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글 송한돈 | 사진·팡고TV 촬영 유희래
필라멘트리가 제작한 장애 공감 문화 확산 ‘This is New Normal’캠페인은 기존 공익광고의 틀을 깨면서 주목받았다. 마치 헤드폰이나 선글라스 광고인것처럼 멋진 모델이 등장하는 평범한 상품 광고처럼 보이지만 카메라가 줌 아웃되면 청각, 시각 장애인 광고로 바뀌게 되는 컨셉이다.
필라멘트리는 종합홍보대행사이지만, 광고를 통해 장애인과 일반인의 경계를 지웠듯이, 광고, 홍보라는 경계를 두지 않고, 스타트업을 만들고 키우는 컴퍼니 빌더의 역할도 하고 있다. 뉴미디어 시대 속 새로운 기준을 만들면서 성장하고 있는 문두열 필라멘트리 대표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통 광고회사와 다르게 컴퍼니 빌더의 역할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컴퍼니 빌더로서 어떤 일을 하시는 건가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종합홍보대행사인 필라멘트리를 운영하는 문두열 대표입니다. 현재 운영하고 있는 회사 이외에 다양한 회사들을 함께 운영하고 있어요. 전통적인 광고회사와는 다르게 회사를 만들고 투자를 하면서 그 회사의 광고나 기획, 홍보를 진행해 회사의 밸류(Value)를 높이는 컴퍼니 빌더(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무기로 해당
분야의 스타트업을 창업해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방식)역할도 겸하고 있습니다.
전통 광고회사와 다르게 컴퍼니 빌더의 역할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환경이 변화면서 생존 전략도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한 분야를 깊고 꾸준하게 판 사람들이 성공하는 시대였잖아요. 지금은 넓고 다양하게 여러 분야를 파고 들어가다, 다른 섹터와 융합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구조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컴퍼니 빌더의 역할을 하게 됐습니다.
컴퍼니 빌더로서 어떤 일을 하시는 건가요?
사업의 형태가 정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고 케이스마다 다 달라서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한 20억 정도 매출을 하고 순이익이 한 2~3억 정도가 나는 웹툰 회사가 있습니다. 대표이사는 웹툰 자체에 대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사업에 있어서는 한계에 부딪혀 더 이상 성장시키기 힘들 때, 저희가 그 회사의 지분을 확보한 뒤 폭발적인 성장을 시킬 수 있는 사업구조를 만들고 큰 투자를 받아오는 거죠. 때에 따라서는 대표이사를 새로 선임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 과정은 기존 대표이사의 의견을 100% 반영하여 결정합니다. 지금까지 투자한 스타트업이 한 30여개 정도 되는데 저희 직원들을 대표이사나 임원으로 보내기도 하고 필라멘트리에서 직접 스타트업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러한 형태로 4개의 자회사가 잘 성장하여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필라멘트리가 이런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지 직원들은 알고 있나요
일반 사원들은 대체로 잘 모릅니다. 시간이 지나 신뢰 관계가 형성 되면, 진행되고 있는 사업들에 대해 알거나 사업에 직접 관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죠. 사실 많은 직원들이 창업을 하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내부에서도 플래닝 본부, 제작 본부 등 명확하게 구분하고 그에 맞는 환경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필라멘트리를 딱 뭐라고 정의하기가 힘들겠어요
맞아요.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도 회사에 접촉하는 루트가 다 달라서 회사가 이런 일들을 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기 힘듭니다. 홈페이지를 통해서 본다면 영상제작사로 보일거고, 다른 루트를 통해서는 해외 인플루언서 회사로 보이기도 합니다. 홈페이지를 통해 의뢰하는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는 중소 규모의 CF나 홍보 영상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서인데, 저희가 동남아 인플루언서 마케팅도 진행하고 있지만 이 부분은 유입 경로가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지금 하는 작업들을 총망라한다면 저희 회사가 홍보대행사인지 제작사인지, 투자회사인지 정의하기 애매합니다.
광고와 홍보의 용어 구분이 모호해지고 역할의 구분도 사라지면서 콘텐츠 시장의 혼란스러움을 얘기하는 의견도 있긴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대표님은 올드미디어인 방송국을 거쳐 뉴미디어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까지 다양한 미디어를 경험하셨는데요, 뉴미디어 시대 속의 올드미디어를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최초로 제안한 안이 더 크리에이티브한 것 같은데 왜 다른 안으로 바뀐 건가요?
필라멘트리를 어떻게 창업하시게 된 건가요?
