의 좋은 예입니다.
AI와 인간이 가야할 길은
Open AI의 설립자이기도 한 일론 머스크는 3월 29일, 여러 명의 테크 리더와 함께 사람의 수준으로 AI를 앞다퉈 개발하고 있는 위험한 경주를 멈추라고 발표했습니다. 비영리적 목적으로 시작한 Open AI가 상업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다, AI를 수준 높게 개발하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AI가 추구해야 할 방향과 철학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에 대한 경고입니다.
AI는 사람의 성취감도 빼앗고 있으며, 인간을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는 위험성이 큰데, AI 개발에 대한 결정은 사람들이 선출하지 않은, 방향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은 테크 리더들이 결정하고 있다는 거죠. AI 파급력이 워낙 크기에, 발전 방향에 대한 의사 결정도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겠죠. 적어도 6개월간은 개발을 멈추고 검토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세돌과의 바둑 대결로 우리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AI. 저도 ChatGPT에게 AI로 만든 광고에 대한 칼럼을 A4용지 1매 정도로 써달라고 해봤습니다. 한글이어서인지 조던 피터슨 교수가 경험한 것처럼 33초 만에 써내진 않았습니다. 그보다 몇 초가 더 걸렸지만, 웬만한 이보다 짜임새 있는 문장을 선보였습니다.
AI의 역할, AI로 만든 광고의 문제점, AI가 일정한 패턴을 만들기 때문에 야기될 수 있는 창의력의 부재. 결론은 광고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크리에이터들이 인공지능과 협업하라는 조언이었습니다.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깔끔한 글이었습니다. 어쩌면 사례를 들어 재미있게 써달라고 요청했으면, 더 좋은 글을 선보였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AI가 없는 세상으로 돌아가긴 늦었습니다. 그게 위협적이든 아니든, 어떻게 공존할지를 고민해야 하죠. 영감을 주는 존재로 만들지 경쟁자로 만들지, AI의 발전 속도만큼 많은 가능성을 찾아야 하는 시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