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더는 마약 청정국이 아니다. 지난 5년 간 전체 마약사범은 134%나 증가했으며, 10-20대 마약사범은 1년 사이 무려 53.9%나 증가했다. SNS를 통해 마약을 손에 넣는 데는 4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보도도 있다.
경찰청과 지역 구청, 교육청 등이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지만 물에 타는, 소위 물뽕(GHB)류의 마약은 무색, 무미, 무취라 절대 알아차릴 수가 없다. 실생활 속에서 나도 모르게 접하게 되는 마약을 막는 데는 역부족. 이렇게 ‘몰래 탄 마약’ 문제를 해결하는데 ‘힘’ 쓰기 위해 JTBC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이 나섰다.
드라마 세계관 그대로, 현실 마약과 싸운다!
드라마는 강남을 배경으로 신종마약 조직을 소탕하는 괴력의 모녀 3대 이야기다. 해당 드라마를 홍보함과 동시에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홍보 포스터를 제작하기로 했다.
마약이란 강렬한 소재로 자극적인 마케팅을 할 수도 있지만, 만약 드라마의 세계관을 현실로 고스란히 가져와 실제로 마약범죄와 맞설 수 있다면 마케팅을 넘어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의미 있는 캠페인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드라마 스토리에 맞춰 홍보용 포스터를 마약 검출이 가능한 검사지로 제작하기로 했다.
의료진단 전문기업과의 기술개발을 통해 의심스러운 음료를 한 방울만 떨어뜨리면 1분 안에 마약이 검출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드라마의 배경이자 한국에서 마약 사건으로 가장 시끄러운 ‘강남’을 중심으로 캠페인을 진행했다. 여성들이 모이는 미용실과 성형외과, 학생들이 다니는 대치동 학원과 피시방, 젊은 유동 인구가 많은 영화관, 카페, 지하철역, 버스 정류장, 약국 및 20개 대학교에 포스터를 부착했고, 누구나 포스터 안에 든 원 형태의 검사지를 하나씩 떼어 필요시에 검사할 수 있도록 했다.
드라마 포스터와 마약 검사지가 하나로? 가능해?
드라마 포스터도 만들 수 있고, 경찰들이 쓰는 간이 마약 검사지도 만들 수는 있다. 문제는 이 두 가지를 합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종이부터 잉크, 인쇄 온도까지 서로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일반적인 드라마 포스터처럼 인쇄하면 마약검사지로는 쓸 수가 없고 마약 검사지처럼 만들면 드라마 포스터처럼 인쇄가 안 된다. 마약 검사지 역할을 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에 최대한 검사지 기준에 맞춰 작업을 해야 했다. 종이는 의료 진단용 특수지를 썼다.
검사지 위에는 그 어떤 프린트용 잉크도 묻지 않도록 디자인했다. 드라마 포스터이면서 검사지이기도 하려면 두 개의 이질감이 전혀 없어야 했기 때문에 검사 시약의 컬러와 인쇄 컬러를 맞추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당연히 컬러와 디자인, 사이즈까지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온도였다. 서로 다른 형태의 프린트에 실험을 해보았는데, 인쇄 가능한 온도의 차이가 있다 보니 어떤 단계에서는 종이 말림 현상이 심해 포스터로는 쓸 수가 없었고 어떤 단계에서는 시약의 효과가 떨어져 검사지로서는 쓰기가 어려웠다. 인쇄 전문가에 검사 전문 수석연구원까지 투입되어 함께 고민하고 설계했고 결국 수차례 실패를 거친 뒤에야 완성품을 만들 수 있었다..
K-드라마는 힘이 세다! 마케팅 넘어 선한 영향력 발휘
캠페인이 시작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모두에게 충격을 준 마약 사건이 터졌다. 그로 인해 ‘마약 검사 포스터’ 캠페인은 더욱 관심을 받았다. 국내 주요 뉴스에서 ‘드라마의 선한 영향력’이라는 헤드라인으로 캠페인을 보도하기도 했다. 마약 문제가 심각한 해외에서도 관심을 가져, 캠페인 아시아(Campaign Asia)에서 “창의성과 실용성의 밸런스를 섬세하게 유지하면서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캠페인”이라는 평을 받았다.
SNS에도 긍정적인 응원의 게시물들이 지속적으로 업로드되었다. 당연히 ‘마약 검사 포스터’는 한 달 만에 준비된 물량 1,000장이 모두 소진됐다. 무엇보다 보람 있었던 것은 포스터에 대한 문의와 요청이 쇄도해 캠페인을 전국적으로 확산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지방의 초, 중, 고등학교와 학원, 청소년 센터, 병원, 회사, 주민센터, 카페 등 캠페인의 취지에 맞는 곳을 선별한 뒤 포스터를 추가로 부착해 캠페인을 이어갔다.
크리에이티브가 세상을 바꾸는 법
‘힘쎈 여자 강남순’의 캐릭터 황금주(김정은 분)는 말한다. 집안 대대로 내려온 괴력은 세상을 위해 좋을 일을 하라는 뜻으로 생긴 거라고. 그리고 좋은 일에 쓰지 않으면 그 힘은 사라진다고. 크리에이티브는 시장을 바꾸고, 브랜드와 제품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조금 더 노력한다면 세상마저 바꿀 수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크리에이티브 능력은 브랜드뿐만 아닌 세상을 위해서도 쓰라고 준 ‘슈퍼 파워’가 아닐까?
제일기획 김강민 프로 (제작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