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브랜드&컨텐츠팀 강효정 CⓔM
‘껑충 뛰어오를 흑토끼의 해’ 작년 이맘때 쓴 원고의 제목이다. ‘갓생을 살아가는 생존의 지혜가 필요한 지금, 재치를 가진 토끼처럼 이 불안과 위기의 시대를 껑충 뛰어넘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한다’고 마무리를 했었다. 그런데 어느 틈에 벌써 2024년 청룡의 해가 왔다.
<트렌드 코리아 2024>의 김난도 저자는 내년의 트렌드 키워드를 ‘드래곤 아이즈(DRAGON EYES)’로 정했다. 그리고 ‘AI’와 ‘챗GPT’를 얘기하는 시대에 인공지능이 채울 수 없는 창의의 영역이 아직은 존재한다는 것에 안도했다고 한다. 인공지능은 효율과 속도의 문제이며 민첩한 결과물을 내는 데 적합하지만 마지막에 어떤 ‘휴먼 터치’가 더해졌느냐에 따라 그 완성도가 결정될 것이라고 한다. 인공지능의 시대지만 인문학적인 역량을 활용해 ‘화룡점정’ 할 수 있는 용의 눈(DRAGON EYES), 결국 마지막 터치는 인간의 몫이라는 것이다.
“현대의 창의성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비범하게 선택해서 독창적으로 배열하는 능력”. 영화평론가 이동진 님이 영화 <매트릭스>에 달아둔 한 줄 평이다. 개인적으로 해당 영화의 평을 넘어 뇌리에 박힌 공감되는 말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과 인간의 역량을 논하는 이 시점에 비범하게 선택할 수 있는 시야를 갖는 힘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회의 석상에서 누군가 갑자기 테이블 위 무당벌레를 발견하고 “무당벌레”라고 말하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내 인생 영화 중에 하나인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의 <제8요일> 속 한 장면이다. 아름다운 장면이 정말 많은 영화임에도 주인공 ‘아리’가 회의 중에 무심코 말을 뱉는 이 장면을 나는 유독 애정한다. 영화는 성공한 세일즈 강사 ‘아리’와 다운증후군 ‘조지’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이해, 관계와 소통을 다룬 명작이다.
아주 오래전에 봤음에도 아직 ‘무당벌레’ 하면 이 영화가 생각난다. 영화 속 무당벌레는 일상의 소소한 것들에 대한 감사와 경의를 표현한다. 평범한 순간에 숨어있는 아름다움과 기쁨을 찾는 의미이기도 하다. 직업적으로 성공했으나 삶이 무너지던 일중독자 아리는 티 없이 순수한 조지를 만났기에 무당벌레를 발견할 수 있었다. 눈앞에 두고도 의미를 찾지 못했던 삶의 시야를 다시 갖게 된 것이다.
영화 <제8요일> 속 두 주인공이 함께 1분가량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 / 출처 영화 캡처
우리는 ‘나를 잘 파는 것도 능력’인 사회를 살고 있다. 끊임없이 ‘나의 쓸모 있음’을 증명하고 마케팅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다. 경제적 성취이거나 명예적 성취이거나 다수가 선망하는 지점에 빠르게 도달한 사람들이 각광받는다. 트렌드를 쫓지 못하거나 급변하는 세상의 흐름을 읽지 못하면 어쩐지 뒤처진 느낌이 든다. 거기에 남들과 같은 일반적인 삶의 속도를 따라가야 할 것 같은 은근한 시대의 압박을 받기도 한다.
삶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져갈수록 진짜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이들은 일상적 노력을 강조하는 자기계발서를 찾는다. 생산적인 사람임을 증명하랴, 남들의 속도를 맞춰가랴 또는 목표점 쟁취를 위해 경쟁하랴. 갓생을 사는 우리의 시야는 간혹 좁아지게 마련이다. 강박적으로 본인의 생산성을 스스로 부추기다 번아웃과 무기력을 반복하기도 한다. 때로 ‘아리’처럼 주위를 둘러볼 마음의 여유 없이 시야가 좁아질 때, 나는 이 ‘무당벌레’를 생각하곤 한다.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갈 창의의 힘, 인문학적 활용을 통해 ‘화룡점정’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생각해 본다. 인문학적 소양은 세상을 보는 안목과 인간을 이해하는 능력으로 정의된다. ‘평범’과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것도 보통의 힘으로는 어려운 세상. 개인은 더 고립되고 친구, 직장동료는 관계의 피로도로 인해 더 폐쇄적인 방향을 선호하게 될 것이라는 2024년 트렌드 보고서들의 전망이다.
여기에 더해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스펙일지라도 ‘스스로’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다양한 경험, 완벽하지 않아도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의견이 담긴 리서치 결과를 봤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인생의 독창적 창작자로 누군가에게 의미 있게 포착되길 바란다. 그것이 비록 다중의 박수갈채가 아닌 단 한 사람의 인정일지라도 말이다. 스스로가 나를 인정하면 그렇게 삶이 버텨지는 게 아닐까.
삶의 소중한 경험들은 세상을 보는 안목, 성찰을 얻게 하고 나와 관계를 맺는 이들과 주고받는 영향은 인간을 이해하게 한다. 나 스스로를 인정하고 나와 관계된 이들과 일상의 소중함을 나누고 다정함을 잃지 않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때로는 상처받거나 피로하고 또 귀찮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결국 ‘휴먼’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2023년 토끼의 해에는 생존의 지혜를 찾기 위해 분주했다. 2024년 청룡의 해에는 속도와 효율보다 평범한 일상에서도 소소한 아름다움과 감사함을 발견하는 한 해, 비범한 선택과 독창성으로 미래를 열 수 있는 특별한 눈으로 화룡점정을 찍는 새로운 시작을 기대해본다.
한 해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린 직장인들을 위한 연말연휴 추천 영화 / 출처 네이버영화