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백 볼드(BOLD) 감독
취재·글 송한돈 | 사진·팡고TV 촬영 유희래
AD-Z 지난 호 베스트크리에이티브로 뽑힌 아이스크림 시모나 ‘삼행시빌런’편 광고 담당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촬영 감독인 이기백 볼드(BOLD) 대표에 대해 소개받고 호기심이 생겼다. 한남동에 위치한 볼드 사무실에는 벽면을 빼곡히 채운 캠핑 장비와 잘 정리된 피규어가 인상적이었다. 이기백 감독의 첫인상은 생각하던 그대로다. 푹 눌러쓴 모자와 반쯤 걸친 후드, 어두운 조명이 강한 인상을 자아내 설렘과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13년간 유명한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활동하다 돌연 그만두고 광고 감독이 됐다는 그. 광고계에서 자신의 진가를 증명해 나가고 싶은 이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광고 만들고 있는 2년차 광고 감독 이기백입니다. 좋은데이 광고를 시작으로 스타일쉐어 ‘스쉐롭게’, 알바몬 ‘광고 유니버스’, 제일 많이 아시는 시모나 ‘삼행시빌런’편 등 다양한 광고를 만들고 있습니다.
알고 보니 유명한 뮤직비디오 감독이셨더라고요!
> 스튜디오 ‘TIGER CAVE’를 운영하면서 2008년부터 2020
년까지 약 170여 개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었어요. 박재범의 ‘몸매’, 에픽하이의 ‘MAP THE SOUL’, 트와이스 ‘I CAN’T STOP ME’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만들어왔던 것 같아요.
이렇게 유명하신 뮤직비디오 감독님이었는데, 어떻게 광고의 길 을 걷게 되셨나요?
> 개인적인 고민에서 출발했어요. 뮤직비디오 산업은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선택받는 시장이에요. 그래서 트렌디하지 않으면 금방 잊혀져요. 일을 하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일을 몇년이나 더 프레쉬하게 할 수 있을까? 길어봐야 5~6년 정도라 생각했어요. 그냥 오래하던 감독으로 남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답을 찾았죠. 은퇴하거나, 직업을 바꾸거나.
그래서 후자를 선택하셨군요?
> 맞아요. 원래 고등학교 때 광고 감독을 꿈꿨어요. 그리고 영상 일을 계속하고 싶었고요. 그래서 ‘광고를 만들어보자’라고 생각한 후 뮤직비디오 스튜디오인 ‘TIGTER CAVE’를 과감히 정리하고,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BOLD’로 새롭게 출발했습니다. 제가 직업 바꾸는 걸 좋아하기도 해요. 뮤직비디오 감독도 사실 세 번째 직업입니다.
힘드셨던 적은 없었나요?
제작한 광고 중에 시모나 광고가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유머 코드를 잘 살리시는 것 같습니다.
촬영 현장에선 자유로운 스타일인가요?
온에어 되기까지 철저히 계획 하에 진행되는군요
영감은 어디서 얻으세요?
그렇다면 일이 없는 날엔 주로 뭐 하시나요?
인상적인 피드백이 있다면?
어떤 광고가 좋은 광고라고 생각하세요?
요즘 광고계 트렌드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요즘 고민이 있다면?
앞으로 어떤 수식어를 지닌 감독으로 불리고 싶으신지?
세 번째요?
> 첫 번째는 앨범 재킷 디자이너였어요. 21살 때인데, 성시경, 에픽하이 등 아티스트의 앨범 재킷을 디자인했습니다. 다이나믹 듀오 5집 앨범 재킷 ‘BAND OF DYNAMIC BROTHERS’ 같은. 보신 적 있으시죠? 두 번째는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잡지 표지를 만들었어요. 뮤직비디오 감독은 앨범 재킷을 디자인했을 당시 인연이 닿아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면서 된 거고, 지금은 광고 감독까지 오게 됐네요.(웃음)
뮤직비디오 만들던 노하우가 광고 제작 때 도움이 됐나요?