콘텐츠 제작사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제가 방송국에 PD로 근무할 당시 아이폰이 막 등장하던 시기였어요. 스마트폰이 더 보급되게 된다면 모든 사람이 콘텐츠 생산자이자 소비자가 되면서 그에 적합한 콘텐츠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한두 가지 매체에 의해서 콘텐츠가 좌지우지되는 세상은 이제 끝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방송국에 있는 것보다는 앞으로 변화될 세상에서 일을 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서 창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뉴미디어가 태동하던 시기에 제작사인 필라멘트리는 어떻게 성장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기여서 콘텐츠 제작과 동시에 다양한 일들을 병행하게 됐습니다. 당시에는 뉴미디어에 적합한 콘텐츠 제작의뢰가 많았지만 더 나아가 콘텐츠에 대한 성과 측정, 홍보, 캠페인 등 다양한 클라이언트의 니즈가 계속 있었습니다. 기존에 있던 대행사들은 아무래도 덩치가 크다 보니 빨리 변하기에는 힘든 상황이어서 당시 규모가 작았던 필라멘트리가 제작사, 광고대행사, 홍보회사의 영역을 수행하면서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많은 영역의 일들을 수행하느라 힘들지 않으셨나요?
‘힘들다’라는 생각보단 뭔가 새로운 걸 빨리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때는 지하철 노선도만 볼 수 있는 간단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도 다운로드 몇 백만이 나오는 시기였어요. 10~ 15년에 한 번씩 오는 큰 변화 속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감정이 고양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다양한 실험과 도전들을 할 수 있어서 너무 재밌었던 시기였습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때 인원을 늘리고 규모를 키워 돈을 벌 수 있었을 텐데요
무작정 회사 규모를 키우는 것엔 한계가 있었고, 그것보단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동료들끼리 특정 목표를 정하고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저에겐 더 재미있었어요. 그래도 이익을 내야 하는 법인이기 때문에 ‘돈은 어떻게 벌지?’ 라는 고민을 하다가 새로운 회사를 만들고 투자하는 컴퍼니 빌더에 초점이 맞춰지게 된 거죠.
광고와 홍보의 용어 구분이 모호해지고 역할의 구분도 사라지면서 콘텐츠 시장의 혼란스러움을 얘기하는 의견도 있긴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물론 용어와 역할의 구분이 사라지고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으면서 속된 말로 허접한 광고나 콘텐츠들이 많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장 내 콘텐츠 광고 물량이 폭발하면서 정말 창의적이거나 특이한 콘텐츠와 광고도 훨씬 더 많이 등장하게 됐어요.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시도들이 많이 일어나다 보니 전체적으로는 더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표님은 올드미디어인 방송국을 거쳐 뉴미디어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까지 다양한 미디어를 경험하셨는데요, 뉴미디어 시대 속의 올드미디어를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예전에 TV가 처음 나왔을 때 ‘라디오는 없어질 것이다’라고 사람들이 입을 모아 얘기했어요. 하지만 라디오는 지금도 라디오만의 콘텐츠와 감성으로 여전히 사용되고 있죠. 제가 방송국에서 근무할 때 20년간 라디오를 진행한 진행자가 마지막 방송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는데 함께 듣던 독자들도 같이 울더라고요. 청각에만 집중하다 보면 그 사람의 미묘한 음성과 떨림에 더 집중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라디오만의 독자적인 매력인거죠. 인간의 본성과 맞닿은 올드미디어는 그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면서 살아남을 겁니다.
장애 공감 문화 확산 ‘This is New Normal’ 캠페인이 올 초 화제였습니다. 장애인을 광고 전면에 등장시킨 적은 오랜만인데, 캠페인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설명해 주세요
그 시기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우리들의 블루스>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의 필요성이 굉장히 대두되는 시점이었고 동시에 전장연 지하철 시위로 장애인에 대한 여러 가지 상반된 의견들이 공존했어요. 그래서 어느 때보다도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고찰이 굉장히 필요한 시기였습니다. 이전 광고들은 ‘장애
인과 우리는 다르지 않다’라는 메시지와, 일반인들과 장애인들이 함께 웃고 있는 이미지로 구성된 일반적인 광고들이었어요. 이제는 이러한 천편일률적인 공익광고에 변화를 줄 때가 된 것 같다라고 판단했고 파격적인 제안을 했습니다.
온 에어된 광고를 보면 헤드폰 광고나 선글라스 광고처럼 보이는 데 원래는 신용카드 광고를 만드는 거였어요. 카드가 출시돼서 혜 택과 포인트가 쏟아지는 일반적인 신용카드 광고를 만들고 그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모델이 알고 봤더니 시각장애인이거나 휠체어를 타고 있는 장애인으로 설정했어요. 그래서 카드 광고인데 모델
이 장애인인 점에 의아해 해고, 의아함을 느낀 그 자체가 편견이라는 메시지를 알리는 구성이었습니다. 그다음 카드 신청을 유도하는 카피를 클릭하면 사이트로 이동해 지금 느낀 감정이 편견임을 인지시키는 것까지가 최초 안이었습니다.
최초로 제안한 안이 더 크리에이티브한 것 같은데 왜 다른 안으로 바뀐 건가요?
클라이언트 입장에선 너무 파격적인 도전이라 부담스러워했어요. 그래서 최초 안의 3분의 1 정도만 구현하게 됐습니다. 구현된 안은 줌 인이 됐을 때는 선글라스 광고, 헤드폰 광고지만 줌 아웃이 되면 장애인 광고로 바뀌면서 닫힌 시선이 열린 시선으로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 거죠. 더 이상 ‘장애인은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라는 말은 그만하고 스스로 그 인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끔 한 시도에 많이 공감해 주신듯합니다.
