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를 켜면 혹은 OTT에 접속하면, 수많은 영상이 올라옵니다. 그중 우리는 어떤 영상을 볼지 선택하고, 보면서도 계속 볼지 아니면 건너뛸지 고민합니다. 내 시간을 기꺼이 할애하려면, 뭔가 통하는 게 있어야 합니다.
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이어진 황무지. 풍경 위로 울려 퍼지는 루다크리스의 노래,‘2 miles an hour.’ 그리고 나타나는 트랙터.. 큰 호박을 실은 채 노래 가사처럼 매우 천천히 움직입니다. 한때 서부의 카우보이였을 법한 노년의 운전수는 서두르지 않습니다. 충전할 데도 없는 트랙터에 꽂힌 아이폰. 102마일이 남았으니 직진하라는 내비게이션의 안내. 그렇게 트랙터는 당황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갑니다. 아이폰이 하루 종일 가는 배터리 성능을 알리기 위해 만든 콘텐츠입니다.
우리는 모두 경운기의 속도를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느린지 알기에 이 콘텐츠는 웃음을 줍니다. 적절한 가사를 읊는 노래와 시종일관 포커페이스를 한 농부의 표정, 광활한 황무지가 더해져 우리에겐 잊을 수 없는 콘텐츠가 됩니다. 적절하게 유머를 섞은 잘 만든 콘텐츠입니다.
기억에 남는 콘텐츠가 되는 것, 잊지 못할 경험이 되는 것, 브랜드가 가장 원하는 방향입니다.
아이의 의견을 드라마틱하게 마주하는 경험
SNS엔 수많은 아이들의 사진이 올라옵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5세 아이의 경우 평균 1,500장의 사진이 업로드된다고 합니다. 아이의 거의 모든 것이 세상에 공개되는 거죠. 문제는 이 사진이 아이의 동의 없이 어른들이 올린 사진이라는 것. 아이는 아직 계정도 없고 사진을 올릴 줄도, 사진을 올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릅니다. 아이의 모든 것이 예쁜 부모들은 그 순간을 남기기 위해, 열심히 사진을 올립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순간들은 예기치 않은 미래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Deutsche Telekom - Sharenting (Germany, 2023, Subtitled) / 출처: re:ADs 유튜브
9살 난 딸, 엘라의 부모. 그들은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엘라의 수많은 순간들을 SNS에 업로드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기치 않은 만남을 마주합니다.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부모. 하지만 화면에 타나난 건 영화가 아니라 성인이 된 엘라입니다. 엘라는 눈물을 흘리며 호소합니다. 당신들이 예뻐서 올린 사진들이 나의 예기치 않은 불행이 될 수 있다고. 내가 저지르지 않은 일들로 감옥에 갈 수도 있고, 목소리가 복제돼 보이스피싱에 사용될 수도 있으며, 모두가 조롱하는 밈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고. 모든 사진들이 내 평생을 따라다니게 될 것이니 나의 프라이버시를 지켜달라고.
충격적입니다. 누구도 아이들 사진을 올리면서 이런 위험을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독일의 통신사, 도이치 텔레콤이 딥페이크 기술로 만든 성인 엘라의 의견입니다. 그들은 부모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고자 했습니다. SNS에 공개된 사진은 후에 많은 곳에 악용될 소지가 있으니까요. 아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수많은 개인 정보가 노출되는 겁니다.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공개된 사진이 2030년에 이르면 3분의 2가 신원도용에 이용될 수 있고, 총 800만 달러가 넘는 규모의 온라인 사기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몰랐던 위험입니다. 이 영상을 한 번이라도 본다면 부모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되겠죠. 도이치 텔레콤은 의견을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성인으로서의 아이를 ‘미리’ 만나게 함으로써 설득력을 높였습니다.
금지된 책들을 만나는 경험
작년 한 해, 2,314곳의 도서관이 수많은 금지된 책을 서고에서 없애야 했습니다. 갈수록 금지되는 책 목록은 늘어가고 있으며, 지적 자유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건, 책들이 금지되고 있는 이곳이 독재국가도 분쟁지역도 아니라는 겁니다. 바로 미국입니다. 민주주의하면 대표적인 국가로 떠오르는 미국이, 수많은 콘텐츠와 미디어가 발달하고 있는 지금, 금서 목록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이에 미국 디지털 공공 도서관(Digital Public Library of America)은 미국인의 ‘자유’를 위해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새로운 북클럽을 만든 겁니다.