> 트렌드를 빨리 알아채는 것. 광고산업만큼 트렌드가 민감한 곳이 뮤직비디오 산업이에요. 그래서 조금 빠르게 접하거든요. 예를 들어 Hype(사전적 의미는 광고 또는 선전하다, 요즘에는 멋진, 트렌디한, 굉장한 정도의 의미로 사용)란 키워드는 아티스트들 사이에선 10년 전부터 사용하고 있었는데, 광고 현장을 와보니 이 키워드가 요즘 유행이어서 신기했어요. 트렌드에 대한 이해가 남들 보다 좀 빠른 편이라 도움이 많이 됩니다.
처음 광고를 제작해보니 어땠나요?
> 현장에서 스태프들과 소통한다는 점 빼고는 완전히 달랐어요. 뮤직비디오의 경우 아티스트의 비주얼에 많은 공을 들이거든요. 하지만 광고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어떤 니즈로 광고하는지, 어떤 점을 보여줘야 하는지 등 치밀하게 계산된 전략에 의해서 촬영하기 때문에 매우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힘드셨던 적은 없었나요?
> 제가 원래 상처를 잘 안 받아요. 가끔 PPM 할 줄 아냐고 물어보는 분들도 있었는데, 그럴 때도 자존심 상하진 않았어요. 마흔살 넘어 광고계에 첫발을 뗀 신입이니까 이런 소리를 듣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우울하게 시간 보내지 말고 대신 하나라도 더 배우고 해내면서 차근차근 저를 증명해 나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제가 또 적응도 잘하거든요.(웃음)
뮤직비디오 감독 때는 감독님만의 한 가지 색깔, 개성이 두드러졌는데, 현재는 여러 스타일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 일종의 ‘포트폴리오’를 쌓고 있다고 할까요. 광고 제작에도 업종 카테고리별로 패턴이 있거든요. 교육, 음료수, 뷰티 등 찍는 방법이 다 달라요. 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살리는 것도 다르고요. 광고 감독으론 처음이니까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습니다. 드래곤볼을 모으는 것처럼요.
제작한 광고 중에 시모나 광고가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유머 코드를 잘 살리시는 것 같습니다.
> 많은 분들이 제가 유머러스한 광고를 잘 만든다고 생각하시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트렌디하고 스타일리시한 분위기를 좋아하고 잘 만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가장 ‘이기백’스러운 광고를 말한다면 ‘스타일쉐어의 스쉐롭게’를 뽑기도 하고요.
사실 시모나 광고는 제가 유머만 잘하는 감독으로 부각되고 싶진 않아서 오히려 스타일리시한 아트웍에 신경을 더 많이 썼던 작품입니다.
순조로운 촬영을 위해 감독님만의 독특한(?) 노하우가 있다던데
순조로운 촬영을 위해 감독님만의 독특한(?) 노하우가 있다던데
> 대화를 많이 해요. 감독과 출연자가 현장에서 가장 많이 커뮤니케이션해야 하는데, 불편한 관계면 출연자를 카메라에 잘 담아내기도 어려울뿐더러 일정까지 영향을 주기도 하거든요. 여러모로 좋은 점이 있어 많이 대화하려고 합니다. 12년간 수많은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며 단련한 기술입니다. (웃음)
촬영 현장에선 자유로운 스타일인가요?
> 기계같이 촬영하는 스타일입니다. 촬영 전에 계획을 많이 세워 놓아요. 촬영장에서 발생하는 이슈를 파악하고 계획을 미리 아이패드에 적어놔요. 예를 들어 밥차가 펑크를 내는 상황, 출연자의 애드리브 등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예상해요. 아무래도 촬영 경험이 많아서 이슈에 대한 대처 매뉴얼이 많습니다. 그리고 촬영 현장에서 우연히 좋은 결과를 얻는 것에 대한 기대가 없기도 하고요.
온에어 되기까지 철저히 계획 하에 진행되는군요
> 네. 계획이 정확히 실행돼야 더 많은 부분을 신경 쓸 수 있어요. 폰트가 영상의 톤과 잘 어울리는지, 전체적으로 아트웍이 일관됐는지, 그리고 음악의 싱크가 적절한지 등 디테일에 시간을 쏟을 수 있어서, 계획을 세우고 수행하는데 많은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광고 감독의 역량이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것. 영상을 잘 만드는 것만이 전부는 아닌 것 같아요. 대행사, 광고주 등 광고 하나에 얽혀있는 관계를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요. 광고주가 처한 문제, 그리고 대행사가 내놓은 솔루션과 방향을 잘 이해하고 그 결과 물을 ‘찰떡같이’ 만들어내는 게 광고 감독의 역량이라 생각합니다.