잘 만들 수 있도록 직원 모두가 열심히 할 수밖에 없겠네요
이와 비슷하게 좋은 반응을 이끌었던 캠페인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림부)에서 국산 농산물을 애용하고 국내 농산물에 관심을 갖기 위한 농업 농촌 가치 확산 캠페인이 있습니다. 캠페인 키워드를 ‘갓생하루’라고 잡아서 ‘갓 생산된 농산품이 갓생 하루를 산다’는 컨셉으로 댄스를 접목시키는 등 독특하게 만든 캠페인입니다만 키워드인 ‘갓생 하루’를 농림부에 관철시키는 데만 몇 달이 걸렸습니다. 그 이유가 윗분들이 보시기에는 갓생이 무슨 말인지를 몰랐던 거죠. 가까스로 설득돼서 캠페인이 진행됐는데 광고 후 반응도 굉장히 좋았고 조회수도 많이 나오게 됐습니다. 이후에는 다른 캠페인을 진행할 때도 ‘갓생 하루’라는 키워드가 계속 쓰이게 됐어요.
필라멘트리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정부·공공기관 캠페인을 많이 하시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사실은 제가 광고대행사 출신이 아니다 보니 사기업 광고 제안을 들어가는 방법을 모릅니다. 제가 아는 광고주도 없고 내부에 영업 조직 자체도 없거든요. 그래서 지금까지 한 모든 건이 100% 입찰을 통해 진행됐어요. 필라멘트리의 PT 성공률이 70% 정도 되는데 그 이유가 경쟁 PT 성공률이 50% 이하로 떨어지면 회사 망하거든요. (웃음)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한 번 PT 하면 30여개 회사 중 1~2등은 꼭 하는 것 같아요. 살아남기 위해 광고를 잘 만들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된 거죠.
잘 만들 수 있도록 직원 모두가 열심히 할 수밖에 없겠네요
맞아요. 저희 회사에는 스타 플레이어 중심으로 진행되는 게 아니라 개개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같이 만들어 내거든요. 어떤 뛰어난 한 사람이 이끌기보다는 부족한 다수가 날실과 씨실을 엮듯 소통과 협업을 통해 성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업계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우리 같은 사람들도 노력해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고 싶어요.
대표님도 그럼 직원들과 같이 지내시나요?
제가 따로 방이 없거든요. 이 건물 전체가 6층 이어서 그중 한 층을 제 방을 만들어도 되는데 만들지 않았어요. 그냥 한 층 맨 구석 자리에서 직원들과 같이 지냅니다. 직원이 저한테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직접 찾아와서 물어봐요. 가끔 농담도 던지고요. (웃음)
다양한 복지가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복지가 있을까요?
해마다 임직원들과 모여 무슨 복지를 할지 의논하고 발표해요. 지금까지 많고 다양한 복지를 시도했어요. 갑자기 지각을 원하는 날 지각할 수 있는 지각권, 직원의 친구를 추천하면 100만 원을 주고 추천받은 직원이 6개월 근무하게 되면 100만 원을 추가로 주기도 했습니다. 여러 가지를 복지 중에는 투자 복지도 있었습니다. 신입직원들이 사회초년생이라 돈이 없어 힘드니까 회사가 경매에 같이 참여해서 아파트나 빌라를 사서 손해를 보면 회사가 모두 책임져 주고 이득만 봤을 때는 이득을 돌려주는 복지를 해봤는데 잘 안 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비트코인을 경험한 세대라서 투자를 하면 10배 이상은 이득을 봐야 투자라고 느껴지는 거에요. (웃음) 서로 생각하는 부분이 많이 다르다는 걸 알았죠. 모든 직원을 만족하는 복지를 제공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좋은 근무 환경을 만들려고 다양하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필라멘트리가 직원들에게 어떤 곳이길 바라시나요?
요즘 시대는 열정이 사라지는 시대잖아요. 업이든 인생이든. 열정을 불태울 동기도 장소도 목적도 없어지고 있는데, 내 인생을 불태울 만한 가치와 재미는 어딘가 존재하거든요. 맡은 일을 하면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일도 중요하지만, 누군가 열정을 불태울 만한 목표가 있다면 그 목표를 같이 성장하며 성취할 수 있는 곳이 되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대표님이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요?
계속 도전하고 성장 하는 게 목표입니다.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말이 있는데요, ‘거기서 거기’라는 말이에요. 그 말을 들으면 열정도 꿈도 모두 사그라들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지워 버리는 것 같거든요. 저는 어제보다 성장하고 싶고 작년보다 더 성장하고 싶어요. 그게 마음이든 글쓰기든 사람을 대하는 일이든 모든 영역에 상관없이요. 성장하는 과정이 가장 행복하고 즐겁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성장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