DPLA | The Banned Book Club | FCB Chicago / 출처: FCB Group India 유튜브
미국 디지털 공공 도서관은 ‘모든 미국인은 읽고 싶은 책을 쉽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만든, ‘The Banned Book Club.' 이 북클럽은 GPS 기반 지역 타겟팅을 이용해, 해당 지역에서 금지된 책을 그 지역 주민들에게 보여줍니다. 도서관이나 서점에선 구할 수 없지만, 이곳에서 무료로 다운받아서 읽을 수 있는 거죠. 책을 검열하는 것은 자유에 대한 엄청난 위협입니다. 이 캠페인은 전 대통령인 버락 오마마와 그의 부인 미셸 오바마도 함께할 예정입니다. 자유롭고 활발한 생각의 교류가 미국 민주주의의 핵심이기 때문에, 금서를 만드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데 모두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검열에 다양하게 저항하고 있습니다. 금지된 책의 저자가 학교 이사회를 찾아가기도 하고, 금서 지정 자체를 금하는 법을 통과시키기도 했죠. 하지만 검열에 저항하는 가장 강한 방법은 검열된 책을 읽는 것이겠죠. 이 북클럽은 ‘지적 자유’를 함께 지키며, 부당함에 저항하는 쉬우면서 좋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총과 함께 오는 누군가의 경험
미국은 총기 사고가 빈번합니다. 무차별 난사뿐 아니라 가정 폭력, 자살, 의도치 않은 실수로 인한 사고, 경찰 폭력까지. 총기로 인해 벌어지는 사고는 다양합니다. Brady는 이제 모두가 힘을 합쳐 이 사고를 끝내야 한다고 합니다.
총기 폭력에 대항하는 미국인의 연대인 Brady. 그들은 다방면으로 총기 사고를 줄이기 위한 캠페인을 펼치고 있으며, 특히 계속 늘어가는 총기 자살에 집중합니다. Brady에 의하면 미국인의 총기 사고 중 반 이상이 총기 자살이라고 합니다. 하루 평균 67명에 이르는 숫자죠. 지난 40년간을 비교했을 때 지난해가 가장 많은 폭으로 총기 자살률이 올라간 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특별한 책을 만들었습니다. 제목은 'Safe Stories.'
Safe Stories :60 | End Family Fire | Gun Safety / 출처: Ad Council 유튜브
얼핏 보면 평범하고 두꺼운 책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두 가지 기능을 숨기고 있죠. 펼치면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총 7명의 이야기. 모두 총으로 자살할 뻔한 사람들의 경험입니다. 세상을 떠나려고 했으나 가까운 이의 도움으로 삶의 가치를 다시 깨닫고 돌아보게 된 이야기, 아들의 죽음으로 삶의 의욕을 잃었을 때 곧 태어날 손자의 존재를 알게 되고 손자를 위해 삶을 이어가기로 한 이야기... 모두 위험에 빠진 찰나를 빠져나온 사람들의 결정입니다.
그들은 삶은 살아볼 가치가 있다고 전하며, 다시 행복을 누리는 하루하루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 이야기 끝엔 총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보관함이 나옵니다.
총을 분리해 안전하게 넣고 잠그는 시스템입니다. 총기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거죠. 총기에 접근하기 쉬울수록 자살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합니다. 그들이 잘못된 결정을 하기 전에, 자살을 피한 이들의 공감을 먼저 만나고, 잠가진 총기 보관함을 보며 다시 생각할 시간을 주는 책.
이 책은 미국 광고 협의회(Ad Council)와 Brady, 그리고 Brady가 진행하는 가족 간의 총기 사고를 막기 위한 운동인 ‘End Family Fire'의 일환으로 고안됐습니다.
말뿐인 주장은 공허합니다. 설득력을 갖기 힘듭니다. 하지만 누군가 총을 찾을 때, 공감과 생각할 시간을 마주하게 되는 Brady의 캠페인. 절실한 이들에게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책입니다.
기억된다는 것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는가?? 아, 어디에 있는가, 옛날의 그 한량들은?”
iPhone 14 Plus | Battery for Miles | Apple / 출처: Apple 공식 유튜브
7월 11일, 문학의 거장 밀란 쿤데라가 타계했습니다. 그는 수많은 명작을 남겼고 그 책들 한 권 한 권은 읽는 이에게 새로운 경험입니다. “느림”에서는 느림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을 안타까워합니다. 느릴수록 기억하기 쉽고, 빠를수록 망각하기 쉽다는 얘기와 함께.
브랜드가 하는 수많은 마케팅과 전략들은 모두, 누군가를 잠시 멈추게 하고 새로운 경험을 통해 기억되게 하려는 겁니다. 현대의 속도는 매우 빠릅니다. 누구도 쉽게 시간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인터넷에는 두 시간짜리 영화를 2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으로 줄여버린 콘텐츠가 넘치며, 사람들은 말 그대로 ‘숏츠’에 탐닉하는 등 느림에 인색합니다.
OTT에는 빠르게 재생하는 기능이 있어, 사람들은 자기만의 속도로 콘텐츠를 봅니다.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점점 더 시간에 인색해지고 있는 거죠. 그 사람들의 시간을 늦추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새로운 경험이 필요합니다.
잠시 멈추게 하는 힘. 잊지 못할 경험으로 남는 힘. 그리고 변화하게 하는 힘. 하지만 누군가는 계속 멋지게 해내고 있습니다. 아이폰이 말한 것처럼.
“Relax. It’s creat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