영감은 어디서 얻으세요?
> 평상시에 부지런히 채워 놓습니다. 수시로 채워야 하는 거로 생각하고 또 몸에 습관처럼 배어있습니다. 제가 한국 인터넷의 역사와 같이 자랐거든요. 웹 서핑 같은 경우도 학생 때 매일 하던 일이어서 어렵지 않게 습관이 됐습니다. 콘텐츠도 영화, 만화, 웹소설, 인스타그램, 유튜브, 잡지 등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소비하고 있고요. 심지어 만화는 한 30년간 봤네요.
최근 깊게 빠져있는 만화는 무엇인가요?
최근 깊게 빠져있는 만화는 무엇인가요?
> 사실 요즘 웹소설에 빠져있습니다. 마이너한 만화를 좋아해서 홍대 만화방을 자주 다녔는데요, 어느 순간 가게가 사라졌어요. 그 이후로는 네이버 웹툰을 보다가 제 취향에 안 맞아서 네이버 시리즈로 옮겨갔는데 웹소설이 있더라고요. 출장 가는 시간이 지루해서 「화산귀환」을 보기 시작했는데, 푹 빠져서 지금까지 보고 있습니다. 지금 1484화까지 나왔는데 아직 미완결입니다. 시간을 허비하고 싶으시다면 강추입니다.(웃음)
그렇다면 일이 없는 날엔 주로 뭐 하시나요?
> 캠핑을 주로 해요. 제가 캠핑을 10년 했어요. 영감을 얻기보다는 쉬러 갑니다. 가면 아무것도 안 합니다.
지금까지 영상 일을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뭔가요?
지금까지 영상 일을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뭔가요?
> 영상 만드는 것 자체가 재미있어요. 마치 ‘가챠(램던뽑기)’ 같아요. 바로 결과를 내고 확인할 수 있다는 것? 물론 매번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광고를 만들고 런칭해서 시청자의 피드백까지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즐겁습니다.
인상적인 피드백이 있다면?
> 좋은 반응은 너무 좋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건 부정적인 반응이잖아요. 한번은 50대가 기획하고 50대가 찍은 광고 같다고 혹평을 받았어요. 혹평에 대한 원인을 집요하게 파고들 수 있지만, 따지다 보면 끝도 없어서... 그런 반응도 하나의 원동력으로 삼으려고요. 다음에 더 잘하면 되니까요.
어떤 광고가 좋은 광고라고 생각하세요?
> 좋은 광고는 진짜 제품을 사게 만드는 광고라 생각해요. 눈에 띄지 않던 제품이 광고를 통해 눈에 띄어 고민의 순간을 만드는 것이 본질이죠. 아무리 아트웍이 좋고, 유명한 광고모델을 써도 세일즈에 기여하지 못했다면 좋은 광고가 아닌 거죠.
요즘 광고계 트렌드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 한글을 잘 사용하는 것. 광고의 톤앤매너를 시네마틱하게 표현하는 건 이제 많이 보편화된 듯해요. 전문적으로 잘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요즘은 영어 카피로 힙한 분위기를 만들 듯이 한글 카피에도 타이포그래피, 모션, 색감 등을 한글에 맞게 해석하고 적용해서 한글만이 가진 힙한 분위기를 살려내는 게 트렌드인 것 같아요.
요즘 고민이 있다면?
> 시모나 광고 덕분에 유머 광고 전문이라고 많이들 생각하시는데 사실 돌출도 있는 광고를 만드는 감독으로 인식되고 싶어요. 봤을 때 ‘좋은데?’라는 반응의 광고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 가장 고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수식어를 지닌 감독으로 불리고 싶으신지?
> 담백하게 ‘이기백 감독’이 좋아요.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이라 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광고 감독으로 담백하게 불리고 싶습니다. 쿨(COOL)한 게 좋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